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림칙한 폐 고시원. 4
“둘리···?”
덮어쓴 마스크가 니킥에 의해 벗겨졌다.
쌍코피를 철철 흘리고 있지만, 그 얼굴은 분명 둘리였다.
“둘리 형님 맞으시죠!?”
- ㅅㅂ 기절시켜놓고 묻고 있네
- 잔인한 넘
- 짐승 같은 움직임이었다.
- 그냥 니킥을 꽂아 버리누
- 쌍코피가··· 혹시 죽이려고 한 건 아니지?
- 그나저나 진짜 개 깜짝 놀랐네
- 와··· 순간 심장 쪼그라들었음
- 짐승인 줄 알았다
- 근데 여기 둘리가 왜 있어?
둘리의 손에서 내 음성이 한 박자 늦게 울려 퍼졌다.
[ 형님 맞으시죠? ]
나는 자연스럽게 둘리가 들고 있는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휴대폰에선 내가 카메라로 비추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송출되고 있었다.
“뭐야? 아까 내내 울렸던 소리가 이것 때문이었어?”
시벌.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나저나 이놈은 도대체 왜 여기에 숨어 있는 건데?
나는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뒤늦게 둘리의 얼굴을 두들겼다.
“형님. 형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
- 야 손바닥으로 때려. 왜 주먹을 쥐고···
“아··· 저도 모르게. 형님. 형니이임!”
쫘악! 쫙! 쫙!
10대를 넘게 맞고 나서야,
둘리는 코를 만지작거리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깨어났다.
“으으··· 지옥인가···”
나는 사시가 된 둘리의 눈을 이리저리 살피며 마주쳤다.
“아직은 아니에요. 괜찮으세요?”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둘리가 정신을 차리는 동안.
나는 그제야 방안을 둘러보았다.
다른 곳과 다를 바 없는 구조지만, 이 방은 다른 방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고시원 방과 복도 공간까지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높게 쌓아놓은 책상과 그 위 의자는 도대체 뭐지?
내가 둘리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이 고시원 오기 전부터 여기 있었어요?”
둘리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두 콧구멍에 쑤셔 박고선 천천히 내게 대답했다.
“아니. 방송 보고 찾아왔지.”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물었다.
“도대체 왜요?”
“그게···”
둘리의 표정이 초조해 보인다.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말랐었나?
눈은 퀭하고 몇 날 며칠을 잠 못 이룬 사람처럼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그때는 배만큼은 제법 통통했던 것 같은데···
- 이 멸치 누구임?
- 곧 죽을 것처럼 생겼네
- 둘리라는 놈인데, 예전에 흉가 BJ로 잘나가던 놈임.
- 근데 왜?
- 주작 방송하다 연우 눈에 걸려서 연우가 폭로함.
- 그 이후로 들켜서 완전 나락갔지.ㅋㅋ
- 그 방송 보던 시청자 중 하나임.
- 나도 나도.
- 그땐 주작해서 돈을 잘 벌었는지, 항상 이티처럼 배가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죄다 없어졌네?
- 나락 이후로 돈 못 벌어서 손가락 빤 거 아님?
둘리가 카메라를 보며 망설이는 사이,내가 둘리의 배를 보며 얘기했다.
“그나저나 어디 아프세요? 예전에는 통통했던 것 같은데.”
둘리는 참다못한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내게 하소연하듯 얘기했다.
“사실··· 너랑 그 폐 병원 갔다 온 이후로 집에만 가면 밤마다 자꾸 아이 목소리가 귓속에 맴돌고, 눈에 흐릿하게 뭔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하소연을 듣다 문득 폐 병원에서 봤던 그 여자아이가 생각났다.
“혹시 인형 들고 있는 여자아이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알았어!? 너 진짜 귀신 볼 줄 아는구나.”
둘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곧이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너. 귀, 귀신 떼는 방법 알아? 온갖 짓을 해도 떨어지질 않아. 미치겠어. 잠도 못 자고··· 이 귀신만 떼어주면 내가 뭐라도 할게! 평생 네 꼬봉으로 살게. 진짜!”
굳이 너 같은 꼬봉을 둘 필요가 없는데···
언제 또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속이 까만 사람이니까.
나는 감정의 동요 없이 둘리를 빤히 쳐다봤다.
괜스레 그때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던 날 가지고 장난을 쳤었지.
나는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등 뒤를 슬쩍 보는척하며 중얼거렸다.
“안녕? 잘 지냈니?”
“으아아아아아악! 시발! 저리 가! 저리 가!”
둘리가 온갖 난리를 피우며 자신의 등을 손바닥으로 내려친다.
- 힘들긴 한가 보다.
- 누가 봐도 구라 빵인데
- 연우를 잘 모르네
- ㅇㅇ. 등 뒤에 귀신 붙어있었으면 연우가 먼저 난리 쳤겠지
- 우워어어어어! 시버어어얼! 하면서
- 님. 아까부터 자꾸 음성지원 되자나옄ㅋㅋㅋ
- 연우야. 그런 놈 얼른 보내 버렷!
- 왜요. 놔두셈. 복수할 겸 데리고 놀자 ㅋㅋ
- 찬성.
“장난이에요 장난. 등 뒤에 지금 안 보이는데···”
웃음기 지운 얼굴로 내가 물었다.
“그나저나 아까 나 4층 올라갈 때도 여기 숨어 있었어요?”
“여기? 아니.”
둘리는 이마에 땀을 닦더니, 그제야 방안을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말을 이었다.
“나도 너 땜에 급하게 들어온 거라 잘 모르겠는데.”
그 대답에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시벌··· 그럼 그 실루엣이 둘리가 아니란 소리인가.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둘리를 보며 돼 물었다.
“거짓말 아니죠?”
“나 이제 거짓말 안 해. 완전히 나락 가고 나서 예수 형님 앞에서 회개했다고!”
- 예수 형님이란다. 나 참 ㅋㅋ
둘리가 후원창의 닉네임을 보고 눈을 번뜩인다.
곧이어 울리는 후원창.
[ 귀신과의동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네가 회개를 했다고? 눈빛이 달라지긴 했네. 그래도 네가 한 짓은 사라지지 않지.
- 인정. 열심히 지켜보던 우리를 감쪽같이 속인 놈이다. 얼른 꺼지라고 해.
이 세 명의 시청자들은 주작 방송인 걸 알아채자마자 둘리 방송에서 내 방송으로 넘어온 시청자였다.
그래도 한적한 곳의 고시원에 힘들게 찾아온 사람을 다시 내쫓으라니.
차마 입 밖으로 그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에 나는 애써 웃으며 얘기했다.
“형님들. 그래도 힘들게 찾아왔는데 방해 안 되게 옆에서 구경 정도만이라도···”
사실, 이런 흉가에 혼자라는 게 너무 두려웠는데.
둘이라 마음에 안정이 오는 것도 있었다.
- 너는 너무 착해서 문제야.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 언젠가 네 뒤통수를 다시 칠 놈이다
- 넌 지금 버린 쓰레기를 직접 가지고 집에 들어온 거여
- 아직 사회생활을 한지 얼마 안 돼서 세상 물정을 잘 모름
- 그렇게 순수할 때가 좋은 것이지
- 우리가 너무 악에 찌들긴 했어.
- 무슨 소리? 난 아직 순수한데
- ㅈㄹ. 고추가 아기 때처럼 순수하게 성장을 멈춰 있나?
- ㅅㅂ 선 넘네 개색갸.
- 재밌네. 그럼 미션 준다. 너희 둘 끝날 때까지 서로 손 잡고 계속 있으면 백만 원.
나는 번개같은 속도로 둘리의 손을 잡았다.
동시에 둘리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나, 남자랑 손을···”
“하이고오오. 마라탕 형님께서 기가 막힌 미션으으으을!”
곧이어 고개를 숙인 채로 옆에 멀뚱멀뚱 쳐다보는 둘리에게 눈치를 주었다.
“뭐해요 형님. 인사해야지 인사.”
둘리가 내 손을 잡은 채로 잽싸게 폴더인사를 건넸다.
볼록했던 배가 없어지니 얼굴이 무릎에 닿을 기세였다.
“아, 알겠습니다 형님! 열심히 연우 서포트 해보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나는 먼저 EMF 측정기를 확인했다.
“어라? 이상하네.”
이 방에 도착하기 전만 해도 4단계를 육박하는 수준의 반응이었는데,
어느샌가 갑자기 반응이 줄었다.
어디론가 이동을 해버린 걸까?
그랬다면 눈에 비쳤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
둘리가 마른침을 삼키며 내게 물었다.
“왜, 왜 그러는데? 말 좀.”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여기 고시원에 들어오자마자 중년의 아줌마 목소리가 들렸거든요. 208호 학생. 일찍 일찍 좀 다니라고··· 그리고 저기 2층 계단에 올라왔을 땐 닫힌 208호 여기 문 안쪽으로 남자 얼굴 실루엣이 비쳤어요.”
“하··· 일부러 나 놀리려고 하는 거 아니지? 진짜야?”
“네. 저는 거짓말 같은 거 안 하는데요.”
귀신같은 건 믿지도 않던 둘리가 어느샌가 많이 바뀌어있었다.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어대는 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진짜 많이 고생했나 보구나.
그나저나 아무리 귀신이라지만, 그 여자아이는 그렇게 나쁜 귀신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옆에 있던 둘리가 물었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데?”
- 어떻게 하긴. 불러내야지. 자 미션 또 준다. 옛날 폐 병원에서의 그 놀이 역할을 바꿔서 진행하면 오십만 원.
순간, 우리 둘의 얼굴엔 아주 새카만 그늘이 졌다.
동시에 벙찐 얼굴로 카메라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혀, 형님. 혹시 지금 뭐라고···”
폐 병원에서의 그 놀이라면 혹시 귀신을 부르는 주문을 말하는 거야?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버리는 그 말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 안 돼요 형님. 여기는 폐가가 아니라 흉가같은데··· 그리고 그런 귀신을 함부로 불러냈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요!”
- 그러니까 역할을 바꿔서 하라고
그 말에 나는 살며시 둘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둘리는 이미 정신을 놔버린 상태였다.
다크서클도 모자라 침까지 질질 흘릴 지경이었다.
내가 조심스레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둘리 형님. 괜찮겠어요? 그래도 여긴 영안실이 없어서 다행이네요···”
-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중
- ㅋㅋ ㅅㅂ 그게 위로냐
- 근데 진짜 천만다행인 건 맞지 않음?
- 그치. 영안실 시체 냉장고에 지금 백만 원 주고 들어가라면 들어가겠어?
- 그땐 연우가 완전 하꼬였기에 가능했던 거지.
- 아냐. 단가가 문제지. 연우는 무조건 들어간다.
- 인정. 돈미새 새끼. 뭐든지 한다.
- 그나저나 둘리 괜히 온 거 들켜서 개 고생이네
- 저 새끼는 고생 좀 해도 돼. 한 짓에 비해 벌은 싼 편임.
한참을 바닥에 고개를 떨구고 좌절하고 있던 둘리가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처들고선 얘기했다.
“아 맞다. 연우 방송 형님들. 근데 여기엔 종이가 없는데요? 아쉽게도 다른 미션을···”
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둘리에게 건넸다.
“종이 있습니다. 둘리 형님.”
둘리가 순간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표정관리를 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 여기 양초도 없고··· 펜. 펜도 없어요.”
이미 나는 양초를 꺼내 둘리의 주위에 두루고 있었다.
그리고 펜을 둘리의 손에 살며시 쥐여주었다.
마지못한 둘리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한참을 내 얼굴을 살며시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연우야. 그럼··· 이거 할 테니까, 진짜 귀신 떼어내준다고 약속해. 형님들 그때 사죄의 의미로 역할 바꿔서 해보겠습니다.”
내가 입술을 굳게 닫고 주먹까지 내보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둘리 형님.”
그렇게 제2의 흉가로 불리는 이 고시원에서.
금기시된 귀신을 부르는 주문이 시작되었다.
물론, 전과는 다르게 역할이 바뀐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