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보살님의 추천 장소. 13
그 시선과 마주쳤을 땐.
순간, 굉장히 오싹한 소름을 느꼈다.
검은 무복을 입고 양손에 무구 칼을 들고 서 있다.
고개를 높게 쳐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내리깔아 한곳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이 자리에 서있는 세 명 중.
정확하게 나를.
선녀보살님은 그 시선을 감지했는지, 내게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연우 씨. 정신 똑바로 차려요. 자칫하다간 영가가 몸에 실릴 수도 있어요.”
“네, 네! 알겠습니다!”
당찬 내 대답에도 불구하고 날 노려보던 영가는, 흰 자가 잔뜩 보이는 눈과 함께 날 비웃듯 입꼬리를 싹 올렸다.
누구 몸에 실린다고?
시벌··· 나 역시 저 기분 나쁜 영혼이 몸에 실리는 건 극구 사양이다.
- 뭐야?
- 안에 누가 있나?
- 귀신 보고 있는 거 아님?
- 엥? 그럼 방금 안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다 귀신이 한 거?
- 시바. 오늘 잠 못 자겠다.
- 바지에 오줌 지릴 거 가터
- 요실금 있음?
- 오늘 생길 예정
선녀보살님은 천천히 대웅전 안으로 몸을 들였다.
그럴 때마다 영가의 눈이 힐끗힐끗 선녀보살님에게로 향했다.
“그만 경계를 풀고 이리 와서 나와 대화를 하자꾸나. 내 너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나, 얼마나 깊은 한이 서렸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다.”
고스트 박스에선 선녀보살님에게 대답이라도 하듯. 영가의 음성이 터져 흘렀다.
[ 치지지지익- 네가 치지지지이익- 나를 치지지지익- 낄낄 ]
역시나 도움을 주려는 선녀보살님을 비웃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럼에도 선녀보살님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이었다.
“생전에는 나와 같이 사람들을 돕는 무속인이었을 터인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꼬··· 참 딱하도다.”
옷 상태도 그렇고 무구 칼을 부딪히는 소리도 그렇고···
역시나 저 영가는 살았을 적에 흔히 말하는 무당.
무속인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도대체 왜 여기에 이렇게 묶여 있는 것이지?
곧이어 고스트 박스의 음성이 이어졌다.
[ 치지지지익- 닥쳐 치지지지익- 그냥 치지지지익- 죽어 ]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
영가의 음성에는 여전히 잔뜩 화가 묻어있었다.
선녀보살님은 그 음성을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쉽지 않겠네요. 말을 너무 안 듣네.”
나는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고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분위기에 잔뜩 겁먹었는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이 방송을 하기 전에는 나 역시도 저렇게 겁이 많았으니까.
난 남자의 어깨를 살며시 붙잡고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영가에게로 시선을 돌려 중얼거렸다.
“그, 그럼 어떡하나요? 혹시 강제로 못 보내나요?”
강제라는 말에 선녀보살님이 살짝 웃음을 지었다.
“연우 씨. 너무 매정하지 않아요? 저 영가는 생전에 저와 같이 사람들을 돕고 살았어요. 적어도 사연 정도는 들어주고 한이라도 풀어줘서 보내는 게 더 좋은 그림이 아닐까 싶은데··· 왜요? 급한 일이라도 있어요?”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시벌··· 아까 기절 직전까지 갔던 기억이 남아서 일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이 살 떨림에 그저 두렵다···
- 걍 닥치고 쩔 받아
- 앞으로 방송 안 할 거야?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겨
- 종이 꺼내서 선녀보살이 하는 행동들 다 메모해놓으라고 색갸!
- 근데 지금 무구 칼 부딪히는 소리 들리지 않음?
- 헉 ㅅㅂ 진짜네?
- 그럼 진짜 귀신이 생전에 무당이었던 거임?
-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됐느니 뭐니 해도 이런 건 존나 소름임.
- 그래서 뭐 어떻게 되는 거야 이거
조용히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모습의 선녀보살님.
나는 그런 선녀보살님을 한참을 지켜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하나요 이제?”
선녀보살님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곧이어 선녀보살님은 내게 신선한 제안을 했다.
“제가 저 영가를 몸에 실어 드릴게요. 연우 씨가 대화를 좀 해보실래요?”
나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네?!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아니. 내가 무당도 아니고 저 사람을 어떻게 지지고 볶아서 성불시키라는 거야···
나는 말도 안 되는 그 제안에 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손사래까지 쳐가며 얘기했다.
“저, 저는 그런 거 못 해요 형님! 아니. 선녀보살 님.”
저 섬뜩한 영가를 눈앞에서 마주하라니.
소름이 돋아서 대화나 주고받을 수 있을까?
바지에 오줌 안 지린다면 다행이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닥치고 그냥 하라는 데로 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벌··· 이게 무슨 애들 장난이냐!
너는 빤스만 입고 휴대폰만 보고 있으니 내 심정을 알 리가 없지!
띵동.
[ 귀신이고칼로리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이러면 어때?
순간, 내 눈이 살짝 커졌다.
그 반응을 눈치챈 선녀보살님은 옆에서 거들기까지 했다.
“연우 씨?”
하지만, 난 금세 고개를 다시 흔들어젖혔다.
“형님들. 제가 무당도 아니고 저 미친. 아니. 고집 센 영가를 대화로 성불 시킬 수 있겠어요. 저는 절대 못 해요.”
아니. 그냥 안 하고 싶다.
귀신이고 뭐고 내가 왜 저런 섬뜩한 존재랑 대화를 섞어야 하는 건데!
착한 영가들이랑 이리저리 대화 섞는 것도 사지가 후들거린다.
저건 그런 잡귀들이랑은 차원이 다른 존재라고!
혹시나 해서 슬쩍 영가 쪽을 바라봤지만, 나는 금방 눈길을 피했다.
저거 봐 시벌! 아직까지 미동도 없이 나를 죽일 듯이 째려보고 있다고!
오줌 싸겠네 진짜···
그때.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3,0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아까 거 미션금에다 추가 선금이다. 그냥 해.
“크흠. 선녀보살님. 제가 사실 친구들 사이에선 언어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당장 만들어 주시죠. 그 대화의 장이라는 거.”
선녀보살님이 순간, 잠깐 굳은 것 같았다.
말없이 한참 나를 빤히 바라보며 눈을 껌뻑였지만.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이내 무구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 ?
- 시벌. 반전이라는 게 없냐 이 새끼는
- 급 태세 전환에 선녀보살도 사고 정지된 것 같은데
- 근데 너 친구 박필준 밖에 없지 않냐?
- 마술사가 아니라 입벌구겠지.
- 언어의 마술사보다는 주둥이 마술사가 더 어울리는데.
- 그나저나 태세 전환 10 오지네. 개색갸.
- 이제 5만 원은 끄덕도 안 하냐! 내 돈 시바!
- 5만 원에 모든 미션을 하던 그때가 그립구나.
- 하. 내 3일 용돈인데. 시바 색기.
- 후원도 안 했는데 괜히 열받네
그래. 든든한 선녀보살님의 버프도 있는데, 뭐가 무서우랴.
아니. 무섭긴 더럽게 무서운데 그래도 한번 해보자.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천천히 영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잠깐 후원창을 보는 사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주위를 살펴보며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어? 뭐야 시벌··· 혀, 형님들. 얘. 아니. 영가 어디 갔어요?”
띵동.
[ 부릅뜨니숲이었어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
그 순간.
내 옆에서 아주 강한 살기가 뿜어져 흘렀다.
혹시나 해서 옆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는데.
턱!
“억!”
선녀보살님은 다짜고짜 내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다.
그 힘이 얼마나 장사 같은지 하마터면 허공에 들릴 기세였다.
내 옆에 있던 남자는 당황하여 뒷걸음질 쳤고, 순돌이는 선녀보살님을 향해 짖어댔다.
왈! 왈!
“죽어···”
나는 그 와중에도 몸을 움찔거렸다.
놀랍게도 선녀보살님의 입에선 40대나 될법한 중년 남성의 음성이 흐르고 있었다.
뭐야? 벌써 영가를 몸에 실으신 건가?
나는 반사적으로 멱살 잡은 손을 잡았다.
느껴진다.
그 따뜻했던 손이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 뭐야?
- 왜 갑자기 성대모사를
- ㅅㅂ 어떻게 저 이쁜 얼굴에서 굵은 동굴 목소리가 나오는 거지?
- 헐. 레알 귀신을 몸에 실은 건가?
- 시벌. 그게 진짜 가능한 일이었어?
- TV에서 나오는 거 보고 연기하는 건 줄 알았는데, 이건 연기가 아닌데···
- 목소리 어쩔 거야··· 완전히 동네 아저씨가 돼버렸어
- 내 여자 돌려줘! 시발!
- 여보! 그런 목소리 내지 마!
- 시발. 갑자기 홀아비 냄새나는 것 같어
나는 멱살을 잡힌 그 손을 맞잡고 떼어내려 애썼다.
“······시, 시벌··· 형님! 아니. 저기요! 이것 좀 놓고 얘기해요. 숨 막힌다고요!”
영가를 몸에 실은 선녀보살님은 그저 말 없이 날 매섭게 노려보았다.
표정이 싸늘하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그 모습은 마치 방금 전까지 보았던 그 영가와 똑같았다.
“웁···”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나는 점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럴수록 영가를 실은 선녀보살님의 입꼬리는 잔뜩 올라갔다.
“그냥 죽어··· 낄낄낄.”
웃음을 듣는 순간, 내 등줄기에 소름이 쭈욱 타고 흘렀다.
나는 혹여나 선녀보살님의 몸이 다칠까. 아무 짓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대로 보고 서있을 순 없었다.
선녀보살님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주시며 맡긴 이 시간을 헛되어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저 고집 센 아저씨 같은 영가와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순간, 동네 아저씨를 생각하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나는 점점 더 막혀가는 목을 붙잡고 소리쳤다.
“아, 아저씨! 술! 술 좋아하시죠!? 제가 좋은 술 드릴게요!”
동시에 멱살을 잡힌 채로 가방을 뒤적거렸고.
곧이어 어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투명한 마법의 보약인 술병 하나를 꺼냈다.
“이, 이거 그냥 술 아니에요! 오리지널이에요. 오리지널!”
그 순간.
놀랍게도 날 쥐고 있던 멱살이 서서히 풀렸다.
이내 선녀보살님은 술병을 잡아들더니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다.
쉬지도 않고 거침없이 들이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가픈 숨을 내쉬면서도 안절부절못했다.
“어? 시, 시벌··· 그렇게 막 마시면 안 되는데. 그 몸이 아저씨 몸이 아니잖아요···”
머릿속으로 잡다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시벌. 이거 이러다가 더 큰 상황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잠시 후.
소주 한 병을 기꺼이 원샷을 해버린 선녀보살님을 보며 나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그것도 잠시.
반사적으로 가방에 있는 말린 명태를 찢어 입에 갖다주었다.
“비, 빈속에 그렇게 막 드시면 몸 상해요. 이, 이것 좀 드세요.”
- 시벌. 이게 대체 뭔 상황이야?
- 귀신. 취향 저격함?
- 사회생활 잘하네
- 근데 빙의고 뭐고 결국 선녀보살이 마시는 거 아님?
- 그렇게 기가 센 여자인데 술도 잘 마시지 않을까?
- 그래서 연우가 마른안주 입에 갖다주잖아.
- 반사 속도 개 소름이네.
- 19살짜리가 빈속에 먹으면 몸 상한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임?
- 몸에 밴 습관 아니냐 이거?
- ㅅㅂ 오리지널 갖고 다닐 때부터 눈치챘다.
- 신고한다 개색갸!
순간, 그렇게 살기를 내뿜던 선녀보살님은 어디 가고.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시원하게 건치를 내보인다.
“크··· 맛 죽이네.”
“······”
나는 생각했다.
시벌··· 뭐 어떻게든 된 건가?
이제 좀 대화를 할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