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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35화 (35/119)

S급 자영업자

35화

“서일후, 나는 네 놈이 바른 소리를 지껄일 때마다 죽여 버리고 싶었어. 이제야 그 소원을 이루게 되는구나! 내가 특별히 보여 주지. 너 따위는 감히 가질 수도 없는 귀한 물건을 말이다.”

주삿바늘이 박힌 부분을 시작점으로 피부 위로 선명한 보라색의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주입한 게 뭐지? 독인가?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핏줄이 빠르게 타고 오르며 남자의 눈에서 검은색의 액체가 흘러내린 탓이었다.

“커억…… 끅…….”

“설마 누가 알았겠나. 그 길드가 등급 차 간의 힘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을 만들었을 거라고.”

투둑, 핏방울이 바닥 위로 떨어졌다.

고통에 신음한 남자가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손톱을 세워 바닥을 긁어내렸다. 고개를 숙여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어쩌면 그의 두 눈에는 핏줄이 터져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아아악-!”

쿵.

그 순간 거대한 바람이 불었다.

“하하하!!”

바람이 통할 일 없는 동굴 속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 있는 곳을 중점으로 거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바위에 바짝 붙어 숨어 있던 우리는 바위를 놓치고 벽으로 처박혔다. 마치 태풍 속에 선 것 같았다.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나는 이미 겪어 봤다. 주연우가 폭주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윽!”

순간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강민지가 작게 비명을 토해 냈으나, 바람 소리에 묻힌 건지 그들은 듣지 못했다.

“민식이 형님! 휘말리면 저희도 큰일 나니 이만 던전 닫죠.”

“그래야지. 저 새끼가 죽는 꼴을 지켜볼 수 없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말이야.”

놈들이 쓰러진 남자에게서 떨어져 가운데 놓인 돌로 가까이 다가갔다. 무언가를 하려는 듯 홍민식이 돌 쪽으로 손을 뻗었다.

쉴새 없이 몰아치는 바람이 흙먼지를 일으켰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남자들의 신형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나는 거세게 몰아닥치는 바람 속을 뚫고 달렸다. 그리고 소리쳤다.

“민지 씨!! 달려요!”

“예?! 어디로요!”

강민지는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나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뒤를 살필 틈은 없었다. 나는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신음을 흘리는 남자의 몸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곧장 들고 있던 칼로 셔츠를 찢은 뒤 그 사이로 손을 넣었다.

도드라진 빗장뼈를 지나 탄탄한 가슴 근육을 쓸어내렸다. 더듬거리며 남자의 몸을 매만지는 내 모습에 강민지가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유정 씨! 지금 이게 무슨……!”

지금 강민지의 눈엔 내가 이런 상황에서 다친 사람의 몸이나 더듬는 변태로 보일지 모른다. 아니, 솔직히 내가 강민지였더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지금 나는 가이딩을 하는 중이었다.

홍민식이 서일후라는 남자에게 무엇을 했는지 내가 알 방법은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서일후라는 남자가 일으킨 증상이 이능력 폭주라는 것.

그리고 주사 탓인지, 등급 탓인지, 뭔지는 몰라도 주연우 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폭주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핏줄이 서고, 죽은 피가 몸 밖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하면 거의 폭주를 일으키기 직전이라고 알고 있는데, 주연우 때는 그 정도까지 진행되진 않았으니 이 남자는 그보다 더 진행된 상태라고 봐야 한다.

‘……그때도 해냈어. 괜찮아, 괜찮을 거야.’

멈출 수 있다면 뭐든 해 봐야 한다. 마음 같아선 그때처럼 점막 가이딩이라도 때려 박고 멈추게 하고 싶은데 남자가 고개를 들 생각을 안 한다.

여차여차 몸은 일으켰으나 고개는 여전히 바닥을 향한 채 입술을 터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꽉 깨물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통을 참는 것 같은데 저 상태의 사람에게 점막 가이딩을 하겠답시고 입술을 들이댔다간 내 입술이 너덜너덜해질 거다.

가이딩을 빠르게 쏟아부었다. 가능한 넓은 면적을 접촉하며, 다른 손으로는 귓불을 손가락 사이에 넣고 문지르며 남자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배운 적이 없으니 이론 같은 건 모르나, 머리 쪽에 가이딩을 밀어 넣으면 좀 더 빨리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싶어 한 선택이었는데, 정말 금세 정신을 차렸다.

저번보다 힘을 덜 쓴 것 같은데 생각보다 빠르게 효과를 보여 놀람도 잠시, 남자가 짓이겨진 입술에서 이를 떼고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남자가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흡사 뭐에 홀린 듯 몽롱한 시선에 나는 남자의 뺨을 두 손으로 잡아챘다.

정신 차려 이 양반아. 지금 나랑 자기소개나 할 때가 아니다.

폭주가 일시적으로 멎자 바람 또한 사그라들었다.

그 난리를 쳤는데 에스퍼들이 이쪽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들이 곧바로 돌에 손대지 않고 우리 쪽으로 공격 의사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게 뭐가 다행이냐고? 희망이 아예 없는 것보단 티끌만큼이라도 있는 게 낫지 않던가.

“저 남자들 공격해요. 폭주하지 않게 가이딩 해 줄 테니까 최대로!!”

“그게 무슨-.”

“죽고 싶어요?! 당장!”

서일후가 고개를 바로 했다. 저쪽에서 욕설이 섞인 분노가 쏟아져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X발, 저년들은 또 뭐야?! 언제부터-.”

에스퍼 둘이 마물과 마석을 챙겼고, 홍민식이 우리 쪽으로 손을 뻗었다.

곧이어 폭발음이 들리더니 부서진 돌더미가 우리 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은 순간, 맞닿은 피부를 통해 가이딩이 확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서일후란 남자가 우리를 덮쳐 온 돌더미를 이미 박살 낸 뒤였다.

하지만 상대는 공격을 멈출 생각이 없는 듯, 끊임없이 폭발 능력을 퍼부어 댔다.

쾅! 쾅!

이런 좁은 공간에서 싸우면 어떻게 될지 결과는 뻔하다. 그들은 우릴 죽일 생각이었다.

이 던전과 함께 범죄의 증거도, 목격자도 모두 묻음으로써.

콰광!

그 순간 강한 폭발과 함께 거센 바람이 밀어닥쳤다. 어찌나 여파가 강했는지 상징물 근처에 서 있던 에스퍼들이 반대편 벽으로 튕겨 나갔다.

곧 쿵 하고 세 사람이 동굴 벽에 부딪히는 모습이 보였다.

한꺼번에 힘을 쏟아 내서 무척 힘든 듯 서일후란 남자가 숨을 몰아쉬더니, 곧 크게 소리쳤다.

“모두 가운데로 달려요, 어서!”

그가 소리를 지르기가 무섭게 다시 한번 동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거센 흔들림이었다.

흙먼지와 떨어지는 돌무더기를 겨우겨우 바람으로 막아 가며, 우리는 일어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서일후의 손이 이 던전의 상징물에 닿았고, 쪼개지는 것이 보였다.

부서지는 조각 사이로 던전에 왔을 때와 같은 빛이 터져 나왔다.

눈이 아플 정도로 시야를 가득 채운 빛에 눈살을 찌푸리자, 곧이어 동굴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귓가를 덮쳤다.

쿵.

그 순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게이트가 닫혔다는 것.

그뿐이었다.

* * *

천재지변과도 같은 갑작스러운 비전조 게이트로 살아남은 것은 민간인 둘과 B급 에스퍼 하나가 전부였다.

센터에서는 아직 사람이 몇 명이나 휘말렸는지, 계속해서 확인하고 있는 듯하나 어쨌든 당장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랬다.

클리어된 게이트에 어쩌면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열어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게이트에 휘말리고 실종자 중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없었으니.

강민지는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긴장이 풀린 듯 울음을 터뜨렸다.

서일후는 자신이 처신만 잘했다면 더 많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자책했다.

서일후라는 놈은 이상한 데에서도 죄책감을 보였다. 자기를 죽이려고 한 에스퍼들까지 데려왔어야 했다면서 말이다.

게이트 원정을 나가는 만큼 에스퍼의 대부분은 윤리 의식이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이 인간은 돌연변이인 듯하다.

“……제압해서 데려왔어야 했는데 제 능력 부족입니다. 그때 이동 범위 밖으로 날려 보내서…… 제가 죽인 거나 다름없습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 사람들은 우릴 죽이려고 했는데!”

“생명에 귀천은 없는 법입니다. 그들은 살아서 죄를 갚아야 했습니다.”

“아니, 못 봤어요? 우리 목숨도 간당간당했어요. 이분은 동굴을 무덤 삼고 싶으셨나!”

강민지가 울음을 그치고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그 사이에서 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이걸 사네…….”

얼핏 들은 바로는 홍민석과 그 패거리들은 던전 안에서 불법으로 마물을 포획했고, 그 광경을 본 다른 목격자들은 전부 살해했다고 한다.

나와 강민지가 동굴로 들어가기 전에 본 목이 잘려 있던 에스퍼 또한 그중 하나였고.

게이트는 다른 차원과 이쪽 세계를 이어 주는 통로.

보통 게이트 내부에서 외부(원래의 세계)와 통신할 방법은 없다. 게이트 내부에서는 외부의 전자 기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전파계 이능 에스퍼가 있다면 조건에 따라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예외가 있지 않은 이상, 따로 밖에 상황을 알릴 방법도, 감시 카메라처럼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얘기다.

즉, 그 안에서는 완전 범죄가 성립한다. 무슨 짓을 저질러도 결과적으로 게이트를 닫으면 죄를 밝힐 증거는 자연히 함께 사라질 테니.

어찌 되었든 나는 살아 돌아왔다. 그것도 비전조 게이트라는, 민간인의 생존율이 극히 낮은 게이트에서 말이다.

그리고 현재, 나는 센터에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각성자 등급 측정실 안에.

“무슨…… 측정기가!”

“소장님! 측정기가 망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록된 파장은-.”

……설마 저거 내가 물어 줘야 하는 건 아니겠지.

완전히 박살이 난 듯 가이딩 측정기가 눈앞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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