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51화
나는 그런 이로운의 머리를 쓰다듬다 조금 전 가이딩을 상기했다.
이로운의 등급은 S급.
접촉이 가능해진 뒤로 종종 가이딩을 해 주긴 했지만 1단계인 손 가이딩이 전부였으며, 그조차도 적응을 위해 짧게 해서 부족한 몫을 다 채워 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 한번 이로운의 허락하에 힘을 키워 본 건데…….
‘완전히 채워지진 않았어도, 반? 그 정도는 간 것 같은데.’
물론 들은 수업 중 가이드가 에스퍼의 그릇을 파악하는 방법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으니 확신은 못 하겠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주연우 때와는 달리 이로운의 경우 언뜻 바닥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체 뭐지?’
나는 설핏 미간을 좁혔다.
주연우의 진짜 등급이 뭐든 하급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 * *
카페 휴무일이었다. 휴무일이라 손님도 없고 하여 서윤호를 카페로 불렀다.
저번에 대량 주문한 쿠아 잼을 전해 줘야 했는데 최근 서윤호가 바빠 시간이 잘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에스퍼가 등급을 속인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런 것 같아?”
헤베 소속의 A급 현역 에스퍼이니 이로운과는 달리 좀 더 아는 게 많을 것 같아서 물어봤다.
“누가 등급을 속이는 것 같다고?”
살짝 미간을 찌푸린 서윤호가 음료를 들이켜더니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어왔다.
“와, 이거 뭐냐?”
“초코 크림 라떼, 참고로 카페인 함유. 만들어 봤는데 어때? 괜찮아?”
“진짜 엄청 맛있어! 이거 판매할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다들 바쁘고 피곤해 보이던데, 달지 않으면 커피를 아예 못 먹는 서윤호 같은 손님들이 종종 보이기에 한번 시도해 봤다.
원래 가게에서 판매하던 초코 라떼에 에소프레소 원액을 넣고 그 위에 초콜릿 크림과 브라우니 쿠키를 갈아서 뿌렸다.
“그런데 위에 뿌리는 쿠키는 그날 남은 거로 할 것 같아서 매번 종류가 달라질…… 아니, 지금 이거 말고.”
“카페 사장이 신메뉴보다 중요할 게 뭐가 있어.”
디저트에 진심인 듯 서윤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초코 크림 라떼가, 왼손에는 아몬드 쿠키가 들려 있었다.
“그냥 말하기 싫은 거 아니야? 너도 남들에게 가이드라거나, 등급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하긴…….”
“그런데 확실히 특이하긴 하네. 보통 낮은 등급을 높은 등급으로 속여 먹는 새끼들이 많지, 높은 등급을 낮은 등급으로 속여 먹는 새끼들은 잘 없거든.”
서윤호가 시큰둥한 낯으로 소파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건 그랬다.
보통 이력서를 쓸 때에도 뽑히고 싶으니까 이것저것 경력을 위조하는 사람은 있어도, 일부러 유용한 경력을 빼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뭐 그래도 없는 건 아니야. 가끔 국가 소속 각성자인 놈들 중에서 임무 관련으로 등급을 속이는 경우들이 있거든. 그런 놈들 대부분이 상부에게 목줄 매인 개새끼들이고.”
국정원 같은 건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던 서윤호가 와락 미간을 구겼다.
서윤호가 으르렁거리듯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왜, 혹시 이상한 새끼가 협박 같은 거 해? 치워 줘?”
“음…… 아니. 좋은 사람이야. 성격도 온화하고. 그런데 등급이 들은 것보다 높은 것 같아서 조금 의문이 생겼거든.”
“그걸 어떻게 알아? 들은 것보다 높은 것 같다고 했으니 본인이 말한 것도 아닐 거 아니야.”
“……가이딩 하다 보니?”
“뭐야. 가이드는 그런 것도 알아? 처음 듣네.”
가이딩을 하면서 채워졌다고 느끼는 것과 그릇의 크기를 파악하는 방식은 다른 걸까.
정식 가이드인 한세영한테 물어보면 모르겠다고 하고, 그렇다고 센터 측에 물어보기엔 이상한 타이틀이 하나 더 생길까 봐 꺼려진다.
뭐, 사실 내게 위협이 되는 문제도 아니고 조금 궁금한 것뿐이지 굳이 답을 알아내야 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 예를 들어 B급 에스퍼가 A급 에스퍼보다 그릇이 클 수도 있어?”
“어. 애초에 일반적으로 방어계나 보조계보다 주로 방출형이 많은 공격계 쪽이 더 힘의 양이 많은 편. 나만 해도 그릇은 S급이거든. 근데 이게 또 마냥 좋은 건 아니야. 그만큼 능력 부작용이 크다는 소리거든. 한번 망가지면 더럽게 아프기도 하고.”
서윤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고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말이 없더니 이윽고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리며 나를 노려봤다.
“그놈 이름 뭔데? 아니, 너는 뭘 복잡하게 그런 걸 다 신경 써- 친한가 보지? 너, 관심 없으면 제대로 기억도 못 하잖아. 그,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안면 장애?”
“안면 인식 장애겠지.”
“여하튼.”
솔직히 서윤호에게 말한다고 해서 알 것 같진 않았다.
동종 업계에서 일한다고 그 업계 모든 사람의 이름을 알진 못하는 것처럼, 에스퍼 또한 같았다.
더구나 서윤호 성격상 제 기억에 남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거나 인상적인 성격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을 듯했다.
“이름은 주연우. 카페 단골분이시고 능력은 잘 모르겠는데…… 아마, 공격계인 것 같아.”
“아.”
“왜? 아는 사람이야?”
“아니, 그냥 뭔가 느낌이 재수 없어서.”
서윤호가 와락 인상을 구겼다.
첫 만남에 조예나나 이로운한테도 그러더니 쟤도 참 한결같다. 일단 낯설다 싶으면 욕부터 하고 보는 건가?
나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리쉬었다.
* * *
“와…… 사장님 방금 보셨어요? 저 사람 모든 메뉴 다 시켰어요.”
에스프레소 추출을 하던 강민지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강민지의 시선이 비어 버린 진열장 안과 떠나 버린 남자의 뒷모습을 번갈아 응시했다. 한창 손님이 많을 시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시선이 몰린 자리에는 주연우가 있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앞에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 있다는 것이다.
부스스한 연하늘색 탈색모에 창백한 피부, 검은 눈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대충 마스크를 턱 아래까지 내린 채 음식을 집어 먹고 있었다.
분명 느긋하기 그지없는 동작이었음에도 그의 앞에 놓인 음식은 빠른 속도로 비워져 갔다.
그에 강민지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친구인가 봐요. 와 친구도 잘생겼네.”
저번에 수제 케이크 이야기를 꺼낸 뒤로 주연우는 더는 선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음료를 더 자주 시키거나, 때때로 남은 재고 같은 것을 몽땅 사 가곤 했다.
‘사 가서 어떻게 처리하나 했더니 잘 먹는 지인이 있었구나.’
나는 물끄러미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연우를 바라보았다.
계속 관찰하다 보니 문득 그가 나를 향해 얼굴을 붉히던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등 뒤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붉은 꽃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발그레해지던 흰 얼굴.
그때 나를 향한 시선에는 열기인지 모를 짙은 감정이 어려 있어 미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홀린 듯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음료를 들이키던 주연우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번져 갔다.
마치 그날처럼 붉게 달아오른 입술.
그것을 보며 내가 떠올린 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얽히게 되었던, 비 내리는 날의 입맞춤이었다.
문득 저 입술이 어떤 온기를 품었었는지, 어떤 식으로 나를 대했는지 떠올라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키스가 아니라 3단계 가이딩! 인공 호흡!’
급작스럽게 밀려드는 민망함에 나는 그대로 포스기에 머리를 박았다.
그것을 목격한 강민지가 그렇게 열면 고장 난다며 소리치는 것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예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지금껏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보이는 호의는 단순히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에게 취하는 의례적인 행동일 수도 있었으니까.
운명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듯 에스퍼에게 가이딩은 떼 놓을 수 없는 것이었고,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하는 사례 또한 많았다.
그럼에도 매칭률로 인한 호의를 내가 괜히 착각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좀처럼 떨칠 수 없었다.
‘이런 거 나만 신경 쓰이는 건가…….’
한세영은 말했다. 얼굴이 마음에 들거나, 목소리가 좋거나, 내게 다정하거나. 반드시 거창한 계기가 없어도 시작될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그럼 난? 주연우를 좋아하나?’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다정함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게 연애적 감정인지 그냥 인류애인지 모르겠다. 좋은 사람이지…… 그런데 에스퍼고.
얼굴도 취향이지…… 그런데 저 얼굴 앞에서 취향 아닐 사람이 있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연애 횟수 제로. 약혼 횟수는 1번. 그조차도 제대로 된 연애 관계는 아니었던 터라 판단이 안 섰다.
나는 포스기에서 머리를 떼고 강민지를 돌아봤다. 몇 번 연애를 해 봤다고 하니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지야, 하나만 물어보자…….”
막 주문을 끝낸 듯 강민지가 마른 수건으로 픽업대를 닦다가 나를 돌아봤다.
“그, 누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너도 그 사람에게 호감은 있어. 근데 그 호감이 연애 의미로 좋아하는 건지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사귈 거야?”
“네? 아, 누가 사장님 좋아한대요?”
“아니, 그건…….”
나는 말끝을 흐렸다. 문득 내가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