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문득 한 장소가 떠올랐다.
“오··· 마지막 장소로 거기가 괜찮을 것 같은데?”
펼친 손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친 나는 곧장 흐뭇하게 웃으며 준비를 시작했다.
***
현재 시간 새벽 1시 44분.
나는 유일하게 하나 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 서있다.
앞에는 시야가 다 가려질 만큼 큰 철문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전에 같으면 서늘한 이 기운에 눌려 다리를 벌벌 떨었어야 정상이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모르게 흐뭇한 웃음이 흘러 나온다.
나는 그 기분을 유지하며 방송을 켰고.
[ 귀신빤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우럭아왜우럭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들어오는 시청자들을 맞이했다.
“형님들. 리하이! 연우 왔습니다요오오오오!”
- 여~ 기다렸다
- 아까랑은 다르게 기분이 좋아 보이네
- 네 당황하는 모습 계속 보는 것도 난 좋았는데
- 인정. 연우 얼굴 새빨개지는 거 오랜만에 봄
- 엄마한테는 잘 해명했냐?
- 그나저나 여기 어디야?
-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데
- 어라? 이거 설마?
나는 씩 웃으며 시청자들에게 대답했다.
“알아채신 형님들이 보이시네요. 맞습니다. 오랜만이죠? 저를 이 자리까지 있게 만들어 준 장소입니다.”
시작과 끝은 하나다. 2
유트버 정연우 인생에 있어서 이곳을 빼놓을 수 있을까?
나를 유트버로서 자리 잡게 만들어 준 장소.
게다가 지독하게 날 괴롭혔던 아픈 과거를 말끔하게 뒤바꿔 준 장소.
바로 이 공포의 첫 폐건물이었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크··· 오랜만이네. 변한 게 하나도 없다야.
띵동.
[ 귀신빤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이야. 어떻게 여길 올 생각을 했냐?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뜻깊은 장소를 형님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어 정말 많이 고민했었습니다.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역시나 이곳만큼 의미 있는 곳은 없겠다 싶어 찾아왔지유!”
- ??
- 오늘 하루만큼은?
- 뭔가 말이 씨가 있다?
- 왜? 오늘 뭐 특별한 날이냐
- 임아린과의 외박을 엄마에게 들킨 날이잖슴.
- 앞으로의 잦은 외박을 위한 기념 아님?
-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얘기 아닐까
- 오. 그거 괜찮네. 그럼 사체 냉장고랑 무덤에도 3만 원 받고 차례대로 들어가주라.
- 헐. 개 대박 반가운 소린데 그거
“하하. 그런 건 아니고요 형님들.”
나는 헛기침을 한 번했다.
“크흠.”
마음을 가다듬고 분위기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방송을 마지막으로 휴방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엥?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띵동.
[ 귀신씨나락까먹는소리하고있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
나는 입술을 굳게 깨물고 있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이런 공지를 하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형님들. 일단 첫 번째 이유로는 제가 다음 주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학교 및 이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고요. 주말에는 이사 및 짐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리고?
“그리고 새 집 적응 기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엄마는 회사. 저는 학교를 다니고 있어 시간이 많이 빡빡할 것 같네요. 그래서 이참에 깔끔하게 휴방을 좀 하고 체력 보충해서 다시 돌아올까 합니다.”
-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식인가?
-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군
- 이제 난 누굴 쥐어뜯어야 된단 말인가
- 하. 유일한 내 재미가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 그래서 뭐 얼마나 휴방을 할 건데?
- 뭐 1년 뒤 2년 뒤 이런 건 아니지?
- 우리 후원금 다 뜯어먹고 그 정도 휴방하면 개색기지!
- 인정. 가만 안 둔다. 무조건 귀신 만들꺼여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에이 형님들··· 제가 형님들 두고 어디 가겠습니까! 음··· 지금 제 생각으로는 한 달 정도 생각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스읍. 뭔가 좀 씁쓸한데. 단맛과 쓴맛을 한꺼번에 먹이다니.
“그러지 마십쇼 형님. 이 연우는 항상 형님들 곁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방송만큼은 더 꿀잼 드릴 수 있도록 초대 손님을 한 명 모셔왔습니다요. 이제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이 폐 건물 하면 기억나는 한 사람.
그 사람이 때마침 가로등 불빛 사이로 검은 그림자 내뿜으며 슬쩍 모습을 나타냈다.
“어? 저 새끼. 아니 그 사람이 왔네요.”
위아래 깔 맞춤 운동복 바람으로 폐건물에 도착한 반가운 얼굴.
내가 카메라를 돌려 슬쩍 비추자 바로 두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다.
“우워어어어어! 형님들! 오랜만입니다!”
- ㅅㅂ 박필준이네
- 뭐여 이 우럭같이 생긴 놈.
- 다시 봐도 눈은 가자미랑 닮았는데
- 그 둘 짬뽕한 얼굴임
- 혹시 물고기도 사람 얼굴에 빙의를 시킬 수 있는 건가
- 하긴 이 폐 건물도 박필준 때문에 오게 됐지?
- 다리 아픈 연우 새벽에 불러다가 방송 시킨 놈이 저놈임?
- 저런 양아치 같은 놈. 회쳐서 초장에 콱 그냥!
- 다시 생각하니 화나네. 야 우럭. 당장 사과해라!
- 아직도 애들 삥 뜯고 다니지 너!
갑작스레 욕 먹기 시작한 박필준이 도착하자마자 안절부절못했다.
괜히 긴장하는 모습에 내가 대신 입을 열었다.
“형님들. 다 과거 일일뿐입니다. 지금의 필준이가 이렇게 생겼··· 아니. 그동안의 행동들을 사죄하겠다는 의미로 봉사활동도 따로 많이 다니고, 사회에 기부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선 친구들 괴롭히는 놈들 앞장 서서 열심히 선도하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박필준이 연신 고개를 푹 숙여댔다.
“진짜입니다 형님들. 앞으로도 열심히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지켜만 봐주십쇼!”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너 앞으로도 연우의 안전을 앞장서서 지켜라. 알았냐? 그래야 꿀잼 방송 계속 볼 수 있으니까
박필준이 건물이 떠나갈 듯 소리쳤다.
“아, 알겠습니다 형니니니임!”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내가 두꺼운 철문을 다시 비쳤다.
이 철문을 밀었을 때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카메라를 보며 연신 두 손을 슥슥 비비적거리고 있는 박필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장난기 어린 얼굴로 그때 그 상황을 빙의하듯 중얼거렸다.
“뭐해? 밀어.”
화들짝 놀란 표정을 한 박필준이 말을 더듬거렸다.
“어? 내가? 이거 무지하게 두꺼워서 나 혼자 못 밀텐데··· 그때도 여러 명이서 밀어서 겨우 움직였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필준은 마지못해 철문에 다가가 힘껏 밀어본다.
“으으··· 십!”
하지만 역시나 끄덕도 없다.
조금의 미동조차 없이 그저 고요한 적막만 흘렀다.
- 하··· 저런 놈이 일진이었다니
- 우리 개가 이길 것 같은데
- ㄴㄴ 저 철문 진짜 두꺼워서 그때도 세 명이 붙어서 겨우 밀었음.
- 레알? 다시 보니 좀 많이 두꺼워 보이긴 하네
- 근데 그거 암?
- 저거 그 다음 날 연우 혼자 와서 밀었음
- ㅅㅂ 미친. 저 색기 진짜 괴물 이라니깐.
- ㅇㅇ 후원 괴물.
오자마자 욕을 잔뜩 먹어서 그런 걸까.
열심히 문 밀기에만 집중하고 있던 박필준이 요지부동인 철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와 씨··· 안 그래도 요즘 헬스장 끊어서 열심히 운동하는데··· 이건 뭐 차원이 다르네. 꿈쩍도 안 해.”
낑낑대는 박필준을 보며 웃음을 참고 물었다.
“그래? 너 3대 몇 치는데?”
박필준이 자신있게 내뱉었다.
“나? 135.”
충격적인 대답에 나는 눈을 꿈뻑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린이가 150 든다는 것 같았는데···”
“야. 혹시 아린이 스테로이드 주사 맞고 한 거 아니냐.”
“그게 무슨···”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연우 너는 몇 드는데?
“글쎄요 형님. 저는 헬스장에 가본 적이 없어서··· 아무리 그래도 아린이보다는 많이 들지 않을까요?”
띵동.
[ 와우친구들박박긁어아저씨야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넌 후원만 해주면 3대 천도 가능하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 말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쌉인정
- 지금 세계 신기록이 몇임?
- 1400kg 정도 될걸요?
- 헉. 미친. 그게 사람임?
- 그래도 후원만 있으면 연우가 이길 것 같은데
- 와. 뭔가 실험해 보고 싶다.
- 휴방 끝나고 오면 미션 줘서 한번 측정해 보자고요
- ㅇㅋ
- 돈미새의 기적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그때.
박필준이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냈다.
“연우야. 이것 좀 도와줘 봐.”
“어. 어.”
나는 철문에 손을 대고 제자리에서 달리기하고 있는 박필준을 도왔다.
자연스럽게 한 손을 가져다 댔고 순간적으로 힘을 살짝 주었다.
그러자.
끼이이이이이-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 두꺼운 문이 마법처럼 열렸다.
“······”
박필준이 고개가 천천히 나를 향했다.
눈을 수차례 껌뻑이며 한참 괴물 보듯 쳐다봤다.
“진짜 너랑 친구하길 잘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자 형님들.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가로등을 벗어나 철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폐건물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여기저기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이상함을 감지했다.
스스스스스.
“어라? 뭔가 좀 분위기가 바뀐 것 같지 않아?”
“그런가? 그냥 기숙사 이후로 어디든 개 무서운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되게 서늘하고 음습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맞아. 그랬었지.”
“근데 그때랑은 다르게 서늘한 기운이 많이 없어진 것 같은데?”
순간, 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맞다. 여기 쥐포 가족도 묻어줬었는데···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잘 뛰어놀고 있으려나?”
모든 것이 새록새록 기억 속으로 피어오른다.
한때는 두렵고 공포스러웠던 기억들이 이제는 웃으며 떠들 수 있는 추억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 네 덕분에 천국에서 잘 놀고 있겠다야
- 연우가 좋은 일 많이 했었네
- 쟤가 나쁜 짓을 할 애가 아니잖슴
- 우리한테 후원 뜯는 거 빼놓고
- 쌉인정. ㅋㅋ
- 쟤 고양이 묻다가 경찰한테 걸려서 후드려 맞을 뻔했던 거 기억나네
- ㅇㅇ ㅋㅋㅋ 시체 묻는 줄 알고 경찰이 식겁함.
- 사람 하나 없는 폐건물에서 애가 뭘 묻고 있으니 기겁하지 ㅋㅋ
- 그게 벌써 거의 두 달이 넘었네.
- 헐? 레알? 그렇게 오래됐나?
우린 드디어 폐 건물 입구 앞에 도착했다.
“어라? 낙서 어디 갔지?”
[ 절 대 출 입 금 지 ]
라고 새빨간 스프레이로 커다랗게 쓰여 있던 낙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싸늘하게 죽어 있은지 10년도 더 된 이 폐건물.
입구에 난잡하게 어질러진 물건들과 폐 건물 전체를 뒤덮고 있는 곰팡이들도 내가 봤던 그때랑은 다르게 말끔하게 사라진 뒤였다.
“연우야. 여기 쓰레기들 엄청 많지 않았어?”
“그러니까···”
도대체 뭐지? 누가 청소라도 한 건가?
건물 모퉁이 부분으로 고개를 돌리자, 쓰레기를 담은 듯한 커다란 보따리가 여럿 보인다.
“어라? 진짜 누가 청소라도 해놓은 것 같은데요?”
“오잉? 이거 10년도 더 된 폐 건물인데?”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광경.
우리 둘은 한참을 멍하니 건물을 이리저리 비춰보다가 이내 다시 움직였다.
“아니 잠깐 형님들··· EMF 측정기를 한번 해볼게요.”
“오. 필살기 쓰는 거야?”
“그때는 입구에서부터 서늘한 기운이 넘쳐흘렀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싹 사라진게··· 너무 이상하네···”
나는 곧장 가방에서 EMF 측정기를 꺼내 전원을 켰다.
탁!
요란하게 움직이던 EMF 측정기의 반응이 어느샌가 멈췄다.
그런데···
“허··· 이거 뭐지? 반응이 없는데요 형님들?”
EMF 측정기에선 1단계. 아니, 1단계에서도 금방 떨어져 0단계와 0.5단계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어우 씨. 오늘은 이러면 안 되는데?
나름 마지막 방송이라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왔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김빠지는 느낌이다.
“이런··· 형님들. 이거 지하가도 이런 반응인 건 아니겠죠?”
온통 걱정스러운 마음에 채팅창을 둘러봤는데.
- 와따 브라더 이게 무슨 일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