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어머니가 계약 하자던데.”
그런 행복한 제안에도 나는 멈칫거렸다.
사실, 이 집과 인연이 닿은 건 복권 당첨과도 같았다.
아니, 그냥 기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내가 가진 모든 돈을 털어놔도 7천만 원이 안 되는 금액.
목표했던 금액, 1억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집을 사려면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 필요할 것 같은데.
우물쭈물 망설이던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재신이 형. 그럼 혹시 이 집 매매금액이 어떻게 돼요?”
“1억 5천.”
내 입이 반사적으로 떡하니 벌어졌다.
“헉. 역시···”
“······왜?”
나는 집 안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먹지 못할 음식을 보는 것처럼 입맛을 다셨다.
그런 내 행동에 남재신은 멀뚱멀뚱 눈을 껌뻑거렸다.
- 오. 1억 5천.
- 이야. 정원도 있고 가격 너무 괜찮은데?
- 그런데, 이놈은 왜 이렇게 벙찐 얼굴을 하고 있어
- 아까까지만 해도 실눈 뜨고 후원금 뜯어가더니
- 날강도 새끼
- 1억 5천 없어서 그런 거 아님?
- 그동안 열심히 모았어도 아마 해봐야 6천 ~ 7천 정도일걸?
- 헐. 그걸 그렇게나 정확하게?
- 난 연우 박사니까.
한참을 가만히 서있던 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형. 혹시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나요? 제가 아직 이 집을 사기에는 돈이 조금. 아니, 많이 모자라서요··· 아무래도 지금은 못 살 것 같은데.”
그제야 남재신은 허탈한 표정과 함께 씩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난 또 뭐라고··· 그러니까 계약하자니까?”
“······??”
남재신이 벙찐 내 표정을 보며 말을 이어붙였다.
“네가 지금 모은 돈이 얼마야?”
“아마 이번에 정산 받은 것까지 계산하면 7천만 원 정도 될 거예요.”
- ㅅㅂ 내 말이 맞지?
- 헐. 개 소름이네. 여윽시 연우 박사.
남재신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말을 꺼냈다.
“그게 이 집의 계약금이야. 나머지 돈은 여기서 살면서 천천히 돈 벌어서 갚아 주면 돼.”
순간, 내 입은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은행도 아닌 개인이 입주자 상대로 1억을 무이자대출을 해주는 셈이었다.
말문이 막혔다.
우린 만난 지 고작 몇 달, 아니지. 제대로 말 섞은 건 대웅전이 처음이라고.
이건 어린애들한테 돈 몇 푼 꿔주고 갚는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잖아.
“형. 이건 그냥 돈 1, 2만 원이 아닌데, 자그마치 1억이예요··· 그걸 기다려 주시겠다고요?”
왜? 어째서?
남재신이 활짝 웃으며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너 아까 보니까 돈 잘 벌던데? 그 정도 속도면 금방 아닐까? 기다려줄게. 이미 엄마와 다 상의가 끝난 얘기야.”
- 헐.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
- 5천 원도 아니고 만 원도 아니라고···
- 자그마치 1억이란 돈을 덜 받고 집을 내준다고?
- 와. 이건 연우를 얼마나 가족처럼 봐야 해줄 수 있는 혜택이냐?
- 가족이라도 이건 힘들 수 있다. 요즘 세상엔
- 레알 미쳤다. 근데 혜택받는 상대가 연우라니까 뭔가 납득이 가네
- ㅅㅂ 인정. 부러운 것보다 뭔가 자꾸 축하를 하게 되네
- 이게 저놈의 매력이지
- 축하한다 옘병!
순간, 사고가 정지되었다.
감동이란 두 글자의 감정이 내 온몸을 지배해버렸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입을 실룩거리며 땅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다.
털썩!
그리고 두 손을 높이 올린 채로 남재신에게 절을 올렸다.
“재신이 형 고맙습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제가 열심히 해서 금방 갚을게요 진짜!”
재신이형은 나의 그런 돌발행동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당황해했다.
“야, 야···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웬 절을···”
나는 바닥에서 곧장 일어나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형. 그럼 잠깐만요. 집 좀 더 보고!”
“그래.”
마당을 뛰어다니는 강아지처럼 나는 온 방을 헤집고 다니며 냄새를 맡아댔다.
“우리 집! 우리 집! 우리 집!”
- 아주 좋아 죽네
- 근데 쟤는 왜 자꾸 절을 두 번 하는 거냐
- 본능이지
- 귀신 만들고 싶어서?
- 근데 어차피 계약을 해도 쟤가 못 하잖아.
- 아. 미성년자라서?
- 제일 큰 난관이 남았네 그럼.
- 그런 사실도 모르고 그저 해맑게 웃고 있는 연우
- 누가 알려줘야 되는 거 아니냐?
- 쟤 유트버 하는 거 어머니가 알면 뒈지게 맞을걸?
그렇게 한참을 누비고 다녔을까.
띵동.
[ 남녀칠세부동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다 즐겼냐? 이제 최종 보스 만나러 가야지?
“최종 보스요? 그게 뭐예요 형님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엄마 인마. 넌 미성년자잖아. 네가 집 계약할 거야? 건방지게?
순간, 옆에 있던 남재신도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참, 연우야. 혹시 이 사실을 어머니가 모르셔?”
나는 말없이 남재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얼굴이 급격하게 늙어간다.
시벌··· 맞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반년이 넘어가도록 엄마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나는 잠시 심각하게 고민하다 이내 시청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혀, 형님들. 저 엄마한테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죠? 좀 도와주실···”
***
아쉽지만, 남재신과의 집 계약 얘기는 조금 미뤄두었다.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모든 걸 결정짓기엔 생각지 못 하게 너무 복잡한 것들이 많았다.
지금은 잠시 집에 돌아와 머리를 굴리는 중.
다행히도 엄마는 집에 없었다.
그런데, 나 진짜 어쩌냐!
뭘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할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는다.
“형님들··· 저 뭐라고 말씀드려야 될까요? 무슨 방송을 하는지 알면 등짝 스매싱. 아니, 난생처음 사랑의 매를 맞고 귀신 될지도 모르는데···”
- 거짓말이라도 해야지 뭐.
- 운동 유트버라고 해.
- 새벽마다 죽은 사람들이랑 같이 운동한다고?
- ㅇㅇ ㅋㅋㅋ 가끔 주먹도 주고받고 그런다고
- 야. 어차피 인터넷에 치면 다 나오는데 거짓말하면 안 되지
- 솔직하게 말해 그냥
-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다 용서하고 이해해 주실 거다.
- 문제는 그 이후지 ㅅㅂ
- 엄마가 방송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 헐. 그럼 안 되는데
- 연우 귀신 될 때까지 방송해야 되는데
“하··· 어쩌지. 이제 곧 엄마도 집에 올 텐데···”
마치 똥 마려운 강아치처럼 나는 방안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띵동.
[ 소잃고뇌약간고치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그냥 속 시원하게 얘기하고 맞자. 너 맷집 되잖아? 설마 맞다가 귀신 되겠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 그럴까요? 제가 생각해도 거짓말은 좀 아닌 것 같긴 한데···”
띵동.
[ 소잃고뇌약간고치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아니면 엄마한테 통장 잔액부터 보여주자.
“자, 잔액이요?”
띵동.
[ 소잃고뇌약간고치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ㅇㅇ. 돈으로 입 막음 하는 거지. 돈에 장사 없다. 네가 그동안 우리한테 뜯은 금액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듯.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흠···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 순간.
“우리 사랑하는 아들 왔어?”
유난히 밝은 엄마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온다.
나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마른침을 연달아 꿀꺽 삼켰다.
이내 카메라를 거치대에 재빨리 놓아두고 대답했다.
“어, 엄마. 왔어?”
드르륵.
집 안으로 들어온 엄마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엄마. 기분 좋은 일 있나 보네. 왜 이렇게 목소리 톤이 높지?”
- 흉가 갈 때만큼 긴장한 것 같은데
- EMF 측정기로 치면 4단계 수준임
- ㅋㅋ 인정. 여기에 식은땀까지 흘리면 레알 대웅전 때랑 같은 분위기인데
- 아 시바. 나까지 긴장되네
- 저놈 저거 진짜 엄마한테 된통 혼나고 방송 그만둔다고 하면 어떡하냐
- 어떻게 하기는 내가 무조건 그건 막는다.
- 무슨 수로?
- 후원으로
- ㅅㅂ 기껏해야 천 원짜리 날리는 놈이 뭔 후원으로 그걸 막아
- 걍 큰 형님한테 부탁하자.
- ㅇㅋ
엄마가 휴대폰을 내게 들이밀며 웃는다.
“아니 아들. 저기 옆 동네 경희 아줌마가 가르쳐줬는데 이거 왜 이렇게 웃기니. 유티브 인가 유트브 인가하는 애인데.”
순간, 내 얼굴이 굳었다.
시벌. 하필이면 동네 아줌마한테 배워온 게 유트브라니.
이건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없다.
내가 하는 컨텐츠를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고민하던 것도 잠시, 나는 반사적으로 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다.
털썩!
“어, 엄마! 나 할 얘기가 있어.”
그 행동에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고 깜짝이야. 아들 왜 그래? 뭔 일 있어?”
나는 무릎을 꿇은 상태로도 안절부절못하며, 머리를 긁적이다 이내 입을 열었다.
“사실, 나 엄마한테 수, 숨기고 있던 게 있었어.”
- 방금 뼈 부러지는 소리 들리지 않음?
- 헐. 결국 모든 사실을 말하기로 결정한 건가?
- 이거 좀 위험한데
- ㅅㅂ 그래. 속 시원하게 하고 뒷일은 우리한테 맡겨라.
- 어떻게든 설득 시켜보자고
분위기가 한껏 서늘해졌다.
마치 폐가에 온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서도 엄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유트버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컨텐츠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게다가 편집자가 있다는 것도,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도···
물론 선녀보살님의 대한 모든 정보도 꼼꼼하게 얘기했다.
어찌나 그 얘기가 길었던지 혼자 쏟아내고 나니 3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 지금 얘가 무슨 얘길 하는 거니···”
엄마는 내가 뱉어낸 사실들을 전혀 믿지 못했다.
그저 채팅창이 올라가는 화면과 나를 번갈아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통장 잔액을 꺼내 보내주었다.
정산 받기 전 금액으로 5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찍혀 있는 통장을.
“이, 이건 그동안 내가 모은 금액이야 엄마. 숨겨서 미안해. 근데 정말 즐겁게 열심히 모았어. 전혀 위험하지 않았어. 나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았거든.”
엄마는 사고가 정지된 듯, 한참을 그 잔액을 바라보았다.
말도 잇지 못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쥐 죽은 듯 숨 죽이고 엄마의 표정만 살며시 살폈다.
잠시 후.
엄마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들··· 엄마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말했잖니. 왜 엄마 말을 안 듣는 거야?”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무슨 말을 해도 엄마에겐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입술을 꾹 닫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돈은 대체 다 뭐야?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큰돈이 네 통장에 있는 거야? 너 설마···”
나는 엄마의 입에서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막았다.
“아, 아냐 엄마! 엄마가 생각하는 뭐 나쁜 강도 짓··· 그런 거 아니야 진짜!”
그 순간.
나를 돕겠다며 후원창이 울려댄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정말입니다. 어머니. 강도 짓을 한 게 아니라 실제로 강도를 때려잡았어요! 전과 24범! TV에도 나왔는데!
이런 시벌···
그런 얘기는 도대체 왜 하는 건데!
띵동.
[ 이쑤신장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장독대에 아기 가둬놓고 죽인 무당 잡은 학생도 연우입니다. 어머니. 쟤 시장한테 시민 상도 받을뻔 했어요!
내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간다.
아, 안 돼. 이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거라고···
나는 급하게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이 상황에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시벌··· 어떡하지?
그 순간.
마치 구세주처럼 누군가가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똑똑똑.
“계시나요?”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다시 새 출발
낯익은 목소리에 내 눈이 번쩍 떠졌다.
어라? 이 목소리는?
나는 손님을 맞이하러 가는 엄마를 그 자리에 멈춰서 빤히 바라봤다.
“누구세요.”
드르륵.
문이 반쯤 열리자 반가운 얼굴이 비쳤다.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 선녀보살님.”
뭐야? 선녀보살님이 여긴 왜···
게다가 집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오신 거지?
대문 앞에 서있던 선녀보살님이 인사 대신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