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가 무섭게 1층 현관에서는 부서질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시작과 끝은 하나다. 4
“와아아악! 뭐야!”
“워어어어!”
건물 전체에 남자들 비명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박필준은 어느샌가 내 팔에 찰싹 붙어 중얼거렸다.
“뭐, 뭐야?”
“뭐긴. 네가 귀신 불렀잖아!”
짝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남자다운 면모를 보여주려던 박필준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음보다 몸이 더 앞섰다.
입술이 파르르르 떨리는 게 보인다.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고, 다리는 사시나무 떨 듯 요동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입술을 꽉 깨물고 참고 있을때.
박필준은 내게 속삭였다.
“시바. 진짜 온 거야?”
“그럼.”
박필준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띵동.
[ 이현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필준이 여전하네 ㅋㅋ
순간, 박필준이 갑자기 카메라를 의식하더니 허공에 헛기침을 하며 소리쳤다.
“크흠. 야 정연우! 나만 딱 잡고 있어.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 테니까.”
박필준은 나를 자신의 등 뒤에 세워놓고 허세를 잔뜩 부렸다.
“그, 그래.”
사랑의 힘이란···
극한의 공포도 이겨내는 것이었던가.
- 박필준 몸에 전기 충격기 대고 있냐
- 야 인마. 물 밖으로 꺼낸 우럭 같다.
- 레알. 비유 적절하네ㅋㅋㅋ
- 근데 진짜 이 소리 뭐임?
- ㅅㅂ 나도 개 깜놀했네
- 연우 웃참 하는 거 보니 몰래 알바라도 섭외했나 본데
-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아니. 연우도 덩달아서 놀라던데?
- 참을 수 없는 쫄보의 반사적인 본능이었던 거지. EMF 봐봐.
- 엥. 그러네. 0단계.
그때.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미어캣처럼 고개를 내밀고 소리의 원인을 찾던 박필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시바. 연우야···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아?”
“무슨 소리?”
“사, 사람 발자국 소리 같은 거.”
“어? 그러네. 저기저기.”
이내 지하 입구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박필준의 말대로 1층 로비에선 사람의 발자국처럼 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우리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결국 지하 입구 문에서 멈춰 섰다.
우리 둘은 숨죽인 채 지하 입구만 유심히 바라봤다.
쿵!
쿵!쿵!쿵!
“와아아악! 시바!”
“······”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하 입구 문은 자기 멋대로 열렸다.
끼이이이이-
이어서 보이기 시작하는 검은 그림자.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것 같은 여자의 형상이 비쳤다.
기괴한 걸음걸이로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밟아가며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필준이 뒷걸음질 치며 혼비백산했다.
“시, 시바! 왔어! 야 왔어! 소금! 소금 내놔!”
“오늘 안 가져왔는데?“
“뭐!?”
내가 그런 박필준을 앞으로 밀치며 소리쳤다.
“시벌! 저거 설마 여기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 귀, 귀신 아냐!?”
- 연우 연기 잘하네
- 개 소름 돋는다.
- 딱 봐도 임아린인데 저거
- 시발. 어떤 귀신이 레깅스 입고 다니냐
- 마지막 방송이라고 아주 특별한 준비를 했구나?
- 티나는 주작? ㅋㅋ
- 난생처음 하는 주작에 박필준 살며시 얹어 놓기.
- 여자 앞이라고 허세 부리더니 아주 기겁을 하네 ㅋㅋㅋ
- 우럭 귀엽다야.
여자의 입가엔 새빨간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누가 봐도 피는 아니었다.
“시, 시바! 피! 피!”
두 팔을 뻗어 우리에게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하는 여자.
박필준은 나에게 떠밀려 앞에서 벌벌 떨면서도 머리를 철저하게 보호했다.
결국, 우리 앞에서 걸음을 멈춘 여자는 기괴하게 옆으로 목을 꺾으며 박필준에게 소리쳤다.
“네가 나 불렀지!”
“와아아아아악!”
박필준이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짝!
그제야 나는 씩 웃으며 여자 앞에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아주 좋았어! 나이스!”
동시에 카메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형님들! 여기까지 박필준 깜짝 몰래 카메라였습니다!”
하이파이브를 끝낸 여자는 길게 늘어트린 가발을 훅 벗어젖혔다.
그리고 아주 수려한 외모를 드러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빠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임아린입니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ㅋㅋ 이럴 줄 알았지! 하이 방가 아린아!
띵동.
[ 클레오빡돌아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알고도 속겠다. 변장 무엇? 입가에 그건 진짜 피 같아
임아린이 입가에 묻은 새빨간 액체를 손으로 쓱 훑으며 말했다.
“이거 오뚝이 케첩인데요?”
- 꺄악! 아린이다!
- 그새 더 예뻐진 것 같네 와
- 개 부럽다 연우
- 아니 근데 웬 깜짝 몰래카메라야 갑자기?
- 마지막 방송이라고 준비했나 보지
- 이런 것도 준비하고 귀엽네 ㅋㅋ
- 그래서 방송 지인들 총집합 시킨 겨?
- 그럼 선녀보살도 불렀어야지!
- 주작무새충이랑 야생곰이랑 염세환도!
- 걔넨 나락 고속열차 제동이 안 걸려서 못 온다.
벙찐 표정으로 바닥을 쓸고 있던 박필준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내 아린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내게 물었다.
“귀신이 아니고 연우 여자친구?”
아린이가 해맑게 웃으며 박필준에게 사과하듯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필준 오빠. 오늘 마지막 방송이라 시청자들한테 깜짝 이벤트라도 해주고 싶어서 연우 오빠랑 준비해 봤어요.”
“아·····”
내가 웃음을 참으며 박필준에게 얘기했다.
“야 이걸 속아? 누가 봐도 사람인데.”
“무, 무슨 소리야! 너네 이벤트 하는 줄 알고 일부러 연기해 준 거야!”
띵동.
[ 이현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연기 치고는 너무 떨던데 필준이?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인정. 조금 더 했으면 기절했을 듯.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던 박필준은 이내 표정을 풀고 내게 속삭였다.
“형님들. 저 귀신같은 거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 남자거든요!?”
박필준이 고개를 돌리자 옆에는 다시 가발을 뒤집어쓴 아린이가 고개를 떨구고 노려보고 있었다.
“와아아아악! 시바!”
“하하. 오빠 미안해요.”
- 정확히 3초 걸렸다.
- 쳐다보고 얼굴 싹 굳는 거 개 웃기네
- 아린이 센스 만점!
- 여윽시 연우 여자친구 ㅋㅋ
- 항상 당하기만 했다가 남 당하는 거 보니까 연우도 웃긴 가보네
- 뒤에서 아주 여유 있게 즐기는 표정 좋다
- 오늘 뭔가 다른 의미로 재밌네
- 연우 휴방하게 되면 박필준 방송 가즈아!
- 우럭놈. 내가 아주 기가 막힌 미션 준다!
박필준이 기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저, 저는 못 해요 형님들. 고, 공부해야 돼서.”
그 말에 반사적으로 내가 대답했다.
“네가?”
“어! 진짜야!”
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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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우가 자기는 후원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랑 똑같은 거 아님?
띵동.
[ 호이가계속되면둘리인줄안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레알ㅋㅋ 뒤에서 맨날 1,2등 하는 놈이 무슨 놈의 공부. ㅋㅋ
씩씩거리는 박필준을 뒤로하고, 나는 카메라에 대고 얘기했다.
“형님들. 그나저나 진짜 마지막으로 이 뜻깊은 폐건물에서 뭐라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어서 참 난감하네요. 혹시 형님들 원하시는 거라도 있으실까요?”
띵동.
[ 귀신빤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원하는 거는 없고 이건 궁금한 건데, 너 혹시 여태까지 방송 중에 조금이라도 주작한 적이 있었냐?
- 오. 레알 좋은 질문이다
- 궁금하긴 했다.
- 아무리 너라도 그런 현상이 연속해서 일어나는 게 신기하긴 했어
- 반대로 의심되기도 했지.
- 대기업이랑 손잡았냐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야
- 그만큼 스케일도 컸다.
- 전원주택도 그렇고 폐 광산도 그렇고 너무 많아
- 인정.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답변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았다.
폐 모텔에 찾아갔다가 전과 24범을 만난 것도.
전원주택에서 선녀보살님 몸을 타고 오르는 벌레들과 까마귀 떼···
폐 공장 마네킹, 무당 살인 사건, 3대 흉가에서 일어났던 일도···
모두가 하나같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레전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제 모든 걸 걸고 얘기하지만··· 저는 형님들 앞에서 주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당연히 대기업이랑 손을 잡은 것도 없는 일이고요. 이렇게 레전드가 생길 수 있었던 건 형님들의 후원 덕분 아닐까요? 마라탕 형님은 뭐 말할 것도 없고요.”
내가 이렇게까지 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19살이라는 나이에 자그마치 1억이라는 금액 가까이를 모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해도 모으기엔 벅찬 금액이었다.
나는 괜히 감사한 마음에 다시 한번 카메라에 대고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진짜 평생 동안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형님들. 그리고 마라탕 형님!”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암. 암. 당연히 그래야지.
띵동.
[ 귀신빤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뭘 지금 감사해? 어차피 앞으로도 우리 후원금 뜯어 갈 거잖아?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형님드으을!”
- 이젠 노골적으로 들이대네
- 그래도 열심히 하잖아 방송.
- 몇 달간을 거의 안 쉬고 방송했지 아마?
- 학교 다니면서 새벽까지 방송하는 뮈친놈은 쟤 밖에 없을걸.
- 인정. 체력 하나만큼은 진짜 끝장나지 진짜.
- 그 와중에 성적도 오름.
- 시벌. 후원의 힘이 얼마나 정말 대단한 거냐.
- 하루 돈 만 원, 2만 원 벌었으면 그렇게까지 했겠어?
- 큰 형님에게 고마워해야겠네
- 맞아. 일등공신임.
채팅창을 바라보다 문득 마라탕 형님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모두가 궁금해 할 그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보았다.
“그나저나 마라탕 형님. 형님은 진짜 뭐 하시는 분입니까?”
내 한 마디에 모두의 이목이 채팅창에 집중되었다.
채팅창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그 많은 시청자 들 중 아무도 채팅을 하지 않는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된 그 시간.
옆에 있던 박필준과 임아린도 미어캣처럼 채팅창을 들여다봤다.
그 순간.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궁금해?
우리 셋은 마치 짠 것처럼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댔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송하는 내내 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한 사람이었다.
후원금에 9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일까?
여태까진 비밀 속에 묻혀 있었지만, 이제는 들어볼 만했다.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비밀.
미어캣처럼 얼굴을 들고 있던 우리 셋은 김빠진 콜라처럼 축 늘어졌다.
“아 형님. 이제는 말해줘도 되잖습니까!”
“마라탕 오빠! 알려주시면 제로투 얹고 코카인 갑니다!”
“어. 음··· 저, 저도 갑니다 코카인.”
- 미친. 우럭 코카인은 보고 싶지 않다고
- 헐. 임아린 코카인이라는데?
- ㅅㅂ 마라탕 형님 말해주십쇼 제발!
- 무조건 말해! 안 그럼 너 죽고 나 죽자다.
- 제가 이렇게 두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빕니다
- 시발! 그냥 말해! 그게 뭐가 대수야!
- 임아린이 코카인을 춘다잖아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