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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38화 (38/119)

S급 자영업자

38화

쿵. 저보다 큰 상대를 끌어안아 단숨에 뒤로 꺾는 모습이 더없이 깔끔했다.

레슬링 기술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경탄의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경악으로 얼룩진 정적 속에서 조예나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엎어진 상대를 쳐다도 보지 않고 곧장 내가 있는 계산대로 걸어왔다.

「접시를 깨뜨려서 죄송해요……. 식기값은 변상할게요.」

그렇게 말하는 조예나의 얼굴은 방금 현란한 수플렉스를 펼친 사람과 동일인이라기엔 유순하기 그지없었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조예나의 성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범상치 않은 얼굴이다 보니 종종 헌팅도 받았는데 그때마다 무슨 결투장이라도 받은 듯 상대방을 말로 쪼개더라.

‘……왜 내 카페에서 저러는 걸까.’

물론 그때마다 나는 몸싸움으로 번지지 않기만을 빌었다.

어쨌든 서윤호든 조예나든. 단골이란 사람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매번 시키는 메뉴를 보니 둘 다 쿠아 열매로 만든 디저트에 관심이 많던데, 아무래도 쿠아 열매가 무슨 돈과 함께 분란도 끄는 게 아닐까.

“콩알? 그쪽은 계산대 앞 막고 있던데 무슨 벽이라도 되시나. 많이 자라신 분이 민폐도 구분 못 해요?”

“……뭐?”

“주문 안 할 거면 비켜요. 언니 방해하지 말고.”

서윤호가 홱 고개를 돌렸다. 네가 이거의 언니냐고 묻는 듯한 표정에 나는 허허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야, 콩알.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빨 터는 거냐?”

“언니이- 제가 몰라서 그런데 우리나라 군주 정치로 바뀌었던가요? 지금 여기에 왕께서 행차하신 것 같은데.”

“…….”

아무리 봐도 덩치 큰 놈이 진 것 같은데……. 서윤호는 말투만 험악하지 정작 말싸움에 강한 편은 아니었다.

저 조막만 한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서윤호가 눈을 부릅뜬 채 조예나를 내려다봤다. 그에 조예나는 지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쳐들고 서윤호를 쳐다보았다.

몸집 차이가 상당해서 그런지 겉만 보면 서윤호 쪽에서 일방적으로 조예나를 괴롭히는 모양새였다. 물론 실제로는 그 반대다.

“예나야.”

“네, 언니.”

조용한 부름에 조예나가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손짓하자 조예나가 내 쪽으로 귀를 가까이했다.

“오늘 잼 쿠키 많이 구웠는데 좀 줄까?”

“……네!”

조예나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더니 곧이어 고개가 세차게 흔들렸다. 반짝이는 두 눈은 언제 싸웠냐는 듯 귀엽기까지 했다.

“야, 나는?”

귀 한번 좋네.

쿠키 준다는 말을 들은 듯 투덜거리는 서윤호의 모습에 잠시 쟤가 나와 동갑이 맞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서윤호와 조예나는 마주칠 때마다 으르렁거렸는데, 매번 이기는 건 작은 쪽이었다.

솔직히 에스퍼는 힘에 있어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고 하고, 최악의 경우 폭력까지 오갈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말싸움 이상으로 가지 않더라.

언젠가 서윤호에게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 조막만 한 걸 어떻게 때려?」

「와…… 인간이었네.」

「무슨, 너는 내가 민간인도 때리는 쓰레기인 줄 알았냐?」

「……응? 예나 에스퍼잖아.」

「……뭐? 걔 에스퍼였어?」

나는 같은 에스퍼니까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모양이다.

하긴 같은 회사 건물에서 일한다고 모든 사원의 얼굴을 아는 건 아니지. 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말을 주워 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생각해 보니 나는 조예나와 통성명을 했을 뿐, 내가 가이드라는 거나, 조예나가 에스퍼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밝힌 적이 없었다.

이 와중에 서윤호는 조예나에게 대련 신청을 넣겠다며 달려갔다.

유명한 A급 에스퍼라는 놈이 에스퍼가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신입이랑 겨뤄 보겠다고 달려가는 몰골을 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려와 달리 조예나는 화내지 않았다.

「제 능력은 식물 조종이에요.」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능력까지 말해 주었다.

당황한 나 대신 반응을 보인 것은 서윤호였다.

「뭐야. 너 그럼 이온 길드에 새로 들어왔다던 그 식물 신입이냐?」

「저는 진작에 그쪽이 개차반 서윤호라는 거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뭐? X발 누가 그래.」

마찰과 함께 대화도 늘었으니 나름대로 친해진 것 같다.

최근 들어서는 둘 다 바빠진 건지 카페 방문하는 횟수가 줄어 부딪히는 일도 급격히 줄어들긴 했지만 말이다.

‘이온 길드라면 나도 들어 본 적 있는데 거기도 유명 길드지 않나?’

그건 그렇고 센터에서도 보지 못한 상위 에스퍼를 직장에서 벌써 둘이나 봤다. 심지어 둘 다 단골이야.

‘조만간 굿이나 해 볼까.’

아무래도 인생에 마구니가 낀 것 같다.

* * *

그날은 평소와 별반 차이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가이딩 룸에서 개인별로 가이딩을 하는 거라기에 먼저 방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효율 분류상 1단계가 손 접촉, 2단계가 포옹, 3단계가 가벼운 점막 접촉, 4단계부터는 그 이상.

보통 센터 건물 내에서 가이딩 할 시 방음이 되는 가이딩 룸에서 이루어진다.

2단계까지라면 모를까 에스퍼의 상태에 따라 그 이상으로 접촉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10시였지?’

전날 문자로 7번 방으로 오면 된다고 해서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약속했던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20분이 지났다.

마중 나가 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는데 문이 열렸다.

“아, 오셨-.”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든 순간, 내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예쁜 은발이었다.

우아하게 나붓거리는 속눈썹이 보석 같은 보라색 눈동자 위에 드리웠고, 피부는 햇빛 한 번 쬐지 못한 사람처럼 새하얬다.

기껏해야 조예나 또래로 보이는 소년의 외양은 인간이라기보단 섬세한 비스크 돌에 가까웠다.

한세영의 키가 170 중반인데 대충 엇비슷할 것 같다. 아니, 저쪽이 조금 더 작나?

“……아, 김유정입니다.”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가이딩을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마주 손을 내밀긴커녕 표정 한 점 없는 얼굴로 가만히 내 손을 응시하기만 했다.

이론과 달리 실습은 할당량만 끝내면 바로 퇴근할 수 있어 내가 선호하는 수업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빨리 끝내고 돌아갈 생각으로 여전히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소년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 익숙하게 가이딩 파장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가이딩은 평소와 달랐다. 맞잡은 손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강한 거부감을 동반한 날카로운 파장과 고통이었다.

“윽-.”

상대 쪽으로 흘려보낸 파장이 어긋나 되레 나를 공격했다. 묵직한 무언가가 내부 장기를 거칠게 헤집었다.

순간, 호흡이 멈췄다.

“헉!”

나는 숨이 트이자마자 곧바로 손을 떨쳐 내었다.

“지금 이게 무슨……!”

식은땀이 나고 속이 울렁거렸다. 힘을 많이 써서 지친 적은 있어도 이렇게 고통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설마, 역가이딩?’

나는 구겨진 얼굴로 고개를 쳐들었다.

고의로 역가이딩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불쑥 화가 치솟았다.

“이게 무슨 짓이죠? 지금 이게 역가이딩 맞…… 잠깐, 괜찮아요?”

날카롭게 튀어나왔던 목소리는 얼마 안 가 당황으로 얼룩졌다.

소년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싫…… 자, 잘못-.”

내게 내쳐진 손은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허공에서 덜덜 떨고 있었고, 어깨는 한껏 굳어 움츠러들었다.

“몸이 안 좋은 거예요? 이봐요.”

“잘못, 미안…… 나는-.”

발작처럼 순식간에 가빠지는 숨소리에 나는 곧바로 눈앞의 상대를 달래기 위해 입을 움직였다.

‘저 상태는-.’

나는 숨을 천천히 길게 내뱉으며 두 손을 들고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요.”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는 여기 있을 거고, 더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이제 괜찮으니까, 진정해요. 멋대로 손대서 미안해요.”

“…….”

“당신은 안전해요. 자, 봐 봐요. 제 손 여기 있잖아요.”

설탕 조각처럼 예쁜 얼굴에 홀려 보이지 않았던 게 뒤늦게 보이기 시작했다.

충혈된 두 눈, 잠깐 만져 본 것에 불과하지만 에너지는 비어 있었고, 파장 역시 얼마 안 가 폭주를 일으킬 것처럼 불안정했다.

오랫동안 제대로 된 가이딩을 받지 못한 사람 같았다.

‘트라우마네.’

전쟁을 겪으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종종 보아 왔는데 그들과 비슷했다.

손을 붙잡자 빠르게 몸이 굳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인 문제는 가이딩을 불어넣으며 일어났다.

파장은 급속도로 불안정해졌고, 몸이 마비라도 된 것처럼 굳었다. 숨은 가빠지고, 가라앉은 보라색 눈동자는 강한 거부감과 공포, 그리고 억눌린 분노로 번들거렸다.

“움직이지 않고 이곳에 있을게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나는 다가가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신발 앞코로 바닥을 가볍게 문질렀다. 자잘한 소리가 멎자,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

“…….”

이어지는 고요 속, 내 머릿속에는 급행이라고 쓰여 있는 열차 하나가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열차에 타고 있는 것은 수업 진도였다.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저번 수업 때 교육 담당자가 다음 수업은 좀 더 가이딩이 부족한 에스퍼를 가이딩 할 거라고 말하긴 했다.

그렇다고 곧바로 접촉 가이딩에 트라우마가 있는 에스퍼를 맡길 줄은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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