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95화 (195/225)

선녀보살님의 추천 장소. 3

나는 선녀보살님이 써주신 미션 부적을 빤히 바라봤다.

“미션 부적이 말이냐고···”

짧은 한숨까지 내뱉은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휴··· 결국 가서 귀신 만나라는 거잖아···”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래도 일단 새 부적 얻었잖냐. 쌤쌤해라.

난 곧장 속옷을 살짝 들춰보고, 이내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읍··· 그건 그렇긴 한데···”

하긴, 이 부적들이 없었다면 난 위험천만한 일들을 겪었을 테니까···

- ㅅㅂ 뭘 보고 만족하는 거야.

- 속옷 들출 때 카메라로 비추지 말라고 시발.

- 그나저나 선녀보살은 무슨 의도로 미션 부적을 써준 걸까.

- 말이 미션 부적이지. 결국 그냥 자기 일 떠넘기기 아님?

- 그럴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 시벌. 내 여자를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지껄여!?

- 미친. 무슨 네 여자야? 선녀보살은 네가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 귀신이 되셈. 귀신 되면 기억 정도는 해줄 듯.

- 그래? 그럼 목표가 바뀌었다.

- 선녀보살이 기억해 주는 귀신 되기?

- ㅇㅇ ㅋㅋ

나는 내가 가야 할 뒷산을 쭈욱 훑었다.

하필 내가 올라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니, 산 전체에는 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했다.

항상 있는 일이기도 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나는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다 다행히도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게끔 잘 가꿔놓은 길 하나가 눈에 띈다.

“그래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던 길인가봐요 형님들.”

현재 시각 9시 54분.

현재 시청자 수 1363명.

한참을 이리저리 산을 살펴보던 나는 결국 발걸음을 뗐다.

“그럼 형님들. 천천히 한번 올라가 볼게요.”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이리저리 산속을 경계하며, 성큼성큼 산을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선녀보살님의 신당을 나오기 전.

여러 가지 말씀 중에 하나가 자꾸만 떠오른다.

[ 신령님께서 말씀하시길. 꼭 연우 씨가 가셔야 한다고 하네요. ]

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걸까.

“그나저나 형님들. 선녀보살님이 말해주신 그 영가는 또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요. 형님들도 궁금하시죠?”

- 아니. 우린 그냥 네가 놀라는 게 보고 싶은데.

- 인정. 오늘은 또 어떤 리액션을 보여줄지 궁금.

- 그 리액션을 극대화하려면 아까 부적 못 받게 했어야 했는데 아쉽···

- 하. 있는 돈 다 끌어모아서 미션 줄까 하다가 참음.

- 나랑 같은 생각이었군.

- 이런 악마 같은 자식들.

나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보며 물었다.

“형님들. 저를 좋아하는 게 맞긴 한 거죠?”

호기심 1%, 긴장 49%, 두려움 50%···

사실 사연이고 뭐고 그냥 안 마주치면 정말 좋을 것 같긴 한데.

이왕 마주칠거면 부디 내게 호의적이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생긴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을까.

무언가가 내 눈에 띄었다.

“어?”

시멘트로 만들어진 계단이었는데 오래되었는지 여기저기 깨져있는 곳이 많았다.

“계단이다! 다 온 것 같은데요 형님들!”

선녀보살님의 말대로라면 계단을 다 올라서게 되면 그 집이 보인다고 하셨다.

그런데···

난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쭉 훑으며 반사적으로 얼굴에 웃음기를 지웠다.

“시벌··· 이건 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한눈에 보아도 200m. 아니, 그 이상일 것 같은 길이의 계단이었다.

이런 계단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도대체 이런 계단은 누가 만드는 거야?

나는 계단에 한 발을 내딛고, 몸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모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이거 계단 올라가다 지쳐서 귀신 되는 건 아니겠지?”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선녀보살님은 역시 우리를 실망 시키지 않는다.

띵동.

[ 우럭아왜우럭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인정. 그런 선녀보살님에게 영상편지 ㄱㄱㄱ

순간, 이를 악 물었다.

곧장 카메라를 노려보며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보고 계시죠? 선녀보살님. 제가 운동 부족인 것 같아 체력훈련도 시켜 주시고···”

- 선녀보살 왈. 고맙지 새꺄?

- 어쩔티비 저쩔티비 그래봤자 암것도 못하쥬? 킹받쥬?

- 최고다. 이게 미션이지.

- 암 그렇고말고. 밥 먹듯이 쉬우면 그게 미션이겠냐

- 이 계단 올라가기 싫어서 너 시킨 것 같기도.

- 나 같아도 딴 사람 시키겠닼ㅋㅋㅋ

- 계단이 시벌. 뭐 끝이 보이질 않네.

- 안개까지 껴있으니 진짜 지옥으로 가는 계단 같다.

- 근데 솔직히 그동안 도움만 줬잖아. 이 정도는 해주자.

- 인정. 넌 껌이잖아.

- 흐뭇하게 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을 선녀보살이 그려진다.

간단한 영상편지. 아니 하소연을 내뱉은 나는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터벅.

그렇게 20분쯤을 계단을 올라갔을까.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바라보며 나는 눈을 질끈 감고 허공에 소리쳤다.

“으아아아아! 도대체 이 계단은 얼마나 올라가야 끝이 보이는 거야아아아!”

[ 보이는거야아아아. 거야아아아. 거야아아아. ]

내 소리가 산속에서 메아리치며 고스란히 돌아온다.

그 순간.

딸랑. 딸랑.

“와아아아악! 시벌 깜짝이야!”

눈을 뜨자마자 나는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점프까지 뛰었다.

내 앞에 대형견 한 마리가 앉아서 날 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웬 오밤중에 개가 산속에 있는 거야?

나도 모르게 소름이 잔뜩 돋아 오른다.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위를 재빨리 살펴보다 개에게 중얼거렸다.

“뭐, 뭐야 너는? 왜 이 한밤중에 여기 있는 거니? 주인은 어딨어?”

내 두려움과 반대로 개는 너무 순했다.

하지만, 개의 상태가 그리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목욕을 한지 오래되어 털이 걸레짝처럼 축축 늘어져 있었으며, 한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는지 몸이 삐적 말라 있었다.

나는 대형견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다 목줄에 붙어있는 낡은 이름표를 발견했다.

“순돌이? 주인이 있는가 본데··· 근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 와. 개 깜짝 놀랐네

- 방울 소리. 귀신 소리인 줄 알고 개 깜놀

- 난 카메라 바로 앞에 개 얼굴이 클로즈업 돼있어서 식겁했다.

- ㅅㅂ 야생 늑대인 줄.

- 뭐야? 이 개는 왜 이 시간에 여기 있어?

- 길이 잘 다듬어져 있는 것 보니까 등산객이 버렸나?

- 아니면 산속에 또 누가 사는 거 아니냐? 저번처럼

나는 카메라를 보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근처에 살고 있었으면 얘가 이렇게 굶고 있진 않겠죠.”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상처 같은 거 있나 확인해 봐. 학대 당한 흔적 있으면 백퍼 버린 거지 뭐.

“음··· 아니에요. 아무리 봐도 학대의 흔적 같은 건 보이지 않아요. 아니, 잠깐만요.”

나는 대형견의 발로 시선을 돌렸다.

발톱이 많이 갈려있는 것도 모자라, 땅을 잔뜩 파헤쳤는지 발이 온통 흙투성이다.

“얘 발이 완전히 흙투성이에요. 뭐 먹을 것을 찾으려고 했던 건가? 야생 멧돼지나 고라니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에 나는 순돌이에게 물었다.

“순돌아. 안 되겠다. 너 집이 어디야? 집에 가자. 형이 데려다줄게.”

띵동.

[ 모르는개산책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뭘 데려다줘. 꼼수 쓰지 마라. 일부러 그 핑계로 산 내려가려고 그러지 너.

띵동.

[ 닭큐멘터리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집사 10년 차의 감으로 봤을 때, 산속에 맴도는 거 보니 분명히 이 근처에 집이 있을 거다.

나는 괜한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아, 아니거든요 형님들. 순돌이 집에 보내주고 다시 올라오려고 했거든요!”

- 하여튼 간 구라는

- 한밤중이라 산에서는 개를 만나도 식겁하긴 하겠다.

- 저 개가 난폭한 성격이었다면 사고 났겠지.

- 응 아니야. 연우 로우킥에 개 귀신 됨.

- 그건 그렇네. 연우가 물릴 일은 없겠구나.

- 근데 뭐냐 도대체?

- 누가 버렸어도 개는 후각이 뛰어나서 산속에 박혀있을 일은 없을 텐데.

- 주인이 혹시 죽었거나 한 거 아니야?

- 에이 설마.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찝찝한데, 그런 일이 생긴다면 기절할 것 같은데···

앞 뒤 사정은 모르지만, 일단 배고파하는 순돌이를 위해 나는 가방에 든 말린 명태를 꺼내 건네주었다.

“배고프지? 일단 이거라도 먹어.”

내가 꺼내준 명태를 보자마자 안달 난 순돌이.

꼬리가 떨어져 나갈만큼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아그작. 아그작. 아그작.

쩝쩝쩝쩝.

챙겨온 물까지 건네자 어찌나 목이 굶었는지 생수 한 통까지 금방 비워버렸다.

나는 안쓰러운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네가 한밤중에 여기 있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가 대체 뭘까?”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순돌이가 계단 위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딸랑. 딸랑.

[ 이리와 ]

동시에 내 귀가 움찔거렸다.

“워어어어! 시발. 뭐야 방금?”

학생, 아니 학생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듯한 중후한 목소리.

소리가 난 곳을 유심히 살펴보던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형님들. 방금 소리 못 들으셨어요?”

- 뭔 소리?

- 딸랑딸랑 개 목줄에서 나는 소리 들렸는데

- 얘는 그 소리 말고 다른 소리 얘기한 것 같은데?

- 아니, 맨날 지 혼자 듣고 우리 보고 못 들었냐고 그럼 어케해?

- 나도 FPS 사플 랭커인데. 안 들린다고 시발!

- 난 이어폰 30만 원 짜린데 고양이 소리랑 고라니 소리만 들리는데?

- 들리긴 한다. 개가 헥헥 대는 소리.

나는 계단 끝을 콕 집어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계단 끝에서 남자 목소리로 ‘이리와’라고 얘기하는 걸 분명 들었는데···”

나는 한참을 계단 끝을 바라보다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근데 기분이 이상해요··· 남자 목소리가,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띵동.

[ 귀신빤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정신 차려 인마. 벌써 귀신한테 홀렸냐?

그 순간.

[ 이리와 ]

내 몸이 한 번 더 멈칫거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입을 틀어막으며 계단 끝을 보며 소리쳤다.

“시, 시벌! 또! 또 들렸어. 남자 목소리!”

동시에 순돌이가 마치 부름에 답하듯, 계단 위로 튀어 올라갔다.

타닥! 타닥! 타닥!

- 어우 깜짝이야. 쟤 왜 저래.

- 뭐야? 순돌이 왜 튀어 올라가? 진짜 사람이 있나?

- 에이. 자정이 넘은 이 시간에?

- 말이 되나?

- 연우가 이리와 들었다고 하자마자 왜 순돌이가 튀어 올라가는 건데!

- 이젠 하다 하다 개까지 섭외하냐 저색기!

- 아냐. 이제는 괜히 저놈 땜에 헛것까지 보이는 것 같다.

- 계단 위에 사람 같은 거 보이는 것 같지 않아?

- 어! 시발! 그런 것 같다!

- 여기 119좀 불러주세요.

시청자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남자의 형상이 보였다.

아니. 분명 남자였다.

내 눈에 낯익은 옷차림의 남자는 잠시 나를 쳐다보는가 싶더니, 순돌이와 함께 안갯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사람?

잠시 망설이던 나는 서둘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그렇게 숨도 제대로 고르지 않고 순식간에 계단을 다 올랐을까.

가파른 숨을 내쉬며 눈앞을 살펴보자, 안개 사이로 집 하나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 무언가를 자세히 살펴보자마자 몸이 굳어버렸다.

맞배지붕으로 된 다포계 건물.

잘 다듬어진 기다란 받침돌로 만든 기단 위에 기둥 자리를 조각한 주춧돌을 놓고 둥근 기둥이 세워져있다.

이 가운데 측면 중앙 기둥만 사각인 기둥.

황토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등등···

알록달록한 색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집.

난 그 집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 시벌··· 여기 설마··· 사, 사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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