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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54화 (54/119)

S급 자영업자

54화

“그럼 왜 매번 잡을 때 힘을 주려다가 빼는 거예요? 무의식인 것 같던데.”

“자칫 잘못 잡았다간 큰일 날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라도 부러지거나 다치면…….”

“고작 손잡는 거로요? 연우 씨 혹시 신체 강화 계열 에스퍼예요?”

“아뇨.”

“그럼 이 기회에 알아 둬요. 사람 손은 생각보다 튼튼하다는 것을.”

에스퍼들 중 가끔 가이드를 무슨 환자처럼 취급하는 이들이 있다고 듣긴 했는데, 설마 주연우도 그럴 줄이야-.

다른 부위라면 몰라도 사람 손은 생각보다 튼튼해서 좀 세게 잡는다고 뼈가 부러지거나 그러진 않는다.

예전에 했던 아르바이트에서 같은 알바생 중 헬스장에 다니는 우락부락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걔랑 손 씨름 했을 때도 피가 안 통한 것만 빼면 멀쩡했다.

“잡아 봐요.”

가이드를 많이 접해 보지 못해서 그런 거라 판단한 나는 주연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주연우가 손을 붙잡아 왔다.

마주 보는 자세에서 손을 잡아 올 때 주연우가 잡는 방식은 특이했다. 내 손바닥을 스쳐 손목을 긴 손가락으로 옭아매듯 잡았다.

‘그런데 또 힘은 안 주는 게 묘하단 말이지…….’

덫에 갇힌 짐승을 붙잡듯,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잡으면서도 힘은 주지 않았다.

설령 힘을 준다고 해도 내가 마음먹고 떨쳐 내면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의 악력이었다.

“천천히 힘줘 봐요.”

내 말에 주연우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힘이 들어갔다 해도 실습 때 에스퍼들이 잡았던 것보다는 훨씬 약한 정도였다.

나는 손목을 살짝 틀어 주연우의 손을 잡았다. 순식간에 주연우가 나를 잡은 게 아닌 내가 주연우를 잡은 형태로 서로의 위치가 바뀌었다.

나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상대가 통증을 느끼기엔 약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약하지도 않은 정도의 힘이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주연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기억할 수 있겠어요?”

“……네.”

대답은 조금 늦게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손으로 시선을 내린 그가 내 손을 잡아 왔다. 조금 전보다 힘이 실린 그의 손가락이 내 손등 위를 감싸며 엄지손톱이 손등을 살짝 긁었다.

나는 살짝 어깨를 움츠렸다. 손톱이 길지 않아 아프진 않았지만, 기분이 묘했다.

“그, 다음부턴 이 정도면 돼요. 이 정도면 저도 아프지 않고, 연우 씨도 괜히 긴장할 필요 없고 좋잖아요.”

“다음부터요?”

“네, 아! 우리 이제 자리 옮길까요? 저희 놀러 온 거잖아요. 아, 잠깐 저 문자가 와서…….”

지이잉. 진동이 울렸다.

나는 서둘러 손을 놓고 휴대폰 화면을 켰다. 누군지는 몰라도 타이밍 잘 맞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혹시 어디예요? 단답 혹은 초성으로 보내 주세요.]

문자를 보낸 이는 강민지였다. 어제부터 내일 어디 가느냐고 관심을 보이더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맞다. 연우 씨, 다음 장소는 어디예요?”

마음 준비를 위해서라도 알고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휴대폰 화면을 응시한 채 물었다.

눈앞에 사람이 있는데 휴대폰을 보고 있긴 뭐하니 바로 답장 보내고 끌 생각이었다.

“호텔이요.”

주연우가 대답했다.

[호텔]

“네- 호텔 좋…….”

보내기 버튼이 눌러졌고, 그와 동시에 내 고개가 들렸다.

* * *

주연우가 데려온 다음 장소는, 다름 아닌 ‘호텔’ 디저트 컬렉션이었다.

넓은 홀에서 각 분야의 유명 파티시에들이 각 구역에서 디저트를 유리장 안에 내보인 채 서 있었다.

홀 안에는 나와 주연우 말고도 손님이 있었지만, 조명도 어둡고 테이블 간 간격이 넓어서 대화 소리는커녕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 얼굴조차 확인하기 힘들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호텔은 식사하는 곳이기도 하지. 하지만 분위기가…….

아닌가, 그냥 내가 쓰레기인가. 지금껏 이런 욕망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나는 준비된 좌석에 앉은 채 잠시 머리를 비울 시간을 가졌다.

테이블 위에는 눈부시다 못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무스 케이크가 올라와 있었지만, 좀처럼 시선이 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주연우가 걱정 어린 얼굴로 물었다.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뇨, 멀쩡해요.”

나는 한결 차분해진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호텔이라서 그쪽으로 생각했다고 어떻게 당사자에게 말해.

아무래도 데이트라는 것과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인식이 강해 그런 쪽으로 생각이 미치는 것 같았다.

‘-만약 관심도 없던 사람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진 않았겠지.’

솔직히 내가 주연우에게 느끼는 게 연애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 분명한 것은 나는 어떤 식으로든 주연우가 마음에 들고, 가능한 한 친분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나를 좋게 여기고, 배려해 주는 사람을 싫어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꽃비처럼 쏟아지는 그의 호의에 내가 분명하게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음…… 연우 씨 만약 가이딩 때문에 힘들면 제게 말해요. 매번은 무리더라도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면 도와줄게요. 아, 물론 디저트 때문은 아니에요.”

마침 눈앞에 디저트가 있어 본의 아니게 말이 곡해되어 전해질까 싶어 슬쩍 접시를 옆으로 밀어냈다.

내 말에 놀란 듯 주연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느리게 두드렸다.

내가 그의 집에서 머무르던 때부터 종종 주연우는 저렇게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볍게 두드리곤 했다. 생각에 빠질 때의 습관인 듯했다.

천천히 엇박자로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을 응시하자, 그런 내 시선을 느낀 듯 주연우가 손가락을 말아쥐었다.

그가 조용히 미소를 짓더니 살짝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요? 그럼 이제 저 안 버릴 거예요?”

“아니, 제가 언제 버렸다고?”

애초에 주연우는 내 소유도 아니었다. 황당하다는 듯 되묻자 주연우가 눈썹을 늘어뜨렸다.

“하지만…… 말도 하지 않고 집에서 떠나셨잖아요.”

“와, 이거 진짜 억울한데. 다시 말하는 거지만 저는 분명 거기 쪽지 남기고 왔거든요?”

“그래도 다음부터는 제게 직접 말해 주세요.”

“직접 말하면 뭐가 달라져요? 말한다고 해도 결국 떠난다는 건 똑같잖아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한 질문이었지만, 본심이기도 했다. 열일곱 살 이후로 나는 한곳에 오래 머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나는 이방인이었고, 오롯한 나의 자리는 없었으니까.

갑자기 다른 세계에 갔던 게 그러했고, 아멜리아의 저택도 오래 있진 못했다.

캠벨 백작가에서 빠져나와 마법사인 키센을 만나고 그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터졌고 또다시 머물 곳을 옮겼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결국, 이 세계에서 떠날 때나, 돌아올 때나 나는 누구에게도 작별 인사조차 꺼내지 못했다.

나는 뒤늦게 아차 싶은 얼굴로 생각했다.

‘그래, 작별 인사라도 하자는 의미였겠구나!’

무심결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말한 것 같다. 서둘러 말을 덧붙이려는데, 나보다 주연우의 대답이 더 빨랐다.

“누나가 떠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조명 때문이었을까. 짧은 순간, 그의 눈이 묘한 이채를 품었다.

주연우의 두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나긋하게 이어진 목소리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무슨 의도인지 모를 말에 멍하니 눈을 깜빡인 순간, 그가 말을 이었다.

“뭔가 곤란한 상황에 처해 갑자기 떠나시는 거라면, 제가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 그래서-.”

그건 그렇지.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거주지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것은 돈의 부재가 원인이므로, 대체로 돈만 있으면 해결될 일이었다.

“디저트는 입에 맞으세요? 지인에게 여기가 괜찮다고 들어서요.”

“네, 맛있어요.”

“다행이다. 좋아하실 것 같았어요. 처음에 드린 선물을 제일 마음에 들어 하셨던 것 같아서요.”

……내가 언제 주연우에게 케이크를 받았던가? 그에게 받은 게 많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중에 케이크는 없었던 것 같다.

당연했다. 내가 카페 사장이라 케이크를 선물로 들고 오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으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답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실은 다른 의미로 내 피가 되고 살이 될 현금이 더 좋은 속물적인 사람인데.’

물론 디저트는 좋아한다. 하지만 그보다 돈이 더 좋다. 현실 세계로 돌아오고 시작된 유목민 생활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주연우의 성격이 못되기라도 했으면 처음부터 뭐든 고민 없이 받았을 텐데,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게 거칠고 본성이 악한 사람이면 나도 예의 차릴 것 없이 똑같이 굴면 되는데, 다정하고 선한 품성의 사람에겐 함부로 굴기 힘들다.

나는 슬쩍 고개를 틀어 주연우를 쳐다봤다. 그러자 주연우가 자연스레 시선을 맞춰 왔다. 조금 들뜬 얼굴이 내가 기뻐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진짜 맛있어요.”

내 기쁨만을 안중에 둔 시선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멍하니 나를 쳐다보던 주연우가 테이블 위로 놓은 손을 작게 움찔거리더니 천천히 내 쪽으로 뻗었다.

“……가이딩 지금 필요한 것 같아요. 손잡아 주세요.”

어찌 보면 그가 처음으로 내게 가이딩을 요구한 상황이었다. 대범하게 요구하는 것치곤 그의 두 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테이블 중간에 멈춰선 그의 손이 불안한 듯 테이블 위로 손가락을 내려놓았다.

그에 나도 포크를 내려놓고 그의 손을 맞잡았다. 내가 손을 잡자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 전에 내가 알려 준 것과 비슷한 정도의 악력이었다. 그걸 깨닫자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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