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75화 (175/225)

꺼림칙한 폐 고시원. 3

머릿속이 혼잡하다.

도대체 나에게 왜 매번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도대체 왜!

비하인드 사연을 듣고 나니 사방에서 울려대는 소리가 더욱 공포스럽다.

“워어어어! 잘못했습니다 시벌!”

“와아아악! 다신 안 그러겠습니다 시벌!”

- 너 또 울고 그러는 거 아니지?

나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대답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우는 거 아닙니까?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흉가인 걸 알았을 때.”

- 두 번째 꺼 까진 맞는데 세 번째가 좀 이상하네

- 대부분의 남자들은 흉가 갈 일이 없는데?

- 울지 마. 큰 형님에게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 혹시 아냐? 나중에 너를 모티브로 한 영화라도 만들지

- 그럼 워어어어! 시벌! 형님 진짜 입니까아아! 하겠지

- ㅅㅂ 음성지원 뭔데? ㅋㅋㅋㅋ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제가 마라탕 형님에게 큰 절을!”

- 뭐? 또 두 번 절하려고?

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냐.

4층에 올라와서 뭔가를 해보려고 했지만 EMF 측정기의 반응이 너무 적다.

어떠한 위화감도 없다.

하지만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카메라를 보며 중얼거렸다.

“스읍··· 형님들 그럼 여기서 고스트헌터를 한번 해보겠···”

- 야. EMF 측정기 반응 보여줘 봐.

“EMF 측정기는 왜요 형님? 제가 혹시 뭐 일부러 반응 없는 4층을 온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 알아서 말하네. 정답. 빨리 보여줘 봐.

“참나··· 형님들. 저를 뭐로 보고···”

곧이어 EMF 측정기를 보여주는 척하다 다시 내리며 능청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생각할수록 서운하네요 형님들. 한두 번 방송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저를 그렇게 의심하실 수가 있습니까?”

-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 야. 백퍼다. 저 새끼 저거 정곡을 찔렸다.

- 일부러 어처구니없는 척하는 거 맞지?

- 맞아. 자연스럽게 EMF 측정기 안 보여주고 화제 돌리잖아.

- ㅅㅂ 난 속음.

- 순간 표정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미안하다 할 뻔.

- 아마 EMF 측정기에 2단계도 안 찍혀 있을걸?

- 엠창 1.5단계 찍혀있을 듯

- 님. 굳이 엄마를 여기다가 걸 필요는···

- 백 프로지. ㅅㅂ 귀신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 내기 함 할까요? 기다려보셈

[ 다이겨우즈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지금 당장 EMF 측정기 들어서 반응 보여주면 만 원.

나는 콧방귀를 뀌던 표정 그대로 앞을 보았다.

그 상태로 마지못해 EMF 측정기만 살며시 들어젖혔다.

1.5단계.

[ 다이겨우즈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거봐. 이 새끼 이럴 줄 알았어. 어디 반응도 없는 곳에서 대충 해처먹고 넘어가려고!

나는 넙죽 엎드려 절하듯 소리쳤다.

“아이고 형님 죽을죄를 지었··· 아니. 후원 만 원 정말 감사합니다요오오오. 형님! 방금 전까지 3단계가 막 요동쳤···”

난 말을 하다 말고 채팅창의 분위기를 힐끗 눈치 보다 진실을 토했다.

“었던 것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환각을 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형님들···”

시벌··· 무덤을 다 밀고 지은 건물이라는데.

폐가처럼 막 돌아다닐 수 있겠냐고.

빤스만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보는 너네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여기는!

가만히 서있는 것도 살 떨려 죽겠구만···

그나저나 진짜 그 꺼림칙한 208호를 가야 하는 건가?

도망갈 곳이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채팅창에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갑니다 가! 이 연우가 그 208호의 진실을 파헤치러!”

[ 이 연우가 그 208호의 진실을 파헤치러! ]

한 발 뒤늦게 울려대는 내 목소리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버렸다.

“워어어어! 시벌 뭔데!”

- 어? 방금 뭐냐 진짜?

- 연우 목소린데?

- 근데 뭔가 이게 사람 목소리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 살짝 이질감이 드네

- 시발. 뭐야 소름 끼치게

- 설마 그거 아니냐? 귀신 중에서도 그 사람 목소리를 따라 한다는 장산범?

- 헐··· 그건 진짜 영화로 봤는데 개 무섭던데

- 그런 소리 하지 마셈. 연우 울겠다

장산범?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사람의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 낸다는 그 소문의 귀신.

시벌. 근데 그런 귀신이 지금 여기 왜 있는 건데?

“형님들. 그런 거 말해봤자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저 이제 매일같이 소리 지르고 도망가는 짓 안 합니다. 오늘 다짐했습니다. 이제 맞서 싸우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 매일같이 다짐했다.

오늘만큼은 꼭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리라.

[ 아프니까병원이다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근데 한결같이 실패하지 않았냐? 성공했던 기억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 아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습니다 형님들. 오늘 꼭 성공합니다.”

나는 씩씩대며 내려갈 계단을 뚫어지게 째려봤다.

- 기세는 좋은데 지진 왔냐? 카메라 왜 이렇게 흔들려 ㅅㅂ

나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사과했다.

“죄, 죄송함다.”

그렇게 시청자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나는 성큼성큼 208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2층과 가까워질수록 덜컹거리는 문소리와 쿵쿵대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설마 이 소리가 208호에서 나는 건가?

그렇게 순식간에 2층 계단에 서게 된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쿵. 쿵.

“시벌··· 미치겠네. 문 소리가 다른 데서 나는 게 아니라 저기 208호에서 나는 것 같은데요?”

게다가 201호, 202호···

점점 208호와 가까워질수록 EMF 측정기는 반 단계씩 솟구치고 있었다.

2단계, 2.5단계··· 3단계.

하. 씨. 미치겠네. 저기 진짜 뭐가 있긴 한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208호 닫힌 문 앞에 내가 섰다.

나는 유리창 안을 슬쩍 살펴보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해댔다.

“누, 누구 계십니까아아?”

- 네. 귀신 있어요오오오~

- 들어오세요오오오~

- 라고 하겠냐 이 새끼야. 걍 빨리 열고 들어가.

- 안 쫄았다더니 목소리 떨리는 거 봐라.

- 와. 근데 나도 긴장된다. ㅅㅂ

- 괜히 연우가 떠들어놓은 것 때문에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

- 시벌. 그런 얘기 하지 마셈. 남자인데 인형 끌어안고 있으니까.

[ 계십니까아아아 ]

“워어어어어 시바아아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 발짝, 세 발짝. 문에서 뒷걸음질 쳤다.

안에서 대답한 건가?

아니야. 밖인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작은 소리가 울려대는 통에 도저히 분간을 할 수가 없다.

- 30초 안에 그 문 열면 5만 원.

“하아··· 시벌.”

하지만 내 손은 이미 문 고리를 잡은 후였다.

“뭐야 여기는 왜 잠겨 있어?”

연기가 아니었다.

자물쇠라도 잠가놓은 듯 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문을 열 때마다 조금씩 벌어지는 틈을 이용해 나는 안을 살펴봤다.

“자물쇠가 잠겨 있는 것 같긴 한데···”

나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바닥에 나자빠졌다.

“와아아아악! 시바아아알! 귀, 귀신! 귀시이이인!”

그리고 바닥에 자빠진 채로 뒷걸음질 쳤다.

- 어? 뭐야? 방금 사람 몸이 보인 것 같은데

- 나만 본 게 아니구나

- 뭐지? 이렇게 뚜렷하게 사람 옷이 보인 적이 있던가?

- 노숙자?

- 아냐. 귀신같은데. 소리가 없잖아

- ㅅㅂ 도대체 뭔데?

- 와. 시발. 나 지금 머리카락 다 섰음

- 나도 시벌.

불과 어제 귀신 마을에서 창호지 문을 두고 뱀 여자와 마주쳤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겪었던 공포를 또다시 마주한다면 그 공포가 줄어들까?

두 번, 세 번, 아니. 백 번을 마주치더라도 반응은 한결같을 것이다.

그때와 다른 건 이 방안의 그 누군가는 눈에 실핏줄이 터질 듯 돋아나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 본 건가?

“혀, 형님들. 바, 바람 좀 쐬고 다시 와도 되겠습니까?”

- 아니 안 돼.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내 얼굴은 패닉 상태에 가까워졌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것 같았다.

못 열어. 저거 못 연다고!

- 10초 지났다. 15초. 20초···

시벌. 10초, 20초는 무슨.

벌써 1분은 더 넘겼겠구만.

저 형님 일부러 그러는 거지?

후원 가지고 일부러 나랑 밀당하려는 거잖아.

하지만, 그 방법은 내게 먹혔다.

나는 방금 전에 내가 뱉었던 말을 되새기며, 다시 용기 내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문을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시, 시발! 누구야! 귀신이야!?”

- 응. 귀신이야.

- 아니. 도대체 누구랑 대화하는 거야

- 그걸 문 열면서 물어보면 귀신이 답을 하겠냐고 개색갸

-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콩트를 선택했다.

- 근데 방금 EMF 측정기도 반응 있지 않았음?

- 3단계까지 찍히는 걸 봤는데 지금은 모르겠네

- 그럼 진짜 뭔가가 있다는 건 확실한데

내 심박수는 점점 커져만 갔다.

마치 가슴 밖으로 튀어나와 뛰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오늘 진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

귀신이고 뭐고 오늘 내가 매운맛을 보여주겠어.

부적으로 안 되면 힘으로라도 내가 널 때려눕힌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열심히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덜컥. 덜컥. 덜컥. 덜컥. 삐걱.

무언가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린 그 순간.

나는 의문점이 들었다.

내가 잡고 문을 흔들 때마다 덜컥거림의 정도가 늘어났다.

한 번은 얇게 열리는가 싶더니 쿵! 하고 닫혔고.

한 번은 크게 열리는가 싶더니 잽싸게 다시 쿵! 하고 닫혀버렸다.

“시벌.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뭐야? 나 챔피언이야! 용서 안 해!”

왜 챔피언이란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는지도 모른다.

그저 두려움과 다급함이 함께 공존하는 그 순간.

나는 있는 힘껏 그 문을 열어젖혀버렸다.

드르륵! 콰콰쾅!

자물쇠가 작살나는 소리와 함께 낡은 나무 문이 부서지듯 활짝 열렸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안에 있던 까만 그림자가 나를 잡아먹을 듯 덮쳤다.

토끼만큼 눈이 커진 나는 그 상황을 인지할 겨를도 없이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놀란 마음에 내게 다가온 그 그림자를 반사적으로 무릎으로 올려쳤다.

“와아아아악!”

순간, 사고가 정지되었다.

뭐야? 내가 귀신을 때려눕힌 건가?

아니 잠깐. 귀신이 때린다고 눕혀지는 거였던가?

정신을 차리고 바라본 내 앞엔 위아래로 검은 옷을 차려입은 남자 한 명이 게거품을 물고 풀썩 쓰러져 있었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 낯익은 그 얼굴을 보고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뭐야 당신···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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