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29화
* * *
벌써부터 맘 편하게 알바만 하던 인생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전에 일했던 카페 사장님이 월급도 제때제때 보내 주시고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더 그런 것 같았다.
메뉴 개발부터 청소, 뒷정리, 재료 주문, 시장 조사, 홍보 모두 나 홀로 감당해야 하다 보니 꽤 힘에 부치는 게 사실이더라.
개점 첫 주는 휑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장소도 아니었을뿐더러, 가끔 새로 생긴 카페라고 사람들이 기웃거리긴 했는데 무난한 아메리카노나 커피류만 사 가곤 했다.
계산 시에 시그니처로 내걸고 있는 쿠아 열매 디저트를 슬그머니 추천도 해 봤는데, 맛없다는 인식이 강해서 그런지 처음에는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그래도 조언대로 뭐라도 올린 게 도움이 되긴 했는지 차츰 디저트를 찾는 손님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신규 유입은 많지 않아도 재방문 비율은 높았다. 대부분 디저트를 드셔 보신 적 있는 분들에 한해서였다.
“여기 쿠아 라떼랑 파이 진짜 맛있어요!”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제가 요즘 동네방네 홍보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사장님은 가게 접지 말고 평생 운영해 주셔야 해요…… 아, 진짜 다들 왜 안 오죠. 이렇게 맛있는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 손님도 주기적으로 카페를 찾는 분이신데 파이가 마음에 든 듯 매번 말없이 파이를 포장해 가시더니 어느 날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사장님, 파이 너무 맛있어요!」
첫 대화에 대뜸 칭찬부터 던진 손님은 그 이후에도 사 갈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님이 농담을 던지듯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기분 탓인가. 여기 카페 다닌 뒤로 피부가 깨끗해진 것 같고 몸도 막 좋아진 것 같고 그래요.”
“하하-.”
기분 탓이 아닐 텐데.
전에 말했다시피 쿠아 열매는 잘 정제하면 하급 포션으로도 쓸 수 있는 재료이다.
그런데 열매가 통으로 쓰이는 파이나 수제 청이 들어가는 라떼 같은 경우에는 함량이 만만치 않았기에 포션과 비슷한 효과를 본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어쨌든 사람이 적은 만큼 응대도 더 정성껏 할 수 있어 좋았다.
비록 지갑에는 여유가 없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손님들 한분 한분께 친절히 대하며 뭐라도 하나 더 챙겨 드리려 노력했다.
그날 역시 주문해 주신 분들께 서비스로 드리는 오픈 이벤트용 잼 쿠키를 포장하고 있을 때였다.
한적한 오후, 처음 보는 손님 한 분이 카페에 들어섰다.
딸랑.
“어서 오세요~.”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캡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손님이었는데 키가 무척 커 보였다.
두꺼운 후드 티를 입긴 했지만 그 너머로 비치는 넓은 어깨나 단단한 근육을 숨길 순 없었다.
‘연예인인가?’
그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계산대로 직행하는 대신 입구 쪽에 서서 사진부터 찍었다.
SNS라도 하나 보네.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세영만 해도 카페나 식당에 가면 음식에게 마지막 예우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카메라부터 들이밀었으니.
그래도 덩치 커다란 남자가 제 손보다 작은 휴대폰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제과 진열장을 집중해서 찍고 있는 모습은 제법 눈길을 끌긴 했다.
한참 휴대폰을 노려보던 손님이 시선을 의식한 듯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곧 계산대로 걸어왔다.
멀리서 봐도 몸집이 컸는데 눈앞에서 보니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구경한다고 눈치 주려고 한 건 아닌데. 천천히 봐도 된다며 덧붙이려는 그때, 주문이 들어왔다.
“초코라테 샷 추가. 휘핑크림 포함이요.”
“네. 매장에서 드시고 가시겠-.”
“예.”
“두유로도 선택 가능하신-.”
“그냥 우유로.”
“크림 위에 초코 드리즐-.”
“예.”
무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돌아오네…….
잠시 허공을 쳐다보고는 포스기를 두드렸다.
“음료만 주문하시는 거 맞죠? 아, 적립하시겠어요? 앞에 놓인 숫자 키패드에 전화번호 입력하시면 적립되세요. 10개 모으시면 음료 하나 무료로 드리고 있어요.”
설명이 꽤 길었는데 누가 쫓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로 대답이 돌아왔던 조금 전과 달리 좀처럼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자 그가 더듬 손을 들어 제 모자를 좀 더 내리눌렀다.
캡 모자 위로 덮은 후드가 흐트러지며 붉은 머리카락이 언뜻 보였다.
“……그, SNS 보고 왔는데 쿠아 열매를 사용한 디저트가 있다고-.”
손님의 시선이 진열장 안의 비어 있는 파이 칸을 응시했다.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어색한 듯 머뭇거리던 목소리가 불현듯 멎었다.
모자 아래, 어둡게 그림자 진 사납게 치켜뜬 눈동자가 나를 향하더니 곧 잘게 떨려 왔다.
“……?”
마치 여기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도 목도한 듯한 시선에 내 뒤에 뭔가 놀랄 만한 것이라도 있나 싶어서 돌아봤다.
그러나 뒤에 있는 거라곤 카페라면 있는 게 당연한 메뉴판과 커피 머신기 같은 음료 제조용 기기뿐이었고,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잠시 굳었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쿠아 파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 요.”
“아, 있어요. 그런데 파이라면 지금 굽고 있어서 조금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15분 가량 소요될 것 같은데.”
“파이는 포장으로.”
곧장 기다리겠다고 답한 손님이 창가 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대화가 사라지자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단조로운 피아노곡이 카페 안의 정적을 메워 주었다.
부욱.
초코라테 위로 휘핑크림과 초코 드리즐을 얹었다. 이제 음료가 완성되었으니 손님만 부르면 되는데 쉽사리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선이…… 따갑다.’
그도 그럴 게 자리에 착석한 뒤로 손님의 시선은 줄곧 나를 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착각인가 했다. 나도 눈매가 사나운 편이라 평소 가만히 있기만 해도 주변에서 혹시 지금 기분 안 좋냐고 묻곤 했다.
나는 매서운 눈매를 가진 동지로서 그가 나를 노려보는 게 아니라 카페를 구경하는 것일 거라며 몇 번이고 긍정 회로를 돌렸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닌 것 같다.
무슨 쥐를 감시하는 치즈 가게 주인처럼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머지않아 직면해야 할 현실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천천히 음료를 제조하며 생각했다.
‘돈이라도 떼어먹었나…….’
허무맹랑하다고 볼 수 없는 게 나는 이 몸으로 돌아온 지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았다.
내 기억에는 없더라도 7년간 김유정이었던 이가 무슨 사고를 쳐서 저 손님이 사실은 제3 금융권에 종사하는 내 채권자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묘하게 데자뷔가 드는데…….’
어쩐지 비슷한 일을 겪어 본 적이 있는 듯하여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러나 더 지체할 수 없어 음료 픽업을 알린 순간, 나는 이 기시감이 어디에서 왔는지 떠올렸다.
“-아.”
상대를 알아보듯 관찰하는 시선.
예전 주연우의 시선과 비슷했다.
* * *
아는 게 힘이다. vs 모르는 게 약이다.
예전에 일했던 곳에서 반쯤 장난 삼아 이런 밸런스 게임을 질문받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후자를 택했다.
옛날에는 모르는 것보단 알고 택하는 게 후회가 덜하다며 전자를 택했던 것 같은데, 여러 일을 겪고 나니 정신 건강에는 후자가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원효 대사만 해도 해골 물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물맛만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이건 오픈 이벤트로 드리는 잼 쿠키에요. 주문하신 파이와 같은 쿠아 열매를 사용했는데,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모른 척 넘겼다.
애초에 좀 쳐다본 거 가지고 대뜸 나 아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짜 사채업자라면 보자마자 모아 둔 돈 있냐고 통장 안부부터 물었겠지. 채권자만 아니면 정말 나와 아는 사람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
커다란 리본이 달린 쿠키 포장지를 살벌하게 응시하던 그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듯 살짝 고개를 까닥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딸랑,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후에 이 작은 해프닝을 한세영에게 말했을 때 돌아온 것은 꿈과 사랑이 가득한 대답이었다.
“유정이 너한테 반한 거 아니야?”
“……?”
“뭐래. 지금 연애 중이라고 넌 주변이 다 꽃밭으로 보이냐?”
“아니, 몸도 좋다며. 그리고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성지현과 한세영이 투덕거리기 시작했다.
“뭘 그럴 수도 있어. 덩치도 사자 같은 놈이 노려본대잖아. 그 손님 그 뒤로도 카페 와?”
“어? 어…… 오긴 오는데…….”
“계속 그래?”
“아니. 그보다 나 그냥 가볍게 보고만 하려고 했던 건데-.”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냥 수다 떨 겸 이런 일이 있더라 정도만 알리려고 했던 건데 한세영은 너무 희망찬 말을 해 대고, 성지현은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둘이 밸런스 좀 맞춰라. 말끝을 흐리니 성지현의 눈썹이 하향 곡선을 그렸다.
“됐고 자세히 말해 봐. 넌 가끔 한세영스러울 때가 있어서 내 귀로 직접 들어야겠어. 그 사람 와서 뭐 수상한 짓 한 적 있어?”
“야, 성지현! 한세영스럽다는 게 뭔 소리야?!”
“……파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파이만 주구장창 사 가던데.”
여전히 특이한 손님이긴 했다. 첫날 이후로는 무조건 포장만 고집했으며, 옷은 매번 달라지는데 마스크와 모자는 절대 벗지 않았다.
“그냥 나처럼 눈매가 좀 험해서 내가 오해한 것 같기도 해. 사실 별 대화도 없어서 뭐라고 하기가…….”
아, 그러고 보니 한 번, 파이에 대체 뭘 넣었냐는 질문을 받긴 했다.
너무 맛있다며 의례상 하는 질문이라기엔 꽤 의심 어린 눈빛이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들어간 재료를 설명해 주니 납득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가더라.
“뭐야, 그럼 별일 아니었나 보네. 난 또 이상한 놈인가 했지. 요즘 미친놈 많잖아. 덕분에 매일 야근하느라 바쁘다고.”
“아~ 그럼 너희 쪽도 그걸로 피해 봤어?”
“야, 너도?”
“응, 야근.”
성지현 말에 한세영이 응수했다.
성격 차와는 별개로 직종이 비슷하다 보니 서로 대화 코드가 잘 맞았다.
두 사람은 언제 투덕거렸냐는 듯 의기투합하여 사이좋게 욕하기 시작했다.
“뭔데, 무슨 일 있었어?”
누군진 몰라도 이 정도로 욕을 처먹으면 영생 누리겠네.
과열되는 분위기를 끊고자 물어보니 두 사람 모두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요즘 마물 매매가 유행하고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