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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11화 (11/119)

S급 자영업자

11화

* * *

이름 주연우.

하급 에스퍼에 능력은 실용 불가능한 공격계로 추정됨.

실제 직업이 뭔지는 몰라도 하급 각성자로 활동하는 것보단 모델을 하는 게 더 대박 날 것 같은 사람.

그게 눈앞의 사람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다.

“……네? 8천만 원이요?”

그리고 방금 내가 덮고 잔 코트의 가격도 알게 되었다.

밥도 먹었겠다, 미뤄 두었던 이야기를 끝내자는 심정으로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다.

중간 과정이 어떠했든 결과만 보면 폭주로부터 내가 구해 준 게 맞았으니 겸사겸사 박살 난 휴대폰비와 가이딩비를 받아 챙길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정산이 먼저였다. 기다렸다는 듯 덥석 구해 준 비용부터 제시하기엔 눈치가 보여서 내가 더럽힌 코트부터 물어 주겠다고 했다.

그 결과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듣게 되었다.

“하하…….”

……미쳤는데?

8천만 원이면 휴대폰이 몇 개야. 평균 가이딩비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다 합쳐도 저것보단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쌤쌤할까요.”

나는 짐짓 굳은 낯으로 말했다.

“목숨이 돈보다 중요하겠습니까? 사람이 먼저죠. 사람을 살리는 게 가장 값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결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숭고한 행위죠.”

“네? 하지만…….”

“저 그쪽 폭주 말리느라 다리도 찢어지고, 사실 제 휴대폰도 그때 망가졌어요.”

“……그쪽?”

“네, 그쪽이요. 그쪽 들쳐 매고 오느라 비도 맞고, 잠도 잘 못 자고 진짜 고생했어요. 지금도 오슬오슬 몸이 떨리는 것을 보니 이 증상은 감기와 근육통이네요. 확신합니다. 곧 있으면 몸살을 앓을 거예요.”

“이름. 이름으로 불러 주세요.”

“네, 연우 씨.”

지금 그게 왜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금액적 갑이 부르라고 하니 군말 않고 불렀다.

원하는 대로 해 줬건만 당사자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작게 되뇌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쌤쌤으로 알겠습니다. 우리 서로에게 빚진 거 없는 거예요. 알았죠?”

혹시라도 다른 말이 나올세라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니 주연우가 나를 붙잡았다.

금방이라도 녹아 없어질 눈송이를 쥔 것처럼 내 옷 끝자락만을 겨우 붙잡은 채로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저를 구해 주셨잖아요. 쌤쌤이라뇨. 제가 크게 빚졌으니 뭐든 원하시는 걸 말씀해 주세요.”

“……원하는 거요?”

다소 얼빠진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지금 코트값이고 뭐고 없던 거로 치고 나한테 보상해 주겠다는 거지?

떨떠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코트값을 알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와서 뭘 달라고 하기도 뭐하다. 나는 안면이 두껍긴 해도 약하게 나오는 사람에게 약한 편이었다.

애초에 먼저 말을 꺼낸 것도 돈이 많아 보이니 어떻게든 수고비를 뜯어내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건데, 저렇게 본인 쪽에서 먼저 은혜를 갚겠다고 하니 뭔가 내가 추잡한 사람 된 것 같고 좀 그래…….

“아뇨, 괜찮아요.”

이 상황에서 성의는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뒷덜미 잡힐 일 없게 전부 현금으로 주십시오 하기엔 꺼려져서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내저었다. 내 옷을 붙잡은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조금 전에 말씀하신 대로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잖아요. 생명을 살린다는 숭고한 정신으로 본인의 위험도 무릅쓰고 저를 구해 주셨는데 이렇게 보내면 제 마음이 불편해요. 이대로 끝내지 않을 수 있도록 뭐라도 말씀해 주세요.”

비록 표정은 평소와 같이 딱딱했지만, 나는 내심 감동한 상태였다.

소문만 듣고 판단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카페에서 볼 때마다 내심 속으로 인성 파탄 났네 했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묶어 놨는데 민망하게 따지지도 않고, 구해 줘서 고맙다며 챙겨 주기까지 하고, 비싼 코트 못 쓰게 만들어 놨는데 일언반구 하나 없고, 밥이랑 디저트도 챙겨 주고…….

내 입가가 절로 느슨해졌다. 그래. 오랜만에 의료 봉사한 셈 치자. 이런 사람에게 뭘 달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도 뜯어낼 사람, 뜯어내면 안 될 사람은 구분할 줄 안다.

이번만큼은 후련한 마음이 되어 미련 없이 손을 내저었다.

“진짜 괜찮아요. 정 그러면 돌아갈 때 택시비나 보태 주세요.”

“택시비라니……. 저 차 있어요. 직접 모셔다드릴게요.”

이마저도 거절하기엔 뭐해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예약한 모텔 근처에서 내려 달라고 하면 될 것 같았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 * *

왜 차를 태워 준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비록 내가 차에 대해서 풍부한 견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게 고급차라는 것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엔진 소리도 거의 안 났고, 그간 타 왔던 이동 수단들과는 착석감부터가 달랐다.

무슨 쿠션을 사용하는지는 몰라도 흔들림이 없는 쿠션으로 광고해도 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이 간 모양이다. 주연우가 물었다.

“이 차, 마음에 드세요?”

“아, 네. 쿠션이 괜찮네요.”

“마음에 드신다면 드릴게요.”

“네? 아뇨. 주차할 곳도 없는데요.”

집도 없어서 이곳저곳 전전하는 사람에게 뭔 차야.

딱 봐도 고급차 같은데 유지비 감당할 자신 없다. 캠핑카 같은 거라면 여차할 때 집 대용으로 쓸 수도 있으니 좀 끌렸을지도 모르지만.

얼추 모텔 근처까지 오자 나는 여기면 된다며 먼저 말을 꺼냈다.

숙박소가 몰려 있는 곳이라 그런가. 온라인으로 예약했을 땐 몰랐는데 생각보다 이 근처가 가로등도 별로 없고 어두웠다.

‘그래도 여기에서 내리면 걸어서 2분이면 도착할 테니까 다행이네.’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주소가 적힌 팻말을 응시하고 있던 주연우가 나를 불러세웠다.

“혹시 집이 이 근처세요?”

“아, 아뇨. 집은 아니고 사정이 있어서 며칠만 잠깐 숙박소에서 지내고 있어요.”

“……이 근처 숙박소요?”

“네.”

고개를 끄덕이자, 주연우의 표정이 굳었다.

왜 그러지? 주변에 보이는 건물이 죄다 낡아서 그런가. 하긴 그는 돈이 많은 것 같았으니 이런 데는 좀처럼 접할 일이 없겠다 싶었다.

주연우는 살짝 미간을 좁힌 채로 주소가 적힌 팻말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만 내려야겠다 싶어 차 문고리를 잡으니, 다시금 급한 음성이 쏟아졌다.

“이 근방에 있는 xx 모텔에서 조만간 문제가 일어날 것 같아서요. 혹시 모르니 되도록 그쪽으로는 발걸음 하지 말아 주세요.”

“……예? xx 모텔이요?”

내가 머무는 모텔이었다.

“자, 잠깐. 무슨 근거로 문제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연우 씨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고요.”

“아-.”

그가 아차 싶은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제가 에스퍼잖아요. 질 나쁜 각성자로 구성된 범죄 조직이 그곳에 잠입해 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어요. 아마 불법 거래일 거예요.”

“네? 하지만 주연우 씨 하급 에스퍼인데 그런 기밀 정보도 알려 줘요? 아, 나쁜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 아니다. 제가 말실수했어요. 사실 제가 그쪽을 잘 몰라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아뇨, 괜찮아요. 그보다…… 하급이라뇨?”

“저번에 출입증 봤어요. 제가 주워 드렸잖아요.”

그날을 떠올린 듯 주연우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찝찝한 마음으로 미간 사이를 좁혔다.

불법 거래니 뭐니 당장 알 수 없는 사실 여부는 둘째 치고 그런 말을 들었는데 그곳에서 잘 수 있을 리가.

급한 대로 주연우의 휴대폰을 빌려 다른 숙박소를 검색해 봤지만, 하나같이 비쌌다.

당연했다. 이 구역은 비싼 호텔밖에 없었으니까.

애초에 싸고 가까워서 수면의 질을 포기하고 모텔에서 묵기로 한 거였다.

“……그냥 이쪽 말고 좀 떨어진 곳에 머물러 주시면 안 될까요? 걱정돼서요.”

조심스러운 권유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거리를 포기하고 다른 숙박소를 찾는다고 해도 당일 예약 비용에 교통비까지 합하면 남은 일수 알바비가 그대로 생활비로 나갈 거다.

고민 끝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그래도 친구 집에 가려고요.”

이번만큼은 한세영 신세 안 지고 며칠이라도 조용히 넘기려 했더니 이 꼴이 날 줄이야.

2시간 거리라 아르바이트 위치에서 멀긴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려 어쩔 수 없었다.

주연우의 휴대폰으로 한세영에게 연락하려다 문득 내가 한세영의 번호를 외우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세영의 번호가 있을 휴대폰은 이미 화면이 박살 난 뒤였다.

“그럼 친구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아, 아뇨. 지하철역까지만 데려다주시겠어요? 지하철로 가는 게 더 빨라서요.”

주연우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듯 계속 표정이 안 좋았지만 내가 단호하게 답하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처음에 말했던 대로 차비라도 드리겠다며 카드를 주기에 현금은 없냐고 물으니 없다고 해서 그냥 됐다고 했다.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주연우의 차가 떠나는 것을 배웅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한세영의 집에 도착한 것은 밤이 다 되어서였다.

연락 없이 오긴 했어도 이 시간이면 집에 있을 줄 알았는데, 야근인지 아니면 외박인지 문을 두드려 봐도 집에는 인기척 하나 없었다.

“세상…….”

결국 내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아르바이트하는 곳 근처에 있는 24시 카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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