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보살님의 추천 장소. 2
“오우!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순간 벙찐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녀보살님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그것도 방송에서 얘기했었지···”
- 얘도 가끔 보면 약간 덜떨어진 느낌이 든다
- 천재와 바보 사이를 아주 교묘하게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랄까.
-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매력 없다.
- 인정. 근데 선녀보살 고개 까닥이는 거 넘 귀여운 거 아니냐
- 단아함과 사랑스러움이 공존하는 외모
- 하··· 결혼하고 싶다.
- 님. 맨날 귀신이랑 한바탕 해야 되는데 괜찮?
- 시벌. 내 여자가 선녀보살이라면 감당해야지
선녀보살님이 웃으며 내게 얘기했다.
“제가 추천하나 해드릴까요?”
“선녀보살님이요?”
“네.”
항상 믿고 따르는 선녀보살님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망설였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컨텐츠가 큰 걸림돌이었다.
결국, 귀신이 득실대는 폐가나 흉가를 탐험하는 방송을 해야 하니까.
띵동.
[ 안토니오밥다됐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닥치고 받아 개색갸!
띵동.
[ 미션임파선염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안 받음 너부터 귀신 만들껴!
나는 서글픈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당연히 나를 위험한 곳으로 보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싫어··· 싫다고.
차라리 내가 알아보고 가는 게 조금 더 낫지 않을까?
띵동.
[ 버뮤다삼각팬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콜이라고 얘기하면 5만 원.
“코, 콜! 무조건 콜!”
난 반사적으로 대답을 외치고 화면을 보고 멍 때렸다.
띵동.
[ 버뮤다삼각팬티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OK 좋아. 선녀보살님 한국에서 제일 빡센 곳으로 보내주세요.
곧이어 팔을 번쩍 들고 리액션을 하다 말고,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우워어어! 버뮤다 형님께서 삼각팬티를···”
- ?
- 삼각팬티를 뭐?
- 삼각팬티 좋아하는 줄 몰랐네. 다음부턴 후원 말고 삼각팬티 줘야긋다.
- 지가 입었다는 거 아냐?
- ㅋㅋ 표정 급 정색하는 거 개 웃기네
- 한국판 짐캐리라니까
- 저놈 저거 긴장했다
- 마른침 꿀꺽 삼키는 소리 여기까지 들림
- 근데 진짜 선녀보살님이 추천을 해준다고? 레알?
- 과연 어딜까? 뭔가 되게 기대되네.
나는 다급하게 머리를 흔들며 수습했다.
“아니 스읍. 버뮤다삼각팬티 형님 후원 감사하다고 말하려다가 실수를··· ”
그리고 살며시 선녀보살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날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계신다.
도대체 왜 저렇게 웃으시는 건데···
머릿속에 수십 가지 생각이 맴돈다.
나는 괜히 걱정스러운 마음에 카메라를 보고 아양을 떨어댔다.
“에이 설마··· 제가 제일 존경하는 선녀보살님인데 3대 흉가 같은 그런 험한 곳을 저에게 추천해 줄 리가 있을까요 형님들? 선녀보살님과 저와의 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녀보살님이 끼어들었다.
“비슷하긴 해요.”
“······”
순간, 잠깐 숨이 막혔다.
뭐가? 도대체 뭐가?
3대 흉가랑 비슷하다고 한 거야 지금?
이런 시벌. 뭐 개나 소나 3대 흉가랑 다 똑같아! 뭔데!
나는 나라를 잃은 것처럼 허탈한 표정을 짓고 몸을 축 늘어트렸다.
“지, 진짜인가요 선녀보살님.”
“네.”
“······”
그 말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고, 선녀보살님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 선녀보살의 연우 귀신 만들기 프로젝트
- 자,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 과연 장소는 어디?
- 이왕이면 진짜 빡센 곳으로
- 연우 놈. 깡 좀 늘었다고 잡귀는 거들떠도 안 봐요!
- 인정. 이번에 MAX 영가 성불시켰다고 너무 기세등등 해졌어
- 오랜만에 초심 좀 찾자.
하···
나처럼 귀신 보고 한결같은 리액션이 나오는 사람이 있나 찾아봐라.
콩알 딱지만 한 내 소녀 심장은 언제나 초심과 같다고!
선녀보살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얘기했다.
“제가 주소를 하나 알려드릴게요. 이번엔 그쪽으로 한번 가보세요.”
“주소··· 음. 거기가 혹시 어딘지 미리 알려주실 수 있나요? 산속인지? 아니면 섬인지?”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연우 왈. 어디여도 상관없습니다. MAX 영가도 성불 시킨 남자니까요. 시벌!
띵동.
[ 귀신빤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연우 왈. 무덤 속이든 사체 냉장고 속이든 이젠 식은 죽 먹기죠. 전 그런 남자니까요. 시벌!
선녀보살님은 후원창으로 고개를 슥 돌리더니 얘기했다.
“그렇다는데요? 하하.”
“······”
선녀보살님이 손으로 웃음을 가리며 말을 이었다.
“대신 제가 오랜만에 좋은 부적들 써드릴게요.”
순간, 내 눈에 이채가 어렸다.
“부적요? 진짜요?”
선녀보살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얘기했다.
“이쪽으로 다시 따라 들어오세요.”
“네, 네!”
잠시 후.
신당으로 들어오자마자 선녀보살님은 내게 얘기했다.
“일단 지금 가지고 있는 부적들을 다 꺼내어 저한테 주세요. 그 부적들은 이미 기한이 오래되어 이미 효력을 다 해가니까요.”
아하.
전에 부적들을 새로 싹 갈아주시려는 건가?
완전 개꿀!
나는 흔쾌히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잽싸게 속옷에 감춰둔 부적들을 꺼내어 선녀보살님에게 두 손으로 드렸다.
선녀보살님은 부적들을 보고 사고가 정지된 듯, 한참을 멈춰있더니.
뒤늦게 내게 쓰레기통으로 보이는 곳을 가리켰다.
“아니, 이쪽으로 ‘직접’ 넣어주세요.”
- 이 미친놈이 누구한테 속옷에 감춘 걸 주는 거야
- 너 변태냐?
- 씻기는 한 거야 시벌?
- 원래 부적이 저 색깔이었나?
- 시발. 부적이 노란색이라 이거 뭐 티가 나야지.
- 오죽하면 선녀보살님도 순간 이걸 받아야 되나 고민한 것 같은데.
- 선녀보살을 당황하게 하는 재주가 있네
- 국내 유일할 듯
- 아니 지구에서
나는 쓰레기통에 여태 가지고 있던 부적들을 다 넣었다.
선녀보살님은 부적들을 금세 다 태워버렸고.
새로운 부적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한 번도 쉬질 않고 20분 내내 부적을 쓰던 선녀보살님이 드디어 동작을 멈췄다.
“후··· 오랜만에 많은 부적을 쓰려니까 힘드네요.”
“본의 아니게 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이게 다 저희 신령님께서 연우 씨를 예뻐하기 때문에 해드리는 거니까요.”
나는 신령님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곧이어 선녀보살님이 써주신 부적을 내게 건넸다.
총 여섯 장.
만사대길부 ( 萬事大吉符 ).
재수대통부 ( 財數大通符 ).
관음성취부 ( 觀音成就符 ).
총명부 ( 聰明符 ).
득자신부 ( 得自信符 ).
이것까지는 저번과 같은 부적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 장. 이건 처음 보는 부적인데···
“어라? 선녀보살님. 이 마지막 부적은 뭔가요?”
선녀보살님이 웃으며 내게 얘기했다.
“미션 부적이요.”
“네? 미, 미션 부적이요?”
나는 화들짝 놀란 눈을 하고 선녀보살님을 빤히 쳐다봤다.
- 컹.
- 이젠 선녀보살에게 까지 미션 받는 연우.
- 무당이 주는 미션은 대체 어떤 미션인 거냐.
- 생각지도 못한 전개라 이거 나도 당황스럽네
- 갑자기 선녀보살이 연우 보고 무덤 속에 들어가라는 건 아니겠지.
- 사체 냉장고 안에 가둘셈인가?
- 그건 그거 나름대로 반전이라 재밌긴 하겠네
- 도대체 뭐냐
그때.
선녀보살님이 웃음기를 지웠다.
그리고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장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거기 가시면 유독 원한이 깊은 영가 하나가 있을 겁니다. 그 영가를 조심하세요.”
“······”
뭐야. 하나가 아니라는 건가···?
이게 담력 훈련. 아니, 무당 만들기 프로젝트도 아니고.
굳이 왜 그런 곳에 나를 보내려고 하는 거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조심스레 물었다.
“저, 정말요? 그런데 왜 그런 곳에 저를···”
선녀보살이 말을 이었다.
“연우 씨는 앞으로도 이 방송을 꾸준히 하신다고 하셨죠?”
“네.”
“그래서 필요한 절차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 응? 네? 그래서 필요한 절차라고요?”
“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아니, 모든 걸 떠나서 그래도 수많은 영가들이 있는 곳에 왜 나를···
나는 믿기 힘든 선녀보살님의 말에 괜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말을 더듬거렸다.
“하하. 선녀보살님. 농담도 참··· 이거 몰카죠? 제 방송 보고 몰카 하시는 거죠?”
선녀보살님은 진지한 표정을 유지한 채, 나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 무당이 몰카를 왜 해?
- 몰귀면 몰라도
- 몰래 귀신 만들기?
- ㅇㅇ. ㅋㅋㅋㅋㅋ
- 그냥 알았다고 하고 귀신이 돼라.
- 아니면 무당이 되든지
- 이름하여 너 내 동료가 돼라 프로젝트.
- 설마 너도 귀신왕이 목표는 아니겠지?
내가 얘기했다.
“원한이 깊은 영가가 있다는 건 그곳이 음기가 엄청 강하다는 말이죠?”
“네.”
“그곳에 제가 미션 부적을 가지고 가야 한단 말씀을 하시는 거고요?”
“네.”
짧은 한숨을 내쉬자 선녀보살이 내게 쪽지를 건네주며 얘기했다.
“가보시면 알게 될 거예요. 제가 어떤 의미로 연우 씨를 그곳에 보냈는지.”
받은 쪽지에는 상세한 주소가 적혀 있었다.
신좌동. 1351-31···
나는 주소를 읽다 몸을 멈칫거렸다.
“어? 신좌동이라면··· 이 동네 아닌가요?”
선녀보살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나가서 저희 뒷동네 산으로 한참 올라가시면 돼요. 가깝죠?”
“······그, 그건 불행 중 다행이네요.”
음···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자 답이 나오는 것 없었다.
선녀보살님 말대로 일단 그곳에 가본다면 뭐라도 답이 나오겠지.
나는 부적을 소중하게 챙겨 속옷 안에. 아니. 일단 주머니에 넣었다.
곧이어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가려는데···
“잠시만요. 연우 씨.”
“······??”
선녀보살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마지막 당부를 건넸다.
“그곳에 가시면 그 주위를 배외하는 영가 중 남자 영가 하나가 있을 거예요. 머리는 스포츠 형에다 눈썹이 짙고··· 그리고 키는 170 정도. 그 영가를 성불시켜야 합니다. 일단 소통해 보시고, 정 소통이 안 되시면 부적을. 아니. 도망치셔도 돼요.”
“저 이제 귀신 보고 도망치지 않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내고 꼭 성불 시키고 돌아오겠습니다.”
그 대답에 그제야 선녀보살님은 환한 웃음을 내게 보이셨다.
나는 선녀보살님과 신령님께 다시 한번 폴더인사를 건네고.
“그럼 이만···”
근엄한 이순신 장군 같은 표정을 하고 위풍당당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드르륵.
쿵.
- 남자다.
- 오우. 색다른 모습인데
- 이 녀석 진짜 많이 컸다니까
- 뭔가 당당하고 남자다워진 그 모습에 우리가 다 뿌듯하다.
- 우리가 연우 하나만큼은 정말 잘 키웠다 진짜.
- 인정. 허구한 날 빤스런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 우리가 사랑하는 유트버가 이 정도는 돼야지.
- 야 그 표정 그대로 아직 신에게는 열 두척에 배가 있사옵니다 한번 해봐라.
- 넌 죽어도 흉가에서 죽을 거냐?
잠시 후.
나는 선녀보살님의 집에서 벗어나자마자 자리에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털썩.
그리고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하··· 이젠 선녀보살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