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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6화 (6/119)

S급 자영업자

6화

“아, 네. 벨 누르셨으면 제가 갔을 텐데.”

“눌렀는데 못 들으신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집중하느라 못 들었나 보다. 어색하게 사과를 하며 고개를 드니 남자가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또다. 마치 관찰하는 듯한 시선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그거, 뭐예요?”

“네? 아, 쿠폰이요?”

이상하네. 다른 알바생에게 듣기로는 전에 만들 거냐고 물어봤을 때 거절했다더니?

쿠폰을 처음 보는 듯한 남자의 태도에 의아함도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손님이 몇인데 착각했을 수도 있지.

“쿠폰이에요. 음료 구매 시 도장 하나씩 찍어 드리고 10개 모이면 음료 하나 드려요. 하나 만들어 드릴까요?”

“네.”

남자의 얼굴은 이제 파리하게 질리다 못해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고통을 누르듯 입술을 짓이기는 모습에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아멜리아일 적의 습관이었다.

“괜찮으세요?”

이마가 얼음처럼 차갑다. 환자를 대하듯 버릇처럼 그의 상태를 확인하다 뒤늦게 아멜리아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했다.

‘……어?’

그런데 이상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감각에 바로 손을 떼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남자가 내 손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손을 뻗듯 갈급한 손짓에 놀라 고개를 든 찰나, 시선이 마주쳤다.

금빛.

순간 그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이채가 도는 듯했다.

그는 옭아매듯 제 이마에 얹어진 내 손을 꽉 움켜쥐며 무언가를 참아 내듯, 혹은 놀란 사람처럼 나를 응시했다.

창백하던 뺨에 생기가 올라오며 눈가가 발갛게 물들었다.

“하아…….”

달뜬 숨소리에 놀라 파드득 손을 떨쳐 냈다. 잠시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방금…… 뭐였지?’

먼저 멋대로 손을 댄 사람은 나고 그것은 명백한 내 잘못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야 치료 목적이었다고 해도 보통 낯선 사람이 몸에 손대면 불쾌해하지 않나?

왜 잡은 거지? 그리고 그 느낌은 설마…… 아니. 아닐 거야. 설마 그런 거겠어? 그래, 착각, 착각이겠지…….

머릿속에서 살고 싶으면 그만 생각하라고 경종을 울리는 듯했다.

“하, 하하…… 제 손이 좀 시원하죠? 조금 전까지 음료를 만들고 있어서요.”

“네…….”

몽롱한 눈으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초점이 살짝 어긋나 있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 게 이러다 카페에서 송장 치우는 거 아닌가 싶다.

“몸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병원에 가 보시는 게 어떨까요? 열은 없으니 감기는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검사받는 게 좋아요. 편두통일 수도 있긴 한데 평소에 두통을 자주 앓으시나요?”

“괜찮아요. 병원에 가 봤자 소용도 없고, 잘 아는 증상이라서요.”

조금 전보다 멀끔해진 얼굴로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 나는 이 이상은 참견이라 판단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얼굴이 따갑다. 내 얼굴에 꿀이라도 발라 놓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는 시선에 허둥지둥 서랍에서 새 쿠폰을 꺼냈다.

곧장 펜을 들며 물었다.

“쿠폰 만들어 달라고 하셨죠? 잃어버리기 쉬우실 테니 카페에 보관해 드릴게요. 그러려면 쿠폰에 적어야 해서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연우-.”

시선이 마주치자 옅게 뺨을 붉힌 남자가 입을 열었다. 동시에 텔레비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길드 ‘메시아’가 A급 상위 게이트 클리어 세계 최단 기록을 성취해 냈습니다!!]

몹시 흥분한 기자가 전한 것은 최상위 에스퍼 연우진의 길드 ‘메시아’의 게이트 클리어 소식이었다.

순식간에 뒤죽박죽 얽혀 있던 잡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까만 분노로 덮어졌다.

내 원수. 내게 유목민의 삶을 선사한 이의 소식에 바득 이를 갈며 조용히 뇌까렸다.

척수 반사와 같은 반응이었다.

“연우진 X발놈…… 눈에 띄기만 해 봐라.”

“…….”

손님의 커진 눈은 내가 저지르고 만 실수를 깨닫게 해 주었다.

‘……방금 입 밖으로 꺼냈나?’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나는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하고자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돌렸다.

“앗,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분명 연우…….”

“연우예요. 주연우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남자가 대답했다.

놀란 모양인지 다시 희게 질린 얼굴에 나는 서둘러 따뜻한 물을 내밀었다.

내 발작 버튼이나 다름없었기에 한세영과 양현우도 내 앞에서는 그 이름을 대놓고 부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들어서 면역이 사라졌나…… 아무리 그래도 손님 앞에서 욕하는 건 아닌데 실수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다시금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

* * *

날 좋은 주말 오후였다. 모처럼 쉬는 날을 맞이해 한적한 브런치 카페 소파에서 한껏 늘어져 있는 내게 한세영이 물었다.

“소희 곧 외국으로 유학 간다던데 알고 있었어?”

김소희는 지금 내가 머무는 곳의 집주인이었다.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자 한세영이 미간을 좁혔다.

“왜 진작 나한테 말 안 했어? 소희 가면 우리 집으로 와. 한동안 야근이라 너 편한 대로 있어도 돼.”

“됐어. 어차피 곧 가게도 완공되니까 거기에서 지내면 돼.”

한세영 앞에서는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는 않다.

지금은 겨울이었고, 카페가 완공되는 것은 알바가 끝날 때나 되어서였다. 그리고 김소희는 알바가 끝나기 일주일 전에 집을 비운다.

즉, 그동안은 따로 머물 곳이 필요하다는 거다.

단호한 거절에 한세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야, 김유정. 뭘 그렇게 부담스러워해? 너도 나 고3 때 부모님이랑 싸우고 쫓겨났을 때 너희 집에서 재워 줬잖아. 내가 그때 얼마나 위로받았는데. 나 계속 우니까 네가 언제든 와도 된다고 말했던 거 기억 안 나?”

“……진짜 괜찮다니까. 적응할 겸 미리 들어가 있는 셈 치지 뭐.”

“그러지 말고 이김에 본가나 내려갔다 오는 건 어때? 곧 있으면 알바도 끝나잖아. 유하가 너 보고 싶어 하더라. 아니면 연락이라도 해 주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또다시 한세영 집으로 가거나, 본가에 가고 싶진 않다.

온전한 내 것이 아닌 배려를 마주할 때마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거북했기 때문이다.

“알았어. 시간 날 때 연락할게.”

“진짜지? 나중에 확인한다.”

“너도 참. 잘도 남의 가족이랑 연락한다.”

“네가 오죽 안 하면 그러겠어?”

샐쭉 노려보는 시선을 모른 척하고 빨대만 잘근잘근 씹어 댔다.

“아! 그러고 보니 너희 카페에 되게 잘생긴 손님이 있다며? 너한테 관심 있는 것 같다는데 정말이야?”

“뭐야……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카페에 수진이라는 이름의 여자 알바생 있잖아. 알고 보니까 걔가 내 대학 후배더라고. 그래서 진짜야?”

“잘생겼다는 말은 진짜. 관심은 네가 생각하는 쪽은 아니야.”

“그럼 어느 쪽인데?”

“굳이 따지자면 미확인 물체를 발견한 연구원의 관점……?”

“그게 뭐야.”

식었다는 듯 한세영이 툴툴거렸다. 주제를 돌림 겸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너는 요즘 또 왜 바빠졌는데?”

“뭐긴. 새로운 고위 에스퍼가 나타났는데 상당한 골칫거리라…… 아랫사람들만 고생이지. 길드 간의 싸움만 해도 죽어 나갈 판인데.”

“몇 급인데?”

“오랜만의 귀한 B급. 아직 미성년자인데 등록하자마자 가이드를 성추행해서 문제가 많아. 가이드가 하급이라 조용히 넘어가자는 게 대다수고.”

“엿 같네.”

평등이니 뭐니 하지만, 어디든 계급 간에 대우 차이가 있는 것처럼 각성자들 또한 계급 간에 차등 대우가 있었다.

아니지. 터놓고 말하자면 약육강식인 만큼 그 어느 곳보다 차별이 뚜렷한 것 같았다.

게이트가 나타나고, 세계가 바뀌고, 생존을 위협하는 괴물이 나타나며 펼쳐진 약육강식의 세계.

그 속에서는 강압적인 권력도, 일방적인 착취도 흔했다.

지금보다 더 전에는 선택권도 없이 무조건 국가 귀속이었다고. 이것도 그나마 시대가 바뀌면서 나아진 거라고 한다.

“아, 맞아. 나 최근에 현우 씨랑 매칭률 검사했는데 저번보다 높아졌다?”

“정말? 축하해.”

“사실 저번에 너랑 현우 씨랑 매칭률 높다고 해서 조금…… 불안했거든. 현우 씨가 너를 좋아하게 될까 봐.”

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네 썸남을 왜 나한테 붙여?”

“미안. 하지만 매칭률 높은 각성자끼리 연인이 되는 건 흔한 일이잖아.”

“가이딩으로 인한 감정의 착각이겠지. 호감은 품게 되더라도 실제 사랑까지 가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논문에서도 나왔잖아.”

그 말에 한세영이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그런데 상위 등급의 경우에는 그 수치가 더한가 봐. 폭주 시 반동이 더 큰 만큼 더 큰 애착을 느낀대.”

“아~ 오래전에 일어났던 A급 에스퍼 ‘도이현’ 같은 사례? 하도 유명해서 알지. 가이드에게 집착한 나머지 그와 연관된 에스퍼들을 모조리 죽이고, 끝내 제 가이드까지 죽였다던.”

A급, 그것도 국가 소속 에스퍼가 저보다 높은 급의 에스퍼를 살해하는 사례는 흔치 않았기에 그 일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되고 있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제 가이드에게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와 연관된 에스퍼들을 모조리 죽이다가 제 가이드까지 폭주에 휘말려 죽게 했다던가?

그러다 결국, 같은 에스퍼에게 사살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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