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216화 (216/225)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서둘러 가방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내 얼굴이 다 들어갈만한 큰 거울 하나와 초 두 개를 꺼냈다.

우물 위로 곧게 뻗은 나뭇가지 밑에 섰고, 초를 나란히 두 개 세워 불을 붙였다.

마지막으로 선녀보살님께 받은 소중한 선물도 꺼냈다.

- 헐. 뭐야?

- 무구 방울?

- 너 진짜 이제 무당 된 거냐?

- 설마 귀신 부르려는 거 아님?

- 등 할퀴어서 화났냐?

- 귀신 불러서 MMA 룰로 함 붙어 보게?

- 다리에 남은 손바닥 자국이랑 등에 손톱자국 보니까 왠지 질 것 같은데

- 임아린한테 싸워서 생긴 거 아니지?

- 아님 쥐포랑

- ㅅㅂ 레전드네.

-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들이 실제로도 눈에 띄니까 입이 떡 벌어진다

- 스케일 뭐야?

- 대기업이랑 손잡아서 가능한 건가?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아뇨 형님들. 제가 엄청난 사실들을 알아냈어요. 안타까워서 원한을 좀 풀어주려고요.”

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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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사실을 알아냈는데?

“여기서 돌아가신 분들이 그냥 사고로 돌아가신 게 아니었어요.”

나는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낡은 밧줄과 우물을 번갈아보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 이 우물에서 한 아이가 안타깝게 죽었어요. 남자아이였는데···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그저 따라만 다니면서 구경만 하는··· 흔히 말해 저와 같은 존재였죠. 왕따···”

남일 같지 않은 탓에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런데 여기서 놀던 아이들 중 하나가 자신의 소중한 팔찌를 우물에 떨어트린 것 같아요. 그 팔찌를 꺼낼 방법이 없는 아이들이 왕따 아이에게 같이 놀아줄 것을 거짓말 삼아 우물에 들어갈 것을 강요했어요. 마지못해 들어간 아이는 여기서 결국···”

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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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일부러 방송 때문에 말 지어내는 거 아니지? 진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본 것을 그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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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 시발. 너 도대체 뭐냐? 처음에 거기 빠져 죽었다는 애가 남자애가 맞아···

나는 놀라지 않았다.

내가 본 기억이 사실과 달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 어머니가 이 항아리를 우물 안에 감춰 넣어두고···”

난 안타까운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수많은 동네사람들의 질타와 아들을 잃었다는 슬픔에··· 이 밧줄로 목숨을 끊으신 것 같습니다.”

- 허···

- 나쁜 사연이 아니라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네

- 쯧쯧. 뭔가 속상하군.

- 왕따시키는 것들 다 그냥 줘 패야 돼!

- 내 손에 걸리기만 해. 그냥 아주 다 귀신 만든다.

- 그런 귀신이라면 충분히 불러서 제사 지내줄만하지.

- 근데 저 항아리는 왜 넣어둔 거임?

- 흠··· 글쎄다.

- 왜 넣어 뒀을까?

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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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아리안에 원한을 품고 독극물 같은 걸 넣어뒀겠지 뭐. 사람들이 유일하게 퍼마시는 물이니까.

“네 맞아요. 하얀 가루였는데 뭔지는 모르겠어요.”

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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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가리 같은 종류였을려나.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려온다.

나는 깊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상 차림에 집중했다.

이런 원한을 품은 영가를 내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잠시 걱정했지만···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난 심호흡을 몇 번 내뱉고 카메라에 잘 보이게 EMF 측정기를 놓아두었다.

곧이어 큰 거울을 번쩍 들었다.

그다음 하얀 밧줄, 또 내 얼굴이 함께 비추게끔 위치를 맞춰놓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휘이이이이··· 휘이이이이···”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우물 앞.

신당에서나 들을법한 무구 방울소리와 내 휘파람 소리가 깊게 울려 퍼진다.

“제가 그 하소연을 들어드리고 원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부디 모습을 드러내주세요.”

그 마음이 전해지는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 EMF 측정기는 솟아오르고 있었다.

- 어? 어? EMF 측정기!

- ㅅㅂ 뭐야? 진짜 부르니까 오는 거야?

- 헐 진짜 나무꾼 보살 다 됐네. 이게 무슨 일?

- 아니 근데 무섭다면서 귀신을 대체 왜 부르는 거냐고

- 너무 안타까워서 하소연 들어주려고 그러는 거 아님?

- 대박. 3단계. 아니 3단계 반.

- 컥. 4단계까지 올랐는데?

- 어? 밧줄 흔들린다. 밧줄 흔들린다고!

- 저거 뭐야? 등 뒤에 하얀 거 저거

- 야. 눈 떠! 눈 뜨라고!

눈을 감고 있는 사이 모든 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점점 한기가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등 뒤에는 영안실에서 느껴질만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온 건가?

나는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보고 놀라지 말자. 절대 놀라지 말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름과 동시에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런데···

“워웁! 십!”

그렇게 속으로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에 비친 여자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차오르는 것과 동시에 욕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눈에서 시뻘건 핏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피부에서 흘러내리는 그 피는 섬뜩함을 주기엔 충분했다.

공포 영화에서나 볼법한 광경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입을 꾹 닫고 필사적으로 떨리는 다리를 꽉 붙잡았다.

“아, 안녕하세요.”

[ 치지지지익- 흑흑 치지지지익- 흐흐흑 치지지지익- 흑흑흑 ]

소름이 채 가라앉을 새도 없이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겨 내. 이겨 내야 한다.

“제가 비록 무당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 있으셨는지 다 봤습니다.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저도 정말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슬펐습니다.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가능하다면 제가 그 원한을 좀 풀어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나는 거울에 비치는 저 섬뜩한 존재의 답을 듣기 위해 그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음을 여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여자도 그럴 것이 계속 서글프게 울기만 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등 뒤는 춥다 못해 얼어붙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순간.

[ 치지지지익- 흑흑흑 치지지지익- 흑흑 치지지지익- 흑흑흑 ]

흐느끼는 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EMF 측정기는 0단계를 가리켰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 안 되는 건가?

그때.

갑자기 EMF 측정기가 5단계까지 치솟음과 동시에, 내 바로 귀 옆에선 여성의 호통소리가 꽂혔다.

[ 그럼 내 아들 살려내! ]

애청자가 제보해준 그 집. 7

소름 끼치는 그 목소리가 귀에 닿는 순간.

나는 참지 못하는 괴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악! 시벌!”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아 두 귀를 틀어막았다.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이 시간에 한 맺힌 여자의 울음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꽂힌다.

[ 흐흑흑··· 흑흑흑··· 흑흑흑흑··· ]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몸은 간절하게 이곳을 빨리 벗어나라 요동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안타깝게 생을 달리한 이 둘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꾹 버텨냈다.

- 여자 우는소리 안 들림?

- 고스트 박스에서 나오는 소리인 가?

- 그런 것 같은데

- 아니야. 그냥 바람 소리 아님?

- 뭔 소리야. 바람 소리가 어떻게 흑흑 그래 미친놈아

- 엥? 누가 재수 없게 울고 지랄이야?

- 나다 십색갸

- 호오. 귀태식이?

- 님들 정신 괜찮음?

섬뜩한 분위기 속.

나는 그저 울기만 하는 여자에게 용기 내어 소리쳤다.

“제, 제가 저 깊은 우물에서 울고 있는 태성이를 꺼내드릴게요!”

사고로 죽은 아이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

나뭇가지에 목을 매달은 엄마의 영혼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묶여있다.

안타깝게도 태성이의 영혼도 저 우물 깊은 곳에 묶여있는 것 같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지만, 둘은 만나지 못하는 듯했다.

그저 저 어린 것이 원한이라는 것을 마음에 제대로 품지도 못하고 그저 살려달라고 울부짖고만 있다.

[ 치지지지익- 첨벙! 치지지지익- 첨벙! 첨벙! 치지지지익- 살려주세요 ]

순간, 여자의 울음소리가 뚝 멎었다.

나는 내 몸을 감싸던 차가운 한기가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살며시 눈을 떠보았다.

“웁! 십!”

여자가 나를 여전히 노려보고 있어 몸을 움찔거렸지만, 가까스로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지, 지켜보세요. 제가 태성이를 우물 안에서 빼내어 드릴 테니···”

내가 봤던 그들의 기억은 아주 잠깐이었다.

즉, 표면적인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적극적인 건 그 슬픔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태성이. 그리고 태성이 어머니. 곧 정말 제가 좋은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믿어 주세요.”

나는 나를 지켜보는 여자에게 두 손을 모아 허리가 폴더처럼 접히게끔 인사를 건넸다.

- 방금 들어왔는데 얘 왜 혼자 얘기함?

- 정신 나간 거 아님?

- ㄴㄴ 귀신이랑 대화 중

- 지옥 열차 태우려고 살살 꼬시는 중

- 연우가 말하는 좋은 데가 지옥이었음?

- 에이 설마. 지옥보다는 더 좋은 곳이겠지

- 죽으면 다 지옥 가는 거지 뭐.

- 영화 안 봤냐? 끌려가는 장소가 다를걸.

- 뭐? 미친놈. 설마 신과 참깨 말하는 거냐?

미동도 없이 나를 한참 노려보던 여자는 끝내 슬픈 표정으로 우물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금세 사라져버렸다.

[ 치지지지익- 우물 치지지지익- 꺼내줘 치지지지익- 흑흑 ]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알겠어요. 저만 믿어주세요.”

난 곧장 선녀보살님에게 미리 전수받은 의식들 중에 한 가지를 떠올렸다.

물에 빠진 영혼을 구제한다는 넋걸이.

근데 과연 될까?

물 귀신이 무섭고 악질적인 존재라고 여겨져 성불을 시키는 그 과정도 정말 지독하게 힘들다고 하던데···

그래도 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저 안타까운 아이를 품성을 떠올려보니··· 반드시 나를 따라줄 것만 같았다.

“형님들. 그럼 ‘넋걸이’ 시작하겠습니다.”

고요한 정적이 흐른다···

바람이 불지 않음에도 신기하게 내 말이 끝날 때마다 촛불이 일렁였다.

꺼질 듯 말 듯 하면서도 그 상태를 유지했다.

나는 멈췄던 몸을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가방 안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작은 물건 하나를 꺼냈다.

띵동.

[ 이렇게귀한곳에누추한분이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건 뭐야?

천으로 잘 감싸놓은 유기그릇을 비추었다.

혹시나 의심할 수 있는 시청자들을 위해 일일이 유기그릇에 쌓여져 있는 천을 풀었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새하얀 쌀을 보여주었다.

“여기 보시면 먼지 하나 없이 소량의 쌀만 들어있는 게 보이시죠? 이 그릇을 저 우물 깊이 던졌다가 꺼냈을 때 생전 익사자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치아 등등 체조직이 나오면 넋을 건져 올리는 데에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사를 지내줄 겁니다.”

- 켁. 그게 말이 됨?

- 만약 나오면 개 레전드 아님?

-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웠대?

- 선녀보살이겠지

- 나름 이리저리 연락하면서 많이 정보를 얻는 것 같던데?

- 떴다고 퍼질러 누워서 게으름피우는 딴 유트버들이랑 다르구만

- 그럼 그럼 연우가 누군데

- 에이. 그래도 설마 저게 되겠어?

- 인정. 아무리 그래도 가능한 선이 있는 거지.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우물 줄에 유기그릇을 정성스럽게 매달았다.

떨어지지 않게 확인까지 마친 내가 조심스럽게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태성아. 이 형이 거기서 꺼내줄게. 엄마랑 좋은 곳으로 가자.”

난 곧장 유기그릇을 우물 안쪽으로 살며시 넣었다.

잠시 후.

물에 닿으며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이 난다.

곧이어 툭 하는 느낌과 함께 바닥에 닿는 기분이 들자, 살며시 손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나머지 준비를 위해 시선을 돌렸다.

나는 가방에서 온갖 색깔 과일들을 꺼냈다.

사과부터 시작해 배, 바나나, 조그마한 과자까지.

나름 준비해올 수 있는 최대한으로 준비한 상차림 재료들이었다.

이내 텐트를 하나 깔고는 그 위에다 과일들을 가지런하게 올렸다.

그리고.

“형님들 카메라 잠시 흔들릴 겁니다. 참아주세요.”

나는 곧장 우물 위로 뻗은 나뭇가지를 덥석 잡았다.

내 키의 1.5배는 훌쩍 뛰어 넘는 높이의 나무였다.

그런 나무를 나는, 발로 하늘을 차듯 튀어 올라 나뭇가지 위로 몸을 얹었다.

- 워? 뭐야 방금

- 타잔이야 뭐야?

- 나무꾼보살 아니랄까 봐 이제 나무도 타는 거냐

- 와. 그 높이가 그렇게 올라가지는 거였어?

- ㅅㅂ 운동신경 진짜 뭔데

- 나도 모르게 지금 혼자 물개 박수 쳤다

- 거긴 왜 올라 간 거야?

- 밧줄 풀러 올라간 것 같은데

- ㅎㄷㄷㄷ 진짜 대박

내 마음이 전달됐던 걸까.

촘촘하게 묶인 낡은 밧줄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기름칠이라도 한 듯 부드럽게 풀렸다.

나는 밧줄을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내려왔고.

상차림 머리 부분에 낡은 밧줄을 곱게 두었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 두 무릎을 꿇었다.

“일단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태성이부터 저 어두운 곳에서 꺼내주겠습니다.”

우물에 유기그릇을 떨어트려놓은 지 한참 지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리고 다시 무구 방울을 이리저리 흔들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1분, 2분, 5분, 10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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