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보살님의 추천 장소. 6
“워어어어! 시, 시벌! 온다. 온다고요 형님들!
- 우리도 눈 있어 ㅅㅂ 보고 있다고!
- 뭐야 시벌
- 저승사자인가
- 귀신 아니야?
- 아니, 우리 눈에도 보이는 거 보니까 사람 같은데
- 사람이네
- 엥? 이 시간에 왜 사람이
- 왜 거기 숨어 있어?
- 연우 자객인가?
정체 모를 그 무언가랑 점점 거리가 좁혀진다.
처음엔 귀신인가 싶어, 가방에 있는 천일염을 뿌리려고 자세까지 고쳐잡았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질수록 잔뜩 힘이 들어간 근육이 서서히 풀어진다.
귀신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잠깐만.
“어? 혹시···”
나는 반사적으로 말을 내뱉고, 잔뜩 오르는 소름을 느꼈다.
청바지에 흰 티.
그 위에 바람막이를 하나 걸친 남자는 내가 계단을 올라오기 전 봤던 그 사람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뭐지? 아까 분명히 순돌이랑 사라졌었잖아?
나는 싸늘하게 누워있는 순돌이의 사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이내 남자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사라졌던 그 순간부터 이곳에 숨어 있던 건가?
내가 떠드는 소리가 계속 들렸을 텐데···
굳이 그걸 다 들으면서까지 왜 숨어있었던 거지?
“아까 순돌이 부르셨던 분 맞죠? 저 위에서.”
나는 대웅전 밖 계단을 가리키며 말을 건넸다.
하지만, 남자는 눈이 부시는지 내 헤드랜턴을 가리듯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일단 재빨리 헤드랜턴을 땅바닥에 비추며 사과했다.
“아, 죄,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 헐. 이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 어 맞다! 그래! 나도 이 사람 본 거야!
- 와. 사람 맞았네! 시발
- 사람인 걸 알아도 소름이 돋는 건 왜 그런 거지?
- 이 새벽에 왜 여기 이러고 숨어 있는 거야?
- 개 무섭네
- 정신병자 아니냐? 아님 살인범인가?
- 근데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
-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사과를 하면서도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나를 어떻게 하려고 숨어있었던 건가?
아니면 혹시 이 순돌이의 주인?
자기 반려견이 죽어서 그 슬픔을 못 잊고 여기에 머무는 건가···?
도대체 뭐야?
그럼에도 일단 사람이라는 것에 안심했다.
나는 뒤늦게 고개까지 한 번 더 꾸벅 숙이며, 남자에게 물었다.
“근데 이 시간에 여기 왜 이렇게 계시는 거예요?”
그저 맥아리 없는 몸을 유지하고 있던 남자.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남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 제가 뭘 찾는 중이라서요.”
“뭘 찾는 중이신데요? 어두운데 손전등 하나 없이...”
현재 시각 1시 31분.
새카만 어둠이 완벽하게 산속을 덮고 있는 시간이었다.
반대로 음기가 제일 강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 시간에 폐 사찰에 숨어들어있던 사람과 대면을 하고 있는 기분을 누가 알까.
나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이 사람. 혹시 귀신이라도 씐 걸까.
그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남자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그저 넋이 나간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꺼림칙한 기분을 꾹꾹 참으며, 남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혹시··· 저희 본 적 있지 않나요?”
- 뭐야?
- 그치? 맞지? 이 사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니까
- 시발. 오늘 소름이 몇 번 돋는 거냐
- 그래서 이 사람이 누군데?
- 그걸 지금부터 알아내야지
- 난 모르겠는데··· 도대체 누구지
- 아마 굉장히 오래된 것 같아. 기억이 희미한 거 보면
- 그럼 연우 초창기 방송할 때 마주친 사람인가?
- ㅅㅂ 주작하려고 일부러 숨겨놓은 거 아냐?
남자는 내 눈을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마치 귀신에게라도 홀린 듯, 혼이 빠져나가 있는 듯한 느낌으로 허공에 시선을 뿌렸다.
띵동.
[ 명란젓코난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이 사람 알 것 같아. 명탐정인 내 감에 의하면 200% 확실하다.
나는 문득 울리는 후원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속삭였다.
“누, 누군데요 형님.”
띵동.
[ 명란젓코난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네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사람. 잘 생각해 봐.
나는 남자의 눈치를 보며, 빠르게 속삭이듯 시청자에게 물었다.
“아니 글쎄. 그게 누구냐니깐요.”
띵동.
[ 명란젓코난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방송 주작을 위한 게스트. 네가 섭외한 사람이겠지.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저 시청자를 어떤 귀신으로 만들면 내 속이 편할까···
하지만, 한편으론 이해했다.
이 밤중에 폐 사찰 방안 구석에서 튀어나온 것도 모자라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겐 그렇게 비칠 수 있었다.
“형님들. 저는 주작 같은 거 안 하는 거 잘 아시잖아요···”
그 순간.
내 머릿속으로 한 장소가 문득 스쳐 지나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어! 귀, 귀목산의 무덤··· 그분 맞죠? 거기서 쥐포랑 저랑 있을 때 무덤에서 마주쳤던 분! 그분이잖아요!”
- 어. ㅅㅂ 맞다. 그 사람이다!
- 워어어어 내 몸에 소름 돋은 것 좀 보셈
- 그걸 우리가 어떻게 봄
- 난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데.
- 연우 초창기 때 귀목산의 무덤에서 미션 하다 만난 남자임.
- 그때도 산속에 손전등 하나 없이 왔었음
- 가뜩이나 거긴 산 길이 굉장히 가파른데, 뒤늦게 따라가보니 사라졌었어
- 헐 시벌. 귀신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었어?
- 근데 그 사람이 왜 여기 있어?
- 야 느낌이 달라. 걍 범죄자라니까. 눈이 약한 것 같잖아
모든 게 혼란스럽다.
그때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게다가 거기서 여긴 차 타고 1시간 거리였다.
그때.
남자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대답에 영혼이 없다.
그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자꾸만 인상이 찌푸려진다.
이 늦은 시간에 산속을 손전등 하나 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그저 공포스럽다.
나는 조심스럽게 EMF 측정기를 꺼내 확인했다.
“······”
놀랍게도 EMF 측정기는 4단계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벌··· 실화냐 이거.
설마 귀, 귀신 들린 건 아니지?
나는 심장이 쿵쾅대는 그 와중에도, 일단 남자의 증상을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계속 던졌다.
“호, 혹시 순돌이랑은 어떤 관계이신가요?”
순간, 남자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것도 잠시, 남자의 고개가 천천히 상자 쪽으로 돌아갔다.
그 분위기가 마치 다른 사람 같았지만 나는 숨죽이고 그를 지켜봤다.
남자는 한참을 싸늘한 사체를 쳐다보았다.
이내 갑자기 그 사체에게 다가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죽은 순돌이의 얼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
저 남자가 키우는 반려견이었던 건가?
남자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죽은 순돌이의 얼굴을 계속 쓰다듬어댔다.
- 순간 분위기가 바뀐 것 같지 않음?
- 딴 사람 인줄
- 뭐야 도대체?
- 아니, 눈이 무슨 죽은 생선 눈깔 같다고
- 헐. 이 남자 처음 봤을 때 내가 채팅으로 그런 소리 했는데
- 사람이 사람 눈을 쳐다봐야 되는데 엉뚱한 데를 쳐다보고 말하자나
- 백 프로 미친놈이다. 연기하는 거라고.
- 오늘도 조심해라 연우야.
- 그때도 말했지만 갑자기 이러다가 칼이라도 꺼내서 휘두르면···
- 그럼 저 남자가 죽겠지
- ㅇㅇ. 연우가 귀신 만듬.
한참을 남자의 행동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야. 그냥 미쳤다고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부분이···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 직접 키우시는 강아지인가 봐요. 반려견 이름이 어떻게 돼요···?”
순간, 남자의 고개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곧장 다시 되물었다.
“반려견 이름이요. 혹시 모르시나요?”
이번엔 남자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뭐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강아지라며 죽은 사체를 쓰다듬고 있던 남자였다.
그런데, 이름을 모른다고?
주인이 아니란 소리잖아.
이 사실을 모르는 남자는 흐리멍덩했던 눈으로 그저 강아지를 예쁘게 쓰다듬고 있다.
“우리 강아지 예쁘다···”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갑자기 남자의 몸에서 살기가 흘러넘쳤다.
아니, 살기만 넘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난잡한 기운이 풍겼다.
조심스레 EMF 측정기를 들어 확인해 봤는데.
역시나 EMF 측정기는 2단계부터 4단계까지 아주 정신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시벌··· 이거 설마···
그때.
“아이고···”
남자의 눈빛이 바뀌었다.
눈매가 날카로워지는 것도 모자라 미동도 없는 그 매서운 눈빛으로 사방에 시선을 뿌렸다.
마치 무언가를 찾듯이.
잠시 후.
남자의 입에선 기괴하게도 술 취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씨발··· 사업 잘 되게 해달라고 여기에 얼마나 돈을 많이 쏟아부었는데 이런 개새끼들이···”
순간, 얼음 물을 끼얹은 것처럼 나는 그 모습을 쥐 죽은 듯이 지켜보기만 했다.
- 헐, 뭐지?
- 금세 딴 사람이 돼버렸네
- 눈빛 봐. 개 살벌하게 바뀜
- 술 취한 동네 아저씨 같은데?
- 혼란스럽다. 뭐지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 뭔가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지 않아?
- 아까는 순돌이 주인이었다가 이제는 술 취한 아저씨.
- 존댓말이랑 반말 섞어 하는 것도 그렇고 뭔가 상태가 이상해.
- 일단 조심하자 진짜.
수많은 빙의 현상을 봤지만, 이런 상황을 겪어본 건 처음이다.
머릿속이 혼란스럽지만, 그 순간 선녀보살님의 말이 떠올랐다.
[ 수많은 영가들이 배외하고 있어요. ]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렸다.
“형님들··· 아무래도 보통 심각한 게 아닌 것 같아요···”
나는 마른침을 한번 꿀꺽 삼킨 후,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의 몸에 여럿의 영가가 드나드는 것 같습니다.”
띵동.
[ 미션임파선염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게 가능한 거냐?
순간, 남자의 고개가 내 휴대폰 쪽으로 홱 돌았다.
나는 울리는 스피커를 손으로 잽싸게 막았다.
다행히도 미동도 없이 휴대폰을 째려보던 남자는 다시 혼자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씨발. 술 어딨어. 술!”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이 남자는 다중인격.
즉, 저 남자의 몸은 수많은 영가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 같다.
그때.
남자의 눈빛이 한 번 더 변했다.
이번에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렸다.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숨죽이고 그를 지켜봤다.
그런데···
“허···”
남자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애들이 가지고 놀법한 장난감 칼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화려한 불빛에다 소리까지 나는 장난감 칼.
나는 벙찐 표정을 하고 남자를 주시했다.
남자가 신난 듯 대웅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흥얼거렸다.
“얍! 얍! 너희 같은 악당은 정의의 힘으로 내가 처리하겠다!”
역시···
방금까지 술 취한듯한 중년의 남자의 목소리를 내던 남자.
지금은 어느새 4살, 5살가량의 어린아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너무나도 리얼한 그 나이 때의 음성을 말이다.
혹시나 해서 남자의 눈빛을 살펴보지만.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엔 세상 너무나도 진지했다.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장난감 칼을 이리저리 내 몸에 휘둘러댔다.
- ?
- 저거 장난감 칼 아님?
- 시벌. 연우 칼 맞는 줄 알았네
- 야. 연우야 솔직히 말해라. 이거 네가 짠 거지?
- 아니지. 선녀보살이 짠 건가?
- 남자 표정이랑 눈빛으로 봤을 땐 도저히 연기가 아닌데?
- 그럼 도대체 이 상황이 뭔데?
- 남자 상태가 이상하다
- 연우야 뭔데 이거 도대체
어찌 보면 장난스러운 상황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남자의 상태가 너무나 심각해 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확신하지 못했지만, 또 한 번 바뀐 남자의 행동에 나는 얼굴을 굳혔다.
남자의 엉덩이가 심하게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개가 꼬리를 흔드는 모습과 같았다.
순간, 난 생각했다.
이 부름에 반응한다면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남자를 불렀다.
“순돌아?”
그 순간.
남자는 혓바닥을 내밀고 기괴스럽게도 짐승의 음성을 냈다.
“왈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