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림칙한 폐 고시원. 5
“잠깐만··· 이게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오래돼서 기억이 잘···”
긴장한 걸까.
아님 일부러 시간을 벌려는 걸까.
둘리가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를 긁적인다.
나는 둘리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주문을 위한 O.X를 직접 그려주었다.
곧이어 주위에 두른 양초에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둘리를 향해 나는 얘기했다.
“형님. 손에 힘 빼시고요. 눈을 감아주시면 됩니다.”
- 연우 신났넼ㅋㅋㅋ
- 맨날 자기가 당하다가 당하는 모습 보니까 즐겁겠짘ㅋ
- 근데 쟤는 가방에 웬 종이를 가지고 다니냐
- 혹시 모르니까 항시대기하는거지ㅋㅋ
- 뭐든지 얘기만 하면 다 꺼낼걸?
- 준비성이 얼마나 철저한 거야 ㅅㅂ
- 그 때문에 둘리는 죽을 맛이다
- 이왕 할 거 빨리해라! 인마!
둘리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어찌나 떨어대는지 마주 잡은 내 손에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그 감정이 내게 전달되서일까.
아니면 귀신을 부르는 주문 준비를 다 끝마쳐서 일까.
매서운 한기가 이 208호에 서서히 둘러지는 것 같았다.
남은 한 손을 붙잡고 있는 나 역시도 긴장되는 그 순간.
- 야. 거기 바닥 말고 저기 의자 위에 올라가서 해라.
우리 둘은 동시에 후원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의자요 형님?”
- ㅇㅇ 바닥에서 하니까 폼이 안 나잖아.
좁은 고시원 방 안.
쌓인 폐 가구들 위에 떡하니 올려져 있는 의자를 바라봤다.
그 의자는 마치 영화 속 범인이 사형당하는 장면에 나올법한 분위기를 풍겼다.
나는 둘리의 손을 잡은 채로 조그마한 협탁을 위에 올려놓으며 얘기했다.
“그럼 둘리 형님. 여기다가 종이를 놓고 하시면 되겠네요.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 협탁까지 미리 올려다 줘놓고 물어보는 건 무엇?
- ㅅㅂ 저걸 한 손으로 들어서 옮긴다고?
- 밥상 다 차려놨는데 둘리가 어떻게 거절하겠냐
- 잔인한 놈. 근데 분위기 삭막하네
- 무슨 사형 받는 놈 같아
- 사형 당해도 싸지 저놈은. 얼른 올라가 인마!
- 별일이야 있겠나? 둘리 쟤는 귀신도 볼 줄 모르잖아?
- ㅇㅇ. 걍 하는 척 분위기만 내는 거지.
- 연기는 연우가 훨씬 더 잘하는데. 스읍 아깝네.
나는 서둘러 둘리를 의자 위로 올려주었다.
괜한 화살이 나에게로 향해 저 의자에 내가 앉게 될 판이었다.
이런 곳에서 강령술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마지못한 둘리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내가 얹어준 협탁 위에 종이를 올려다 놓고 펜을 들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입술까지 파르르 떨던 둘리가 중얼거렸다.
“그, 그럼 연우 형님들. 시작해 보겠습니다.”
둘리가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O.X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여기 혹시 누구 계시나요?”
208호에는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나는 옆에서 EMF 측정기를 들고 수시로 확인했다.
혹시나 일어날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시벌··· 이왕이면 착한 귀신이 와서 눈에도 띄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 말 하기가 무섭게 EMF 측정기는 서서히 반응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1단계. 1.5단계. 2단계.
뭐야? 벌써?
놀랍게도 둘리의 손은 O가 그려진 그곳으로 천천히 향하고 있었다.
“혀, 형님. 벌써 우, 움직이고 있어요!”
- 뭐야? 연기하는 거 아니지? 이렇게 빨리 대답을 해준다고?
후원창이 울린 후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둘리의 주위에 옮겨놓은 모든 양초의 불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양초는 빠른 속도로 타들어가며 촛농을 뚝뚝 흘려댔다.
- 다음 질문해. 우리가 할까?
나는 울리는 후원창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순간, 내 몸이 성치 않음을 느꼈다.
갑자기 통제가 되질 않는다.
괜한 분위기에 내 근육이 긴장한 걸까.
가까스로 눈을 아래로 최대한 깔아 본 EMF 측정기의 반응은 4단계까지 순식간에 치솟고 있었다.
으 시벌··· 강령술은 둘리가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몸이 왜 이래?
무언가가 머리에 번뜩인 나는 맞잡고 있던 둘리의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설마 잡고 있는 손 때문에?
둘리가 중얼거렸다.
“여, 연우야. 이제 질문 뭐라고 해야 되는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 시야는 천천히 흑백으로 물들어갔다.
여기가 어디지?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공간.
그 공간이 바뀌자마자 내 눈에 띈 건 다름 아닌 의자였다.
뭔가 낯설지 않은데 이 의자.
설마 둘리 형님이 앉은 그 의자 인가?
어디선가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이 목소리는 아까 그···?
곧이어 남자 하나가 내가 서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정말 하얗고 선한 얼굴을 가졌다.
흔히 말하는 공부밖에 모르는 전형적인 얼굴이랄까.
소심스러운 성격이 얼굴에 노골적으로 나타나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남자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었다.
남자의 얼굴은 몇 초 사이에 전혀 딴 사람이 되어있었다.
머리를 사정없이 잡아 뜯기 시작하더니 무언가에 쫓기듯, 사방을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뭐야. 왜 그러는 거야?
혹시 환청이 들리는 건가?
208호 남자는 두 귀를 틀어막고 천장을 째려보며 중얼거렸다.
“씨발년이···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건데. 알아서 할 테니까 제발 날 좀 그만 괴롭히라고!”
그 말이 복도 전체에 울려 퍼지자 중년의 아줌마가 성큼성큼 208호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문 앞에 대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뭐? 지금 나보고 그런 거야? 아들 같아서 사정 봐줬더니 고마운 줄 모르고 어디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이렇게 남한테 피해 줄 거면 그냥 이 방에서 나가! 어디 미친놈 같은 게 들어와서는 고마운 줄 모르고 행패야 행패가!”
남자가 섬뜩한 표정을 하고 방 문 쪽으로 시선을 홱 돌렸다.
창문에는 아줌마의 실루엣이 비쳤다.
곧이어 주먹을 꽉 쥐더니 섬뜩한 소리를 혼자 중얼거렸다.
“뭐? 저 아줌마를 죽이라고···?”
그 말을 듣지 못한 아줌마는 돌아나가면서도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안 그래도 장사가 안 돼서 죽겠는데, 뭐 저런 게 들어와서 세상 골치 아프게··· 어휴. 내 팔자야. 하느님은 뭐 하시나 저런 거 안 잡아가고···”
남자의 눈이 잔뜩 커졌다.
눈은 마치 몇 날 며칠 잠을 새운 것처럼 실핏줄이 잔뜩 돋아나있었다.
내 시야가 장면을 이동하듯 바뀌었다.
내가 지켜본 하늘은 이미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새벽 3시를 향해가고 있는 시간.
아까 봤던 208호 학생은 그 새벽 시간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곧이어 날카로운 무언가를 가슴팍 안쪽에 숨겼다.
그건 날이 시퍼렇게 서있는 칼이었다.
준비가 끝났는 지 208호 학생이 조심스럽게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뭐야?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의 의도는 금방 파악됐다.
남자의 얼굴엔 식은땀이 한 바가지였고, 그의 몸은 주인아줌마가 계시는 방으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101호.
“그래.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모두가 잠든 그 시간.
모든 옷을 검은색으로 맞춰 입은 208호 학생은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101호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자 세상모르고 퍼질러 자고 있는 아줌마가 보인다.
어찌나 꿀잠을 자고 있는지 코 고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그르렁. 그르렁.
208호 학생은 방문을 살며시 닫고, 아줌마의 곁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리고 경멸하는 눈으로 한참 아줌마를 쳐다보더니, 이를 꽉 깨물고 가슴 팍에 있는 칼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놀랍게도 인기척을 느낀 아줌마의 눈이 슬금슬금 떠졌다.
아줌마는 자신의 눈앞에 멀뚱멀뚱 서있는 208호 학생을 보며 놀라 말을 더듬어댔다.
“누, 누구···”
다급해진 208호 학생이 아줌마의 입을 틀어막고 그대로 날카로운 칼을 몸에 쑤셔 박았다.
푸슉!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찌나 세게 찔러 넣었던지, 아줌마의 몸은 풍선처럼 힘이 쭉 빠지는 듯했다.
말 한마디를 꺼내지 못했다.
그저 208호 학생의 얼굴을 꼬집듯 붙잡으며 희미하게 꺼져가는 생명을 느낄 뿐이었다.
208호 학생이 조심스럽게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됐지? 끝났어. 네가 하라는 데로 했으니까 이제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마. 제발.”
도대체 누구랑 얘기하는 거야?
섬뜩한 그 분위기에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아줌마의 숨은 결국 끊어졌다.
팔 다리가 미동도 없이 축 늘어진 채 싸늘한 시체가 돼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208호 학생은 입을 막았던 손을 천천히 떼냈다.
곧이어 섬뜩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다시 순둥순둥한 얼굴로 돌아왔다.
방금 전 사람을 찔렀던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학생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어대며, 거친 호흡과 함께 자책하기 시작했다.
“내,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머리를 한참 잡아 뜯던 학생은 곧이어 천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무언가의 소리를 듣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뭐? 어떻게? 이 아줌마를 산속에 가져다 버리자고?”
그 말 뱉기 무섭게 학생은 다시 날카로운 인상으로 변했다.
곧장 아줌마를 들어 엎쳐 매더니 사람들 몰래 조용히 건물 밖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사이코메트리에서 벗어났다.
도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야?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깊은 산속에 사람을 묻었다.
그 이후에도 본 것들은 더욱더 내 눈살을 잔뜩 찌푸리게 했다.
208호 학생의 상태는 정상 같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를 묻고 온 그날부터 집에 틀어박혀 허구한 날 혼자 헛소리를 중얼댔다.
[ 아줌마 목소리가 들려. 아줌마가 밤마다 날 찾아와. 날 죽이려고 해. 날 죽이려고 한다고!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그렇게 일주일이 넘도록 남자는 밥 한 끼를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있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눈은 퀭했고,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멕아리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우야. 연우야! 뭐해?”
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둘리의 얼굴을 바라봤다.
“둘리 형님···?”
둘리가 앉아 있는 의자 뒷 천장에서 무언가가 매달려 흔들리는 소리를 냈다.
삐걱. 삐걱. 삐거거걱.
시벌 설마···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적으로 내 고개는 의자 뒤쪽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온몸이 굳는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것도 모자라 닭살이 터져 오를 듯 내 온몸을 감쌌다.
하얀 줄에 사람의 목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 흔들리고 있다.
키가 170 정도로 보이고 짧은 스포츠형의 머리를 한 남자였다.
그 남자는 혓바닥이 길게 늘어트려진 채, 목뼈가 부러져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 끄으으으윽··· ]
끊어진 호흡 사이로 뱉어지는 괴상한 숨소리를 내며 남자의 고개가 천천히 내 쪽으로 돌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