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보살님의 추천 장소. 1
별일 없으려나?
아니야. 선녀보살님이 말하길.
한 번 귀신이 들렸던 물건의 경우엔, 그 귀신이 떨어져 나가도 다른 잡귀들이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하··· 다시 가지러 가야 되나···”
하지만 나는 결국 다시 자리에 누웠다.
털썩!
몸이 너무 지쳤다.
나는 괜한 혼잣말을 중얼중얼 거리고는.
“알려드린 비방만 잘 하고 계신다면···”
잠에 들어버렸다.
***
20분 같은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휴대폰에선 최근에 내가 직접 녹음한 18번 노래가 귓속으로 울려 퍼진다.
[ 외로워도우워 슬퍼도우예 나는 안 울어. 후우! ♪ 참고 또 참지이예 울긴 왜 울어우워 ]
“벌써 학교 갈 시간이라고? 진짜 20분 잔 것 같은데··· 흐암.”
그럼에도 나는 오뚝이처럼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처럼 크게 기지개를 폈고 온몸을 스트레칭했다.
일어날 땐 한없이 피곤하고 졸리지만, 막상 일어나면 에너지가 번개 같은 속도로 샘솟았다.
간단한 몸풀기가 끝난 나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잠깐만··· 어제 자기 전에 뭘 깊게 걱정했던 것 같은데···”
3초 뒤.
“아 시벌! 가발!”
나는 다급하게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부재중. 4통. 깨톡 18개.
“오우 씨 뭐야?”
난 서둘러 밀린 연락들을 살폈다.
[ 연우 님. 이 가발 아직 귀신이 붙어있는 것 같아요. 전화 좀 받으세요! ]
[ 오빠랑 저랑 계속해서 같은 꿈을 꿔요. ]
[ 잠도 못 자고 연우 님이 말해준 대로 소금을 계속 입에 물고 있어요. ]
“이런 시벌··· 무슨 일이라도 난 거 아니지?”
심각하게 남은 연락을 읽던 나는 금방 안심했다.
귀신이 하는 행동의 특징을 보아하니 가발의 주인.
즉, 그 영가의 짓이 아닌 것 같았다.
[ 제발. 이 가발 좀 어떻게 해주세요. ]
[ 귀신이 나타나서 자꾸만 제 머리에 가발을 씌워요. ]
[ 싫다고 거부해도 강제로 씌워요. ]
[ 너무 피곤해서 욕을 했더니 이젠 친구까지 데려와서 제 머리에 가발을··· ]
“그런 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도 있나···”
잡귀인 것 같았다.
저 정도라면 간단한 비방으로도 퇴치할 수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못 자고 있을 하루양을 위해 문자 하나를 보내주었다.
[ 아마 저희가 마주쳤던 그 귀신은 아닐겁니다. 제가 해둔 비방도 있고··· ]
[ 아무래도 다른 귀신이 붙은 것 같아요. 학교 끝나고 가지러 갈테니 잠시만 집을 피해 계세요. ]
방송 진행하면서 어찌나 머리가 뜯겼던지.
하루양과 하루양 편집자가 머리엔 땜빵 천지였다.
그래도 여캠인데···
게다가 커플이라고 또 비슷한 구석에만 잡아 뜯겼던지라, 방송 끝나고 얼굴을 볼 때마다 웃음이 터져 참느라 힘들었다.
“하··· 그럼 이제 학교를 가볼까.”
잠시 후.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반 아이들은 개미떼처럼 내게 몰려와 하루양과의 방송에 대해 캐물어댔다.
탑 여캠과 합방을 했던 것이 파급력이 엄청났다.
물론 남자들 사이에서.
“야. 넌 영웅이다.”
“고맙다. 너 때문에 어제부로 짝사랑을 그만뒀다.”
“ㅅㅂ 남자친구 없다더니 역시 개 구라 치고 있었어.”
“내가 쏜 별 풍선이 얼만데 나쁜 년···”
“어제 편집자가 머리 잡아 뜯었을 때 조금만 더 놔두지.”
“머리 땜빵이랑 판다 화장된 거 방송 내 보낸 건 정말 잘했다.”
“그거 보고 구독 취소했거든.”
여캠과 흉가 유트버의 합방.
말도 안 되는 조합이지만, 이 방송으로 인해 나는 구독자가 또 늘었다.
58.5만 명.
조회 수도 꾸준히 늘고 있는 반면에 걱정되는 것이 하나 생겼다.
[ 이제 어디 가나요? ]
[ MAX 귀신도 퇴치했는데 더 센 곳을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
[ 3대 흉가 가자고요! 아직 두 군데나 남았잖아요! ]
[ 그 정도는 이제 껌 아닙니까! 딴 데 가면 재미없을 듯 ]
시청자들의 기대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
인기가 늘고 방송 퀄리티가 높아지는 건 찬성이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대치는 극구 사양한다고···
이런 시청자들 때문일까.
나 역시도 방송을 하기 위해 폐가를 찾다가 자꾸만 더 자극적인 요소가 없는지를 살펴본다.
시벌··· 솔직히 말하자면 MAX 그 영가도 기운만 셌지. 착했어.
내가 대단한 게 아니었다고!
마음에 없는 염불 외우듯, 학교 끝나는 내내 반 아이들에게 다음 장소에 대한 정보를 모아봤지만.
딱히 마땅히 갈만한 장소는 얻은 게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휴식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학교가 끝난 후.
하루양 집에 들러 가발을 챙기고, 휴방 공지도 할겸 방송을 미리 켰다.
[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 귀신빤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 소잃고뇌약간고치기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형님들. 오늘 하루 잘들 보내셨나요?”
- 고럼 고럼~
- 회사 일하는 내내 네 방송 얘기만 했다야
-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어
- 아무리 봐도 이번 방송 대박이었어.
- 인정. 일반인 집에서 MAX 귀신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어
- 하루양과 편집자 둘이 사귀는 거 고백한 것도 개 레전드
- 그런 놈이 우리 큰 형님을···
- 큰 형님 우리가 살렸지.
- 아니. 연우가 살린 거지
나는 카메라를 보고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에이, 제가 뭘요.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뭐.”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나저나 여기 하루양네 집 앞 아니냐? 웬 방송? 오늘 또 귀신 잡으러 가나?
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잡다니요! 제가 맨날 잡히는데··· 다름이 아니라 휴방 공지를 좀 하려고요. 이것도 처리해야 하고요.”
긴 생머리의 인모가발을 카메라에 내밀어 비추었다.
띵동.
[ 귀신빤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엥? 그거 아직 처리 안 했냐
“네. 제가 어제 피곤해서 깜빡하고 안 챙겨왔지 뭐예요. 덕분에 하루양님이랑 편집자님이 밤새 잡 귀신한테 시달렸대요. 처음 보는 귀신이 찾아와서 자꾸 자기 머리에 가발을 뒤집어 씌운다고 했던가···”
- 뭐? 레알이냐 그거?
- 귀신 성불 시켰는데도 다른 귀신이 붙었구나.
- 원래 물건은 되게 오래가더라고요.
- 이리저리 귀신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씐다고 들음.
- 그래서 의식 같은 것과 함께 태워주곤 하죠.
- 근데 보통 귀신은 무서운 모습으로 놀래키는 걸 하지 않아?
- 무슨 놈의 귀신이 가발을 자꾸 뒤집어 씌워?
- 상상하니까 개 웃기넼ㅋㅋㅋㅋ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제가 집에 가니까 반응이 없던데요. 숨어 버린 건가.”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래서 그거 어떻게 처리하려고? 혹시 그분한테 가는 거냐?
모두가 알고 있는 그분의 정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녀보살님 만나러 가요.”
***
선녀보살님 집 앞.
나는 신당을 들어가기 전 몸에 먼지를 싹 털어내고 가볍게 손을 모아 동서남북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신당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똑똑.
“안녕하세요. 선녀보살님. 제가 방송을 좀 켰는데 괜찮을까요?”
새하얀 상의에 꽃이 그려져 있는 예쁜 치마를 입은 선녀보살님.
오늘은 웬일인지 머리를 풀어헤쳤는데, 뒷머리를 머리핀으로 집어놓은 그 모습이 그렇게 청순해 보일 수가 없었다.
와··· 이런 분위기도 가지고 계셨구나.
항상 포스만 넘치는 모습만 봐왔었는데.
선녀보살님이 내게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얼마든지요.”
“감사합니다.”
나는 카메라를 보며 시청자들에게 OK 사인을 보냈고.
이내 몸을 신당 안으로 넣고 신령님에게 인사도 건넸다.
- 꺄. 선녀보살이다!
- ㅅㅂ 더 예뻐진 것 같네
- 이제 나랑 결혼해 줄 때가 된 것 같은데
- 레알 어제 여캠보다 더 예쁘다
- 인정. 뭔가 시장표 보다가 명품 보는 느낌이다.
- 선녀보살 기분 업 시키기.
- 말이 진짜 청산유수넼ㅋㅋ
- 그 와중에 표정 하나 변함없는 우리 선녀보살.
- 조용히들 좀 하셈. 신령님 앞에서 뭔 얼굴 평가질이여
채팅창을 슬쩍 살펴보던 나는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형님들. 방송 켜줬으니 약속은 지키셔야죠.”
띵동.
[ 귀신빤스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2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안토니오밥다됐쓰 님이 2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최양을피하는방법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이세돌이세돌잔치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나는 어깨를 으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감사합니다 형님들.”
뒤늦게 선녀보살님 앞에 앉은 내가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가발을 꺼내 드렸다.
가발을 한참 지켜보던 선녀보살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보통이 아니었을 텐데, 용캐 한 많은 영가 하나를 성불시키셨네요?“
순간, 몸이 멈칫거렸다.
“와··· 그런 것까지 보이나요?”
선녀보살님이 잠시 멈칫하더니, 눈을 껌뻑인다.
“아니, 방송 봤어요.”
“아···”
나는 괜한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곧이어 가발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그럼 이거 말씀 안 드려도 다 아시겠네요. 아, 이 가발에 또 다른 잡귀가 붙었다던데 그 잡귀가 혹시 이곳에 저랑 같이 들어왔나요?”
선녀보살님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영가는 이미 연우 씨 기에 눌려서 스스로 떨어져 나간 것 같은데요?”
나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엥? 제 기에 눌려서요? 그게 말이 되나···”
- ㅅㅂ 이거 봐. 이제 완전 무당이라니까
- 어제 MAX 영가 처리한 것만 봐도 그렇잖아
- 이야. 진짜 연우 언제 이렇게 컸냐
- 다 우리의 미션 덕에 이만큼 큰 거임.
곧이어 선녀보살님은 내 가방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거기에 든 것들. 죄다 영가들이 무서워하는 것들 아니에요?”
“아···”
- 아, 착각이었고요.
- 장비 빨 인증.
- 아직 멀었다. 더 혹독한 미션을···
나는 나를 지켜주는 일등공신.
부적과 액세서리 등등. 귀신 퇴치 재료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선녀보살님은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정리를 해볼까요? 이리 따라오세요.”
곧장 가발과 부적 몇 장을 들고서는 뒷마당으로 나를 안내했다.
화로로 보이는 곳이 보인다.
아직 태우지 않은 수많은 물건들이 나열되어 있다.
옷, 가구, 장신구들.
선녀보살님은 화로에 불을 붙이더니, 금방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입을 열었다.
“가발 주인이 살았을 적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나 봐요. 어린 나이에 안타까운 선택을··· 쯧쯧.”
안쓰러운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던 선녀보살님이 불 속으로 가발을 냉큼 던졌다.
턱!
스스스스슥.
가발은 순식간에 타서 없어졌다.
선녀보살님은 곧이어 부적 몇 장을 불에 던지고선 기도 몇 마디를 하고 마무리 지었다.
“다음 생애에선 부디··· #[email protected]!”
포스가 넘쳐흐른다.
한편으론 부러웠다.
스읍. 어차피 나도 이 방송을 계속 이어가려면, 차라리 저렇게 영가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걸.
그 순간.
선녀보살님이 나를 말없이 빤히 보았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던 나는 눈을 껌뻑거리다 이내 선녀보살님에게 물었다.
“호,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선녀보살님이 씩 웃으시며 내게 얘기했다.
“혹시 다음 장소 가실 곳 찾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