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림칙한 폐 고시원. 7
벌벌 떨어대던 둘리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이후, 귀신이 무언가를 속삭일 때마다 둘리의 몸이 움찔거렸다.
마치 귀신의 속삭이는 말에 동요하듯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정신 차리세요! 귀신이 뭐라 해도 절대 듣지 마세요!”
순간, 사이코메트리로 봤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분명 눈앞에 저 학생. 아니 저 귀신도 생전에 저런 모습으로 환청에 시달렸겠지.
결국 저런 모습으로 이곳에 갇혀버렸을 테고.
그런데 왜··· 대물림 하듯이 이런 짓을 반복하는 거냐고.
나는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두, 둘리 형님. 형니임?”
둘리의 동공은 이미 풀려 있었다.
그리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먼상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난 쓰레기야. 뒤져버려도 싸. 모두가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그런 악마같은 속삭임에 동요되지 말라고!
“아니. 우리가 어, 언제 그랬어요 둘리 형님!”
- 쟤 뭐라는 거니?
- 지 입으로 지가 쓰레기라는데?
- 뭐야 이거? 종량제 봉투라도 빙의된 거 아니여?
- 그런 것도 빙의가 될 수 있나?
- 둘리 표정이 완전 넋이 나갔잖아. 뭐지. 빙의인가?
- 연우가 방금 둘리 보면서 귀신놈아라고 한 거보니 맞는 것 같기도
- 저거 오늘 설마 사고 치는 거 아니냐?
둘리의 표정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점점 축축 늘어졌다.
시커멓게 썩어버린 잇몸의 남자가 둘리의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것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 싶어 가방에 있는 천일염과 팥을 꺼내 귀신에게 사정없이 던져댔다.
파바바바박!
하지만 그 퇴치 재료가 몸에 닿기 전, 남자는 둘리의 등 뒤로 사라져버렸다.
- 야, 뭐야? 왜 그래? 혹시 둘리 귀신 들렸냐?
- 얼굴 정면에 팥 싸대기··· 쟤 얼굴에 지금 피 나는 거 아니지?
“네! 둘리 형님 상태가 이상해요! 귀신에 홀린 것 같습니다 형님들···”
시벌. 어떻게 해야 하지.
혼자였다면 이런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놈은 오늘 폐가도 아닌 흉가를 따라와가지고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야!
나는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남자를 대비해, 몸에 두루고 있던 액세서리 십자가를 꺼내 허공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점점 둘리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 치지지이익- 죽이자 치지지지익- 저놈 치지지지익- 죽여야네가살아 ]
고스트 박스에서는 사라진 남자의 음성이 터져흘렀다.
나는 다급하게 둘리에게 다가가 뺨을 때려댔다.
“정신! 정신! 정신 차려요 형님 시벌!”
하지만, 고개를 흔드는 장난감 인형처럼 얼굴만 까딱거릴 뿐.
여전히 둘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일관했다.
- 헐. 보통 뺨을 한 손으로 때리지 않냐?
- ㅅㅂ 양손으로···
- 사심이 섞인 것 같은 느낌인데
- 이거 연기 아니네. 저런 싸대기를 맞고 멀쩡한 표정을 지을 수가 없다.
- 그럼 진짜 둘리가 귀신한테 홀린 거야?
- 그나저나 야! 고막 증발되겠다 ㅅㅂ
- 하이킥 안 때리는 게 어디야
- 고만 때려. 귀신이 아니라 네 싸대기에 죽겠어.
- 부적 같은 거 없냐? 그걸로 어떻게 좀 해봐라.
- 부적 저번에 다 씀.
- 옘병. 이거 오늘 사건 날 삘이다.
“시벌 형님들··· 이 형님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요. 어떡하죠?”
그 와중에 고스트 박스에선 귀신의 섬찟한 속삭임이 자꾸 터져 흘렀다.
[ 치지지이익- 죽여 치지지지익- 죽여! 치지지지익- 죽여야 돼 ]
그래. 이곳에서 일단 벗어나자.
벗어난다면 뭔가 해결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안 되면 선녀보살님에게라도 데려가야 한다.
둘리의 표정이 살벌하게 바뀌었다.
마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고개를 살짝 떨구고 눈을 치켜뜬 채로 나를 노려봤다.
“그래. 너 때문이야 씨발··· 다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야. 폐 병원부터 시작해서 유트브··· 모두 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혀, 형님?”
“너만 없으면 돼. 너만 없으면 나는···”
둘리의 양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사정없이 돌진했다.
훅! 휘익!
“워어어어어! 형님 왜 그러세요 진짜! 정신 차리라니까요오오!”
- 하여튼 간 저 새끼 저거. 저럴 줄 알았다. 빙의든 뭐든 빨리 어떻게 좀 해봐!
- 진짜 제정신 아니네 저거. 연우한테 주먹질을? 신종 자살 수법인가?
둘리의 행동은 점점 거칠어져 갔다.
휘두르는 주먹이 내게 닿지 않자 발길질까지 해댔고,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집어 내게 던지기 시작했다.
“이리 와 시발!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날 이렇게 만든 거라고!”
- 휴··· 주님. 오늘도 한 명 올려 보냅니다.
- 귀신한테 홀린 건 확실해
- 분명 심각한 상황인 건 확실한데 뭔가 좀 이상하다
- ㅅㅂ 상대가 연우라서 그래.
- 주먹이고 발차기고 다 피해버리니까 귀신한테 홀린 놈도 환장할 노릇
- 저 새끼 사람 맞나? 저 좁은 공간에서 저걸 다 피한다고?
- 어? 방금 둘리 새끼 책상 들다가 무거워서 다시 내려놓은 거 같은데···
- 옘병. 실제 상황 맞지? 연기 아닌 거지?
- 공포야 코믹이야. 하나만 해! ㅅㅂ
- 연우야 어떻게 좀 해봐라.
- ㄴㄴ 놔두셈. 멸치 새끼 지 풀에 지칠 듯.
나는 가까스로 둘리의 난폭한 주먹질을 피하며 결국, 208호 안을 빠져나왔다.
“혀, 형님들. 둘리 형님을 일단 건물 밖으로 좀 데리고 나갈게요!”
이 건물만 빠져나가서 좋은 공기를 마신다면 뭔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도 안 된다면 기절시켜서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할 셈이었다.
나는 서둘러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기 전 뒤돌아서 둘리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어? 시, 시발. 이게 아닌데···”
상황이 정말 어지럽게도 얽힌다.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멀리서 지켜본 둘리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자신의 웃통을 벗어젖혔다.
그리고 옷을 매듭짓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그러지 마 제발. 뭘 하려는 거야 지금···”
나는 본능적으로 둘리의 이어질 행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내 생각이 들어맞았을까.
둘리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곧이어 분명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문은 굉음을 내며 스스로 닫혀버렸다.
드르륵. 철컥!
한적한 폐 고시원 건물 전체에 문 닫히는 소리가 깊게 흘러 퍼졌다.
이후, 아주 조용한 적막이 흘렀다.
나는 그저 벙찐 얼굴로 닫힌 208호의 문을 한참 바라봤다.
- 지금 문 스스로 닫히지 않음?
- 둘리 분명 두 팔을 가만히 있었던 것 같은데
- 그럼 다른 누군가가 문을 닫았다는 거임?
- 그게 말이 됨?
- ㅅㅂ 말이 안 되는 게 지금 눈앞에 보이고 있잖아!
- 근데 왜 갑자기 문을 닫지?
- 도대체 뭔데? 뭔 짓거리를 하려는 거야 저놈은
곧이어 208호 안에서는 숨통이 막히는 소리가 문틈 사이로 세어 나온다.
“끄으으으윽···”
곧이어 고스트 박스에서는 그런 둘리를 자극하는 듯한 섬뜩한 남자의 음성도 함께 터져 나왔다.
[ 치지지지익- 그래 치지지지익- 조금만더 치지지지익- 곧편해져 ]
여태 있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돌발 상황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은 있었다.
얼른 저 짓을 막아야 한다는 것.
나는 일단 그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서둘러 208호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닥!
하지만, 아무리 세게 열어젖혀도 낡은 나무 문은 마치 두꺼운 쇠문처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정신 차리고 문 열어요 형님! 귀신이 하라는 데로 하면 진짜 죽는다고요!”
다급한 마음과는 달리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시에 208호 안에서는 숨이 멎어가는 듯한 심각한 소리까지 흘러나왔다.
“끄윽··· 끄윽··· 끅. 끅···”
- 저 미친 자객 새끼.
- 이거 방송 사고 나겠는데
- 빙의가 아니라 일부러 방송 망치려고 이러는 거 아니냐?
- 아니야. 그렇다고 하기엔 연우 표정이 너무 리얼한데
- 이거 어떡하냐. 무슨 사고라도 나면 연우도 방송 정지여
- 여태까지 저놈이 어떻게 버텨왔는데 그럼 안 되지!
- 경찰이라도 불러줘야 되나?
- ㅅㅂ 너무 다급한 거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내가 더 미칠 지경이다.
시청자 말대로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던가.
영안실의 시체 냉장고에 들어가고, 한적한 새벽에 산속 무덤을 들어가고···
한 번은 지방 모텔에 찾아갔다가 전과 24범과 맞닥뜨렸다.
또, 아이를 영매로 삼기 위해 살인까지 한 무당이랑도 엮였었지 않았던가.
시벌··· 수많은 역경을 버티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망가질 순 없었다.
[ 뒤돌아보지마라탕 님이 1,000,000 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뭐해? 그냥 문 때려 부셔!
순간, 내 온몸이 벼락을 맞은 듯 전기가 흘렀다.
무슨 정신이었을까.
몇 발자국 순식간에 물러난 나는.
마치 히어로의 영화에 주인공처럼 눈앞에 보이는 문에 전력질주하여 내 몸을 갖다 박아버렸다.
“이런 시벌 진짜아아아아아!”
빠지지지직. 콰콰쾅!
문은 마치 종이처럼 산산조각 나버렸고, 내 앞에는 눈알이 뒤집혀 흰 자만 보이며 괴로워하는 둘리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휘저어대는 둘리의 두 다리를 힘껏 잡아 들어 올렸다.
조였던 둘리의 목을 최대한 느슨하게 확보시켰고, 한 손을 떼내어 순식간에 줄 매듭을 풀어 젖혔다.
곧이어 둘리는 인형처럼 풀썩 쓰러졌다.
나는 그런 둘리를 거꾸로 들어 올려 어깨에 짊어진 뒤 앞으로 내려놓았다.
- 헉!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 파워슬램 ㅎㄷㄷㄷ
- 벨리 투 백 사이드 슬램 아님?
- 연우 이 새낀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대체···
-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있는 스킬을 쓴 건가?
- 유도에 킥복싱에 수영에 야구에 이젠 레슬링까지···
- 둘리 죽은 거 아니지?
- 야. 미친놈아! 숨 쉬나 확인해 봐 빨리!
- 방송 사고를 막으랬지. 방송 사고를 직접 내라고 했냐 이 색갸!
- 화면 돌려! 화면 돌려 이 시캬!
어떻게 문을 부수고 어떻게 둘리를 내렸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저 본능에 의해 움직였다.
나는 서둘러 둘리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짧은 시간에 조치를 취해 둘리는 숨을 쉬고 있었다.
휴우 시벌··· 다행히 방송 사고는 막았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려는 그 찰나.
- 야 뭐해? 인공호흡해야지
나는 발작하듯,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무, 무슨 소리예요 형님. 둘리 형님 숨 잘 쉬고 있어요. 자 보세요!”
하지만, 카메라로는 숨을 쉬고 있는 게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는다.
- 뇌사 오기 전에 빨리하라고!
“아니. 이거 안 보이나! 숨 잘 쉬고 있는데···”
이미 안전은 확보했는데 무슨 인공호흡이냐고!
시벌··· 내가 저 형님 변태 같은 기질은 일찍이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아직 첫 키스도 안 해본 나한테 지금 뭘 하라는 거야?
하지만 나는 후원창에 적힌 금액을 바라보며 순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 인생 일대에 있어 최대 난관이었다.
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