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43화
“로운아, 이리 와. 코코아에 마시멜로 넣어 줄게.”
“……야 나는?”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
“와 이거 사람 차별하네……. 코코아 주문. 쟤처럼 마시멜로랑- 휘핑, 초코 드리즐 추가. 디저트로는 쿠아 파이랑 레몬 타르트. 쿠아 잼은 따로 포장.”
빠르게 주문을 마친 서윤호가 제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리더니 털썩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댔다.
“그래서, 쟤가 왜 여기에 있는데? 아니, 그전에 너 저 새끼가 누군지는 알아? 대체 어떻게 저거랑 알고 있지? 임무 아니면 센터 밖으로 잘 안 나오는 놈인데.”
서윤호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말해야겠지. 한동안은 동종 업계일 텐데 계속 입을 닫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친절하게 서윤호의 궁금증을 풀어 주고자 입을 열었다.
“서윤호야.”
“그래, 설명 좀 해 봐라.”
“나 가이드다.”
“……뭐?”
“등급은 C급이고.”
“잠깐…….”
“교육생인데, 어쩌다 보니 S급 에스퍼의 면담을 하고 있네.”
“아니, 미친…….”
인지 부조화라도 온 듯 서윤호가 와락 인상을 구기더니 당 떨어졌다며 제 앞으로 나온 코코아를 단숨에 들이켰다.
팔팔 끓는 정도는 아니어도 온도가 제법 되었는데 능력이 불이라 그런지 멀쩡했다.
“그래, S급…… 말 나온 김에 저 새끼 어떻게 사람 만들어 놨냐? 나 저거 말하는 거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네 말버릇을 보니 로운이보다 널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아, 맞다. 너 가이드라고 했지?”
“씹냐?”
“며칠 뒤부터 컨택 기간인 걸로 알고 있는데- 갈 만한 길드 없으면 헤베에 넣어 줘? 원하는 조건 말해 봐. 봐 온 정이 있으니 들어주지.”
헤베면 길드 랭킹 중에서도 상위 길드에 속했다. 낙하산 아니냐는 내 물음에 서윤호는 그런 놈들 많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원하는 조건이라…….
“근로 기간은 줄일 수 있는 최단 기간인 1년. 업무 시간은 카페 일에 지장 안 갔으면 좋겠으니까 카페 일이 끝나고 나서 혹은 쉬는 날에. 그리고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 길드 가입 안 해도 되는 조건이라면.”
“랩하냐? 조건 한번 더럽게 길…… 아니, 장난해?”
잠시 말을 끊고 내가 한 말을 되짚어 보던 서윤호가 이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보통 금전적인 조건을 말하지 않냐? 그리고 길드 가입을 하지 않겠다니, 뭔 개소리야 그게??”
“원하는 조건 말하면 들어준다며.”
“지금 귀로 잘 듣고 있잖아.”
“……그래, 헤베 길마도 아닌 네가 뭘 어떻게 하겠어. 윤호야, 이 누난 네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다.”
“야, 너…….”
이해한다는 듯 바라보자 기분이 상한 듯 서윤호가 삐딱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못한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네가 말한 조건이 터무니없는 거지. 세상 어떤 길드가 그런 조건으로 계약해? 그런 조건으로 계약하는 놈이 있다면 자선 사업가나 미친 새끼지.”
* * *
“연우진 이 미친 새끼가…….”
메시아의 부길마 하도경은 쓰려 오는 위를 붙잡으며 신을 부르짖었다.
‘신은 뭐 하나. 저 사탄 새끼 안 잡아가고.’
별 해괴한 채용 공고를 내 이상한 소문이 추가된 것은 둘째 치더라도, 게이트 펑크만 이로써 대체 몇 번째인가.
불과 두 달 만에 수십억을 날린 데다 훈련용으로 쓰던 건물 몇 채마저 부숴 버렸다.
김유정.
연우진의 동거인이 사라진 뒤 어언 두 달하고도 몇 주가 지났다.
김유정이 사라지고 연우진은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깨진 유리창. 바닥에는 사람이 장난감처럼 굴러다니고 있었다.
피로 얼룩진 손, 그 손에 들린 것은 김유정이 사라진 그날,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도착하게 만든 원인인 범죄 길드 소속 길드원 중 하나였다.
어둠 속, 맹수의 눈과도 같은 금안에 이채가 돌았다. 제 손에 들려 있던 이를 반대편으로 던져 버리며 연우진이 입을 열었다.
「당장 찾아.」
하도경은 그때부터 다급하게 김유정이란 사람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길드가 망하거나, 나라가 망하거나 하는 끔찍한 결말밖에 없겠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연우진이 김유정에 관해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그녀가 집 근처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곳의 사장에게 김유정의 소재를 물으니 이미 일을 관둔 뒤란다. 또 대타로 일했었기 때문에 자세한 신상 정보는 모른다고 했다.
그런 사장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건 이미 고장 난 휴대폰 번호뿐이었고, 지금은 새롭게 개통했는지 연락 닿을 길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이에 그녀의 이전 거주지를 수소문해 봤지만 딱히 그곳에서도 쓸모 있는 정보를 얻진 못했다.
아니, 연우진이 그녀의 집을 여러 차례 부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만 알아내고 말았다.
어쨌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수배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연우진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그놈이 말하길, 그 여자에 대한 정보가 누설되면 싹 죽을 줄 알란다.
그렇게 김유정 수색을 시작하고 1주가 지날 때쯤, 결국 하도경은 파업을 선언했다.
「아, 싯팔. 몰라, 배 째!! 그 여자에 관해 뭐라도 말해 주고 찾으라고 하던가!!」
막말로 연우진이 또라이라 도망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여자 앞에서는 소름 끼칠 정도로 얌전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 봤자 내용물 어디 안 간다고 미친놈이란 것을 은연중 눈치챈 것일 수도 있다.
정말로 그런 거라면 다른 나라로 튀었을 수도 있는데 달랑 이름 하나 가지고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아니, 김유정이란 이름이 본명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가이드야.」
그런 하도경을 가만히 응시하던 연우진이 말했다.
「뭐? 새 가이드 필요하다고?」
「그 사람이, 내 가이드라고.」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막 환청이 들리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게 하도경은 이전에 김유정이 가이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김유정에게 접촉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가이드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다른 가이드들에게서 느꼈던 가이딩 특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런데 그 김유정이 가이드라니. 그것도 매칭률 극악의 살아 있는 구원이자 재앙인 연우진의.
‘정말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데려와야만 한다……!’
여전히 믿기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아닌 연우진이 이런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그놈은 평소 가이드나 가이딩에 반감을 품던 이들 중 하나였으니까.
「명목은 적당히 하고, 동일 이름으로 센터 등록증 전부 뽑아 와 봐.」
모든 각성자들은 각성과 동시에 센터에 등록되었다. 더구나 연우진을 가이딩 했다면 상당히 능숙한 가이드임이 분명했다.
매칭률 이전에 S급이라는 놈들은 하나같이 힘의 그릇이 컸고, 그중에서도 연우진은 내로라하는 상위 가이드들도 힘들어하는 그릇을 가졌기 때문이다.
센터에 등록되어 있을 테니 찾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김유정이란 이름을 가진 가이드란 가이드는 다 뒤져 봐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었지만, 조사 카테고리가 전국에서 가이드로 줄어든 것만 해도 어디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등록된 가이드 중에서 그가 찾던 김유정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미친, 설마 불법 가이드였을 줄이야…….」
연우진보다 두 살 연상이라고 들었다.
성인이 되어서 각성하는 전례가 없진 않으나 극히 드물며, 그렇다 해도 등록하는 게 법상 맞으니 이는 센터에 등록을 거부한 불법 가이드란 말이 된다.
‘혹시 음지쪽에 얽힌 건 아니겠지? 범법 같은-.’
설령 얽혔다고 해도 연우진의 가이드인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빼 와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만.
음지 쪽이라면 정체를 드러내는 이보다 드러내지 않는 이가 더 많아 찾아내기 더욱 힘들어진다.
돈을 미끼 삼아 공고를 올려 보기도 했다. 그래 봐야 상세히 외양을 추측할 수 없는 정보들이었다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그 해괴한 공고를 낸 거였는데, 역시나 김유정은 오지 않았다.
……아니, 그런데 연또 그 새끼는 김유정 씨 손가락 두께는 왜 알고 있는 거야?
연우진에게 대강 사소한 특징 같은 것을 알려 달라고 하니 대뜸 손가락 사이즈를 알려 줘서 기겁했다.
어쨌든 그런 과거의 일들을 차례차례 떠올리며, 하도경이 쓰라린 위를 부여잡고 있을 무렵,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들어왔다.
“부마스터, 이번 센터 교육생 컨택 리스트 왔는데 확인하시겠습니까?”
“아- 됐어, 됐어. 언제부터 우리가 교육생 컨택 했다고 그런 걸 물어.”
“이번에는 교육생 중 S급 가이드가 나왔다고 해서요.”
“……뭐? S급?”
확실히 희귀하긴 했다. 해외에서도 보기 힘든 게 S급이며, 하물며 몇 년 전 그 사건으로 S급 가이드는 현재 한국에 한 명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노쇠하여 가이딩이 불가한 상태라, 만약 정말로 그 교육생이 S급이라면 지금 거의 유일이나 다름없는 S급 가이드인 셈이다.
툭, 툭. 머릿속으로 잇속을 재며 하도경은 검지로 책상을 두드렸다.
“확실히 특이하긴 한데…… 우리가 굳이 나서서 컨택 할 필요가 있나? 자금 낭비인 것 같은데.”
같은 상급이어도 가이드는 에스퍼에 비해 등급 간의 격차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가이드의 등급은 가이딩을 할 수 있는 힘의 크기였다.
등급이 높을수록 가진 힘이 많으니 그만큼 보다 많은 에스퍼를 가이딩 할 수 있긴 했지만 그게 가이드에게 있어 절대적인 척도는 아니었다.
연우진처럼 매칭률이 좋지 않은 에스퍼가 그 예였다.
아무리 등급이 높으면 뭐하나? 매칭률이 회생 불가일 정도로 형편없으면 다 소용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