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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42화 (42/119)

S급 자영업자

42화

“그쪽이야말로 무슨 짓이에요? 위급 상황도 아닌데 상대방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이딩을 하다뇨?”

나는 그의 시야에서 정연제를 가리고자 손을 뻗어 이로운을 반쯤 끌어안은 채, 그의 머리를 내 어깨 위에 내리눌렀다.

서류에 의하면 이로운이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은 접촉, 그보다 더 심하게 드러내는 게 가이딩이라고 했다.

바로 떨어뜨려서 그런지, 아니면 이로운이 참아 낸 것인지 나 때와 달리 역가이딩을 겪지 않은 듯 정연제는 멀쩡해 보였다.

“가이드가 에스퍼에게 가이딩을 하겠다는 게 뭐가 문제죠?”

“거기에 에스퍼의 동의가 없었잖아요.”

“이봐요, 김유정 가이드님. 모르시나 본데 가이드가 에스퍼에게 손을 대는 게 불법이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요.”

정연제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스퍼가 가이드의 의사를 무시하고 가이딩을 착취하는 것에 관한 처벌 사항은 있어도 가이드가 멋대로 가이딩을 했다고 처벌을 받는 일은 없다.

세간에서 에스퍼는 강자고 가이드는 약자기 때문이다. 보통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지, 그 반대는 좀처럼 없었다.

‘법에 한해서라면 그렇지.’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에는 반드시 법이 껴 있는 게 아니라, 불법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좋게 보지 않는 일들은 있었다.

“정연제 씨, 에스퍼나 가이드 이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강제로 손을 대는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나요? 그것도 당신의 담당 에스퍼도 아니고 다른 가이드의 에스퍼에게 손을 댄 행위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 좋아 보일 것 같진 않은데-.”

만약 이를 교육 담당자에게 말하면 정연제의 평가는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거다.

분란의 소지가 다분한 각성자를 원하는 곳은 좀처럼 없을 테니까.

지금은 교육생이니까 어느 정도 통제된 울타리 안에 있다고는 하나, 이후 교육생 신분에서 벗어나 사회에 나가면 위험 요소로 작용했다.

잦은 게이트로 신경이 날카롭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는 에스퍼는 흔했다. 허락 없이 손을 댔다가 다친 가이드들도 드물지 않다고 들었다.

예의 없는 행동에 가볍게 경고를 하는 마음 반, 이후 나와 달리 가이드 일을 선택할 상대방에게 충고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잖아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자 정연제가 겁이라도 먹은 사람처럼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뭐야, 뭐야. 왜 그래요?”

“잠깐 이야기 나누고 온다더니 무슨 일 생겼어요?”

그때 멀리서 정연제를 기다리던 이들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정연제가 용기를 얻은 듯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허, 다 핑계고 그냥 김유정 가이드님 혼자 독차지하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 제 가이딩이 더 괜찮으면 모처럼 꾀어낸 상급 에스퍼 뺏길까 봐!”

쟤가 뭐라는 거야…….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정연제를 쳐다보다 손을 통해 느껴지는 작은 떨림에 고개를 내렸다.

이로운의 머리가 내 어깨에 닿아 있는 터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보면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뭐가 문제인데요?”

“……뭐요?”

“정연제 가이드님 말대로 제가 상급 에스퍼 유지하겠다고 이러는 거라고 쳐 봅시다. 그래서 뭐가 문제죠? 현재 제가 맡은 에스퍼고, 정연제 가이드님이 제삼자라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잖아요?”

이쯤 되니 다 귀찮았다. 애초에 내 뒷말은 계속 돌고 있는 거고, 새삼스럽게 신경 써야 할 이미지도 없지 않던가.

“그런 상황에서 정연제 가이드님은 가이드나 에스퍼 측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억지로 가이딩을 시도하신 거고 말이죠.”

정연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다른 교육생들은 정연제가 에스퍼의 의사를 무시하고 가이딩을 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는 힐끗 뒤쪽에 시선을 주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반, 상황 파악은 했으나 이 상황이 불편하다는 사람 반.

뭐가 되었든 정연제처럼 나설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당연하다. 저번 소문으로 내게 불만이 생긴 사람은 있는 것 같지만, 모든 교육생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연제처럼 반감을 품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외 과반수는 관심 없겠지.

나는 떨고 있는 이로운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최근 저에 관한 소문이 좀 많더라고요. 이번 이야기는 또 어떻게 변질될까 무척 두려우니 오늘 일은 제가 직접 교육 담당자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각성자로서 욕심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좋은 길드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교육 담당자에게 들어가는 이야기는 즉시 평가에 반영되고, 평가 결과가 나쁘면 이후 길드 컨택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건 아마 정연제가 원하는 바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정연제가 번쩍 고개를 들더니 나를 노려봤다.

“잠깐, 그건……!”

파르르, 얼굴에 어렸던 분노가 초조함으로 물들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정연제의 입술이 달싹였다.

나는 머리를 내리눌렀던 손을 떼고 이로운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그럼 제가 급한 볼일이 있어서요. 달리 할 말이 있으시다면 나중에 천천히 듣도록 하죠.”

자리를 뜨는 순간, 교육생 중 누군가가 ‘와…… 성격 한번 대단하네.’ 하고 중얼거리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정작 정연제에게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이로운을 데리고 그대로 센터 밖으로 나왔다.

센터 내부에서는 또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얼결에 나와 버린 것이었는데, 막상 나오니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혹시 어디 가고 싶은-.”

가고 싶은 곳이라도 있냐고 물어보려던 나는 뒤늦게 이로운의 상태를 떠올렸다.

맞다. 역가이딩 직전에 떼어 내고 데리고 나온 거였지.

뿐만이 아니라, 안 그래도 예민한 애가 오늘 강제 가이딩에 신체 접촉까지 별일을 다 겪었다.

나는 조금 전에 내가 했던 행동을 되짚어 보았다. 정연제와 떨어뜨릴 때 한 번, 그리고 시야를 가리기 위해 머리에 손을 대며 두 번. 심지어 토닥이기까지 했다.

당시에는 역가이딩만은 안 된다는 생각에 몰랐는데, 머리를 끌어안기도 했다.

……어? 지금 생각해 보니 이로운이 떨었던 게 어쩌면 정연제가 아니라 나 때문인 것은……?

천천히 시선을 내리자 이로운의 팔을 붙들고 있는 내 손이 보였다.

“…….”

나는 슬그머니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이곳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인도라는 것을 상기하고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에 잡은 것은 팔이 아닌 니트 끝자락이었다.

그 상태로 쭈그리고 앉아 이로운을 올려다보았다.

“그, 멋대로 안아서 미안해. 상황이 급해서 어쩔 수 없었어. 몸 상태는 괜찮아?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떨고 있었기에 나는 이로운이 저번처럼 공포에 질려 있거나 패닉에 빠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이로운은 멍한 것만 빼면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갑자기 잡아서 무섭지는 않았어?”

이로운은 직전까지 내가 잡고 있던 손을 바로 하지도 않은 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숙였다. 이로운의 시선은 내가 물러선 만큼의 거리를 재듯 내 발치를 향해 있었다.

왜 그러지? 너무 가깝나?

“……아, 그렇지. 담요. 급하게 나오느라 담요도 두고 왔네.”

나는 두 걸음 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후드 집업을 벗어 내밀었다. 니트 한 장이 전부인 이로운과 달리 나는 코트까지 걸쳐 중무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거라도 입고 있자. 너 저번에도 갑자기 몸 안 좋아져서 감기 걸렸다며.”

내가 내민 후드 집업을 가만히 빤히 쳐다보던 이로운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내가 벌린 거리만큼 다가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이로운은 내 손을 잡아 제 머리 위로 얹었다. 이로운과 나는 키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기에 발꿈치를 들지 않고도 원활하게 손을 올릴 수 있었다.

“……?”

그러니까……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부드러운 은발이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당황하여 굳어 있는 나를 제비꽃 색의 눈이 올곧게 응시했다. 내 손에 제 머리를 부비적거리듯 가볍게 고개를 흔든 이로운이 말했다.

“괜찮아.”

“으응?”

“울렁거리지 않아.”

“…….”

“무섭지 않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너는.”

이것은 조금 전 내가 했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었다.

나는 이로운의 머리 위에 얹어진 내 손을 올려다보다 쓰다듬듯 천천히 움직였다.

무섭지 않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이로운은 어색하게 눈을 굴리긴 했지만, 전처럼 겁에 질려 피하거나 호흡이 가빠지진 않았다.

* * *

이로운에게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으니 내가 운영하는 카페를 가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면담 시간 때마다 음식을 싸 들고 왔는데, 그때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만들었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카페로 가던 도중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들에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서 이로운의 얼굴을 가렸다.

카페에 도착하니 다행인지 불행인지 손님이 많지 않았고, 있는 손님들마저 전부 테이크 아웃이었다.

이로운을 보고 이 인형은 어디에서 사 온 거냐며 중간에 알바생 강민지가 난리 치는 상황이 있긴 했지만, 조기 퇴근으로 보내 버렸다.

그렇게 다시 현재 상황으로 돌아오자면-.

“허…… 이게 무슨.”

이로운이 내 앞을 막아섰고, 그에 서윤호는 어이없다는 듯 탄성을 한 번 내뱉더니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전에 조예나가 서윤호는 단순해서 얼굴만 봐도 뭘 생각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 서윤호의 얼굴은 이로운이 왜 여기 있으며, 얘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거냐고 내게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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