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41화
나는 두 눈을 비볐다. 그리고 S급이라고 적힌 서류를 한 번, 쿠키 포장지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이로운을 한 번 쳐다봤다.
‘……S급? 쟤가? 포장지나 바스락거리고 있는 애가?’
각성자에 큰 관심이 없는 나도 우리나라에 S급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서류와 이로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들어온 상급 에스퍼라는 것들은 죄다 소란스럽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이들이었다.
연우진은 말할 것도 없이 유명했으며, 이온 길드의 길마가 범죄조직을 소탕했는데 체포가 아닌 그대로 영면에 들게 했다던가, 어디 A급 에스퍼가 숲을 반파시켰다던가, 역 하나가 날아갔다던가…….
여러모로 뉴스가 심심할 새가 없었다.
“……아니, 진짜 S급이라고?”
내 중얼거림을 들은 듯 이로운이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나를 쳐다봤다.
불안으로 일렁거리는 두 눈에 나는 빠르게 침착을 되찾았다.
‘하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실제로 S급을 보는 건 처음이라 당황한 것뿐이지 사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이 면담 같지도 않은 면담은 이어질 것이며, 눈앞의 이는 자거나 밖을 구경하는 게 전부인 얌전한 고양이 같은 존재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이었던 모양이다.
“김유정 가이드님, 혹시 빽 있어요?”
면담 상대의 등급을 알게 된 다음 날.
이론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에 나는 갑자기 질문을 받았다.
질문한 이는 저번에 치료 센터 앞에서 내게 말을 걸었던 차진서였다.
“……예?”
내가 잘못 들었나. 보석금 내줄 사람도 없는데 빽 있냐는 소릴 다 듣네.
차진서가 순한 눈매를 둥글게 말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요즘 교육생들 사이에서 김유정 가이드님에 관한 이야기가 돌아서요.”
정확히 어떤 말이 돌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좋은 이야기는 아닐 거다.
어쩐지 요즘 센터를 오갈 때 전보다 시선이나 수군거림이 많더라니.
“무슨 이야기인데요?”
다른 이들의 시선이 나와 차진서 쪽으로 쏠렸다.
평소라면 퇴실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는데도 많은 이들이 아직 교실에 남아 있었다. 다들 은연중 이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따가운 시선에도 차진서는 눈치채지 못한 사람처럼 태연스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다른 게 아니라 김유정 가이드님이 실습 수업에서 제외된 게 상위 에스퍼와 연줄이 있어서라고요. 다른 교육생들과는 다르게 혼자 개인 가이딩을 맡으셨다고.”
차진서의 시선이 내 출입증에 닿았다.
‘비리 뭐 그런 거 아니냐는 얘기라도 돌고 있나.’
나는 C급이었고, 아직 의무 복무조차 치르지 못한 교육생에 불과했다.
그런데 갑자기 교육생 중 하나가 혼자만 실습을 중단하고 상위 에스퍼의 담당을 맡게 되었다고 하면 차별로 여겨질 터다.
“물론 김유정 가이드님은 가이딩 실력이 우수하시니 뽑히신 거겠지만요. 그냥 소문이 돌기에 말씀드린 거예요. 잘 모르실 것 같아서.”
가이딩 말고 돌보미로 불려 갔지.
그러나 이에 관해 설명하면 면담의 이유인 이로운의 개인 사항까지 언급해야 했다. 이런 시답잖은 소문에 남의 치부를 언급하고 싶진 않았다.
“저도 뽑힌 이유는 자세히 듣지 못해서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이런 이야기를 교실에서 물어본 저의가 뭘까.
솔직히 내게 뒷말이 도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교육 기간이 끝나고 의무 복무 구역이 갈리면 대부분 보지 못할 사람들이니까.
차진서가 내게 소문에 대해 알려 준 게 알량한 호의에서인지, 아니면 시답잖은 악의에서인지 모르겠다.
반사적으로 좁혀지는 미간을 펴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번에는 차진서가 아닌 다른 이가 질문을 던져 왔다.
“혹시 저번에 김유정 가이드님이 가고 싶은 길드가 없다고 하셨던 것도 이미 내정된 곳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저번에 차진서와 함께 대화를 나눴던 교육생 중 한 명이었다.
께름칙한 의심과 시기, 호기심이 한데 섞인 시선들이 교육실 안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아뇨, 내정된 곳은 없어요. 그때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던 것은 정말로 정해진 게 없어서 그랬던 거고요.”
대답하기 무섭게 또 다른 질문이 돌아왔다.
“그럼 혼자만 상급 각성자와 개인 실습을 한다는 이야기는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기 때문에 담당자분께 물어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차진서 가이드님 말대로 제 실습 성적이 좋은 편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실력이 좋아 봤자 C급인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날 이후로도 내 일상은 달라진 게 없었다.
애초부터 다른 교육생들과 교류도 없던 데다, 그나마 타인과 접점이 있을 법한 활동인 실습은 면담으로 대체된 뒤였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이쪽을 힐끗 쳐다보며 뒷말을 주고받다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리는 이를 보며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뭐, 그 시절에 비하면 귀엽지-.”
아멜리아 때 집안 하녀들에게 당했던 괴롭힘이 이보다 더하면 더했을 거다.
그땐 자고 있는데 얼음물이 쏟아지거나, 밥을 안 주고 굶기는 둥 별짓을 다 하던데 이건 고작해야 뒤에서 수군거리는 정도 아니던가. 더구나 교육만 마치면 더 볼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넘긴 나와 달리 한세영은 분개했다.
“뭐 그런 것들이 다 있어?!”
요즘 교육생 생활을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보기에 근황을 말해 준 것뿐이었다.
양현우가 씩씩대는 한세영을 살살 도닥이며 말했다.
“아직 교육생들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어요. 어차피 나중에 길드에 들어가면 실력 아니면 인맥이거든요. 저 때도 하급 가이드가 우연히 상급 에스퍼와 매칭률이 맞아 뽑힌 거였는데 소문이 안 좋게 났던 적이 있었어요.”
양현우는 그래도 얼마 안 가 조용해졌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며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한세영과 양현우, 두 사람에게서 번갈아 쏟아지는 위로를 들으며 정작 당사자인 나는 아무 생각 없었다.
대놓고 뭘 하는 거면 몰라도 뒷말이 도는 정도는 괜찮았다. 친했던 이가 돌아선 거라면 타격 좀 받았겠지만, 다들 친하긴커녕 말조차 거의 나눠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교육생이 되고 두 달에 다다랐을 무렵, 일이 터졌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다르게 이로운과 밖에서 면담을 한 날이었다.
센터 도서관 쪽이 인적이 드물어 보이기에 모처럼 데리고 나와 오래된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쏴아- 풀 내음과 섞인 봄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고 지나갔다.
겨울 특유의 찬기가 가신 바람은 미약하게나마 온기를 담고 있어 사람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련히 먼 곳을 응시하며 머릿속으로 이번 달 고지서를 떠올렸다.
다달이 갚아야 하는 대출금이랑 공과금이랑…… 와, 꽤 벌었던 것 같은데 다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네.
한탄하듯 한숨을 내쉰 순간, 귓가에 자그마한 미성이 스쳤다.
“……지루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를 응시하고 있는 이로운이 보였다.
한낮의 햇살을 반쯤 걸친 이로운 주위로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백설 공주?’
고양이들은 이로운의 무릎에 올라오거나 옆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마치 이로운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경계심 하나 없었다.
그런데 쟤가 뭐라고 했더라? 나는 뒤늦게 이로운이 뭔가를 물어봤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머리를 굴렸다.
내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이로운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나랑, 있는 거.”
그 말을 끝으로 이로운은 고개를 숙였다. 바스락, 바스락. 불안함을 드러내듯 그의 손안에서 애꿎은 포장지가 구겨졌다.
나는 사실대로 못 들었다고 말하고 다시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나보다 앞서 누군가의 외침이 우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에스퍼님!”
교육생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는 여자였는데, 오른쪽 귀퉁이에 선이 하나 그려진 것을 보니 나와 같은 가이드인 듯했다.
그녀는 옆에 다른 교육생들을 거느린 채, 누구보다도 먼저 이쪽으로 달려왔다.
가까이 온 여자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이로운을 응시하더니 물었다.
“김유정 가이드님이 현재 담당하고 있으신 에스퍼님이 이분 맞으시죠?”
“그렇긴 한데…….”
아, 얼굴을 자세히 뜯어 보니 기억이 났다. 이론 수업 첫날 나를 교육 담당자의 질문 세례에서 구해 준 사람이었다.
그때 이후로 얼굴을 마주친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무슨 용건인가 싶어 멀거니 쳐다보자 그녀가 이로운을 향해 말했다.
“정연제라고 합니다. 가이드 등급은 지금 여기 있는 김유정 가이드보다 높은 B급이고요. 가이딩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제게도 기회를 주세요. 분명 만족하실 거예요!”
말릴 새도 없이 뻗어진 정연제의 손이 이로운의 손을 틀어쥐었다. 갑자기 벌어진 소란에 나른히 햇볕을 쬐던 고양이들은 이미 사방으로 흩어진 뒤였다.
‘역가이딩은 안 된다!’
멋대로 손을 댄 가이드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걱정하는 쪽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상대를 상처입혀 버리는 이로운 쪽이었다.
상대방에게 역가이딩을 한 걸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로운은 그 반대에 속했다.
저번에 내게 역가이딩을 했을 때 이로운은 한참 동안 벌벌 떨며 미안하다며, 잘못했다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오해했다곤 하나 먼저 멋대로 손을 댄 쪽은 나였는데도 불구하고.
짧은 순간 투명한 막이 깨지듯 쩌적, 하고 귓가에 이질적인 소음이 울린 것도 같았다.
이로운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미세하게 공기가 진동하듯 울리고 속이 불편해졌다.
“……어?”
손을 맞잡은 정연제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뭐라 반응하기 전에 나는 이로운을 잡고 정연제에게서 떨어뜨렸다.
정연제가 이로운의 손을 잡고, 떨어뜨리기까지. 아주 짧은 찰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뭐, 뭐예요?!”
거칠게 쳐 낸 손에 정연제가 날카롭게 나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