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208화 (208/225)

선녀보살님의 추천 장소. 16

인연이란 건 정말 신기했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방송 초창기 때 귀목산에서 처음 만났던 남자, 남재신.

그를 다시 마주친 것만으로도 기가 막힌 인연이지만.

더 큰 우연이 숨겨져 있었다.

남재신의 어머니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집은 네가 정말 죽어서도 팔지 말라고 했던 집이잖아. 괜찮은 거니?”

선녀보살님의 실린 영가는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그랬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럴 때를 위해서 남겨둔 것 같네. 누나 부탁해.”

- 이게 뭔 대화야?

- 파란 지붕 단독 주택이라는데

- 설마 저 사람이 그 집 주인인 거야?

- 헉.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냐?

- 미쳤다. 진짜 레알 미쳤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어?

- 저놈은 대체 복이 얼마나 타고난 거냐고··· 헐···

- 이것 때문에 선녀보살이 연우를 보낸 거야?

- 대체 몇 수 앞을 내려다본 거?

- 와. 진짜 나 몸에 개 소름 돋았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무언가를 더 얘기하는가 싶던 영가는 마지막으로 날 보며 씩 웃었다.

그것도 잠시.

선녀보살님의 울컥거림과 함께 몸에서 빠져나간 듯 보였다.

곧이어 선녀보살님의 목소리가 흘렀다.

“그럼 이제 남영신 씨는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죠?”

한참 슬픈 표정을 머금고 있던 친 누나분은 이내 고개를 힘겹게 끄덕이며 말했다.

“선녀보살님. 우리 영신이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녀보살님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이어 대웅전 안에는 마무리를 뜻하는 의식의 소리가 퍼져 흘렀다.

지이이잉! 쿵. 쿵.

챙! 챙! 챙! 챙! 챙!

선녀보살님의 무복이 마치 날개처럼 이리저리 휘날린다.

어느샌가 들고 온 무구 칼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무언가를 중얼거렸고.

바닥에 엎드려 눈을 감은 상태로 진심이 담긴 절을 몇 번 하고 나서 의식을 마무리가 돼가는 것 같았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나는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부디 이승에서의 기억은 모두 잊으시고, 그곳에서는 정말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빌겠습니다.”

***

태어나서 처음 겪은 큰 의식이 마침내 끝을 맺었다.

모두가 그렇듯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 평소처럼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체력 회복을 위해 휴방을 하고 학교생활에만 매진했다.

그렇게 열심히 시간을 보냈을까.

다시 행복한 주말이 찾아 왔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방송을 켜고 누군가를 찾아 가고 있었다.

[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 귀신빤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남녀칠세부동산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형님드으으을! 잘 지내셨습니까아아아! 이 연우가 왔습니다요오오오오오!”

- 여~

- 오랜만이다잉

- 빠져가지고 방송도 안 켜고 뭐 했냐 그동안

- 뒈질래? 귀신 만들어 줄까?

- 후원받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하진 않디?

- 쟤는 자면서도 후원받는 꿈 꿀 것 같아

- 이 자식. 설마 단독주택 살 때 다 됐다고 방송 접을 생각하는 건 아니지?

- 그럼 여태 후원한 거 환불해달라고 난리 피운다

- 님. 후원한 거 얼마 안되잖슴?

- ㅅㅂ 내가 천 원 짜리 후원 날린 것만 해도 몇십 개인데!

나는 해맑게 웃으며 시청자들에게 대답했다.

“에이 형님들.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십니까! 저는 이 몸이 썩어 다할 때까지 꼭 형님들 곁에 있을 겁니다요! 레알!”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래서 오늘 왜 방송 킨 거냐. 보아하니 폐가 가는 건 아니고.

나는 걷고 있던 걸음을 멈춰 세웠다.

곧장 헤벌쭉 신나 동네방네 떠들어댔다.

“형님드으으을! 드디어 제가 그 꿈에 그리던 파란 지붕 단독주택을 보러 갑니다! 하하하하!”

띵동.

[ 이렇게귀한곳에누추한분이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레알? 오! 그래서 그냥 입이 그렇게나 귀에 걸려 있었던 거구만?

“으하하하하하하! 너무 좋아서 이 몸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가 없습니다요!”

사실이었다.

이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밤잠을 설쳤다.

엄마와 쥐포를 쳐다볼 때면 이 사실을 알리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거렸다.

하지만, 모든 걸 설명하기엔 일렀다.

게다가 깜짝 놀랠 엄마를 위해 꾹꾹 참았다.

“진짜 형님들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들! 제가 이 감사함을 평생토록 잊지 않고, 저만의 방식으로 갚아나가겠습니다.”

- 뭐? 어떻게?

- 그럼 지금 당장 3대 흉가라도 가서 그 고마움을 인증해라 색갸!

- 아니면 그때 갔던 계단 10번 왔다 갔다 어떰?

- 줄 없이 번지점프 한 번 하러 가자.

- 왠지 저놈은 후원만 주면 살 것 같지 않음?

- 결국, 방송은 계속하되 우리 후원금을 뜯어가겠단 소리인데

- 그렇게 생각하니 개 무섭다.

- ㅇㅇ ㅅㅂ 귀신보다 쟤가 더 무서움.

- 이왕주는 거 기가 막힌 미션이라도 생각해놔야겠다.

나는 계속해서 올라오는 채팅창을 보며 배시시 웃어댔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것도 잠시.

저 앞에서 반가운 누군가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연우야!”

남재신이었다.

“재신이 형!”

그날 이후로 급 속도로 친해진 우리 둘.

남재신에게 나는 생명의 은인.

나는 남재신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은인이 되었다.

이제는 떨어트려놓으려야 놓을 수 없는 사이.

난 재신이 형을 맞이하자마자 놀란 눈을 하고 이리저리 몸을 살폈다.

턱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며, 축 처진 어깨와 몸.

무엇보다 빙의 현상으로 인해 수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미라처럼 삐쩍 마른 몸을 하고 있었는데.

며칠 사이에 사람 몸이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거야?

정말이지, 얼굴이 폈다.

어머니가 얼마나 먹이셨는지 금세 보기 좋게 살이 쪄올라 있었다.

“형! 얼굴 완전 좋아 보이는데요? 맛있는 것 좀 많이 먹었나봐요.”

재신이형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네 덕분이지 뭐. 요즘 진짜 하루에 5끼 먹나 봐. 배 터져서 귀신 되겠어 아주.”

- 와. 그때 봤던 그 사람 맞음?

- 개 똥 멸치. 곧 죽을 것 같이 생겼었잖아

- 헐. 진짜 귀신 빙의라는 게 무슨 암보다 더 심각한 증상같다잉.

- 사람이 완전 달라졌네

- 이렇게 살찌고 보니까 또 괜찮게 생겼는데?

- 뭔가 되게 정직하게 잘 생겼다

-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고 연우랑 스타일이 비슷한 거 같지 않음?

- 인정. 약간 박보검 비슷한가?

- 보검으로 맞고 싶음? 누굴 갖다 대

남재신이 손짓하며 나를 안내했다.

“자. 가자. 이제 곧 선물 받을 너희 집 보러 가야지?”

나는 눈이 빠져나올 듯 크게 뜨며 소리쳤다.

“우워어어어어!오케이! 같이 보러 가실까요 형님들! 그토록 꿈에 그렸던 파란 지붕 단독 주택!”

띵동.

[ 남녀칠세부동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OK. 우리 연우한테 사기 치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고 미리 얘기 해놔.

남재신이 채팅창을 힐끗 쳐다보더니 웃었다.

“하하하··· 이렇게 무서운 무당 동생한테 사기를요? 저,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귀신 되기 싫어요.”

몇 걸음 걷지 않았다.

골목을 돌자마자 저 멀리 단독으로 서있는 웅장한 집 하나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바다와 같은 맑은 파란색 지붕이 얹어진 단독 주택.

“오··· 형님들! 저기! 저기 보세요!”

띵동.

[ 클레오빡돌아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헐. 우리 집 보다 더 큰 것 같은데?

우린 곧장 집 문 앞에 섰다.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대문.

까만 페인트 바탕에 창살과 무늬는 금색으로 칠해져 있다.

잠시 후.

사람보다 훨씬 더 큰 대문 앞에 선 남재신이 열쇠로 문을 열자.

드르륵.

순간, 내 입에선 참지 못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이게 뭐야 도대체.”

- 헐. 개 미쳤다. 이거 도대체 몇 평이야?

- 이 정도였어? 와. 진짜 감탄밖에 안 나온다.

- 아니. 이런 집을 그냥 놔뒀다고!?

- 사람이 관리한 것처럼 너무 깔끔한데

- 뭔 주택 안에 나무가 저리 많아?

- 워. 대체 몇 그루야 저거. 개 멋지다 진짜.

-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기 딱 좋겠다 완전. 개 쩔어.

내가 바라본 단독주택의 광경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집보다 더 큰 마당이 눈앞에 쭉 펼쳐져 있다.

사람 손이 타지 않아 관리가 되지 않은 잔디와 수많은 낙엽들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잔뜩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집을 감싸주듯, 사방에 펼쳐져 있는 나무들.

“형. 근데 이 나무는 무슨 나무예요? 혹시 소나무 인가?”

“응. 맞아. 우리나라 전통 소나무. 풍수적으로 으로 굉장히 기운이 좋은 나무래. 향균이랑 살균력도 최고인데다···”

나무에 대한 설명을 다 듣기도 전에 나는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살폈다.

구경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저 집 풍경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흐르고, 모든 것이 신기했다.

이 집이 곧 내 집이 된다고?

정말이지? 아직도 체감할 수 없었다.

“연우야. 집 안도 봐야지. 들어와 봐.”

곧이어 남재신은 집 문까지 활짝 열어 나를 안내했다.

입구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거실 풍경.

쭉 뻗어있는 그 길이를 보며 나는 또 한 번 입을 떡하니 벌렸다.

“허··· 이게 거실··· 왜 이렇게 길어.”

끝이 아니었다.

이곳저곳을 데려가 구경시켜주는 남재신.

“여기는 안 방이고, 여기가 작은방. 저쪽에도 방이 하나 더 있어. 그리고 여기는 화장실.”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뭐? 방이 세 개라고!?

안방의 크기가 지금 내가 사는 집 크기보다 더 크다.

그런 안방 말고도 작은방이 2개 더.

게다가 우리 집 거실만 한 큰 화장실이 있었다.

“시벌. 말도 안 돼··· 이런 집에 내가···”

괜히 가슴이 울컥한다.

여태 그토록 열심히 애썼던 기억들이 천천히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 야. 또 우냐?

- 이 정도면 울컥할 만하다.

- 그간 무쟈게 서러웠나 보네.

- 서러울만하지. 맨날 무덤에 들어가 사체 냉장고에 들어가··· 귀신 안 된 게 어디여

- ㅋㅋ 그건 그렇네. 그 노력의 결실 생각하면 감동 받을만하겠다

- 저번처럼 침 바르나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중.

- 에이. 설마 오늘 그런 짓을 하겠어?

- 연우 팬이지만, 그런 면에선 믿음이 안 가.

나는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방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먼지가 쌓여 있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누워도 보고, 누운 채로 팔도 휘저어보며 그 기분을 만끽했다.

“어때? 괜찮지?”

그 말에 마치 물 밖으로 꺼낸 활어처럼.

누운 채로 있는 힘껏 팔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완전! 완전 좋아요 형! 천국 같아요 진짜!”

나는 곧장 카메라를 세워두고 그 앞에 서서 시청자들에게 절을 올렸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형님들. 다 형님들 덕분입니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오냐. 이건 집 사는 기념이다.

순간, 후원 창을 보고 몸을 움찔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카메라에 대고 소리쳤고.

“워어어어어!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형님께서 십만 원으으으으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그리고 말없이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 뭐? 시발.

- 후원해달라고 기다리는 거여 뭐여

- ㅅㅂ 제기랄. 저 망할 놈이 스타트 끊어서 하···

- 해야 됨?

- 저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안 할 수도 없고···

띵동.

[ 남녀칠세부동산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래그래. 그 집에서 오래오래 잘 살아라. 미리 축하한다.

“끼햐아아아아! 남녀칠세부동산 형님께서 오만 원을! 알겠습니다. 잘 살겠습니다 형님!”

물론, 인사가 끝난 후에도 난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 이후.

띵동.

[ 귀신빤스 님이 4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우럭아왜우럭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곳이이젠죽었다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호이가계속되면둘리인줄안다 님이 7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낮말은새가듣고밥말은라면이먹고싶다 님이 8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많은 후원과.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이사할 때 보태 써라. 축하한다.

큰 손 형님의 후원까지 받고 나서야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짓고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 시발 날강도 새끼.

- 얼마를 뜯어가는 거여

- 점점 애가 노골적으로 변해가네

- 옘병. 저 괴물 누가 만들었어?

- 우리가

- 인정.

나는 세리머니로 눈썹까지 실룩 실룩거렸다.

곧이어 남재신이 내게 말을 걸었다.

“연우야. 이제 계약할까?”

꿈에 그리던 새 집과 평생 은인

계약이란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남재신에게로 고개를 홱 돌려 말을 더듬거렸다.

“계, 계약이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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