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39화
원래 다 이런 건가. 하지만 한세영은 교육생 때 편하게 수업받았다고 했는데. C등급 이상 실습이라 한세영 때와는 다른 건가……?
내가 한참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얼추 떨림이 멎은 소년은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로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무슨 처량한 공벌레도 아니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외였다. 진정하면 곧바로 방을 박차고 나가 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접촉에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왜 가이딩 룸에 들어온 거지?’
아, 하긴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긴 해. 계속 가이딩 받지 않으면 조만간 실려 갈 것 같고.
그런데 왜 멀쩡한 소파를 두고 바닥에 앉아 있냔 말이다. 바닥이 좋나……. 그래, 취향이면 존중해 줘야지…….
속으로 시답잖은 자문자답을 몇 번 주고받던 나는 이내 소년을 따라 쭈그려 앉았다. 물론 적정 거리는 유지한 채였다.
나름 조용히 움직인 건데 천 자락이 스치는 소리를 들은 듯 소년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러고는 팔에 묻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고양이 같아.’
멋대로 손대면 할퀴고, 예민하고 경계심도 심한 게.
“……혹시 딸기 맛 좋아해요?”
나는 가방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 굴렸다. 단것을 좋아해서 종종 이렇게 챙겨 다니곤 했다.
데구르르-.
곧게 굴러가던 사탕이 멈춘 곳은 쭈그려 앉아 있는 소년의 발치였다.
소년의 시선이 제 발치에 닿은 분홍색 막대 사탕에 닿았다.
여전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
사탕을 향한 시선에 나는 다시금 사탕을 굴렸다. 이번에는 오렌지색 포장지였다.
데구르르-.
데구르르-.
차례대로 레몬, 멜론, 블루베리, 포도가 그 뒤를 따랐다.
* * *
사건이 해결된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무렵, 교육 담당자에게 온 전화에 의해서였다.
한참 동안 끝났다는 연락이 없어 확인차 찾아왔는데 방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어 연락했다는 말에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찾아왔다는 방이…….
“……네? 7번이 아니라 17번 방이요?”
“띄어쓰기를 잘못해서 이런 오해가…….”
그 말대로 받은 문자를 다시 확인해 보니 1과 7 사이가 띄어져 있었다.
“호출기가 울리지 않아서 여태껏 문제없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가 평소와 달리 늦으셔서 연락드렸습니다. 확인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김유정 가이드님.”
“……아.”
맞다. 가이딩 룸에는 문제 생길 경우를 대비해 소파 아래에 호출기가 있다고 이론 수업 때 들었던 것도 같다.
‘수업 때 졸았더니 기억이…….’
하지만 호출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눌렀을 것 같진 않다. 그때까지만 해도 맞는 방으로 찾아온 줄 알았으니까.
처음 겪은 역가이딩에 고통스럽긴 했지만 금방 멀쩡해졌고, 상대측이 패닉 상태에 빠진 게 더 커서 잊고 있었다.
예전에 전쟁에서 옆구리 뚫린 것에 비하면 참을 만하기도 했고.
“김유정 가이드님, 그…… 혹시라도 무슨 일 없으셨는지요?”
눈치를 살피듯 목소리를 낮춘 교육 담당자의 시선이 내 뒤쪽을 향했다.
시선 끝에는 내가 준 사탕을 꽃다발처럼 두 손 가득 쥔 소년이 서 있었다.
창백한 낯으로 숨을 들이켠 교육 담당자가 무전기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소년을 데리러 왔다.
“이로운 에스퍼님, 오늘은 이쪽이 아니라 다른 방입니다. 모시겠습니다.”
저쪽도 방을 잘못 찾았던 모양이다.
소년은 내가 준 막대 사탕들을 꽉 쥔 채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머지않아 정장 차림의 남자와 함께 사라졌다.
“혹시 저 애도 교육생인가요? 얘기 나누다 보니 뭔가 낌새가 사람을 좀 어려워하는 것 같던데, 하필 에스퍼라 고생이 많네요.”
“아, 교육생은 아니고-.”
대답하던 교육 담당자가 멈칫하더니 물었다.
“……이로운 에스퍼님과 얘기를 나누셨다고요?”
“네, 거의 저만 말하긴 했지만…….”
상대의 말수가 워낙 적어서, 대화라기보다는 사실 어르고 달래는 쪽에 가까웠다.
예전에 잠깐 전쟁 고아들을 돌본 전적이 있어 다행이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섣불리 다가갔다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그 애에게 다가가는 것을 곧바로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그 애가 진정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안심할 수 있도록 거리를 두었다.
‘사탕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사탕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그 뒤에는 제대로 된 대화도 몇 번 주고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래 봤자 통성명과 좋아하는 간식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이긴 했지만.
* * *
평소처럼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확인차 치료 센터에 들렀다.
이상 없다는 소견을 받고 나오던 참에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와 같은 교육생용 출입증을 단 사람 몇 명이 떠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얼핏 그들 중 하나와 눈이 마주친 것도 같았다. 착각이 아니었던 건지 한 명이 내 쪽으로 달려와 인사를 건넸다.
“앗, 안녕하세요! 김유정 가이드님 맞으시죠?”
동글동글 순한 인상의 남자였다.
누군데 나를 알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자 상대측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저는 차진서예요. 저희 같은 수업 들었어요!”
“죄송해요. 제가 아직 이름을 못 외워서…….”
“뭘요~ 저도 전부 아는 건 아닌걸요. 그냥…… 김유정 가이드님은 교육생 사이에서 유명하시니까?”
칼퇴근에 목숨 건 교육생이라는 이야기라도 돌고 있나.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데 갑자기 차진서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모르시는구나?”
“네?”
“김유정 가이드님이 유명하신 건 실력이 뛰어나셔서 그래요. 저번 중간 평가 1등이셨잖아요.”
“아-.”
그건 빨리 끝낸 만큼 일찍 보내 주니까. 조기 퇴근은 언제나 옳았다.
“이론 수업도 처음에만 점수 낮았지 저번 평가 때는 1등이셨죠? 김유정 가이드님 뭔가 학창 시절에 공부 잘하셨을 것 같아요. 맞나요?”
학창 시절이라는 말에 문득 고등학교 때가 떠올랐다.
입학 후 얼마 안 가 빙의해 버리긴 했지만, 그전까지 내 성적은 항상 상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당연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생의 대부분을 공부하는 데 쏟아부었으니까.
“그냥 평균이었어요.”
“……하긴 공부랑 상관없죠. 아! 그러고 보니 김유정 가이드님은 교육 기간 끝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는 길드! 센터보단 길드 쪽이 돈 더 많이 주잖아요?”
대답한 것은 차진서와 함께 있던 교육생 중 하나였다. 차진서를 따라온 듯 교육생 둘이 자연스럽게 대화에 합류했다.
“뭐래. 길드에서 컨택이나 해 준대? 넌 D급이라 의무 복무 대상도 아니잖아. 뭐, 난 메시아를 노리고 있…….”
“하하하학! 네가 메시아를 어떻게 들어가? 꿈은 밤에 꾸시고.”
교육생 중 한 명의 눈이 매서워지자 분위기를 풀듯 차진서가 장난스레 말했다.
“에이~ 애초에 메시아를 어떻게 들어가. 지금까지 메시아에서 교육생 컨택하는 거 봤어?”
“저번에 힐러 하나 데려갔잖아.”
“그건 에스퍼고. 지금까지 가이드 교육생을 데려간 적은 없잖아? 데려가도 의무 복무를 마친 실력이 보장된 가이드를 데려갔지.”
내가 연우진 때문에 메시아에 좋은 감정은 없긴 해도 우리나라 1위 길드라는 것은 안다. 대기업보다 들어가기 힘든 게 메시아 길드였으니까.
‘그보다 일단 컨택이 와야 하는 거 아닌가?’
길드 컨택이 이루어지는 것은 교육 기간인 3개월 중 2개월이 지난 뒤부터다.
그전까지 교육생에 관한 정보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으며,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테스트로 평가 기록을 쌓았다.
들어가고 싶은 길드가 있더라도 막상 그 길드에서 컨택이 오지 않으면 선택조차 못 하는 게 교육생 신분이었다. 의무 복무를 끝내고 따로 이력서를 넣으면 몰라도.
“솔직히 지금 제일 실력 좋은 게 김유정 가이드님이잖아요. 김유정 가이드님은 어디 들어가고 싶은 길드 없어요?”
“음…… 길드는 달리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원하는 계약 조건은요? 있을 거 아니에요.”
원하는 거야 있지. 카페 일 병행할 수 있게 근무 시간 조정해 주고, 계약 기간 끝나도 길드 가입 안 해도 된다고 해 주는 곳.
“글쎄요.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네요.”
물론 호구가 아닌 이상 이런 조건을 들어줄 곳이 없다는 건 나도 잘 알기에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일종의 투자인데 어떤 길드가 큰돈을 내고 이런 조건의 교육생을 데려가? 만약 데려간다면 돈이 썩어 나거나, 미쳤거나 둘 중 하나였다.
* * *
화륵.
뜨거운 화염이 광활한 대지를 뒤덮자, 수많은 곤충형 마물들이 불에 타올라 바르작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흡사 지옥도를 연상케 하는 모습에 동료 길드원이 그 능력의 주인을 뒤돌아봤다.
대지를 휩쓴 불길처럼 남자의 붉은 머리카락도 타오르듯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서윤호는 강한 살상력과 파괴력을 갖췄으나, 그 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A급에 머무르게 된 에스퍼였다.
“야, 오늘은 일 끝나고 뭐 하냐? 요즘 자주 가는 카페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맛있으면 나도 좀 데려가 주라.”
“오기만 해 봐, 뒤진다.”
숨 쉬듯 흘러나오는 협박에 길드원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서윤호에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이미 가 봤다.
쿠아 열매로 만든 디저트를 먹으면 상처가 빨리 낫는다느니 피부가 좋아진다느니 하도 유명해서 들러 본 것인데, 실제로 그 가게의 파이는 하급 포션과 유사한 효과를 보였다.
“……내가 아니어도 이미 에스퍼들 사이에서 유명하던데. 근데 너 마주치기 싫어서 그런지 다들 테이크 아웃만 한다더라.”
동료 길드원은 그렇게 말하며 낄낄 웃었다.
“도대체 얼마나 성격 파탄자로 유명하면……. 아, 그래도 연우진만은 못하겠지만.”
“내가 그 새끼보다 못하다고?”
“아니, 윤호야. 꼭 그런 것까지 걔한테 이겨야겠니……?”
안쓰러움이 담긴 길드원의 시선에 심기가 상한 건지 서윤호가 와락 미간을 일그러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