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자영업자 9화 (9/119)

S급 자영업자

9화

* * *

주홍빛이 섞인 하늘 위로 터지는 폭죽과 사람들의 흥분 어린 함성 소리.

수도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오후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영웅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끝이다. 드디어 캠벨 백작가 놈들을 무너뜨릴 수 있어.

들뜬 마음에 절로 환한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막 아멜리아 캠벨이 되었을 때는 인맥도 돈도 명예도 뭣도 없었지만, 지금의 내겐 모든 게 있었다.

드문 내 밝은 미소에 동료 마법사 키센은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그러냐며 투덜거렸고, 수인 헤이든은 오랜만에 내가 웃는 것을 봐서 좋다며 내 어깨에 이마를 문질렀다.

정령사 비비안은 멍하니 눈을 깜박였으며, 황태자 레이몬드는 나를 따라 웃음을 흘렸다. 몇 년 사이 익숙해진 풍경이었다.

사람들은 밤새 웃고 떠들었고, 화려한 조명과 푸짐한 음식, 그리고 향기로운 술이 거리를 들뜬 분위기로 만들어 주었다.

창가에 앉아 다채로운 폭죽으로 물드는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을 무렵. 뒤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멜.”

목소리의 주인은 이 축제의 주역 중 하나이자, 제국의 황태자인 ‘레이몬드 마빌 헤르만’이었다.

소리 없이 들어온 그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걸터앉았다.

탐욕인지 모를 묘한 열기를 품은 푸른 눈이 나를 향하자 반사적으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또 결혼하자고 하려는 거면 던진다.”

1년 전부터 레이몬드는 틈만 나면 결혼하자며 내게 구혼을 해 댔다. 이 전쟁이 끝나면 결혼식을 올리자고 할 때마다 나는 재수 없게 데드 플래그 꽂지 말라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니, 내 능력이 그렇게 탐나나? 확실히 탐날 만한 능력이긴 한데 굳이 결혼이 아니어도 복지랑 봉급만 두둑하게 챙겨 주면 황소처럼 일해 주겠다니까?

어차피 황성만큼 봉급 잘 주는 곳도 없을 텐데, 기어코 비즈니스 약혼에 종지부를 찍어야 마음이 편한가 보다.

“그걸?”

내 손에 들린 유리잔을 쳐다본 레이몬드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 미소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전쟁이 끝나면 그에게 묻고 싶었던 게 떠올랐다.

“레이…… 황태자 전하.”

몇 년간 익숙해진 탓에 자연스레 입 밖으로 나온 이름을 뒤늦게 삼켰다.

내가 존칭을 버린 것은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당시 레이몬드가 특출나게 재수 없던 것도 한몫했고, 악착같이 살다가 전쟁터로 팔려 온 분통 터지는 상황에서 어차피 죽으면 끝인데 할 말은 다 하고 가자며 정신을 놓았다.

꼬인 성격 탓인지 레이몬드는 그런 나를 흥미롭게 여겼다. 당사자인 황태자가 제재를 가하지 않으니 주변에서도 내게 뭐라고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전쟁은 끝났고, 오래전 집 나갔던 신분제도 돌아올 때가 되었다.

곧 새로운 작위도 얻을 터. 평화도 찾아왔겠다 이 세계에서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그러려면 사회생활 적응은 필수였다.

평소의 이름 대신 존칭이 붙으니 낯선지 레이몬드가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하던 대로 해. 나를 뭐라고 부르든 너라면 괜찮으니까.”

“어, 진짜? 그럼 개자식이라고 불러도 돼?”

“아멜, 돌아온 김에 불경죄 처벌을 강화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키센이 그러는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한 입으로 두말하는 거 아니라더라.”

그렇게 대답하니 또다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쟤도 참 웃음이 많아졌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매끈한 얼굴로 가식적인 표정만 꾸며 내더니 아무래도 전쟁이 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모양이다.

겨우 웃음을 그친 레이몬드가 물었다.

“당분간 뭐 할 거야?”

“걱정하지 마. 어디 멀리 안 가고 일해 줄 테니까.”

“그건 당연하고. 네가 내 곁에 있는 건 당연하잖아.”

전쟁도 끝났는데 그게 왜 당연해?

전쟁터에서는 다른 일이 터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 레이몬드의 곁에 있었다.

나는 목숨만 붙어 있다면 웬만해선 살릴 수 있는 유능한 힐러였고, 그는 총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대꾸를 한 레이몬드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유유히 다리를 꼬았다.

그간의 경험으로 더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플 거라고 판단한 나는 반론을 드는 대신 이전 질문에 관한 답변을 했다.

“당분간은 복수해야지. 백작가도 삼켜야 하고.”

“도와줄까?”

“됐어. 괜히 손대지 마. 그건 내 몫이니까.”

“그래,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가 끊겼다.

‘그런데 당분간 뭐 할 거냐고 왜 물어본 거지?’

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라면 내가 무엇을 할지 모르지 않을 텐데 뻔히 예측 가능한 것을 묻는 게 이상하다.

내게 달리 할 말이 있는 건가 싶어 대놓고 쳐다봐도 좀처럼 먼저 말을 꺼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말하고 싶어지면 어련히 말하겠지.

기 싸움도 피곤하여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환하게 피어오른 불꽃이 눈앞에 펼쳐졌다. 축제에 마법사들도 가세한 모양인지 꽃 형태로 이루어진 빛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폭죽 소리.

펑!

또다시 불꽃이 어둠 위로 쏘아 올려졌다. 눈부셔야 할 그 순간, 어쩐지 눈앞이 검게 물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낯익은 이명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삐이이익-.

순식간에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무릎이 딱딱한 바닥에 부딪혔다.

“……아멜?”

“윽.”

삐이익- 삐이이익-.

기이한 기계음. 막 도착한 지하철 특유의 소음과 지하 냄새. 익숙한 풍경이 뇌리를 스쳤다.

숨이 차고, 온몸의 감각이 무뎌졌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감각이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치미는 구역감에 떨리는 손으로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아멜리아!”

투두둑. 입을 막은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레이몬드가 축 늘어진 내 몸을 꽉 끌어안았다.

“델로스, 지금 당장 치료사를 불러! 제발, 제발, 정신 차려 아멜리아!”

시야가 점멸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는 더없이 다급하고 애처로웠다.

* * *

“헉.”

눈을 뜨자마자 나는 고개를 돌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응시했다.

7년간 익숙해진 은발 대신 그 속에 자리한 것은 검은 머리의 여자였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고른 나는 다시 천장 쪽으로 고개를 돌린 뒤 눈을 내리감았다.

‘괜찮아. 나는 이곳에 있어.’

결과적으로 난 복수를 다 이루지도 못하고, 새롭게 맺은 인연들마저 또다시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들보다 7년간 나를 붙든 희망의 실현이 더 소중했을 뿐.

그리고 겨우 돌아온 이곳이야말로 무엇보다 바라 온 나의 현실이자, 줄곧 그리워한 가족이 있는 세계였다.

물론 기쁜 일만 있던 건 아니었다. 돌아온 현실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변변한 직업도 없었고,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은 사라진 데다가, 그사이 생긴 어린 남동생은 낯설기 그지없었으니까.

심지어 세계도 웬 현대 판타지 같은 곳으로 바뀌어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건 내게 익숙한 일이었다. 모르는 언어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세계에서도 잘만 적응했는데, 고작 이 정도도 못 해낼까.

애초에 지금의 아빠도 내가 초등학교 때 엄마가 재혼해서 생긴 새아빠였다.

낯설고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건 처음이 아니니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어린 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심스럽긴 해도 크게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그래, 다 괜찮다.

정말 괜찮았는데.

「자. 유정이 너 이거 좋아하잖아.」

「엄마, 나 가지 안 먹잖아. 어릴 때부터 안 먹었는데.」

「그래? 잘만 먹더니 그새 입맛이 바뀌었나 보네.」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괜찮지 않기 시작했다.

「웬일로 네가 케이크를 다 사 왔니. 유하 거 사 온 거야? 이리 줘. 유하 밥 먹고 먹게 냉장고에 넣어 줄게.」

「……어? 다 같이 먹으려고 사 온 거긴 한데, 나도 먹을 거야.」

「네가 케이크를 먹는다고? 너 단 거 싫어하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크림만 보면 속이 느글거린다고 뭐라고 했으면서.」

하나둘.

「유하가 그러는데 요즘 누나가 잘 안 놀아 줘서 외롭다고 하더라. 애가 그렇게 네 연락을 기다리는데 집에 연락도 잘 안 하고, 요즘 너 왜 그래?」

「미안. 바빠서 그래.」

「예전엔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집에 와서 유하랑 놀아 줬잖아. 아냐, 엄마가 보기엔 너 바빠서 그런 거 아닌 것 같아. 요즘 잘 웃지도 않고, 이상하잖아. 말해 봐. 무슨 일 생긴 거지? 설마 또 남자친구랑 싸웠니?」

그리고 셋 넷.

내가 모르는 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있을 곳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곳인데, 발밑이 꺼지는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불안감이 찾아왔다.

나도 안다. 그 누구도 나쁜 사람은 없으며, 다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았을 뿐이라는 것을.

그러나 이해와 공감은 별개의 문제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엄마 있잖아, 왜 나 대학 안 보냈어?」

「뜬금없이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아니, 엄마가 옛날부터 나 대학은 꼭 보내려고 했잖아. 고등학교 때 내 성적이…… 갑자기 떨어졌던 건 아는데 나는 엄마가 어떻게든 나 대학에 보낼 줄 알았거든. 재수를 시키든 목표로 하던 곳보다 낮은 데를 쓰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