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80화 (180/225)

꺼림칙한 폐 고시원. 8

나는 둘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쌍꺼풀 하나 없이 처진 눈.

해골처럼 푹 파인 몰골.

유난히 돌출되어 있는 입.

그 입에 붙어있는 빨간 입술.

자그마치 백만 원이었다. 백만 원.

백만 원이면 삼겹살이 80인분이고, 통 아이스크림이 250개를 먹을 수 있고···

해외여행도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이라고.

잠깐만 눈 감으면 모든 게 해결될 거다.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생각 회로를 돌리며 나는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리에게 성큼성큼 다가갔고.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고 마른침을 삼켰다.

- 뭐야 이 새끼

- 진짜 하는 건가?

- 백만 원에 남자랑 키스를 한다고?

- 누가 돈미새 아니랄까 봐 진짜 할 모양인데

- ㅅㅂ 프로의식에 혀까지 굴릴 기세라고

- 이건 네 방송 역사상 최고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 아니. 그건 둘째치고 둘리 얼굴 왜 이렇게 클로즈업하는 건데

-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출 중이랄까?

- 상대는 고추라고!

- 시벌. 애초에 이런 취향이었나?

가슴이 심하게 쿵쾅거린다.

물론 다른 의미로.

나와 둘리 얼굴 거리 사이는 불과 30센티.

그 순간, 갑자기 딴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첫 키스의 영광을 이 둘리 녀석에게 주기에는···

난 아직 아린이랑 뽀뽀도 안 해봤다고!

미간이 잔뜩 찌푸려질 만큼 억울함이 치밀자, 나는 들었던 둘리 얼굴을 다시 바닥에 내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형님들··· 둘리 형님 숨소리 들으셨죠? 인공호흡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과감하게 포기했다.

아마 미션을 진심을 담아 거절한 건 처음 아닐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백만 원은 내게 반년 치 용돈과 같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루 방송을 켰다 하면 백만 원보다 더 많은 미션 금액을 벌어드릴 정도가 되어버렸다.

물론, 허세를 부린다거나 사치를 부리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 순간, 모태솔로였던 내가 첫 키스를 남자랑 해야 한다는 게 지옥을 가는 것보다 죽을 만큼 억울했다.

다른 누군가였다 해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

- 아쭈. 선 후원까지 해줬는데 그걸 거부해? 많이 컸다?

나는 큰 손 형님의 미션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곧이어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황급히 핑계를 중얼거렸다.

“아 혀, 형님! 그런 게 아니고···”

“으으··· 연우야아··· 여기가 어디야.”

아주 기적같이 둘리가 깨어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 보세요 형님. 깨어났잖아요!”

나는 이때다 싶어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촉촉한 무언가가 내 입에 맞닿았다.

쪽.

내 두 눈이 둘리의 눈과 마주쳤다.

순간, 아주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정확히 3초 뒤.

우리 둘은 경기를 일으키듯 건물이 떠나가라 소리 질러댔다.

“이런 시버어어어얼!”

“미쳤나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연우!”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귀신이 보이지 않아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버렸다.

이런 시벌··· 내 입술. 내 입술!

나는 다급하게 목구멍 안에 손가락까지 넣어가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물론 상대인 둘리도 마찬가지였다.

- ㅇㅋ 만족.

- ㅅㅂ 결국 저질렀다.

- 내일 기사 뜰 듯.

- 50만 유트버 정연우. 남자 동료와 뜨거운 입맞춤.

- 그는 입맞춤이 끝난 후. 격렬한 키스에 힘입어 셀프 세레머니를 해댔다.

- 키스가 끝마친 후.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황홀 그 자체였다.

-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 ㅋㅋㅋ 미친놈들

- 어우 나 지금 온몸에 소름 끼쳤다.

나는 마치 순결이라도 빼앗긴 듯, 억울한 눈빛으로 둘리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둘리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는 걸 눈치챘다.

다행히 이제 괜찮아진 건가?

난폭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다시 순해진 모습이었다.

난 잔뜩 찌푸린 인상을 서서히 풀며 둘리에게 물었다.

“근데 괜찮아요? 어때요 기분이?”

“좋았···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막 되게 흥분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랬는데···”

둘리는 다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시발! 너랑 입 맞춰서 그런 게 아니라 이유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그런데 지금은 뭔가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아. 머리가 뻥 뚫린 느낌이랄까.”

그제야 나는 다시 표정을 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휴! 형님. 하마터면 진짜 큰일 날 뻔했잖아요.”

“미, 미안하다. 우리 빨리 여기 빠져나가자. 나 자꾸 귓속으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이상한 소리요? 뭐라고 하는지 시청자들한테 설명 좀 해주세요.”

이미 연기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지만,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카메라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자꾸 나보고 너를 죽이라고 하고,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하고···”

그 말을 들은 나는 협탁 위에 있는 강령술 종이에 시선을 돌렸다.

나는 중얼거리는 둘리를 뒤로하고 책상 위로 성큼성큼 올라가 종이를 집어 들며 얘기했다.

“이거 때문이에요. 강령술 시작하고 나서 마무리를 짓지 않았거든요.”

- 아 맞다. 강령술.

- 맞아. 강령술 금기 있었지.

- 저건 진짜다.

- 내 친구도 오기로 금기 다 어겼다가 정신적으로 미쳐서 병원 감.

- 레알로다가?

- ㅇㅇ. 걔 아직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음. 사람 얼굴이 아님.

- 금기사항이 뭐가 있음?

- 첫째. 펜은 무조건 빨간펜을 사용한다.

- 둘째. 절대 펜에서 엄지손가락을 떼면 안 된다.

- 셋째. 게임을 끝낼 때에는 종이를 잘게 찢어서 불태워야 한다.

- 허··· 그럼 이미 두 개를 어겼는데?

- 이제 어떻게 되는 거임?

- 둘리 또 빙의?

- 그만 해 빙의 ㅅㅂ. 틈만나면 빙의여?

금기사항 하나를 어겼긴 했어도, 나머진 다 지켰다.

이 종이만 얼른 불태워 없앤다면 다른 돌발 상황은···

하지만 아무리 라이터의 불을 켜봐도 불이 켜지질 않는다.

라이터의 기름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기름은 반 이상이 차있는 상태였으니까.

“뭐야? 왜 안 되지 이거?”

“고장 난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는 항상 집에서 나올 때 모든 장비를 확인하고 나온단 말이에요. 멀쩡했었는데

왜 갑자기 안 되지?”

“왜, 왜 말썽인 거야··· 또 뭐 잘못되는 거 아니지? 난 하라는 데로 다 했다고오오!”

- 미성년자가 라이터 갖고 다녀서 그런 거 아녀?

- 연우 설마 담배 피움?

- ㄴㄴ 안 필걸?

- 저런 순둥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 자체가 안 어울리는데

- 저번에 보니 술도 가지고 다니던데 거짓말 아님?

- 이렇게 또 한 사람을 매장하는가

- ㅋㅋ 지독한 놈들일세

- 우리 순둥이 공격하지 마라 개색기들아!

나는 황급히 EMF 측정기를 다시 꺼내 확인했다.

“시, 시벌··· 뭐야? 아, 아직도 이 근처에 있는 건가?”

그 말은 들은 둘리가 덩달아 긴장하며 중얼거렸다.

“왜, 왜 또? 뭐 때문에 그러는데?”

나는 양옆을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직 그 귀신이 저희 주위에서 맴도는 것 같아요···”

곧이어 둘리도 사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둘리에게 천일염과 팥을 내밀며 단호하게 얘기했다.

“형님.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아까처럼 또 귀신한테 홀렸다가는 그냥 놔두고 갈 겁니다.”

뭐지? 왜 대답이 없어.

방금 전까지 내 말에 꼬박꼬박 대꾸하던 둘리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졌다.

나는 둘리에게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둘리는 입을 떡하니 벌리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천장에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저··· 저거 뭐야 도대체···”

EMF 측정기는 4단계를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난 곧장 둘리가 보고 있는 시선을 향해 고개를 홱 젖혔다.

[ 끄으으으으윽··· ]

천장에 붙어 둘리를 노려보고 있던 남자가 보인다.

그는 금방이라도 둘리를 덮칠 듯, 두 팔을 짐승처럼 활짝 벌리고 있었다.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입을 활짝 벌리고 있었는데.

까맣게 썩은 듯한 치아와 잇몸은 보는 우리의 몸을 본드처럼 굳게 만들었다.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어느샌가 208호 안에는 차가운 한기와 살기가 섞여 흐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정신줄을 바짝 붙잡고 있었다.

나까지 이곳에서 귀신에게 홀린다면 정말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시, 시벌··· 저, 저리 가!”

나는 기겁하듯 손에 쥐고 있는 라이터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급하게 부싯돌을 돌려대며 소리쳤다.

“제발. 제발!”

탁! 탁!탁!

- 라이터 고장 났나 봐

- 그러니까 터보 라이터 써야지

- 부싯돌 라이터 금방 고장 남

- 담배 안 피우는 놈이 그걸 알겠음?

- 근데 천장에 뭐라도 있나? 뭘 그렇게 눈치 봐?

- 까매서 잘 안 보이는데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시발. 너희들은 저게 안 보임?

- 까만게 뭔가 붙어 있잖아!

- 어디 어디? 시발!

긴박한 그 상황을 위협이라도 하듯.

매달려있던 남자는 둘리를 끌어안기 위해 천장에서 뛰어내렸다.

[ 히익! ]

치익.

기적적으로 라이터에서 불이 켜지며 종이가 순식간에 타올랐다.

동시에 둘리를 덮쳤던 남자는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종이가 공중에서 다 타서 증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귀신을 매일 같이 보아도 늘지 않는 담력은 한결같았다.

이런 귀신들을 상대하는 선녀보살님은 얼마나 대단하신 걸까.

그 사실을 증명하듯.

옆에 서있던 둘리도 곧이어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말없이 앉아 있던 우리 둘.

그중 둘리가 먼저 내게 중얼거렸다.

“시, 시발··· 너도 봤지. 그 남자···”

나는 벙찐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다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둘리의 손을 잡았다.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빨리 이 건물에서 나가요 형님.”

“어, 어!”

사정없이 앞만 보고 뛰기 시작했다.

귀신에게 쫓기는 이 순간.

정말이지. 국가대표 육상 선수보다도 빨랐다.

그 속도가 버거운 둘리가 뒤에서 다급하게 외쳤다.

“가, 같이 가 제발!”

208호를 나와 2층 계단까지 순식간에 도달했고.

계단을 통해 1층까지···

하지만 우리 둘은 카운터 앞에서 뛰던 뜀박질을 멈춰세웠다.

[ 치지지이익- 208호학생 치지지익- 일찍일찍 치지지지익- 다녀야지 ]

- 아줌마 목소리?

- 와 씨발. 뭔데?

- 아 나 지금 몸에 개 소름 돋았어

- 방금 고스트 박스에서 나온 음성 아줌마 목소리 맞지?

- 잘 못 들었는데 뭐라고 한 거임?

- 들은 사람?

- 허··· 208호 학생 일찍 일찍 다녀야지···?

- 연우가 이 건물 처음 들어왔을 때 들었다던 소리잖아···?

- ㅅㅂ 온몸에 솜털이 다 섰다.

- 연우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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