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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자영업자 4화 (4/119)

S급 자영업자

4화

“좋은 면 말고 나쁜 점도 많잖아? 같은 각성자라고 해도 에스퍼와 달리 가이드는 자신을 지킬 무력이 없으니까.”

“하지만 가이드는 에스퍼의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하던데요? 에스퍼가 없어도 살 수 있는 가이드와 달리 에스퍼는 가이드가 없으면 살 수 없잖아요.”

그 말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목줄? 가이드는 본인의 가이딩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어. 신체 접촉만으로 자칫 강제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게 가이딩이고. 물론 가이드의 재량에 따라 그 농도나 양을 조절할 수는 있겠지만 갑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하지만 각성자들은 복무 기간만 마치면 평생 연금 받으면서 살 수 있지 않아요? 그럼 좋잖아요!”

“평생 연금이라고 해 봤자 얼마나 된다고. 더구나 복무 기간은 3년인데 그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일 아니겠어?”

“어…… 언니, 혹시 각성자 싫어하세요?”

부정적인 견해만 내놓자 여자 알바생이 슬쩍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남자 알바생 또한 이 상황이 묘한지 눈을 끔벅였다.

“누나, 뭔가 생각했던 것보다 각성자에 대해 잘 알고 계시네요. 매번 관심 없어 보이시기에 잘 모르시는 줄 알았어요. 찾아보신 거예요?”

“아, 친구가 센터에서 일하고 있어서…….”

“전 가이드가 가이딩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그럼 에스퍼와 닿으면 확실히 가이드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거네요?”

“그건 글쎄. 완전 차단까진 불가능해도 웬만해선 눈치챌 수 없도록 한계까지 낮출 수는 있을걸.”

“정말요? 어떻게 알았어요? 저 그런 이야기 처음 들어 봐요.”

어떻게 알고 있냐고?

아는 게 당연했다. 내가 바로 그 가이드니까.

* * *

한세영과 양현우가 센터 소속이다 보니 각성자에 관한 정보를 접하기 쉬웠다.

대략 8개월 전쯤, 그날 나는 두 사람의 틈에 끼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두 사람 입에서 나오는 각성자에 관한 이야기를 가볍게 한 귀로 흘려들으며 나는 저주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가이딩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에스퍼나, 강제로 목숨 줄을 쥐게 되는 가이드나…….’

필요 관계에 따라 공적으로 대하는 이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가이딩이라는 게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다 보니 연인으로 발전하는 사례 또한 적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에스퍼와 가이드 사이의 매칭률은 흔히 붉은 실에 비유되곤 했다.

어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저 운명 같은 로맨틱한 것보단, 피로 짜인 붉은 실에 가깝다는 게 다를 뿐.

뭐든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였다. 예전에 했다던 의무 검사 결과 기록상 나는 비각성자로 판별 났기 때문이다.

사실 원래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이후 가장 당황스러웠던 부분은 각성자 유무 따위가 아니라 가지고 있던 능력의 부재였다.

아멜리아였던 시절 나는 생명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능력으로 전쟁에서 힐러로 활약했었는데, 원래의 김유정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사라진 것 자체는 괜찮다.

원래부터 아멜리아의 능력이었으니, 김유정이 능력을 쓸 수 없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치료 능력은 사라졌는데, 막상 능력을 쓸 때의 감각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날도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 과일 깎던 칼로 손가락 끝을 가볍게 베어 내 봤다.

피가 배어 나오는 손가락에 능력을 사용해 봤지만, 모이는 느낌만 날 뿐,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필기하는데, 필기감만 느껴지고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유정 씨! 왜 자해를…!”

한세영과 대화를 나누던 양현우가 황급히 내 팔을 잡아챘다. 챙강, 칼이 바닥에 떨어졌다.

“봐봐! 많이 안 다쳤어?”

“응. 과일 깎다가 실수했어.”

그러면서 힐끗 양현우를 살폈다. 자해라고 하는 것을 보니 내가 한 짓을 다 본 것 같은데 그걸 한세영한테 곧이곧대로 일러바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되면 또 부모님께 전화하느니 뭐니 하며 난리가 날 것 같은데.

귀찮겠다는 생각을 하며 양현우를 응시하는데, 그의 두 눈에 경악이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흔들리는 동공이 내 팔에서 내 얼굴로 옮겨졌다.

“……유정 씨, 가이드였어요?”

그렇게 나는 알고 싶지도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각성자, 그것도 가이드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날 나는 내가 아멜리아일 적 사용했던 치유 능력이 가이딩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밝혀진 김에 에스퍼인 양현우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를 실험해 본 바, 그와의 매칭률이 꽤 높단 것과 내가 꽤 높은 등급의 가이드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미쳤나 봐…….”

“대단해, 유정아!”

……설마 C급 이상은 아니겠지?

등급이 높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내게 있어 전혀 좋은 일이 아니었다. C등급 이상의 각성자는 변수가 없는 이상 의무적으로 3년을 복무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작 1년 쉬고 다시 군대로 끌려가게 생겼는데 좋을 리가.

내가 로판 세계에서 7년 구르면서 깨달은 것은 하나였다. 대단하지 않아도 좋으니 적당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평화롭게 사는 게 최고라는 것.

특별한 능력자 취급은 이미 7년간 충분히 받았다. 그리고 사람은 할 줄 아는 게 많을수록 피곤해진다는 뜻깊은 교훈 또한 얻었다.

나는 어느 때보다 심각한 얼굴로 양현우의 어깨를 잡아 시선을 마주했다.

“현우 씨, 제가 각성자인 건 비밀로 해 주세요. 세영이 너도.”

“네? 하지만 검사받으면 국가로부터 지원이…….”

그 지원이 공짜였다면 참 좋았겠지.

“꼭! 반드시! 비밀로 해 주세요. 알았으면 고개 끄덕여요.”

선량한 양현우는 각성자는 각광받는 존재인데 왜 숨기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했으나, 내가 절실해 보이니 비밀을 지키겠다며 약속했다.

그것은 한세영 역시 마찬가지였고, 약속은 지금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다.

애초에 각성자라는 게 흔한 존재도 아니고, 특정 구역에 가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는 크게 부딪힐 일도 없었다.

능력 조절 경력자인 내가 평소에 알아서 가이드 파장을 낮추고 있다는 것도 평화 유지에 한몫했다.

실험해 본 바 D급 에스퍼인 양현우 말로는 이러니까 가이드인지 모르겠다더라.

생각을 끊고 다시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 점심때가 되어서 그런지 카페 안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언니, 저 주문 놓친 거 있어서 그런데 혹시 바질 페스토 파니니 데워 놓은 거 대신 갖다주실 수 있으세요?”

“몇 번인데?”

“8번이요!”

이 카페는 특이하게도 좌석마다 벨이 붙어 있었다.

테이크아웃 외에는 우리가 직접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 메뉴판을 갖다주고 주문을 받고 서빙까지 해 주어야 하는 방식이었다.

“8번이…… 아.”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든 채로 주변을 살피던 나는 8번 자리를 확인하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소문의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실례합니다.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남자가 휴대폰을 응시한 채로 가볍게 고개만 까닥였다.

가까이서 보니 어째 여기만 명도가 다른 것 같은 게 확실히 주위에서 난리 피울 법한 얼굴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파니니가 든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식기를 가지런히 늘어놓고 쟁반을 거두는데, 뒤늦게 포크가 식탁에 애매하게 걸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러다 떨어지겠네.’

자칫하면 떨어뜨릴 수도 있겠다 싶어 포크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때마침 여전히 휴대폰을 응시한 채로 남자가 포크를 쥐었고, 나는 얼떨결에 남자의 손 위에 손을 얹게 되었다.

‘……응?’

몇 초간 뇌에 오류가 일어났다.

손바닥 아래 뜨끈한 게 있는데, 뭐지. 왜 포크가 따뜻하지. 그의 손은 고운 생김새와 달리 단단하고 뼈마디도 굵었다.

이거…… 포크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손을 떼어 냈다.

“죄송합니다. 그게, 다른 의도는 없었고, 그냥 포크를 집으려고 하다가 실수로 잡은 것뿐이에요. 포크가 식탁에서 떨어질 것 같아서, 그래서 떨어지기 전에 집으려고 했을 뿐인데 실수로 그만 다른 걸 잡아 버려서…….”

나는 황급히 변명했다. 종종 카페에서 남자에게 번호를 묻거나, 수작을 부리는 이들이 있었는데 혹시라도 그쪽으로 오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거 가지고 구구절절 변명하는 게 더 이상한 것 같았다.

“……하하, 그럼 맛있게 드세요.”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데 덥석 손이 잡혔다. 쭈뼛대며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의 커다란 손이 내 손을 감싸고 있는 게 보였다.

남자는 휴대폰에서 시선까지 뗀 채 맞잡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긴 속눈썹이 뺨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모습이 무슨 예술 작품 같다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머리가 차게 식었다.

─이유가 뭐든 이 꼴을 들키는 순간 소문의 주인공은 내가 될 거다.

홱.

힘을 주어 손을 떨쳐 내고는 곧바로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도 가게 안이 바빠서 그런지 이쪽으로 이목이 쏠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화제의 인물인 만큼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도 없어서 나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태연하게 물었다.

“제 손에 뭐라도 묻었나요?”

보통 뭐 묻었다고 모르는 사람의 손을 잡지는 않지만, 차라리 그렇다고 해 주길 바랐다.

“아, 제 손가락 사이에 뭐가 묻어 있었나 보네요.”

“…….”

그러나 그는 멀어진 내 손을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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