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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34화 (34/119)

S급 자영업자

34화

험악해진 상대방의 얼굴에 강민지는 제가 무슨 말실수를 했나 되짚어 보았지만, 짚이는 건 없었다.

“다시 말해 볼래요?”

“……예?”

“카페 경력이 몇 년이라고요?”

“아…… 5년 정도 했는데요.”

“혹시 청소 좋아해요?”

“더러운 걸 가만히 못 두고 보는 편이긴 해요.”

강민지는 대답하면서도 어리둥절했다. 무슨 면접도 아니고 이런 급박한 상황에 카페 알바 이야기나 오가고 있으니 말이다.

강민지의 대답을 들은 김유정이 미소 지었다. 오늘 본 것 중 가장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알바 자리 구한다고 하셨죠? 혹시 저희 카페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복지는 가능한 한 잘 챙겨 줄게요.”

……아니, 면접이 맞았나 보다.

“저야 좋죠! 집이랑 위치만 가깝다면 바로 이력서 들고 찾아뵐게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강민지는 곧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상기하고는 입꼬리를 내렸다.

“여기서 나갈 수만 있다면요…….”

그래, 살아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할까. 여기서 멀쩡히 나갈 수만 있다면 설령 원양 어선을 타라고 했더라도 알았다고 했을 거다.

긍정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인 김유정의 시선이 어딘가를 향했다.

그녀의 시선이 잘게 떨리는 걸 발견한 강민지는 김유정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조금 전에 보았던 마물과 똑같이 생긴 것들이 동굴 밖을 에워싸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시체에 꼬인 파리처럼 이쪽에 사냥감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모습에, 강민지는 호흡조차 멈췄다.

파충류 특유의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동굴 안을 향했다.

하나둘,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다.

강민지가 설마 아니겠지 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있을 무렵, 김유정이 중얼거렸다.

“……어, 민지 씨 우리 달려야 할 것 같은데요. 방금 눈 마주쳤어요.”

마물들이 동굴 안으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아악!!”

강민지와 김유정은 마물들을 피해 본능적으로 동굴 안쪽으로 도망쳤다.

목숨을 건 추격전의 재시작이었다.

* * *

어쩌면 이렇게 재수가 없나 싶다.

월요일 휴무 날, 잠시 볼일이 있어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런데 불현듯 눈앞이 환해지더니 하얀빛과 함께 비전조 게이트 안에 들어와 버렸다.

처음엔 정신을 차려 보니 웬 울창한 숲속이어서 내가 서서 꿈을 꾸나 했다.

그러다 이곳에 오기 직전 보았던 빛을 떠올렸다.

‘하얀색…… 하급인가?’

대체로 게이트가 발생할 시 발하는 빛의 색으로 게이트의 급을 간단히 분류하곤 했다.

자세한 급은 파장을 검사해 봐야 하나, 보통 위험도와 규모로 하얀색을 하급, 녹색을 중급, 파란색을 상급. 그리고 붉은색, 레드 게이트를 최상급으로 쳤다.

상황을 인지한 나는 이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들어온 던전이 하급이라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나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게이트를 닫는 방법은 그러한 다른 차원의 중심, 던전의 보스든 아니면 그 상징이 되는 물건이든.

그 차원의 중추가 되는 것을 죽이거나 부수는 것이다.

‘응. 여기까지는 일반 상식이니까 알고 있는데…….’

문제는 내가 무슨 수로 돌아가냐는 거지.

허허로이 웃으며 일단 뭐라도 찾아보자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난데없이 비명이 귓속을 파고들더니 사람 하나가 마물을 달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얼결에 도주에 합류하게 되어 그때부터 그 사람과 함께 정신없이 마물들로부터 도망 다녔다.

“민지 씨 이쪽!”

그 결과 이렇게 동굴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게 된 거고.

밖에서 봤을 때는 작은 동굴이었는데 막상 내부는 생각보다 컸다.

동굴 안으로 들어오니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통로가 여러 개 있었는데, 우리는 일단 가장 가까운 통로 쪽으로 들어갔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가장 가까운 입구로 들어간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입구의 폭이 무척 좁아서 마물들이 곧바로 벽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지능이 그리 뛰어나진 않은지 그러지 않아도 좁은 입구에 다들 양보 없이 몸을 욱여넣더라.

“사, 살았다……!”

안도도 잠시, 강민지가 이젠 막힌 출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보다 이제 어떡하죠? 이렇게 되면 동굴 밖으로 못 나가는데…….”

“안으로 들어가죠.”

“……안에 더 위험한 게 있는 건 아니겠죠?”

그에 나는 주머니를 뒤져 카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 그건……!”

내가 들고 있는 카드가 무엇인지 알아챈 듯 강민지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카드는 센터 출입증 카드였다.

그것도 은색에, 오른쪽 모퉁이에 선이 두 줄 그어져 있는 C-D급 에스퍼 출입증.

등급란의 긁힌 자국 때문에 정확히 몇 급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뭐가 되었든 E-F급이었던 주연우도 폭주 시에 그만한 위력을 냈으니, 잘은 몰라도 C-D급 에스퍼라면 혼자서 이 하급 던전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굴 입구 근처에서 발견했어요.”

나의 말에 일순 밝아졌던 강민지의 얼굴이 다시 흐려지는 것이 보였다.

“아, 혹시 그 카드의 주인이 동굴 밖의 시신인-.”

“아마 그건 아닐 거예요. 여기 출입증 사진 보이죠? 시신의 얼굴이랑 전혀 다르더라고요. 이 출입증의 주인은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아, 저는 그 시신…… 얼굴은 잘 못 봐서. 그런데 이걸 왜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진작에 안으로 들어와 볼 걸 그랬네요!”

“그야 동굴 안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고, 이 카드의 주인이 이미 동굴 밖으로 나온 거라면 위험하잖아요. 뭐, 이젠 여지없이 안쪽으로 들어가야겠지만요.”

“아, 그러네요……. 와, 왠지 유정 씨는 어디에 떨어져도 꼭 살아남으실 것 같아요.”

강민지가 내 생존 욕구에 감탄했다. 그에 나는 이미 한 번 떨어져서 살아남은 경력이 있다고 농담처럼 덧붙일까 하다 말았다.

“이 사람도 저희처럼 휘말린 걸까요? 휘말린 비전조 게이트에 최소 D급 이상의 에스퍼가 있다니 운이 좋았네요. 어서 가 보죠!”

강민지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뒤를 따라 걸으며 나는 손에 들린 출입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째 뭔가 불안한데…….’

출입증에 사진이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이 출입증의 주인은 분명 C급 이상일 터였다.

그런데 그런 에스퍼가 어쩌다 중요한 센터 출입증을 잃어버리게 된 걸까.

* * *

곧 찝찝함의 원인을 깨달았다.

우리가 봤던 시신은 목이 잘려 있었다. 다른 상처는 없이 무척 깔끔하게,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에 목이 베인 것처럼.

반면 동굴 밖을 돌아다니던 것은 파충류의 형태를 한 마물이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발톱을 지녔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인간을 공격할 수 있을 거라 상상하긴 힘들었다.

물론 내가 이 던전에 관해 잘 아는 것도 아니니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신이 어쩌다 동굴 입구 근처에서 그런 꼴이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결론은 의외로 단순할지도 모른다.

“크하하! 그 새끼도 신고할 거니 뭐니 하더군. 내가 그래서 그 자식을 어떻게 해 줬을까? 목을 이렇게 휙 그어 줬단 말이야…….”

바로 이 출입증의 주인이 동굴 밖의 에스퍼를 죽였다는 것.

눈앞의 남자가 마석을 쓸어 담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정확히 내가 주운 출입증의 사진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센터 소속 에스퍼에 이름은 홍민식. 출입증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꼴같잖은 법이니 명예니 뭐니 하며 지껄이니까 그렇게 되지. 고지식한 새끼…… 우리만 그러는 줄 알아? 우리 말고도 이러는 놈들 많아.”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마석들을 포대 자루 안에 던져 넣었다. 그런 뒤 제 앞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그리고 이것 보라고.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기껏해야 나보다 한 단계 높은 B급 에스퍼 주제에 결국 이렇게 처맞고 누워 있는 네 꼴을.”

“큭…… 홍민식 에스퍼, 대체 무슨 짓을……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 있긴 한 겁니까? 죄 없는 민간인을 죽이고, 마물을 잡아들이다니, 아주 큰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아아, 아주 자알- 알고 있지. 그런데 그거 알고 있나? 게이트 안에서 일어난 일은 게이트를 닫으면 끝이야. 아무도 몰라.”

이야기를 엿듣다 보니 입구 바로 앞에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있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 범죄자들 앞에 그대로 모습을 노출할 뻔했으니.

나와 강민지는 숨을 죽인 채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아마 이곳이 동굴의 제일 안쪽인 것인지, 우리가 들어온 통로 하나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온통 막힌 상태였다.

그리고 동굴 한가운데에는 보통 암석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빛을 띤 커다란 돌이 박혀 있었고 말이다.

이질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 아무래도 저게 이 던전의 상징물인 것 같았다.

문제는 여기를 빠져나가려면 저걸 부수거나 해야 할 텐데, 상황이 다소 여의치 않아 보였다.

던전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이런 범죄 현장을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유, 유정 씨-.”

마찬가지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건지 강민지가 불안한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

“X 됐네요…….”

단언컨대 지금 이보다 더 잘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거다.

잠시 동요했지만, 일단 차분히 상황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은 총 네 명으로, 한 명은 나머지 셋에게 당한 듯 엉망인 몰골로 쓰러져 있었다.

범죄자들로 추정되는 세 명은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고, 불법 포획물로 보이는 마물이 든 케이지를 지키고 서 있는 상태였다.

그들 뒤로는 바로 던전의 상징물이 놓여 있었고 말이다.

상징물에 접근할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초조해지는 찰나, 홍민식이 주삿바늘 같은 것을 손에 들고 바닥에 쓰러진 남자에게 접근했다.

‘그러고 보니 저 엎드려 있는 남자가 B급 에스퍼라고 했지…….’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홍민식이 곧 쓰러진 남자의 목에 힘껏 주삿바늘을 꽂아 넣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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