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81화 (181/225)

꺼림칙한 폐 고시원. 9

그들의 정체와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으로 하소연했다.

저 귀신들은 도대체 왜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여기 묶여있는 거야···

원귀(寃鬼).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거나 비명횡사하여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인간의 혼이다.

이들 귀신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방황하며 인간에게 여러 가지 해를 끼친다고 여겨진다.

일부 원귀들은 복수하거나 원한을 풀기 위해 인간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눈앞에 저들은 그저 모든 기억을 잃고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부류였다.

그렇기에 산 사람인 우리에게 더 살기 넘치고 위협적이었다.

- 카운터 안에 저거 사람 아니냐···?

- 워 씨발! 사람! 사람! 분명 사람이잖아 저거!

- 아줌마?

- 노숙자인가?

- 마네킹인 것 같기도···

- 뭔 소리야.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 미친. 저게 안 보인다고? 옷도 입고 있는 것 같은데

- 옷에 까만 거 저거는 뭔 자국이지?

- 노숙자 저 사람 언제 들어온 거야? 소리도 안 들렸는데

- 요즘 노숙자도 파마 하나?

나는 카운터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처음 이 고시원에 들어왔을 때 봤던 낡은 의자에 파마머리를 한 아줌마가 앉아 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아줌마의 배에는 까만 무언가가 잔뜩 얼룩져 있었는데.

그것이 뭔지 나는 기억 속 한 부분을 떠올리며 금방 알아챘다.

분명 피다.

칼에 찔려 흘러나온 검붉은 피 말이다.

아줌마는 기괴하게도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피를 자꾸 손으로 닦아내는 반복적인 행동을 해댔다.

[ 학생. 어디 가. 가지 말고 나 좀··· 나 좀 살려줘··· ]

난 다급하게 둘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둘리도 카운터 안에 있는 그 아줌마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으니까.

나는 건물이 떠나가도록 단호하게 소리쳤다.

“저, 정신 차려요! 뭐라고 해도 듣지 마. 도와주면 안 돼요. 사람 아니에요. 귀신이라고!”

“아, 아줌마? 방금 나한테 뭐라고···”

둘리가 살짝 동요하는 눈치다.

그 마음을 알아챈 카운터 안의 아줌마는 고개를 홱 젖혀 둘리를 노려보았다.

피가 잔뜩 묻은 손을 둘리에게 내밀더니, 살려 달라고 한 맺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 흑흑흑. 이리 와서 나 좀 살려줘. 살려달라고··· ]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언제나 이런 귀신들은 기가 약한 사람을 타깃으로 삼는다.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순간, 나는 건물이 쩌렁하게 울리도록 둘리의 뺨을 세게 내려쳤다.

“정신 차리라니깐!”

쫘악!

“아아아악따거! 시발 뭐야!?”

- 방금 천둥 치는 소리 들리지 않음?

- 연우가 둘리 뺨 때리는 소리임

- 시발. 어떻게 사람 손에서 그런 소리가 남?

- 그것보다 저 뺨을 맞고 정신을 차렸다는 게 더 신기해 시발.

- 눈코입 분리돼야 정상아님?

- 어라? 근데 아줌마 어디 갔지?

- 어? 방금까지 보였었는데

- 옘병. 진짜 내가 귀신한테 홀린 것 같은 기분이네

- 근데 갑자기 연우가 둘리 왜 때림?

- 소리 지르는 거 보니 귀신한테 홀리지 말라고 때린 듯.

나는 둘리를 보며 소리쳤다.

“귀, 귀 막고 뛰어! 빨리요!”

“알았어 시발!”

우리 둘은 건물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36계 줄행랑이란 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아니. 36계가 아니라 몇 백가지의 계획을 세웠어도 오늘만큼은 빤스런이 정답이었다.

조금만 틈을 줘도 귀신한테 홀려버리는 나약한 둘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200m, 300m, 400m까지.

숨 한 번을 안 쉬고 냅다 뛰어댔다.

그리고 산속에서 벗어나자마자 무릎에 두 손을 얹고 큰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커헉! 헉! 헉! 시버어어얼! 미친 고시원!”

띵동.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그렇게 빨리 뛰어버리면 둘리는 어떻게 쫓아와?

띵동.

[ 호이가계속되면둘리인줄안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쫓아오고 있긴 함? 소리 안 들린지 한참 됐는데

띵동.

[ 귀신씨나락까먹는소리하고있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괜찮. 살인사건 난 고시원에 두고 오는 것도 좋은 방법임.

그제야 나는 허리를 펴고 왔던 길을 되돌아봤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시벌 뭐야··· 하 이 형님 진짜 미치겠···”

그때.

저 멀리 콩알만 한 둘리의 모습이 보인다.

뒤 한번 안 돌아보고 필사적으로 고시원으로부터 도망치는 모습이었다.

“아! 저기 따라 오고 있었네요 형님들.”

그렇게 둘리가 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을까.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는 둘리가 내 앞에 도착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야. 연우. 커헉! 그렇게! 헉! 빨리! 허억!”

“······뭐라고요 형님?”

둘리는 남은 숨을 크게 내쉰 후, 바짝 열을 내며 소리쳤다.

“야아! 나 버려두고 혼자 도망가면 어떡해? 그리고 뭔 놈의 달리기가 이렇게 빨라? 우사인 볼트도 너한테 잡히겠다 시발.”

- 그건 인정.

- 카메라도 연우 달리기 속도 못 담음

- 이 새끼 달리기하는 거 카메라로 보고 있음 진심 토 쏠려.

- 놀이기구 타는 것 같단 말이지

- 그래도 둘리 근성 있네. 결국 쫓아왔잖아.

- 살려면 뛰어야지.

- ㅅㅂ 400미터를 몇 초에 뛴 거야 지금?

- 정확히 40초 걸렸네

- 미친. 한국 400m 계주 기록이 39초야 옘병.

- 이 정도면 조금 더 단련해서 올림픽 나가야 되는 거 아님?

- 그것보다 인체신비전에 일단 보내야 됨.

나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얘기했다.

“크흠··· 아무래도 긴박한 상황이다 보니까 초인적인 힘이 좀···”

“시발! 순간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낸 게 아니라 그냥 네가 초인 같다고.”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소리를 들으며, 나는 둘리와 함께 천천히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번을 고시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다행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잠시 후.

한숨 돌린 둘리가 나에게 물었다.

“연우. 너 분명히 약속했다. 나 진짜 네가 시킨 강령술도 했고, 네가 때린 니킥 때문에 아직도 머리에서 피 맛나.”

“머리에서 피 맛이 난다고요?”

“어 레알!”

띵동.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아직도 귀신한테 홀린 거 같은데, 한 대만 좀 더 때려줘라.

울리는 후원창에 둘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금세 나에게서 저 멀리 떨어져, 두 주먹을 쥐어 올리고선 경계태세를 갖췄다.

“아, 아냐! 나 이제 멀쩡해. 진짜야.”

나는 그런 둘리를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누가 보면 내가 깡패인 줄 알겠네.”

“비, 비슷. 아니 무조건 상위호환이야.”

“······”

그렇게 서로를 다른 의미로 경계하며, 우리 둘은 한적한 동네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좀 있으면 헤어질 둘리를 보며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여하튼 형님. 오늘 완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네가 나 챙겨주느라 엄청 고생했지.”

둘리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우리 집에 있는 그 귀신은 언제 퇴치해 줄 거야? 나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너무 힘들어서 되도록 빨리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둘리를 보며 나는 옷 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식지 않은 땀들이 몸에 범벅인지라 꺼내기 버거웠지만.

결국, 힘겹게 꺼내 둘리에게 건넸다.

“이거 가져가요 둘리 형님.”

“······”

- 지금 어디서 꺼낸···

- 미친놈인가

- 가방도 아니고 속옷에서 꺼내서 주면 어떡해

- 시발. 그리고 그걸 도대체 왜 카메라로 비추는 건데

- 나 뭔가 본 것 같아

- 옘병. 봤어도 말하지 마.

- 코끼리 그림···

- 내가 초등학교 때 입었던 속옷이랑 비슷한데

- 근데 저 부적 쓸 수는 있는 거냐? 이미 생명을 다한 거 아니야?

- 저걸 둘리 놈한테 왜 주는 거?

- 귀신 질식사 시키라고

온갖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둘리에게 내가 설명했다.

“그 부적 선녀보살님에게 받은 부적 중 하나인데요. 몸에 지니고 다니면 귀신이 함부로 달라붙지 않을 거예요.”

선녀보살님의 부적이라는 말에 그제야 둘리의 인상이 풀어졌다.

둘리는 부적을 곱게 펴서 애물단지 만지듯 살펴보기 시작했다.

곧이어 나는 가방에 있던 눈깔사탕과 인형 하나를 더 꺼내 둘리에게 건넸다.

“자, 이제부터는 집에 가면 해야 할 일을 알려드릴게요. 잘 들으셔야 합니다.”

둘리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둘리 형님 집에 있는 그 여자아이는 원귀가 아니에요. 즉, 나쁜 귀신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저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은 착한 귀신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겁먹지 말고 이 인형을 가져다주세요. 다만, 인형 안에 제가 드린 이 맛있는 사탕과···”

잠깐 말을 멈춘 나는 둘리의 머리카락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형님의 머리카락 몇 가닥과 손톱, 그리고 조금의 쌀을 종지에 감싸서 인형 배 안에 넣어 숨겨두세요. 선녀보살님에게 직접 전수받은 방법이기도 하고, 제가 전에 썼었던 방법인데 효과가 정말 좋습니다. 물론 이 방법을 진행하기 전에는 정성이 들어간 과일상과 초는 준비해두셔야 합니다. 죽은 사람을 위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 정말?”

둘리가 입을 떡하니 벌리며 내 말을 경청하고 있다.

동시에 내 말을 잔뜩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 노골적으로 표정에 티가 난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여자아이가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 쉴 수 있게 기도도 좀 해주시고요. 대충 하시면 아이가 화나서 해코지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마지막 말에 둘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 넌 진짜 천사다.

- 자신을 하꼬 취급하고 막 대했던 전적이 있는 사람에게 이런 선물을 한다고?

- 그래서 속옷 안에 숨겨두고 있었던 거 아님?

- 아. 약간의 페널티 같은 느낌으로?

- 인정. 그러고 보면 박필준도 일진 때 연우 괴롭혔잖아.

- 그래서 걔도 머리에 땜빵 만들어 줌.

- 매가 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 그 매도 과하게 맞으면 즉사임.

- ㅇㅇ. 즉사하는 것보다 백 배 낫네.

“고마워 진짜. 내가 평생 안 잊을게.”

띵동.

[ 귀신씨나락까먹는소리하고있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저거 속지 마라. 절대 저놈은 개과천선할 놈이 아냐

띵동.

[ 귀신과의동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나도 그렇게 생각함. 한 번 양아치는 영원한 양아치다.

띵동.

[ 네뒤에처녀귀신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네가 진짜 반성했고, 연우한테 고마우면 방송 켜서 인증해라. 그럼 인정.

나는 그런 둘리를 말없이 빤히 쳐다봤다.

둘리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얘기했다.

“형님들! 이 둘리 부랄 두 쪽 달린 남자로서 오늘부로 이 연우 동생을 위해 평생을 바칠 것을 약속합니다. 진심입니다. 내일부터 연우 팬클럽 회장합니다.”

당황스러운 충격 발언에 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뜯어말렸다.

“굳이 필요 없는···”

“아니. 이 둘리 한 번 내뱉은 말은 절대 주워 담지 않는다! 내가 내일부터 동네방네 네 유트브 홍보하고 다닌다! 각오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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