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32화
카페 개업일부터 가게를 찾아 주신, 초코 음료와 쿠아 파이를 좋아하는 단골손님.
그 단골손님이 불과 몇 주 전 마트 강도 사건을 함께했던 에스퍼였다니.
“어, 그러니까…….”
이름이 뭐였더라…… 서, 서 뭐였던 것 같은데.
당시 들었던 이름을 곧바로 휴대폰 메모 앱에 적었던 것 같은데, 그 휴대폰은 이미 초기화해서 주연우에게 반납해 버렸다.
“그, 서…… 이현 씨……?”
떠오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며 말끝을 흐리니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린 남자가 손을 들어 제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서윤호다. 이현…… 씹, 또 그딴 이름으로 부르기만 해 봐.”
“아, 맞다. 서윤호 씨. 와 진짜 놀랐어요. 설마 카페 단골손님이 SNS 유명인이라니…….”
“놀란 것 치곤 얼굴 멀쩡한데?”
“원래 이래요.”
“하긴 그때도 놀라지 않았…….”
남자, 서윤호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잠시 말이 없었다.
“……잠깐. SNS 유명인이라니? 내가 ‘헤베’ 소속 에스퍼, 서윤호라는 거 눈치챈 거 아니었어?”
“제가 길드를 잘 몰라서 그런데 혹시 그쪽으로도 유명하세요?”
내 질문에 알 듯 말 듯 묘한 표정을 지은 서윤호가 물었다.
“대단한 분인 줄 몰랐다며?”
“네, 친구한테 들었는데 SNS에서 디저트 추천하는 걸로 되게 유명하신 분이시더라고요.”
“감사한 게 한둘이 아니라며?”
“그야 막 카페를 열었을 때부터 꾸준히 들러 주셨는데 감사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이렇게 직접 홍보도 해 주셨고요.”
“…….”
“아까 말씀 못 드렸는데 제가 서윤호 씨가 그 계정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진 속 서윤호 씨 쿠키 포장지만 리본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때 마침 스티커가 떨어져서 리본으로 포장해서 드렸었거든요.”
“……리본?”
“네.”
서윤호가 입술을 달싹였다.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답답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나는 이 사태가 어쩌다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왜 갑자기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공개하나 했더니 에스퍼인 자신을 알아봤다고 저쪽에서 혼자 오해한 듯했다.
덧붙여 처음 카페에 들어왔을 때 나를 노려봤던 건, 면식 있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쳐서 그랬던 거란 걸 깨달았다.
서로의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되자 나는 한결 풀린 얼굴로 그를 대했다.
유명 에스퍼든 뭐든, 그래 봤자 손님은 손님이다. 변하는 건 없었다.
그래도 이건 따지고 넘어가야겠다. 나는 SNS 감사의 의미로 준비한 잼 쿠키 상자를 내밀며 그를 불렀다.
“서윤호 씨.”
“왜.”
조금이라도 덜 날카롭게 보이고자 입꼬리를 올린 채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왜 반말하세요?”
그러나 오히려 역효과였던 모양인지 서윤호의 표정이 굳어 가는 것이 보였다.
“……몇 살인데?”
“25살이긴 한데…… 지금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요?”
“동갑이네. 너도 말 놓던가.”
“그래.”
“…….”
“그래서 주문은? 여느 때처럼 포장할 거야?”
서윤호가 할 말을 잃은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그래도 화는 안 내는 걸 보니 본인이 자초한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지한 듯했다.
한참 황당하다는 듯 서 있더니 내가 음료를 제조하러 자리를 뜨자, 서윤호는 계산대 근처 좌석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너…… 이름이 뭐야?”
“김유정.”
그도 내게 이름을 알려 주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답한 것뿐인데, 내 이름을 들은 서윤호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김유정? 네 이름이 진짜 김유정이라고?”
“……? 난 그쪽과 달리 유명한 사람은 아닌데.”
“야, 너. 연우진 알아?”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서윤호를 쳐다보았다. 언짢음과는 별개로 왜 갑자기 그 이름이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이 나라에 있을까?”
“따로 아는 사이는 아니고?”
“일방적으로 한쪽만 아는 걸 아는 사이라고 친다면 아는 사이겠지.”
내 대답에 서윤호가 무언가를 고민하듯 입을 닫았다. 표정이 눈에 띄게 휙휙 바뀌었다.
심각한 듯 굳어 있던 얼굴이 이내 착잡함을 담고 흐려졌다.
……뭐지? 뭔가 있는 건가?
나는 덩달아 긴장하여 대답을 기다렸다.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 어이없네. 연우진은 안다면서 왜 나는 모른다는 건데?”
서윤호가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 * *
그 이후로도 서윤호는 인적이 드문 시간마다 주기적으로 카페를 찾았다.
변함없이 툴툴대긴 했지만 확실히 내 디저트가 맛있긴 한 모양이다.
또 말을 놓아서 그런지 전보다 대화도 늘고 나름 친해졌다. 쿠아 열매로 만든 디저트의 효능을 알려 주니 꽤 놀라워하기도 했다.
서윤호도 마냥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눈치는 아닌 것 같았다.
표정 대부분이 찌푸린 얼굴이라 그렇지 지내다 보니 생각보다 무해하고 단순해 보였다. 무엇보다 좋다, 싫다가 그렇게 표정에 잘 드러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매번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오기에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가 싶어 한세영에게 서윤호에 관해 물어보니 바로 유명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화염 이능력을 가진 A급 에스퍼.
메시아 길드 마스터인 연우진과는 사이가 나쁜 것으로 유명하다는 말에 친근감을 느꼈다가, 작년 여름 독 비 사건 때 숲을 통째로 태워 버린 주범이란 말에 도로 집어넣었다.
물론 의도적으로 벌인 짓이 아닌 이상 에스퍼의 파괴 행위가 무조건 지탄받아야 할 게 아니란 것은 알고 있다.
이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나를 위해 한세영이 몇 번이고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에스퍼의 ‘폭주’에 관해서는 여러 상반된 견해를 불러일으켰다.
감사와 연민.
이해와 비난.
대개 폭주는 가이딩을 제때 받기만 하면 일어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선천적인 매칭률, 받은 가이딩을 전부 소진할 만큼의 능력 과사용, 타인의 능력 간섭 등 많은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에스퍼가 능력을 과사용 하는 경우는 대부분 게이트 때문이었다.
세계를 지키기 위해 능력을 사용하고, 그 한계를 넘어가면 폭주를 일으키는 것이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그보다 작은 피해를 감수한다.
이러한 논리하에 비난은 크게 줄어들었다.
물론 피해 보상금이 후해진 탓도 없잖아 있겠지만, 특히 몇 년 전 레드 게이트로 끔찍한 지옥을 경험한 뒤로 여론이 크게 뒤바뀐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보다 줄어들긴 했어도 비난은 여전히 존재했다. 무엇이 합리적인지 논하는 것과는 별개로 실제 겪어 보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니.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거 연우진의 행적에서 피해를 봤던지라 그런 얘기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화가 치솟곤 했다.
어찌 되었든 갑자기 에스퍼인 서윤호에 관해서 묻자 한세영은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유정이 네가 이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에스퍼에게 관심 생겼어?」
평소 내게 각성자 등록을 해라, 한 번쯤은 맞는 에스퍼를 만나 봐라 권했던 한세영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별건 아니고 우리 카페 단골손님이 그 서윤호더라고.」
「뭐?! 서윤호가 네 카페 단골이라고? 어떻게?」
「네가 알려 준 그 유명한 디저트 계정 주인이 바로 그 사람이던데.」
「……뭐? 그 미친개로 유명한 서윤호가?」
한세영이 매치가 안 된다며 중얼거렸다.
어쨌건 충분한 설명도 들었겠다, 나는 이어서 그녀에게 알바생을 어떻게 구하면 좋을지 의견을 구했다.
그도 그럴 게 일손이 매우 급했다.
잠깐 반짝하고 말리라고 예상했던 당초의 생각과는 다르게 손님들의 발길이 제법 꾸준히 이어진 탓이었다.
어떤 알바생을 구하고 싶냐는 한세영의 물음에 나는 답했다.
「성실하고, 청소 대충하는 법 없이 깔끔하고, 접객해야 하니까 성격 좋고, 입 무겁고, 음료 제조에 익숙하고, 내가 무뚝뚝한 인상이라 종종 말 걸기 어려워하시는 손님들이 있으니까 말 걸기 편한 인상에, 둘이서 일해야 하니까 나이대는 나랑 비슷했으면 좋겠어.」
「……유정아, 혹시 알바생 구하기 싫어?」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간절한데.」
「그런 환상의 알바생을 어떻게 구해…….」
한세영은 일단 알아보긴 하겠다며 한숨을 길게 내리쉬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눈 게 불과 하루 전-.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는 월요일 한낮의 오후.
사실 장소가 장소인지라 날씨나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다시 말해 볼래요?”
“……예?”
“카페 경력이 몇 년이라고요?”
“아…… 5년 정도 했는데요.”
“혹시 청소 좋아해요?”
“더러운 걸 가만히 못 두고 보는 편이긴 해요.”
조건에 딱 맞는 알바생을 발견했다.
한 곳에서 오래 일했다는 점도 좋았고, 마침 나이도 나보다 한 살 어린 24살이라고 한다.
인상도 무척 선한 데다 갑작스런 물음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는 걸 보면 성격도 좋아 보였다.
“알바 자리 구한다고 하셨죠? 혹시 저희 카페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복지는 가능한 한 잘 챙겨 줄게요.”
그러자 예비 알바생이 미소 지었다.
“저야 좋죠! 집이랑 위치만 가깝다면 바로 이력서 들고 찾아뵐게요.”
그러나 곧 예비 알바생의 입가에 아련히 맺혀 있던 미소가 흐려졌다. 그녀가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덧붙이듯 말했다.
“여기서 나갈 수만 있다면요…….”
그러게요. 모처럼 마음에 드는 알바생을 구했는데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면접은 성공했다. 문제는…….
“……어, 민지 씨 우리 달려야 할 것 같은데요. 방금 눈 마주쳤어요.”
“아악!!”
면접 장소가 바로 던전 안이라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