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206화 (206/225)

선녀보살님의 추천 장소. 14

술을 좋아한다는 어른들만이 찾는 술.

적은 도수가 아니었다.

자그마치 20.1도.

그 술을 단숨에 들이켠 선녀보살님의 볼이 술이 오른 것처럼 맑은 홍조가 자라났다.

“크··· 이게 술이지. 후레쉬는 너무 맹물 같아.”

- 헐?

- 소주 한 병을 원샷 해놓고도 개 멀쩡

- ㅅㅂ 누나 개 쎄네

- 급하게 먹어서 아직 술 오르기 전 아님?

-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 내 여자 자연 홍조 생겼네? 아이고 이뻐!

- 현타 온다. 나는 후레쉬 한 병에도 다음 날 지옥을 헤매는데

- 시벌. 나도 마찬가지.

- 난 다음 날 엉덩이에서 오줌 나오던데

나는 숨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아저씨. 혹시 저랑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매서운 눈알이 나를 향했다.

나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슥 훔쳐내고, 말을 이었다.

“그냥 허심탄회하게 하소연도 하고···”

순간,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단아한 여성의 몸에서 중년의 남성 웃음소리가 호탕하게 울려댔다.

“너랑? 낄낄낄낄.”

새벽 3시가 넘어 4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산 중턱 폐가에서 원한이 잔뜩 서린 귀신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있다면 알 것이다.

웃을 때마다 내 몸에 솜털이 인사하듯, 바짝바짝 선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속으로 생각했다.

으 시벌··· 그 얼굴로 그만 좀 웃었으면 좋겠는데.

“무당 흉내를 제법 낸다만··· 아직 멀었어. 새파랗게 어린놈이 뭐? 나랑 대화를 한다고? 헛웃음이 나온다.”

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설마 나를 무당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곧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저, 저는 무당이 아닌데요.”

그가 갑자기 얼굴에 웃음기를 지웠다.

나를 싸늘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뭐? 무당이 아니라고?”

- 어우 시바. 목소리 개 소름 돋네

- 야. 선녀보살 말할 때마다 클로즈업하지 마 ㅅㅂ

- 우리 여보 목소리를 돌려달라고 쫌!

- 얼굴 매칭이 너무 안 되는 거 아니냐

- 차라리 네 몸에 실었어야지 ㅅㅂ

- 성대모사 몰카는 아니지?

- 대충 술 더 먹여서 성불 시켜! 옘병!

- 도수 더 센 거 없냐? 한 방에 보내게

그는 나와 옆에 있던 남자를 비교하듯, 번갈아보았다.

“가진 기운이 무당 해야 될 팔자인데···”

황당한 그 말에 나는 잠시 굳었다.

내가··· 무당을 해야 할 팔자라고?

아니. 어딜 봐서?

대답할 말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다시 얘기했다.

“그래서 날 어쩌겠다고? 정 얘기하고 싶으면 술이나 한 병 더 내놔.”

나는 재빨리 가방에서 오리지널 한 병을 더 꺼냈다.

손수 뚜껑까지 따서 두 손으로 건넸다.

“수, 술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뭐··· 어쩌겠다는 건 아니고요. 깊은 원한이 있으신 것 같아서 속 시원하게 푸시라는 마음에서···”

띵동.

[ 지킬게있고하이드가있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내가 잘못 들었나? 술을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고?

띵동.

[ 담배하나피고올게요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아이고 내 팔자야. 내가 우리 아들을 잘못 키워도 한참 잘못 키웠어.

선녀보살님의 몸에 빙의된 그가 말을 끊었다.

“난 여기가 더 좋은데? 못난 조카 놈 얼굴도 계속 볼 수 있고.”

순간, 내 몸이 멈칫거렸다.

방금··· 뭐라고 했어? 조카 놈?

나는 자연스럽게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저 눈만 껌뻑거리며 내 옷깃을 꼭 붙잡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에게 고개를 돌려 조심스레 물었다.

“조, 조카라고요?”

그가 대답 대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남자를 노려보았다.

시벌··· 아니. 난 또 무슨 깊은 사연이 있나 했더니···

이승을 떠나기 싫어서 조카 몸에 붙어 있었던 거야?

괘씸한 마음과 함께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 방금 뭘 까라고···

- 엥? 이건 무슨 막장드라마야

- 저 영가가 이 남자 삼촌이었단 소리야?

- 헐. 개 반전이네

- 그래서 이 남자가 연우 동네에서 이 먼 거리까지 왔다 갔다 한 거임?

- 평소에 잘 알고 있던 길이였겠네. 어쩐지.

- 와··· 아무리 그래도 자기 조카 몸에 붙어서 저 지경이 될 때까지···

- 완전히 나쁜 사람이었네. 이거.

처음부터 그가 보였던 그 센 고집들이 떠올랐다.

분노도 살짝 치밀어 오르자, 나는 아까 와는 달리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얘기했다.

“조카 몸에 붙어서 그렇게 사시면 좋으세요?”

“좋아.”

“조카가 그 기운을 못 버티고 힘들어하는데도요?”

“응.”

“저를 만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러실 생각이셨겠네요?”

“당연하지.”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다리는 어느샌가 점차 굳어갔다.

극한의 공포를 분노가 집어삼켜버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사랑하는 가족을 이렇게 괴롭힐 수 있는 거지?

도무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네요. 어떻게 사랑하는 가족한테 이런 행동을 하실 수가 있는 거죠?”

그 순간.

그가 대웅전이 떠나가라 버럭 소리쳤다.

어찌나 역정을 내는지 대웅전 안에 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다 죽어가는 놈 살리려고 갖은 굿과 내 목숨까지 바쳐서 살려놨는데! 고맙다고 인사 한 번을 안 하러 오는 놈들이 무슨 가족! 들짐승들로 인해 묘가 다 파헤쳐졌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을 찾아 오질 않았는데 뭐? 가족? 그게 가족이냐!?”

순간, 내 머릿속으로 옛 기억이 스쳐 떠올랐다.

귀목산의 무덤에서 처음 만났던 그 당시.

야생 들짐승들에 의해 훼손되었던 무덤.

길이 험해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 발길이 뚝 끊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설마 그중에 하나가 이 영가의 무덤이었을 줄이야···

겉면만 보고 냉큼 화를 냈다가 막상 사연을 들으니 내가 다 머쓱해진다.

- 헐. 개 소름

- 저 영가가 삼촌이었다는 것도 소름인데. 더 레전드가 숨겨져 있었네

- 무덤까지 만들어서 묻어주고선 단 한 번을 안 찾아갔다는 거지?

- 그건 조상도 그렇고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 가뜩이나 삼촌이 목숨까지 바쳐서 남자를 살렸다며.

- 무슨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 뭔 사정? 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그렇지 너무 했네

- 남자 색갸! 해명 해라!

- 와. 이거 무슨 진짜 드라마 보는 것 같냐

- ㅎㄷㄷㄷ

나는 재빨리 두 손을 모으고 사과하듯 입을 열었다.

“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일이 있으셨는지 몰랐어요···”

그저 고집이 센 영가가 아니었다.

아주 깊은 사연과 그에 따른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일단 연달아 고개를 푹 숙여대며 사과했다.

선녀보살님의 몸에 실린 그는 이제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려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선천적으로 약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조카 놈. 타고난 신 줄 때문에 앞날이 캄캄했던 너 살리다 이렇게 됐는데! 네 엄마는 그런 나를 쳐다도 보질 않았다! 내가 너무 한이 맺혀서 이렇게 죽은 귀신이 되어서도 이승을 떠날 수가 없다! 아이고! 끅끅끅···”

그는 이내 숨겨놨던 마음을 털어내며 정말 서글픈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얼마나 서럽게 울어대는지 끅끅대는 소리가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잠시 후.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나는 조심스레 남자. 아니 조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삼촌 얼굴 기억하세요?”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는 건 어렸을 때 돌아가신 건가요?”

“그, 그렇다고 들었어요 저도···”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거짓말은 아니구나.

나는 곧이어 선녀보살님의 몸에 실린 그를 힐끗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혹시 어머니에게 무슨 얘기라도 들으신 건 없나요?”

조카는 뭔가를 얘기할 듯 말 듯, 몸을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이내 힘겨운 입을 열었다.

“사, 삼촌이라고 불러야 되나요? 어···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술만 드시면 항상 삼촌이 보고 싶다고 했어요. 하나뿐인 동생이 자기 때문에 억지로 신내림을 받아야 했다면서···”

그의 서럽던 울음이 갑자기 뚝 멎었다.

이내 조카를 빤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거, 거짓말하지 마! 누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 사랑했다면 절대 그럴 수가 없지! 괜한 아부로 나를 이해하는 척을 한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이 여자의 목숨을 끊어버리겠어!”

그가 아까처럼 혓바닥을 길게 뺐다.

나는 흠칫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선녀보살님 입에 넣었다.

“웁!”

- 어? 어! 미친 시벌!

- 지금 내 여자 몸으로 뭐 하는 짓이야!

- 야. 그 손 아까 속옷에 넣었던 손 아니냐 시발.

- 귀신이고 나발이고 그냥 아주 원 펀치 투 펀치 갈비를 싹 다 날려버릴까

- ㅅㅂ 말도 못 하게 이빨을 다 뽑아 버리자 그냥

- 야! 닥치고 그냥 소금에 절여서 성불 시켜!

- 진행 시켜!

- 거기 어디야? ㅅㅂ 내가 간다 지금

- 귀신 되고 싶음?

- 내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순간.

조카가 눈을 질끈 감고 크게 소리쳤다.

“며, 몇 번이고 가려고 했어요! 근데 점점 몸이 편찮아지셔서··· 최근엔 입원까지 하셨어요.”

내 기억 속에 떠오른 그 가파른 길을 생각하며, 나도 거들었다.

“마, 맞아요. 거긴 지금 일반인이 가기에도 너무 벅차요. 길이 너무 험해서 잘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겠더라고요.”

조카가 갑자기 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다.

털썩!

“죄송해요 삼촌. 저는 여태 아무것도 몰랐어요. 연우 씨? 덕분에 이제 알았으니 제가 지금부터라도 삼촌 모실게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그는 조카를 빤히 바라보았다.

조카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뒤늦게 조카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거니, 갑자기 두 팔을 벌려 품에 쏙 안았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

그는 한참을 조카 머리를 쓰다듬더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다.”

나는 반사적으로 술 병을 다시 하나 꺼내 들이밀었다.

어느새 세 병째였다.

“여, 여기 있어요.”

순간, 그의 동작이 뚝 멎었다.

한참을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아니. 우리 누나를 이곳에 좀 모셔 올 수 있겠나?”

-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본 걸까?

- 귀신도 움찔하게 만드는 너란 놈···

- 알콜중독으로 귀신을 성불시킬 계획이었을까?

- ㅅㅂ 지금 내 여자 몸이 혹사되고 있다고!

- 한 병은 또 언제 다 마셨어?

- 말하는 도중에 날름날름 다 먹음

- 선녀보살 정신 돌아오면 사족보행하는 거 아니겠지

순간, 세상이 무너져 내린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하마터면 내쉴 뻔했다.

이 계단을 또 올라오라는 소리잖아···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 순간에도 난 곧장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 처음 영가를 성불시키는 일에 굉장한 뿌듯함을 느꼈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려 했던 걸까? 선녀보살님은···

곧이어 그의 얼굴. 아니 선녀보살님의 얼굴을 보며 대답했다.

“그럼요. 마지막 부탁이신데 뭔들··· 제가 안전하게 이곳에 모셔 오겠습니다.”

어느샌가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린 듯, 그의 얼굴은 활짝 펴져 있었다.

나에게 다가와 한참을 내 두 손을 붙잡더니, 이내 귓속으로 중얼거렸다.

순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있다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바, 방금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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