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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23화 (23/119)

S급 자영업자

23화

“아니, 그래도 나 걔 미워하진 않거든요. 비슷한 처지에 열심히 산 애를 뭘…… 걔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뻔히 아는데.”

말 한 번 섞어 본 적 없는 이의 무사를 바랄 정도로 성격이 좋진 않지만, 7년간 나는 아멜리아였다.

그 시간 동안 나 홀로 쌓아 온 동질감 때문에라도 웬만하면 그 애가 행복하길 바랐다.

나 대신 상승한 지위와 신분 잘 누리고, 문화생활도 즐기며 여유롭게 지내다가 캠벨 백작가도 부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레이몬드한테 좀 도와 달라고 할 걸 그랬네.

“아.”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머리까지 아파 왔다. 미간을 찌푸린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엄마 보고 싶다…….”

“그럼 만나면 되지 않아요?”

“그게 힘들어서요. 이대로 평생 안 만날 수는 없으니까 한세영 말대로 연락도 해야 하는데…… 역시 좀 더 있다가.”

숙제를 미루는 초등학생처럼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뤘다. 그러자 또다시 물음이 돌아왔다.

“평생 안 만나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건 싫어요. 그쪽도 부모님이랑 평생 안 만나는 건 어려울 것 아니에요.”

“저는 상관없을 것 같은데.”

“네?”

“얼굴 안 본 지 오래돼서요. 연락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고.”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물었다.

“가족이랑 사이 나빠요?”

“……나쁜가?”

“가족 싫어해요?”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일방적으로 버려지고, 버린 사이라서요.”

대화 주제와 달리 그의 목소리는 가볍고 물기 하나 없이 버석했다.

절망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그의 모습을 보니 문득 다른 세계에서 만난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헤이든, 나의 작은 고양이 친구.

그 작은 아이는 일방적으로 이용당하고 버림받는 것에 익숙했고, 그게 잘못되었거나 슬픈 일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나를 많이 의지했던 아이의 모습이 문득 눈앞의 남자와 겹쳐졌다.

“……그러면 외롭지 않아요?”

손을 뻗어 눈앞에 있는 사람의 볼을 감싸자, 결 좋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끝을 간지럽혔다.

“나처럼 가족이 아니라도 좋아요. 곁에 있어 줄 사람을 찾아요.”

“…….”

그의 입매가 굳었다.

커진 눈이 나를 응시했다. 살짝 드러난 반듯한 이마와 금빛으로 물든 두 눈이 예뻤다.

와, 진짜 잘생겼다. 이런 상황에서도 명화 같은 얼굴에 감탄하며 담담히 읊조렸다.

“누구라도 곁에 있어 주면 괜찮더라고요.”

가족과 떨어지고 나서도 내 곁에는 늘 한세영이 있었다. 그러나 한세영도 아멜리아의 잔상이 드리워진 인연이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당장 머물 곳이 필요했고, 정보를 알려 줄 사람도 필요했다. 그러니 최소한의 도움만 받고 끊어 낼 생각이었다.

애초에 내가 사귄 친구도 아니고 연락만 뜸해져도 쉽게 멀어질 수 있는 게 친구 사이니까. 어려울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세영은 끈질겼다. 밀어도 내 보고, 사실 나는 네가 아는 친구가 아니라는 말까지 해 봤는데 익숙하게 병원 예약만 하더라.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고. 그러다 어느 순간 전처럼 그녀를 가볍게 놓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만약 걱정해 주고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생기면 잘 대해 줘요. 허무하게 놓치지 않도록. 혼자 외로워하지 말고요.”

“……지금까지 외롭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설핏 눈가가 일그러졌다. 제 볼을 감싼 내 손을 붙잡으며 그가 말했다.

“그런 말을 들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지금까지 혼자 잘 버텼어요.”

붙잡히지 않은 손으로 아이에게 하듯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잘 대해 주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요?”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놓치지 않을 수 있어요?”

그의 입가에는 평소와 달리 웃음기가 없었다.

“어…… 그러니까…….”

아, 안 되겠다. 뭔가 제대로 된 답변을 줘야 할 것 같은데 머리가 안 돌아가. 머리는 멍하고, 속은 울렁거렸다.

“웁.”

“……누나?”

“우웨엑-.”

그리고 암전이었다.

* * *

‘금주하자.’

따스한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침대 위에서 눈을 뜬 나는 일어나자마자 창문 너머로 줄 없는 번지 점프를 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아니, 보통 술 취하면 다음 날에 기억 못 한다며.

전부는 아니지만, 드문드문 기억났다. 예를 들자면 뜬금없이 가족 이야기를 늘어놓고, 한탄하듯 혼자 떠들었던 거나, 그러고는 끝에 가서 토한 거라든가…….

“……죽을까.”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밖을 쳐다봤다. 주연우는 외출한 것 같았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슬그머니 기어 나온 나는 토했음에도 멀쩡한 내 옷차림과 집안 풍경에 안도인지 절망인지 모를 것을 느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제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인데도 상태가 깨끗한 것을 보니 토를 바닥에 했거나 주연우에게 한 듯싶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그래. 청소하자.”

잡생각이 들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였다. 전날 진상 짓에 대해 사과도 할 겸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행하고자 손을 걷어붙였다.

가능한 한 개인 물건은 건드리지 않고 정리부터 시작하려는데,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평소 말끔하던 모습에 비해 집이 조금 어지럽혀져 있었다.

치우는 보람이 생겨 좋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어디에 토했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기에 모든 바닥에 광을 낼 생각으로 나는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한참 후 깨달았다. 집이 크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구나.

청소 한 번 했다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머물던 방까지 깨끗하게 정리했다. 늦은 오후 알바였기에 앞으로 남은 시간은 3시간 정도. 천천히 준비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주연우 씨한테 오늘 퇴실한다고 말 못 했네……. 오늘도 카페 오려나?

주섬주섬 짐을 싸는데, 돌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더라?”

휴대폰을 초기화시킨 터라 수신자 명은 뜨지 않았다. 어쩐지 낯익은 번호에 전화를 받으니 한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유정!! 너 어디 있어?!]

“술 깼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럼 뭐가 중요한데. 설마 얘 아직도 취한 상태인 건 아니겠지?

[네가 머물고 있다는 카페로 가 봤는데 왜 아무도 없어?! 너, 여기에서 머문 거 아니지?!]

“…….”

[저번에도 찾아갔는데 그때는 알바 갔겠거니 했단 말이야. 그런데 너 오늘 오후 알바잖아. 알바 시간 한참 남았는데 벌써 나갔다고? 너, 나한테 거짓말한 거지? 지금 어디에서 지내고 있는 거야??]

흥분한 한세영의 목소리에 저절로 입이 다물렸다. 나는 우선 침착하게 변명했다.

“잠깐 근처에 점심 사러 나온 거야. 그보다 세영아, 이제 이 휴대폰으로 전화하면 안 돼. 나 돌려줘야 해서 이제 이 휴대폰으로 전화 안 될 거야.”

잠깐 빌린 휴대폰이라는 것은 이미 말한 적이 있었다. 알겠다고 대답한 한세영은 그보다 정말로 이곳에서 머문 게 맞냐고 되물었다.

“당연하지.”

[그래? 그러면 금방 돌아오겠네? 가게 앞에서 기다릴게.]

“…….”

뚝. 전화가 끊어졌다.

“아니, 왜 갑자기?!”

나는 급하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가진 짐이 많지 않았기에 짐 정리는 금방 끝났다.

수신 기록을 지우고, 가방에서 아무 종이나 꺼내 급하게 글을 작성했다.

머물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이렇게 갑자기 쪽지로 통보하게 돼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어제 말할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니 자연스레 표정이 굳었다. 아니…… 오히려 얼굴 보지 않고 나가는 게 다행일지도.

‘뭐, 카페에서 볼 수도 있으니까.’

어제 충전을 하지 않고 잔 탓에 배터리가 간당간당했다.

수신 기록을 마저 지우고, 카드 키와 쪽지, 휴대폰을 발견하기 쉽게 탁자 위에 반납하고 그대로 집을 나왔다.

* * *

S급 에스퍼. 몇백 년에 한 번 나올 법한 희귀 다중 능력자. 어린 나이에 길드를 세워 세계 랭킹까지 끌어올린 괴물. 인성 파탄자. 인간을 인간으로 안 보는 살인자. 거만하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놈.

칭송부터 멸칭까지 연우진을 수식하는 단어는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압권은 몇 년 전 대격변을 겪었을 때, 불과 15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붙여진 ‘세계의 구원자’라는 명칭이었다.

하도경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저런 놈이 구원자라니.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그는 수식어의 주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도심 한가운데에 중상급 게이트가 터졌다고 했건만, 정작 최고급 인력은 침대에 누워 일어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야,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오늘 일할 생각은 없냐?”

“병자라.”

이불을 돌돌 만 채로 연우진이 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에 하도경은 짧게 혀를 찼다.

“그러다 개판 나면 어쩌려고?”

“인간 하나 없다고 망할 세상이라면 망하는 편이 낫지.”

“야야, 이러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죽어 가고 있을지도 모르잖냐.”

양심에 호소하듯 가볍게 던진 말에 비웃듯 연우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는 너도 단순히 정의감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잖아?”

에스퍼는 다들 어디 한군데가 돌아 있기 마련이었다.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 탓인지, 아니면 게이트 너머의 존재를 직접 목도하며 점점 미쳐 가는 것이든지.

성격 파탄자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게 바로 이 업계였다.

그리고 그것은 하도경 역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그저 인상을 찌푸리며 뒷덜미를 매만졌다.

단순한 선의로 세상을 바라보기엔 그들이 겪은 일이 많았다.

한창 투정 부려야 할 나이에 약한 소리는 금기시되었고, 강제로 떠안은 책임은 시도 때도 없이 숨통을 졸라 왔다.

약함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고, 누군가를 저버리는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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