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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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에스퍼라고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야. 내가 직장이다 보니 부정적인 얘기를 주로 한 것뿐이지. 현우 씨 같은 좋은 에스퍼도 있고…….”
한세영이 어색하게 눈을 굴렸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장점 이야기해 줄 필요 없어. 저번에도 말했지만 내 인생에서 각성자는 너랑 양현우로 충분해.”
“그래도…… 나는 네가 언젠가 좋은 에스퍼를 만났으면 좋겠어. 너는 가이드잖아.”
“가이드라고 해도 일반인으로 사는 사람도 많잖아.”
“그건 등급이 낮은 경우에나 그렇고. 현우 씨가 넌 낮지 않을 것 같다고 했잖아.”
“그래서?”
삐딱하게 눈썹을 들어 올리자 한세영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사실…… 보도되진 않았지만 최근 가이드 대상 범죄가 잦아. 아무래도 지난번에 터졌던 각성자 매매 사건과 관련된 것 같아서.”
“그게 왜?”
“왜기는, 너도 가이드잖아. 하필 가이드 등록도 안 한 와중에 그런 데 잘못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난 네가 지금이라도 빨리 나라에 신고하고 경호든 지원금이든 받았으면 좋겠어.”
돈, 나도 좋지. 의무 복무나 다른 성가신 요소들만 없다면 말이야. 등록하는 게 정말 더 나은 선택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는 말했다.
“결국, 어느 쪽이든 안 들키면 된다는 거 아니야?”
“응?”
“가이딩을 한계까지 낮추면 현우 씨도 내가 가이드인지 판별이 불가하다고 했잖아. 일일이 신경 쓰고 사는 게 지치긴 해도 밖에서만 그러면 되고. 그럼 그렇게 살면 되지.”
“여전히 난 가이딩을 한계까지 낮춘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내가 낮은 급의 가이드라서 그런가? 그런 게 진짜 가능하다고?”
“실험 대상이 현우 씨뿐이긴 해도 가이딩에 누구보다 예민할 에스퍼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그리고 솔직히 일상에서 에스퍼를 접할 일이 흔하겠어?”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웃어넘긴 나는 바로 다음 날 출근한 카페에서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 * *
대단한 행동을 한 건 아니다. 그저 손님이 무언가를 흘렸고, 그것을 주워 줬을 뿐.
“이거…… 손님 물건이세요?”
짙은 동색의 카드.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저것을 잘 알고 있다. 한세영 또한 지니고 다니는 E급에서 F급의 각성자들이 소지한 센터 출입증이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오른쪽 모퉁이에 그어진 선이 하나, 에스퍼의 경우 둘이었는데, 내가 주운 카드는 정확히 두 줄이었다.
땅땅, 머릿속에서 설마에 줄이 그어지고 확정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미친, 진짜 에스퍼십니까?
출입증의 주인은 남자, 그러니까 불과 얼마 전에 이름을 알게 된 ‘주연우’였다.
그 이후로 나는 주연우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그와 관련된 일을 다른 직원에게 토스하거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시기적절하게 카페는 손님으로 북적였고, 나 대신 인기인인 그의 계산이나 서빙을 맡고 싶다는 직원은 넘쳐났다.
피해 다니는 와중에도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했다.
비 내리던 날 남자와 마주했던 기억이 계속 꺼림칙하게 남았던 탓이다.
‘역시 그때 그게…… 하지만 어떻게? 나는 가이딩 수치를 올리려는 의도가 없었는데.’
알바도 며칠 안 남았고, 그 후에는 볼 일 없는 사람이니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며 구석으로 미뤄 놓았던 일이 수면 위로 둥실 떠 올랐다.
나는 이마에 손을 댔을 때 그가 보였던 반응과 순간의 감각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이내 조용히 탄식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동색의 카드 출입증을 보건대 그가 하급 에스퍼라는 점이다. E-F급 에스퍼면 실전 뛸 일도 거의 없었다.
그 정도 등급이면 보통 처리반 또는 각성자 등록만 해 놓은 민간인 중 하나일 텐데 평일에 출근하지 않는 것을 보면 공무원은 아닌 게 분명하고.
이대로 모른 척 넘어가면 분명 별문제 없으리라, 하고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정신없이 일하고, 공사 중인 카페 확인차 방문하고, 지금까지 신세 졌던 친구 송별회도 하다 보니 어느덧 퇴사 일주일 전이었다.
“으음, 오늘은 안 오셨네요.”
“누구?”
“요즘 언니가 피해 다니는 손님이요.”
“……주연우 씨?”
“어? 언니 이름도 알아요? 와, 저 그분 이름 아는 사람 처음 봐요!”
아차 싶은 마음에 서둘러 쿠폰함을 가리켰다.
“저번에 쿠폰 만드셨잖아. 오실 때마다 쿠폰 찍으셨을 텐데? 거기 이름 쓰여 있을 거 아니야.”
“네? 그분 쿠폰 만드셨어요?”
“응?”
“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눈살을 찌푸리니 여자 알바생이 나를 따라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쿠폰함에서 ‘ㅈ’으로 시작되는 이름 중 주연우의 쿠폰을 찾아 보여 주었다.
“여기 있…… 어? 왜 도장이 하나야?”
쿠폰에는 처음 쿠폰을 만든 날 찍었던 도장 하나만 달랑 찍혀 있었다.
쿠폰을 만든 날 이후로 방문한 횟수만 생각하면 10개 다 차고도 남아야 했는데 말이다.
‘까먹었나?’
기껏 만들었는데 뭔가 아까웠다.
“그런데 내가 피해 다닌다니?”
“설마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언니, 일하다가도 그분만 오면 자리 피하잖아요. 되게 티 나요.”
“어, 진짜? 나 그런 거 티 잘 안 난다고 누가 그랬는데.”
“누가 그랬는데요? 분명 농담한 것일걸요.”
황태자 놈이 그랬다. 레이몬드는 종종 내게 연기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그쪽으로 가 보는 건 어떻겠냐고 묻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왠지 실실 쪼갰던 것 같기도 하다.
“피해 다닌 건 그냥 좀 불편해서 그랬어. 관심이니 뭐니 괜한 말 나오는 것도 싫고.”
“언니 되게 특이하다. 나였으면 그런 사람이 관심 보이면 감사하다고 절하고 그대로 망태에 넣어서 튀었을 거예요.”
“그건 범죄야.”
“아니면 바로 혼인 신고하러 갔거나.”
여자 알바생이 입술을 쭉 빼며 툴툴거렸다.
확실히 그 정도면 취향이고 뭐고 무시할 외모긴 하다.
연갈색 머리카락은 한번 만져 보고 싶을 만큼 부드러워 보였고, 옷 위로도 보이는 각 잡힌 어깨와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 눈을 살짝 내리깔 때의 묘한 분위기도 시선을 사로잡는데 한몫했다.
그럼 뭐 해, 에스퍼인데. 그건 못 먹는 감이었다.
“아, 맞다. 오늘 새벽에 비바람 분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모르니까 문 잘 닫고 자세요.”
“그래? 하긴 아까도 비 내리다 말더라.”
힐끗 시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슬슬 마감 시간이었다.
‘……오늘은 안 올 생각인가?’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루가 멀다고 오던 사람이 안 오니 묘하게 신경 쓰였다.
함께 대화를 나누던 여자 알바생은 남자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먼저 퇴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에 남아 있던 마지막 손님도 나갔다.
남은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문단속을 마쳤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모텔행이었다.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이 근처로 골랐는데, 잠만 잘 거라 질은 크게 안 따졌다.
그래도 비싼 동네치곤 싼 편에 무엇보다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좋았다.
“으, 춥다.”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으며 슬쩍 눈을 굴렸다. 건물 간에 간격이 있는 곳이라 조금 스산했다.
한참 밤거리를 걷고 있는데,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한 비척대는 인영이 보였다.
큰 키의 남자였다. 고통 어린 신음도 얼핏 들려왔다.
‘……술에 취한 건가?’
벌써 1년이 지났건만,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이 보이면 자연스레 시선부터 간다.
외면하고 걸음을 재촉하려던 나는 남자가 쓰러지듯 담벼락에 몸을 기대자 결국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안 되겠다. 신고라도 해 줘야지.
그냥 갔다가 이 추운 날 동사라도 하면 뒷맛이 안 좋을 것 같다.
주변에 달리 도와줄 사람이 보이지도 않기도 하여 적당한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로 휴대폰 화면을 켰다.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모습이 묘하게 낯익었다.
번호 입력을 마치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남자의 몸에서 옅은 스파크가 일며 얼굴이 비쳤다.
“……주연우 씨?”
콰직.
그와 동시에 바닥이 붉은빛을 내며 갈라졌다.
콰득. 콰드득.
순식간이었다.
마치 퍼즐 조각을 분해하듯 바닥에 있던 두꺼운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갔다.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돌덩이에 기겁하며 뒤를 돌아봤지만, 뒤쪽 상황도 암담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악!”
갈라진 돌 더미 사이를 밟으려다 그 사이에서 튀어나온 돌에 다리를 긁혔다.
도주조차 불가능한 상황. 바지 한쪽이 찢어지고, 길게 난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상처를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바닥에 그어진 붉은 금이 점점 늘어났다.
땅속에 흐르는 용암처럼 붉게 번득이는 틈은 마치 먹잇감을 잡기 위해 친 거미줄처럼 제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다.
“아악, 미친, 이게 대체 무슨 난리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예상은 간다. 에스퍼의 폭주다.
‘폭주 시 E-F급 에스퍼도 이런 위력을 낸다고……?’
황급히 주연우를 살펴보았다. 핏줄도 터지지 않은 것 같고 눈가에 피도 흐르지 않았다.
아직 정신을 잃지 않았으니 지금은 폭주 전조 증상에 불과했다. 제어하고 있는 거다.
공격 계열 에스퍼라 그런가? 파괴 쪽의 능력? 땅이 갈라지는데 무슨 능력인 거지?
폭주 시에는 능력이 더 강해지나? 강해진다면 얼마만큼?
사실 생각해 봐야 쓸모없다.
내가 에스퍼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각성자 관련 지식은 한세영이나 양현우에게 주워들은 게 전부였다.
몰라. 봐 본 적이 있어야 알지. 폭주는커녕 눈앞에서 에스퍼가 능력 쓰는 것도 양현우 말고 처음 보는데 파악하긴 뭘 파악해.
세간에서 때때로 각성자를 괴물 취급하며 그들의 능력을 재해 취급하곤 했는데 틀린 거 하나 없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직 정신을 잃지 않았어.’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당사자가 어떻게든 억제하고 있다고 해도 언제 풀릴지 모르는 데다, 이 이상 영역이 넓어지면 어떻게 될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대로 가다간 난 뒤진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