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보살님의 추천 장소. 10
남자가 본능적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귀신을 쫓는 비방재료가 쳐다보기만 해도 눈물을 찔끔 흘리게 하는 것들이었으니까.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통을 살피던 남자가 내게 물었다.
“이게 뭐, 뭔데요?”
“비방술··· 당신을 귀신으로부터 지켜줄 유일한 방법이요!”
대웅전 안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남자는 몹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이내 내가 준 통을 받아들었다.
그 때문일까.
다행히도 EMF 측정기는 3단계에서 더 이상 치솟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남자에게 중얼거렸다.
“잘 들어요. 이제 이 산에서 내려갈 거예요. 내려가는 동안에도 절대 그 통을 손에서 놓으면
안 돼요. 아셨죠? 제 말을 듣지 않으면 당신은 여기서 영원한 귀신 밥이 될 겁니다.”
남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겁을 먹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네, 아, 알겠어요.”
말없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 남자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통을 끌어안았다.
- 박력 있다 연우
- 그나저나 남자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건가?
- 목소리가 완전히 바뀐 것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 시벌··· 진짜 그 부적이 효과가 있었던 건가
- 연우 속옷에도 기운이 담겨 있는 거임?
- ㅅㅂ 저 재료도 삭혔다는 건가?
- 뭔지 몰라도 강한 냄새로 쫓아내는 거지
- 성불 안 하는게 더 이상하다 시발.
나는 먼저 앞장섰다.
아니, 죽은 어미 상자 앞에서 머뭇거리는 순돌이를 보며 잠시 멈칫거렸다.
무엇을 원하는 건지 날 보며 낑낑대기까지 했다.
난 대충 알아들은 듯, 순돌이에게 얘기했다.
“하··· 순돌아. 네 엄마를 지금 좋은 곳에 묻어주고 싶은데,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일단 남자를 먼저 선녀보살님께 데려가는 것이 더 시급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나는 중얼거렸다.
“조금만 기다려 순돌아. 형이 다시 와서 네 엄마 좋은 곳에 묻어줄게. 약속한다. 알았지?”
그 말을 건넨 나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려 얘기했다.
“자, 빨리 가시죠.”
우린 서둘러 대웅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앞만 보며 사정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닥.
그렇게 내가 올라왔던 길고 긴 계단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저기요.”
“······?”
나를 부르는 소리에 순간 몸이 멈칫거렸다.
나는 뛰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시, 시벌! 뭐야?”
나무를 짚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나는 다급하게 남자에게 물었다.
“왜,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 뭐야. 부적 역효과인가?
- 얼굴에 새하얗게 질렸는데?
-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거 아냐?
- 증상이 마치 오한이 온 것처럼 벌벌 떨기까지 하는데?
- 헐. 진짜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
- 왜 이러는 건데?
- 연우야. 빨리 어떻게 좀 해봐
남자는 그냥 보기에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려댔다.
게다가 호흡곤란이 오는 건지 숨을 헐떡거렸다.
“머, 머리가 어지러워요. 그리고 수, 숨이···”
“뭐야? 뭐지? 형님들! 귀신은 접근을 못 할 텐데 왜 이런 증상이 갑자기 나타나는 거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뭐야? 도대체 원인이 뭐냐고!
나는 이리저리 남자의 상태를 살펴보다 내가 건네준 통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 설마 쑥 알레르기 같은 거 있어요?”
남자는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잡으며 중얼거렸다.
“네, 네··· 어렸을 때부터요.”
[ 치지지지익- 내몸 치지지지익- 내거다 치지지지익- 죽어 ]
그 새를 놓치지 않고 고스트 박스에선 음성을 뱉어냈다.
시벌. 아직 계단을 내려가기도 전인데···
게다가 저 계단의 길이를 생각하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그때.
참다못한 남자가 재료 통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어? 이런 시벌! 그걸 버리면 어떡해요!”
재료 통은 다시 쓸어 담을 수도 없게 바닥에 다 흩어져 버렸다.
갈수록 태산이다.
그럼에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선녀보살님이 나를 믿고 추천한 이곳에서 이대로 무너질 순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내 몸에 두른 액세서리를 빼내 남자의 몸에 천천히 둘러주었다.
“시벌··· 이건 내 필살기인데··· 그래도 나보다 지금 그쪽이 더 심각하니까···”
- 헐? 필살기를 준다고?
- 야. 여태 네 몸을 지켜주던 건데 그걸?
- 네가 영가들한테 타깃이 되면 어쩌려고 그래?
- 남자가 복수할 기회를 주는 걸수도
- ㅅㅂ 저 남자는 집에 한참 안 들어간 것 같은데
- 그 얘기는 속옷도 며칠, 아니 몇 달을 안 갈아입었다는 거 아냐?
- 이제 짬밥 좀 먹었다 이거냐? 그러다 된통 혼난다 너.
- 연우가 심성이 착해서 그런거잖아
- 자신보다 아픈 사람을 위해 기꺼이 필살기를 건네주는 너란 남자
- 다만, 빙의되지 마라.
- 네 능력을 가진 귀신은 그 어느 누구도 감당하지 못한다.
남자를 지키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표정으로 보아 내가 만든 비방보다 효과는 덜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았다.
“괜찮아요?”
“네.”
“조금만 참아요.”
“네···”
비방 재료 탓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의 몸에는 붉은 반점까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귀신이 아니라 알레르기 때문에 더 큰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데.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점점 뒤처지는 남자의 손목까지 붙잡았다.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에 몸이 멈칫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계단만 내려가면 돼요··· 그럼 안전할 거예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앞만 보고 내려가세요. 아셨죠!”
남자는 호흡이 곤란한 지 대답이 없었다.
우린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남자의 손을 붙잡고 내려가는 20분간은 울려대는 채팅창도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 다급한 상황인지라 다른 소리가 일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입구가···”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끝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이라면 도착했어야 정상인데.
아니, 적어도 저 멀리 끝이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길은 끝이 보이질 않는 거지?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분 탓인가···”
[ 치지지지익- 낄낄낄 치지지지익- 키잌키잌 치지지지익- 죽어 ]
- ?
- 야. 안 보여!
- 너무 정신없이 카메라를 흔들어대니까 보이질 않네
- 시바. 지금 뭐 올림픽 경기하냐!
- 깡패한테서 도망칠 때 내 속도랑 비슷한데
- 그땐 초인적인 힘이 나오더라
- 근데 남자 같이 가고 있는 거 맞음?
- 이 정도 속도면 절대 못 따라가겠는데
- 아니. 얘 엉뚱한 곳으로 가는 거 같아
- 설마 이 새끼 이거 귀신한테 홀린 거 아니야?
- 아까 필살기도 다 남자한테 건네줬잖아
- 야 서봐! 마음이 급해. 연우야 릴렉스!
그렇게 정신없이 한참을 더 내려갔을 때였다.
결국 나는 땀 범벅이 된 채로 자리에 멈춰 섰다.
쉬지도 않고 달렸더니 호흡이 많이 벅찼다.
그제야 가픈 숨을 내쉬며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런데···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 이상하다 싶은 걸 감지했다.
“뭐야··· 시, 시벌. 이럴 리가 없을 텐데···”
그냥 땀인지 식은땀인지 구별되지 않는 무언가가 이마를 타고 흐른다.
분명 나는 대웅전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갔는데.
한참을 내려가도 내 눈앞엔 또 다른 대웅전이 버젓이 놓여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나는 두 눈을 비비적거렸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거 뭐야 도대체··· 왜 내 앞에 대웅전이 또 있는 건데에에에에!”
마치 이 상황은 귀목산의 무덤에서 겪었던 그 증상이랑 너무 비슷했다.
기분이 이상해. 이거 도대체 뭐지?
그 순간.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인마. 정신 차려. 뭐 하는 거야?
순간, 머리에 망치를 때려맞은 듯, 눈앞이 번쩍거렸다.
“어? 형님들···”
- 아니. 너 상태가 좀 안 좋은데?
- 눈이 퀭해진 것 같아
- 숨도 안 쉬고 계단 내려갈 때부터 알아봤다.
- 너 지금 뭐 했는지 기억이나 하냐?
- 갑자기 계단 옆 산속을 빙빙 돌고 있었잖아 인마
- 난 또 귀신한테 홀렸다고
- 귀신한테 홀린 게 맞는 것 같은데?
- 그나저나 남자는 어디다가 버리고 왔어?
- 저 위에 있는 거 아냐?
- 설마 버리고 옴?
나는 뒤늦게 채팅창을 확인하고 중얼거렸다.
아직까지 내 몸에 남은 손의 감촉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무슨 소리예요 형님들··· 오죽하면 내가 손까지 잡고 계단을···”
순간, 내 온몸이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뒤를 돌아봤지만, 있어야 할 남자가 없다.
믿기 힘들게 내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져있지 않았다.
“와아아아악! 시벌! 뭐야? 어디 갔어 이 사람?”
그 감촉은 또 뭐였는데 도대체···
뒤늦게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인기척조차 없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너무 당황스러워 말까지 더듬거렸다.
“어? 어··· 뭐야 도대체. 형님들. 이, 이 사람 언제부터 안 보였어요? 내가 분명히 여기···”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말 더듬지 말고 정신 차리고 호흡해. 너 지금 과호흡 온 것 같은데
그 말이 들어맞 듯, 내 몸이 마음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다.
눈앞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일렁이기까지 했다.
시벌··· 액세서리를 준 것 때문인가?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 것도 모자라 차가운 맨바닥에 아예 대짜로 누워버렸다.
“형님들··· 내 몸이 이상···”
그 순간.
놀랍게도 내 눈앞에선 까만 무언가가 서성거렸다.
동시에 무구방울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몸이 마치 가위에 눌린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과 호흡과 함께 찾아온 어지럼증이 문제 였을까.
원인 모를 문제로 내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 내가 죽인다고 그랬지 ]
사방이 까맣게 물든 그 와중에도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내 귀에 박힌다.
난 그 목소리가 누군지 대번 알아챘다.
남자를 그토록 괴롭혔던 영가였다.
그런데 이 영가··· 설마 생전에 무당이었던 건가?
그 생각이 무섭게, 내 앞에서 중년 남성의 얼굴이 살며시 나타났다.
얇고 진한 눈썹, 쌍꺼풀이 없는 큰 눈과 새하얀 화장.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더욱 섬뜩하게 표현했다.
그 눈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소름이 돋아 오르던지 나는 입 밖으로 신음 소리 하나도 내지르지 못했다.
곧이어 내 귀에는 더욱더 섬짓한 소리가 들려왔다.
챙! 챙! 챙! 챙!
신당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무구칼이 부딪히는 소리.
중년의 남성은 그 섬뜩한 인상으로 날 노려보며 내 가슴 양쪽에 두 다리를 나란히 놓았다.
곧이어 무구칼을 서로 부딪히며 내 가슴팍 위에서 점프를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마치 의식을 하는 것 같았다.
남자는 얼굴을 든 채로 눈을 내리깔며 미동도 없이 나를 잔뜩 노려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
숨이 막혀온다.
무구칼이 부딪히는 소리를 낼때면 정신도 희미해지는것만 같았다.
몸이라도 일으켜 세워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들리던 고개는 금세 다시 떨어져 바닥에 부딪혔다.
털썩!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여기서 죽으면 내가 뭐가 돼···
남자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내 액세서리로 인해 보호받고 있긴 한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수많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잠시 후.
어느샌가 살벌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도 점차 약해지며, 눈앞도 흐려져 갔다.
미약한 신음 소리마저 잦아들고 있던 그때.
다시 한번 누군가가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