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자영업자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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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
무너진 집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보다 더한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분명 나와 내 가족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17살까지 내가 살았던 평범한 현실은 아니었다.
마치 소설 속에서나 보던 현대 판타지 세계로 뒤바뀐 지 오래였다.
병실에서 눈을 뜨자마자 나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 모든 것이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다음 세 가지였다.
게이트. 에스퍼. 가이드.
에스퍼는 쉽게 말해 초능력자 같은 존재인데 능력을 쓸 때마다 그릇이란 게 오염된다고 한다. 가이드는 그런 에스퍼의 그릇을 정화하는 존재이고 말이다.
덧붙이자면 가이드 일을 한다던 한세영은 내가 아는 관광 가이드가 아니라 센터 소속의 E급 가이드였다.
세간에선 이들 에스퍼와 가이드들을 각성자라고 통칭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십 대들에게 가장 각광받고 있는 직업은 공무원이나 연예인이 아닌 각성자일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원래 세계로 돌아온 당일부터 내 집을 부쉈다는 망할 X새끼 연우진은 그런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정점에 선 최상위급 에스퍼였고 말이다.
어쨌든 1년간 이래저래 일이 있었고, 수많은 고난에도 나는 울지 않고 굳세게 분노를 다졌다.
그래도 때때로 허망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가능한 한 머리가 비지 않게 몸을 움직였다.
지금 나는 운영하던 꽃집을 접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가게를 접은 이유는 간단했다. 꽃다발 제작은커녕 꽃 이름도 모르는 내가 꽃집을 운영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물론 1년 내내 알바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게를 정리하고 남은 돈을 모아 중간에 주먹밥 가게를 열기도 했다.
그나마 좋아하는 취미가 요리여서 차린 것이었는데 주먹밥 가게는 반년도 채 못 넘기고 접어야만 했다. 그 자리에 게이트가 터져서 가게고 뭐고 다 날아갔기 때문이다.
아, 그사이에 또 두 번 계약한 원룸이 연우진에게 날아가는 일도 있었다.
덕분에 꿈이 생겼다. 언젠가 그 개자식 머리카락으로 수의를 짜는 것이다.
* * *
삐비빅- 삐비빅-.
휴대폰 알람 소리에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최근에는 목 좋은 곳에 차려진 한 유명한 카페에서 대타 알바를 하고 있었다.
안전 구역이라 그런지 시급도 괜찮고 좋은데, 단점은 지금 머무는 곳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근래 미친 에스퍼가 또다시 내 앙증맞은 터전을 날리며 파괴 삼관왕을 달성한 탓에 당장 갈 곳이 없어진 나는 고등학교 친구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물론 나라에서 피해 지원금이 나오긴 했다.
원룸 보증금도 돌려받았고, 거주지가 없는 동안의 생활 지원금도 받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자잘한 지원금이 더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로또 당첨도 아니고, 그게 ‘피해’ 지원금인 이상 달가울 일은 평생 없을 거다.
집도 새로 알아봐야 하고 인테리어나 물품 등, 모든 게 초기화되어 버렸는데 뭐가 달갑겠는가.
더구나 앞으로 갚아야 할 대출금을 생각하면 바로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것보단 집세, 식비를 반 부담하고 친구 집에 들어가는 편이 금액적으로 나았다.
대략 1년 전 퇴원할 때만 해도 한세영 집에서 머물다가 방 구하고, 또 집이 날아가면 다시 한세영 집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기간이 길어지니 미안해서 다른 친구 집으로 옮겼다.
한세영은 얼마든지 머물러도 괜찮다고 하지만, 최근 양현우와 썸도 타던데 눈치 없게 머물 수 있을 리가.
아, 양현우가 누구냐면 1년 전 병실에 들러 내게 우리 집 폭파 사실에 대해 알려 준 사람이다.
나나 한세영과 동갑에 그 역시 센터에서 일하는 D급 에스퍼였다.
이쯤 되니 집과 인연이 아닌 듯하여 더는 집을 구하지 않았다. 대신 염치 불고하고 부모님께 지원을 받아 새로운 가게를 차리기로 했다.
다행히 부모님 친구분 중 주님 바로 아래에 있다던 건물주님이 계셨는데 무척 감사하게도 자리 하나 남는 데가 있다며 빌려주신다고 하셨다.
그것을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비롯해 제과나 요리 쪽 자격증도 따 둔 상태고, 가게가 어느 정도 완공될 때까진 알바를 하며 소소히 벌어먹고 살 생각이었다.
그러다 완공되면 카페에 따로 마련해 둔 개인 방에서 생활할 예정이었고 말이다.
“와, 또다. 언니, 또 시작되었어요……!”
앞으로의 밝은 미래만을 생각하며 커피를 내리고 있는 내게 여자 알바생이 급하게 손짓해 보였다.
흥분한 시선을 따라가니 아니나 다를까, 며칠 사이 익숙해진 화사한 외모의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옅은 모래색의 머리카락과 눈. 넓은 어깨와 큰 키.
아무리 많은 사람들 틈에 서 있어도 뚜렷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람.
근처 고급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듯한 남자는 이 카페에 일주일에 한 번은 들렀다.
주문은 매번 아이스 아메리카노였으며, 검은색 목폴라와 베이지색 코트를 즐겨 입는 듯했다.
이러니 마치 내가 남자의 스토커인 것 같은데, 이건 다 함께 일하는 알바생이나 손님들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그는 내가 이 카페에 대타로 근무하기 전부터 유명했다.
유명한 이유를 꼽자면 커피 마시러 와서 커피 광고를 찍는 듯한 저 얼굴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할 테지만, 다른 이유로도 그는 유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다른 이유에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늘 혼자 있지 않았다. 그가 앉는 지정석 앞에는 항상 연예인이다 싶을 정도로 예쁜 외양을 가진 여자들이 번갈아 등장했다.
남자의 표정은 한결같이 담담했고, 그와 반대로 여자의 표정은 격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오늘도 몇 번의 대화가 오고 간 끝에 마침내 울음을 터뜨린 여자가 자리를 뜨며 막을 내렸다.
이번에는 조용히 끝났네. 저번에는 음료고 뭐고 다 던져 놓아서 치우느라 고생했지.
나와 같은 것을 떠올린 듯 함께 일하는 남자 알바생이 속닥거렸다.
“누나, 이번엔 치울 거 없어서 다행이죠? 저번엔 소파까지 치우느라 고생했는데.”
“쉿, 들을라.”
“에이, 괜찮아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들어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남자 알바생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그렇지.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있는 남자를 응시했다. 오늘따라 얼굴이 창백한 것 같았다.
이 카페에서 남자는 주기적으로 이별을 반복했다. 마치 필요 없는 도구를 치우듯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별.
그것도 매번 같은 카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나 역시 다른 세계에서 구르는 동안 인성이고 상식이고 내다 버린 상태였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자 언제나 노력했기에 남자의 태도가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보며 함께 일하는 여자 알바생은 저런 걸 얼굴값 한다는 거라며 재잘거렸다.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때마다 나는 눈치가 보였다.
아무리 카페를 이별 스팟으로 쓰는 놈이라지만, 그래도 손님이다.
그것도 아직 자리에 머물고 있는 상황인데 직원들이 손님 뒷말을 하는 것은 역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맞다. 다들 이번에 길드 ‘에러’가 던전 클리어한 거 봤어요? 너튜브 조회수 장난 아니던데. 길드에서 게이트 안 촬영 잘 안 해 주잖아요.”
“그거 자극적인 장면만 담은 거잖아. 정신 건강에 안 좋아.”
“오빠는 너무 고지식해.”
“네가 너무 막 나가는 거겠지.”
자주 투덕거리는 둘이 또 싸울 기세라 중간에 끼어들어 무슨 이야기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남자 알바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에러’라고 유난히 논란이 많은 길드가 있는데, 이번에 너튜브에 올린 영상 중 게이트 안을 생중계한 게 있더라고요.”
“그게 왜? 드물긴 해도 있지 않나? 센터에서 주관할 때도 있고.”
“문제는 사상자가 생겼거든요. C급 에스퍼로, 가이딩을 제때 받지 못해 폭주가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게 영상에 다 담겨 있어서…… 물론 지금은 지워졌지만요.”
“그 에스퍼 능력이 뭐였는데?”
“폭발이요.”
“아.”
그렇다면 인체가 터져 나가는 과정이 전부 영상으로 중계되었다는 거로군.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는 내게 남자 알바생이 뉴스를 띄운 화면을 보여 주었다.
사망한 에스퍼는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가 없어 평소 가이딩 받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약을 주기적으로 복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방금 ‘에러’의 영상은 바로 그 가이딩제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 때문에 더욱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듯했다.
“가이드 하니까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저도 예전에는 가이드가 되고 싶었어요.”
“에스퍼가 아니라? 왜?”
“잘생긴 에스퍼가 제게 집착해 줄지도 모르잖아요. 에스퍼들은 하나같이 외모가 뛰어나던데 그런 각성자의 유일한 존재가 되어 영원한 사랑을!”
“미디어 매체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닐까.”
“누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도대체 쟤는 언제 철들까요.”
내가 가볍게 고개를 내젓자, 남자 알바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여자 알바생의 말대로 가이드와 달리 에스퍼는 하나같이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졌다. 정확히는 에스퍼로 각성하는 동시에 신체에 영향을 끼쳤다.
학자들은 가이딩 유무가 곧 생존 여부로 직결되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보통 아름다운 것에 호감을 느끼기 마련이고, 그건 가이드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 때문인지 에스퍼는 자주 이야기 소재로 쓰이곤 했다. 유명한 에스퍼 범죄 집단마저 팬이 있을 정도니 말을 다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