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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24화 (2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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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24화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저놈 인성은 원래부터 저 모양 저 꼴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그러한 책임을 누구보다 가장 많이 떠안았던 것은 제 앞의 연우진이었기에 하도경은 입을 닫았다.

그리고 병자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실제로 연우진은 최근 들어 격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뭐야, 소개해 준 가이드들 전부 안 맞았어? 상황에 따라 다른가 싶어서 이번에는 꽤 급해 보이는 가이드들로 찾았는데.”

“어, 안 맞아. 그만하고 이제 꺼져.”

벌레를 쫓듯 내젓는 손짓에 하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걱정을 하면 엿으로 돌려주는 놈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지금 누구 때문에 이러는 건데. 너 진짜 죽고 싶냐?”

최근 들어 연우진의 폭주 주기가 점차 짧아지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온갖 곳에서 요주의 인물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지금까진 구원자나 최종 병기라는 허울 좋은 말로 일컬어지고 있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할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통제가 벗어나는 순간 그 강한 힘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같은 S급 에스퍼를 통해 폭주를 막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연우진의 힘은 편의상 S급으로 표기된 것뿐이지, 실상은 그보다 위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만약 약물로도 다스릴 수 없을 만큼 그의 폭주가 진행된다면 그는 곧바로 1순위 사살 대상이 될 터였다.

‘저놈을 누가 죽일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어쨌든 해결 방법은 하나였다. 에스퍼에게는 가이딩이 필요하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였다.

그러나 연우진은 그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가이드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그저 뇌조차 녹아 버릴 정도로 가이드에게 주체 없이 빠지는 이를 경멸할 뿐이다.

물론 당사자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겠지만, 그런 상황이 있다고 모두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침착히 과거를 되짚어 보던 하도경은 이내 떠오른 사람의 얼굴에 한껏 인상을 구겼다.

“야, 너 혹시 도이현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

“와, 진짠가 보네. 네가 그 형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니가 이렇게 영향받을 정도로 친했다고?”

“뒤지고 싶으면 계속 지껄이던가.”

이불 너머로 살짝 드러난 흉흉한 금안이 그를 쏘아보았다. 하도경은 조용히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침대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창백한 얼굴로 골골대면서도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는 것이 질릴 정도로 대단했다.

저런 놈이긴 해도 피해 규모가 큰 경우에는 요청에 응하곤 했다.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다는 게 문제지만.

그나저나, 저놈이 가이드를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오랜 친구로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둬야겠다.

하도경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무수한 약 봉투에 시선을 주며 생각했다.

‘다음 길마는 정상이었으면 좋겠네.’

가이딩은 폭주를 가라앉히는 것 외에도, 망가진 그릇을 회복하고 되돌리는 역할도 했다. 그런 가이딩이 부족하다는 것은 고통이다.

차라리 미쳐 버리고 싶을 만큼, 용암처럼 온몸의 피가 끓고, 내장과 뼈가 잘게 으깨지는 듯한 고통.

능력이 강할수록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테니 자신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 거다.

그쯤 되면 본인이 먼저 나서서 어떤 방법이든 찾아볼 법도 한데, 본인에겐 어떠한 개선할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미친놈은 이해하는 게 아니랬지만, 어떻게 저런 고통을 참아 낼 수 있는지 하도경은 한 번 연우진의 머리통을 쪼개 보고 싶을 정도였다.

‘저러다 갑자기 회까닥 돌아서 빌런으로 돌아설 수도 있으니 미리 손절해 둘까. 아니, 지금도 성정 자체는 빌런에 가까운 것 같긴 한데…….’

봄이 머지않은 겨울.

그때까지만 해도 하도경은 연우진이 머지않아 목줄 매인 개새끼가 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 * *

연우진에게 있어 그날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일상이었다. 평소와 같이 집 근처 카페에서 하도경이 불러 놓은 가이드를 만났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 뒤바뀐 것은 카페 직원 중 한 명과 우연히 손이 닿고 나서부터였다.

“죄송합니다. 그게, 다른 의도는 없었고, 그냥 포크를 집으려고 하다가 실수로 잡은 것뿐이에요. 포크가 식탁에서 떨어질 것 같아서, 그래서 떨어지기 전에 집으려고 했을 뿐인데 실수로 그만 다른 걸 잡아 버려서…….”

급하게 변명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으나, 그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건 대체 어떤 감각이었는지. 불쾌함보다 알 수 없는 안식이 손끝에 희미하게 스쳤다.

본능적으로 멀어지는 손을 붙잡았지만, 그 감각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기도 전에 떨쳐졌다.

물론 억지로 붙잡아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혹시…… 아, 네. 그렇군요. 이해했어요. 제가 쓴 핸드크림이 궁금하셨던 거군요! R사의 포근포근 빵 향인데 굉장히 포근하고 좋죠?”

“…….”

“제가 빵을 좋아해서요. 관심 있으시다면 몰디브영에서 한번 시향해 보세요. 빵 향, 케이크 향, 초콜릿 향, 쿠키 향 종류도 다양하고 무려 이번 달 할인이 60%! 놋대 카드로 결제하면 10%! 더 할인되니 멋진 소비 생활을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무슨 핸드크림?

그는 그제야 손 주인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가 그를 강렬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빨리 고개나 끄덕이라는 듯 압박하는 시선에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봤다면 당장 안과에 가 봐야겠다며 현실을 부정했을 정도로 순종적인 태도였다.

그날 이후로 그는 약속이 없어도 카페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껏 해 본 적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저도 메뉴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어, 아, 저는 자몽 허니 블랙 티요.”

그녀가 제 앞 사람에게 추천 메뉴를 말하기에 따라서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그녀가 당황한 얼굴로 답했다.

그렇게 추천받은 메뉴는 여태껏 마셨던 커피와 달리, 달았다. 단것을 즐기지 않는 그는 단맛이 입 안에 감돌자 묘한 표정을 지었으나, 지금까지와 달리 그렇게 역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오랜 기간 약으로 절여진 미각은 무척이나 둔해졌고, 대부분의 음식을 역겹게 받아들여 그나마 입에 맞는 건 커피가 고작이었는데.

그 이후로 임무가 있는 날을 빼면 거의 매일 그곳에 방문했다. 그러다 대형 게이트가 터지고, 일주일 정도 가지 못했을 무렵이었다.

들인 시간에 비해 큰 효과가 없는 무의미한 가이딩과 약으로 대충 처치를 한 뒤, 다시 카페를 찾았다.

제 몸에 닿지 못하고 흩어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가 문을 열었다.

딸랑, 작은 종이 울림과 동시에 안에 있던 검은 머리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우산꽂이에 우산을 내려놓은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편하게 원하시는 자리에 앉으시면 되고, 주문은 벨을 눌러 주시면 됩니다.”

“아, 그냥 여기에서 주문할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그 말에 그녀의 미간이 무언가를 고민하듯 살짝 좁혀졌다.

“저…… 안색이 안 좋아 보이셔서 그런데 따뜻한 거 드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오늘 비도 오고 추우실 것 같아서요.”

그 권유에 연우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사무적인 대화 이외에 그녀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따뜻한 음료면 어떤 거요?”

“……네?”

“따뜻한 음료가 좋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추천해 주세요.”

“그, 저는 자몽 허니 블랙 티요. 아니면 유자차?”

저번과 같은 메뉴였다.

‘좋아하는 건가?’

감귤류 특유의 시고 단 맛이 느껴졌던 음료를 떠올리며 그가 물었다.

“좋아하시나 보네요.”

“네?”

“자몽이요. 저번에도 그거 추천하셨잖아요.”

“아아…….”

말끝을 흐린 그녀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음료가 나왔다. 마시다 보니 입에 맞는 것도 같아 한 잔을 비우고 새 잔을 주문하기 위해 벨을 눌렀다.

한참 기다려 봤지만 직원은 오지 않았고, 결국 몸을 일으켜 계산대로 다가가니 그녀가 작은 종이를 정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에 관해 묻고 있을 때였다. 카페에 오기 전부터 좋지 않던 몸이 불현듯 이상을 일으켰다.

익숙한 고통을 감내하며 거칠어진 호흡을 조절하던 그의 이마에 상대의 손길이 닿았다.

“괜찮으세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차갑던 숨에 온기가 스며들었다. 터질 것만 같았던 머리에 산소가 돌기 시작했고, 난생처음 느껴 보는 안온감이 저보다 한참 작은 손안에 있었다.

이마에서 떨어지려는 손을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자신도 모르게 달뜬 숨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다시 한번 손안의 온기가 움직였다. 강제로 붙들었다가는 두려움을 살지도 모른다. 그는 두 번째로 벗어나려는 손을 놓아주었다.

연우진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타고난 성격 자체가 그러했고, 그래도 문제없는 위치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그는 무의식중에 눈앞의 여자를 의식하며 몸을 사리고 있었다.

“하, 하하…… 제 손이 좀 시원하죠? 조금 전까지 음료를 만들고 있어서요.”

“네…….”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병원에 가 보시는 게 어떨까요? 열은 없으니 감기는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검사받는 게 좋아요. 편두통일 수도 있긴 한데 평소에 두통을 자주 앓으시나요?”

“괜찮아요. 병원에 가 봤자 소용도 없고, 잘 아는 증상이라서요.”

꿈을 꾸듯 몽롱한 기분이었다. 사라진 온기를 다시 붙들고 싶어서 움찔거리는 손을 말아 주먹을 쥐었다.

‘내 가이드.’

내 것.

본능이 머리를 잠식했다. 지금까지 접했던 가이딩이나 가이딩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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