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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48화
흘낏 나를 쳐다본 주연우가 두 손으로 꽃을 든 채 제 얼굴을 반 가렸다.
냉기가 도는 푸른색이 그와 어우러져 마치 그림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그 순간, 어쩐지 주변이 고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쩍 눈을 굴리자 경악한 얼굴의 강민지와 눈이 마주쳤다.
강민지가 빨리 받으라며 고갯짓을 했고, 나는 얼결에 꽃을 받아 들었다.
“아, 아뇨. 와, 정말 예쁘네요!”
당황스러움도 잠시, 어제 강민지와 너무 크게 떠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숙연해졌다.
품 안으로 들어온 꽃에서는 묘하게 시원한 향이 났다. 원래 장미에서 이런 향이 나던가? 꽃을 살 일이 있어야 말이지.
내가 꽃을 받아 들자 주연우의 눈꼬리가 유려하게 휘었다. 누가 보면 선물을 준 사람이 아니라 받은 사람이라고 착각할 만큼 기뻐 보였다.
“다행이다. 저번에 우연히 파란 장미를 좋아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아.”
역시 강민지랑 얘기할 때 목소리가 컸나 보네.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꽃은 반품도 안 될 텐데 다시 가져가라고 할 수도 없고.
아무래도 내가 매칭율 높은 가이드라 호의로 선물한 것 같은데 대놓고 거절하기도 뭐 했다.
그러다 묘한 불안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전에 머물렀던 고급 오피스텔과 8천만의 코트가 떠올랐다.
아니, 그래도 설마……. 잠깐 좀 예쁘다고 했다고 한 송이에 몇백이나 하는 걸 대뜸 살 리가……?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목소리를 낮춘 채 주연우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던 주연우가 냉큼 상체를 숙여 내 입가에 제 귀를 가까이했다.
“그런데 연우 씨,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거 설마…… 그건 아니죠?”
“네?”
“그, 뉴스에서 나온 경매…….”
“아…….”
주연우가 눈을 깜박였다. 숙였던 상체를 바로 한 그가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옅게 미소 지었다.
“설마요.”
“아! 하하,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혹시나 해서요.”
내가 너무 갔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꽃을 들었다.
“고마워요. 꽃을 받은 건 오랜만이라 기쁘네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괜찮다고 덧붙이려다 말았다.
보는 사람도 있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전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쁜 건 사실이기도 하고.’
그간 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 받으니 조금 들뜬 기분이 들었다.
* * *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교육 담당자가 물었다.
“원하시는 길드가 없으시다면 센터에서 복무하는 건 어떠신가요?”
S급 가이드를 센터로 회유하고자, 그나마 직원들 중에 나와 가장 많은 교류가 있었던 교육 담당자가 총대를 멘 듯했다.
정확히 말하면 메시아를 비롯한 다른 상위 길드에서 연락이 왔을 때는 은연중 그쪽으로 가겠거니 하고 생각했다가 한참 지나도 내가 선택하지 않으니 희망을 품은 듯하다.
더구나 컨택 온 길드들과는 달리 센터에서는 이미 내 비정상적으로 높은 매칭률에 대해 알아차린 뒤니 더욱 애가 탔을 거다.
그러나 계약 조건이 각각 다른 길드들과 달리 센터는 국가 기관이었기에, 법으로 조건들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었다.
그런 정해진 관습을 뒤로하고 길드처럼 계약하는 식으로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금액은 이 정도로. 물론 말씀해 주신다면 그 이상도 가능해요.”
정해진 급여에 비하면 높았지만, 이미 메시아에서 터무니없는 금액을 보고 높아질 대로 높아진 내 눈엔 그저 그랬다.
그쪽은 공이 두 개는 더 있었으니까.
“그리고 특정 소득의 경우 세금 면제와 국가 기관에서 먼저 차지하는 산물, 필요하신 개발품에 대해 먼저 접하실 수 있는 특혜가…….”
아, 세금 면제라면 조금 끌린다.
나는 겉으로는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실제로는 이야기를 반쯤 흘려들었다. 뭐든 저런 식의 계약 형태라면 수락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처음에 길드의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센터를 택하려 했던 이유가 의무 복무 이후 자유민이 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복무가 아니라 길드처럼 계약하는 식으로 하면 복무가 끝난 뒤 센터에 들어가야 했다.
“죄송하지만, 교육 기간이 끝날 때까진 좀 더 생각해 보고 싶어서요.”
선택까지 2주가량 남았다.
물론 처지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니 거의 결정된 거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하나 미리 말해 봐야 시끄러워질 뿐이다.
일단 마지막 날까지 조용히 입 닫고 있을 생각이었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나는 다른 가이드들처럼 일반 복무로 팀에 들어가 좁쌀만 한 급여 받고 일하게 되겠지.
이야기를 끝낸 뒤 문을 닫고 나오는데 문 앞에서 차진서와 마주쳤다.
갑자기 마주한 탓에 내가 굳어 있으니 차진서가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왔다.
“앗, 안녕하세요, 김유정 가이드님.”
이전에 빽 있냐는 질문으로 사람을 피곤하게 했던 차진서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내게 인사를 건네왔다.
내 뒷말을 하거나 서먹서먹하게 굴던 다른 교육생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사실 그때도 운을 띄운 것은 차진서이지만 적의를 갖고 분위기를 이끌어 나간 것은 다른 교육생들이긴 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게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소문을 교실이 아닌 다른 조용한 곳에서 내게만 전해 준다는 선택지도 있었으니까.
다만-.
‘악의라 확정 짓기엔 묘하고. 그냥 소문을 좋아하는 눈치 없는 사람이라기엔 걸리고.’
사실 어느 쪽이든 귀찮을 것 같아서 적당히 피해 다니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마주쳐 버렸다.
“많은 곳에서 컨택 받으셨다면서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김유정 가이드님은 어디로 가시려고요?”
“저는 아직…… 차진서 가이드님은 어디로 갈지 정하셨어요?”
대답을 피하고자 상대방에게 질문을 돌렸다. 그러자 차진서가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에러’라는 길드로 가려고요. 컨택 왔는데 조건을 보니 저와 잘 맞을 것 같아서요.”
“아-.”
묘하게 낯익은 이름에 어디서 들었나 했더니 전에 일했던 카페에서 다른 알바생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왔던 이름이었다.
분명 올해 초 너튜브에서 게이트 안을 촬영하다 에스퍼 하나가 죽었다고 했던가?
게이트 안에서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게 가이딩제와 얽혀 일이 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게이트 내부를 촬영하는 경우가 드문 것과 자극적인 영상도 한몫했을 테고.
“잘 맞았으면 좋겠네요.”
적당히 대답하고는 자리를 뜨려는데, 차진서의 시선이 내 품에 들린 꽃을 향했다.
“……꽃 사셨나 보네요?”
어제 주연우에게 선물 받은 꽃을 창가에 장식해 놓았는데 막상 해 놓으니 다른 쪽이 허전해 보여 추가로 산 것이었다.
센터 내부 꽃집이 각성자 할인이 된다기에 들렀다가 교육 담당자에 의해 상담실로 끌려갔던 거고.
차진서가 뒤이어 질문했다.
“혹시 꽃 좋아하세요?”
“남들만큼은요.”
“무슨 꽃을 제일 좋아하세요?”
아, 저 질문 저번에 조예나한테도 받았었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수국이요.”
예전에 꽃집을 정리할 때 한세영이 너는 수국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던 적이 있다.
물론 그건 내가 아니라 아멜리아겠지만, 정작 나는 딱히 좋아하는 꽃이 없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맞다. 그래도 그건 예쁘던데.’
어제 주연우가 준 파란 장미는 지금껏 본 꽃 중 제일 예뻤다.
이제부터 제일 좋아하는 꽃을 물어보면 장미라고 할까 하고 고민하는데 문득 주위가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진서가 떨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듯 멍한 시선에 나는 차진서의 눈앞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차진서 가이드님, 괜찮아요?”
“아…… 네.”
멍하니 내 손에 들린 꽃을 쳐다보던 차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시안셔스네요. 원래 여름에나 피는 꽃인데 게이트로 특정 구역 기후가 바뀌어서 그런지 요즘엔 일찍 핀다고 하더라고요.”
어느새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차진서가 생글 웃어 보였다.
* * *
원래 장미를 사려고 했다가 없기에 비슷한 꽃으로 산 것뿐인데 차진서의 꽃 강의를 듣고 말았다. 무슨 꽃집 아들이라도 되나.
처음엔 당황해서 듣다가 설명이 길어지자 볼일 있다고 통보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진짜 저 사람은 알다가도 모르겠네…….”
적의가 뚜렷하면 오히려 대응하기 편할 텐데 그것도 아니고. 곧 교육 기간도 끝나니 그냥 조용히 마무리나 됐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한세영과 만나기로 해서 한세영네 집 근처 식당으로 찾아가던 도중이었다.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문자의 내용은 강렬하고 짧았다.
[유정아…… 진짜 너무 보고 싶다.]
……뭐야, 이건?
스팸 문자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누구냐고 답장을 보내 봐야 하나 고민하던 참에 문자가 하나 더 왔다.
[나 시혁이야. 그동안 나 진짜 많이 생각해 봤어. 유정이 너한테 상처를 줬다면 정말 미안해, 너와 다른 사람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는데…… 하지만 네가 본 거 전부 오해야. 너를 울려서 미안해. 제발 내 말을 믿어 줘.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진심이야.]
시혁이가 누군데. 무슨 미련 넘치는 전남친도 아니고 이렇게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는…… 잠깐, 전남친?
내겐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없었지만, 아멜리아에겐 있었다.
그 사실을 상기한 나는 다시 한번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를 전부 읽기도 전에 다시금 휴대폰이 진동하며 문자가 하나 더 왔다.
[우리 다시 잘해 보자. 내가 더 잘할게.]
아. 오백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