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명 여캠의 사연. 4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한 마디에 하루양의 사고가 정지된 듯 멈췄다.
그래도 역시 사람을 상대하는 여캠이라 반사 신경이 남달랐다.
당황하는가 싶던 하루양은 재빨리 웃어 보이며 카메라를 향해 얘기했다.
“아··· 칫솔요? 그거 제 여동생 거예요. 이사 도와주고 제가 혼자 있기 무섭다고 했더니 하룻밤같이 자주고 갔거든요.”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세면대 옆을 한 번 더 가리켰다.
“저기 면도기도···”
“하··· 얘는 굳이 남의 집에 와서 제모를 한다니깐요··· 여동생이 다리에 털이 많거든요. 이름이 유하나인데 그래서 제가 유인원이라고 항상 놀려요. 하하.”
구렁이 담 넘어가듯,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진짜인가?
하지만, 나는 금방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하루양이 내뱉었던 발언과 불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화제 전환을 위해 나를 화장실 밖으로 안내하는 하루양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하루양님. 근데 아까 가족은 멀리 떨어져 살고, 여기 이사 온 걸 아직 모른다고 얘기하시지 않았나요···?”
하루양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아··· 제가 그랬나요?”
- 들켜버렸쥬?
- 미쳤다. 매의 눈.
- 하루양이 거짓말 하고 있는 거임?
- 그럼 귀신이 있다는 거는?
- 그건 아직 모름.
- 헐. 다른 의미로 긴장감 넘친다
- 칫솔이랑 면도기를 발견에 빼 박 발언 증거까지.
- 너 장래희망이 형사냐?
- ㅅㅂ 폭력만 행사하지 않았지. 빼박 형사인데.
- 근데 진짜 여동생 거 일수도 있잖슴.
- 하루양한테 여동생이 있었어?
- 방송에서 언급하기론 완전히 앙숙이라 안 본지 오래됐다고 한 거 같은데.
- 백 퍼 구라네 그럼.
- 해명해라 하루양!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봤다.
“잠시만요 형님들. 귀신도 귀신이지만, 도둑이라도 들었나 싶어서 추측해 본 겁니다.”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지능형 자객인가? 진짜로 하는 말이냐 그거?
띵동.
[ 대추나무사람걸렸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도둑이 남의 화장실에서 면도하고 양치하고 가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옆에 있던 하루양이 상황 수습을 위해 입을 열었다.
“오빠들. 당연한 의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무엇보다 진실은 그렇지 않은 거 잘 아시죠? 아마 마라탕 오빠는 저를 잘 아시니까 믿으실걸요? 그쵸 오빠.”
하지만, 역시나 마라탕 형님은 묵묵부답이었다.
이후, 이유 모를 싸늘한 정적만이 흘렀다.
그때.
우당탕탕!
베란다 쪽에서 무언가가 요란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워어! 시벌! 뭐야 형님들?”
이 반응에 옆에 있던 하루양이 더 오버하듯,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꺄아아아악! 들으셨죠? 들으셨죠? 연우 님! 빨리 좀 확인해 주세요!”
하마터면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칫솔과 면도기를 해명하라는 채팅창 분위기 때문인 걸까.
화제를 돌리기 위한 것인지, 하루양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나는 일단 베란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님들. 마지막 베란다 확인만 남았는데, 얼른 가서 확인 해보겠습니다 형님들.”
- 이번엔 리얼인가?
- 아니. 그게 무슨 상관.
- 칫솔이랑 면도기에 대한 해명부터 해라 ㅅㅂ!
- 저거 전기면도기잖아···
- 하루양 남자가 있는 거냐! 진짜 그런 거냐!
- 방금 구독하고 왔는데 다시 구독 취소하러 가야겠네.
- 일단 지켜보자고. 전기면도기의 진가를 아는 여자일 수도 있잖아.
- 근데 베란다에 진짜 남자 있으면 어쩌냐.
- 귀신 만들어야지.
옆에 서있던 하루양이 더 호들갑을 떨며 나를 재촉했다.
괜한 팔짱까지 끼어가면서 베란다로 떠밀었다.
“연우 님. 얼른 가서 같이 확인 좀 해주세요! 빨리!”
살결이 닿는 그 느낌에 놀란 나는 하루양의 팔짱에서 재빨리 벗어났다.
“아,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뒤에 안전하게 계세요.”
끼었던 팔짱을 빼자, 하루양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바뀌었다.
낯선 여자의 몸이 내 살에 닿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에 나는 고개를 숙여 미안하다고 빠르게 사과했고.
그런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루양을 두고,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금세 도착한 베란다.
나는 살며시 문을 열어젖혀보았다.
집 앞 전경을 즐길 수 있게 의자 두 개가 나란히 위치해 있는 게 보인다.
난 문이 열리자마자 곧장 베란다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고로 보이는 곳이었다.
“반응이 솟구치는 곳이 저곳 같은데···”
“그런 말 하지 마요. 무서워요 죽겠어요. 연우 님.”
내 생각과 일치하듯.
창고와 가까워 질수록 놀랍게도 EMF 측정기가 거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2단계 반. 3단계. 3단계 반까지.
“뭐야 이거 도대체···”
말 없이 나를 지켜보는 하루양을 뒤로하고.
조심스럽게 창고 문을 열기 위해 문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런데···
창고 문틈 사이로 보이는 그것을 발견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쳐댔다.
“워어어어 시벌! 이, 이거 뭐야아아아!”
“꺄아아아아악! 왜요!”
순간, 여자 머리카락이 문틈 사이로 잔뜩 튀어나왔다.
나는 기겁하듯 뒷걸음질 치며,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혀, 형님들. 방금 저, 저기 보셨어요?”
- 뭐야?
- 방금 여자 머리카락 아님?
- 문틈 사이로 머리카락이 튀어나왔다가 들어간 것 같은데
- 오우. 개 깜짝 놀랐네
- 진짜 귀신이 있었어? ㅅㅂ
- 아니. 이런 좋은 집에 귀신이 있다는 게 말이 돼!?
- 이 와중에 하루양은 왜 이렇게 예쁜 건데
- ㅅㅂ 내가 저 자리에 있었더라면···
- 강도 취급받고 경찰에 잡혀갔겠지.
- 야. 일단 빨리 문 좀 열어봐 봐!
- 열었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개 소름인데
- ㅅㅂ 그런 말 좀 하지 마셈. 긴장되니까
마른침이 꿀꺽 넘어간다.
어느샌가 내 이마에선 식은땀도 한 방울 주욱 흘러내렸다.
나는 문 손잡이를 살며시 다시 잡았다.
아니, 기겁하듯 다시 떼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우··· 형님들. 도저히 못 열겠어요. 뭐라도 확 튀어나올 것 같아서···”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5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ㅅㅂ 빨리 열어!
하지만, 내 몸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EMF 측정기에선 그런 나를 더욱 긴장하게끔 4단계가 솟구치고 있었다.
“후··· 후··· 형님들. 잠시만··· 잠시만 심 호흡좀 하고!”
띵동.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3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지랄하지 말고 빨리 열어.
그 순간.
에라이 시벌 모르겠다.
금빛 섬광과 같은 속도로 나는 문 손잡이를 열어젖혔다.
드르륵.
“뭐야 시벌···”
나는 문이 활짝 열려 속 안이 들여다보이는 광경에, 내 발이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쳐댔다.
곧이어 창고 안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창고 안에선 어깨너머까지 오는 기다란 여성의 머리카락이 먼저 보였다.
입 주위엔 빨간 피가 잔뜩 칠해져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순간, 그것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워!”
“와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런 나를 보고 하루양은 크게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깔깔깔깔···”
“······”
나는 배를 잡고 웃어대는 하루양을 뒤돌아봤다.
그리고 다시 창고 안의 그것을 살펴보았다.
뭐야. 남자?
그 생각을 하기 무섭게, 귀신 분장을 한 사람이 가발을 벗으며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동시에 뒤에선 하루양의 신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짠! 이제 곧 60만 유트버가 되실 연우님을 위한 귀신 몰카 이벤트였습니다아아아아!”
“······”
- 뭐야 이거?
- 뜬금포 몰카 뭔데?
- ㅅㅂ 어쩐지 오늘 분위기가 이상하다 했다.
- 이런 집에 귀신이 있을 리가 없잖아?
- 조명이 몇 갠데. 조명 땜에 귀신 다 타죽겠다 시벌.
- 아니. 남자 안 들인다고 하더니 편집자는 남자 아님?
- 이것도 몰카 이벤트 때문에 들였다고 거짓말할 건가?
- 와. 근데 분장 살벌하게 했네. 진짜 귀신 같다.
- 근데 연우는 왜 저럼?
- 몰카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 몰카 처음 당해봐서 그런가?
- 야. 그런 표정을 지으면 안 되지. 얼른 웃어!
시청자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쳐댔다.
“시, 시벌! 저, 저거 뭐야 도대체.”
“하하하. 연우 님. 몰카 당한 거 창피하다고 일부러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저희 편집자님이에요.”
하지만 나는 찌푸린 인상을 풀지 못했다.
무슨 소리야.
애초에 편집자라는 사람이 거기 숨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고.
문을 열기 전부터 사람의 숨소리가 들려왔으니까.
그거 말고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편집자 등 뒤에 저건 도대체 뭐냐고···
나는 벙찐 표정으로 편집자의 등 뒤를 가리키며 말을 더듬어댔다.
“펴, 편집자님 말고요···”
“······네? 그게 무슨 소리···”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편집자라는 사람은 자신의 등 뒤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다는 걸 증명하듯 씩 웃으며 창고 밖으로 성큼성큼 나왔다.
쿵.
그때.
마지못한 하루양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턱!
깜짝 놀란 나는 하루양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그런 하루양은 날 보며 방긋 웃더니 카메라에 대고 신난 듯 중얼거렸다.
“역시 듣던 데로 리액션이 너무 좋으신데요 마라탕 오빠? 저희 집 새 집이라 귀신같은 건 있을 수가 없어요.”
나는 재빨리 다시 창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어?”
어디 갔지?
잠시 고개를 돌렸던 그 사이, 가발만 남겨둔 채 아주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편집자라는 사람 등 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나는 멍한 표정으로 한 곳에 한참을 시선을 고정했다.
뭐지? 내가 잘못 봤나?
아냐. 괜히 EMF 측정기가 요동쳤을 리 없다.
방금 내가 봤던 그 긴 머리의 정체.
그건 분명 사람이 몰골이 아니었다고.
- 연우 연기력 무엇
- ㅅㅂ 벙찐 표정연기는 진짜 세계 1등이다
- 칸 영화제를 노리는 건가
- 아냐. 진짜 뭔가 본 거 아냐?
- 저거 지금 식은땀까지 흘리는 거 아니냐
- 그것도 연기의 일부분일 뿐.
- ㅅㅂ 눈물 연기까진 봤어도 식은땀 연기는 본 적이 없다고
- 게다가 지금 가을이잖아. 겨울이 코앞인데
- 다한증인가
- 야. 연기 고만 해 인마!
- 역 몰카 하는 거냐
곧이어, 현관에서는 비밀번호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더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하루양이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연우 님. 아까 전자레인지부터 시작해서 현관 도어락 소리랑 샤워기 물 트는 소리까지 모두 저희가 준비한 몰카 이벤트였어요! 하핫.”
나는 그럼에도 그 물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곧이어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물건을 가리키며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가발··· 저 가발에 귀신이 붙어 있었어요···”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구라 치지 마. 이제 안 속는다. EMF 측정기라도 보여주든지.
나는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훔쳐냈다.
곧이어, 시청자들에게 EMF 측정기의 반응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 높이 들이밀었다.
순간, 치솟은 반응에 흠칫 놀라 측정기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타닥!
M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