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림칙한 폐 고시원. 2
너무나도 선명하게 꽂힌 아줌마의 목소리.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춰 서서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악! 자, 잘못했습니다?”
- 아우씨. 깜짝이야
- 뭔데 ㅅㅂ
-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라 쪼옴!!!
- 잘못했습니다는 뭔뎈ㅋㅋㅋ
- 반사적으로 나오는 습관인거지
- 애 떨어질 뻔했다.
- 님 남자아님?
“······거기 누구 계세요?”
대답이 없는 고시원 내를 두리번두리번하며 소리의 행방을 찾았다.
“바, 방금 아줌마 목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카운터 인가? 어디지?”
- ㅅㅂ 뜬금포 아줌마 타령이여?
인상을 잔뜩 찌푸린 내가 중얼거렸다.
“200··· 208호 학생. 일찍 일찍 다녀야지? 라고 한 것 같은데···”
- ㅋㅋ 오늘 하이라이트는 208호 인가보지?
- 너한테는 계획이 다 있구나?
“아닌가? 잘못 들었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운터로 보이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좁게 붙어있는 구조 때문에 유난히 발자국 소리도 크게 울려대는 고시원.
하얀 페인트가 전체적으로 칠해져있는 반면, 방 사이사이에 붙어있는 문에는 갈색 페인트가 칠해져있다.
옛날 구조라 모든 문이 여닫이가 아닌 미닫이로 설계되어 있었고.
그 때문인지 바람에 덜컹거리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온다.
덜컹. 덜컹. 덜컹. 덜컹.
그 소리가 마치 어린아이가 문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도 같은 느낌도 들어서 그런지.
무언가가 홱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에 몸이 항상 긴장 상태다.
나는 겨우겨우 카운터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안쪽을 헤드랜턴으로 비춰보았다.
“휴···”
다행히도 카운터 안에는 낡은 의자와 흰 종이들만 널브러져 있었다.
“누가 계시는 것 같지는 않···”
“···녕하세요?”
순간적으로 놀라 몸이 흠칫거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렸지만 1층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2층? 아니 3층?
입구에 들어왔을 때 들렸던 아줌마 목소리 때문에 괜히 두려움이 배가 되었다.
- 와씨! 여긴 왜 이렇게 잡소리가 많이 나지?
- 어우. 나는 귀신 나타나는 것보다 소리가 더 무섭더라
- 인정. ㅅㅂ 소리가 90%는 다 해처먹음
- 그거 암? 공포영화에 코믹 BGM 깔면 하나도 안 무서움
- 근데 막상 그러면 공포영화 보는 재미가 없어.
- 그나저나 1층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 2층 아니냐?
- 설마 아까 연우가 말했던 208호는 아니겠지!?
- ㄷㄷㄷㄷ
잠시 동안 모든 동작을 멈춘 채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렇게 집중할 때면 모든 소리가 일제히 멈춰버린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뭐야 여기 도대체···”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카운터 안에 있는 흰 종이에 시선을 돌렸다.
외출 기록부?
기록부에는 몇 호실의 누가 언제 외출을 했는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208호 살던 사람은 외출을 굉장히 많이 했었나 보네요. 외출 기록이 죄다 208호인데?”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는 일절 끊겨있다.
그렇게 많은 외출을 많이 하던 사람이 9월 27일 이후로는 일절 외출이 없었다.
지금 이 맘 때쯤이네.
“그나저나 형님들. 여기 통풍이 잘 안되는 건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엄청나네요.”
- 근데 아까 밖에서 보니까 양옆으로 다 뻥 뚫려있어서 햇볕 잘 받겠던데? 아닌가?
생각해 보니 그렇다.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은 있었지만, 그리 높지 않은 나무들이었다.
어느 방향에 있어도 햇볕을 잘 받을 수 있는 위치.
그런데 왜 이렇게 곰팡이가 많이 껴있지?
“맞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습하죠? 통풍 환경이 조성이 안 돼있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자로 펼쳐진 복도로 시선을 돌리자 방 앞마다 하나씩 창문이 달려 있었다.
“그것도 아닌데···”
- 고시원 방이나 구경시켜 줘. 옛날 추억에 좀 빠지게
곧장 첫 번째 방을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았다.
“우워어어어! 깜짝이야! 시바아아알!”
성인 한 명이 누우면 꽉 찰 정도의 크기.
그런 콩알만 한 방 천장에는 곰팡이와 습기 때문에 떨어진 하얀 벽지가 머리카락처럼 늘어져 있었다.
“시벌. 사람이 매달려 있는 줄 알았네.”
하얗게 내려앉은 벽지들이 마치 사람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 소리 좀 그만 질러 개색갸! 나도 개 깜짝 놀랐잖아 ㅅㅂ
카메라에 대고 O를 만들어 보인 나는.
순식간에 방 안을 쭈욱 훑어본 후,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렸다.
“형님들.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고시원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방이 작은 가요?”
- 그렇지. 2평 정도?
- 사람 하나 누우면 끝이야
- 너 정도면 다리도 쭉 못 펴겠다야
- 나는 한참 남겠네··· 에라이 씨발
- 진짜 잠만 자는 곳이여
- 방음도 안 돼
- 저런 곳에서 내가 2년을 공부하는데 날렸다.
- 오 그래서 뜻을 이뤘나요?
- ㄴㄴ. ㅅㅂ 그냥 날렸다니까
“아··· 그렇구나.”
내 목소리와 똑같은 음성이 내 귓속을 스치듯 울려왔다.
[ 아··· 그렇구나. ]
아니. 목소리를 따라 하는 건가?
고개를 돌린 그곳은 놀랍게도 쭉 펼쳐진 복도 쪽 이었다.
“워어어! 뭐야? 형님들? 방금 누가 내 목소리를 따라 했어!”
- 어? 나도 들은 것 같은데 방금. 메아리치는 느낌이 아니었어
“그쵸! 그쵸 형님!”
인상을 잔뜩 찌푸린 나는, 곧장 복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괜스레 돋아 오르는 소름을 없애기 위해 오히려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잘못했. 아니. 거, 거기 누구 계세요? 계시면 얘기 좀!”
하지만, 복도엔 싸한 정적만이 흘렀다.
곧이어 EMF 측정기도 확인해봤지만, 별다를 게 없는 1~2단계의 반응만을 보인다.
- 이 고시원을 왜 산속에 지었는지에 대한 비하인드를 밝혀내면 백만 원.
문득 울리는 후원창에 나를 눈살을 찌푸렸다.
“비하인드요? 갑자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백만 원이라는 미션에 내 눈에는 생기가 돋았다.
나는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며 중얼거렸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형님···?”
내겐 사이코메트리라는 능력이 있다고.
- 눈 좀 그렇게 뜨지 마
- 졸라 얄미워 죽겠네
- 근데 그걸 연우가 어찌 알아냄?
- 독심술사도 아니고.
- 독심술사도 그건 못 알아내지. 아무도 없잖아
- 그럼 오늘 나무꾼 보살 뭐 보여주나?
- 그래. 보여줄 때 됐지. 다른 춤은 더러워도 칼춤은 잘 추드만
- 가즈아! 비하인드를 알아내러!
- ㅇㅇ 고고
일단 이곳은 아니다.
반응이 1~2단계에서 그치는 것으로 보아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반복해서 울리는 이 소리에 집중했다.
2층 위로는 계속해서 덜컹거리는 문 소리와 무언가가 부딪히는 쿵, 쿵 소리가 자꾸 들려왔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지만 내 목소리가 반복되어 들리는 이 소리도 이제는 위층에서 들리는 것만 같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곧장 208호로 향했다.
“형님들. 그럼 EMF측정기 반응이 좀 있는 곳으로 한번 찾아 가볼게요.”
그렇게 1층에서 빠져나와 나는 곧장 계단으로 향했다.
역시나 옛날 건물인지라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일일이 계단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덜컹. 덜컹. 덜컹.
거리가 조금씩 좁혀지자 점점 커지는 소리들.
나는 2층에 도착하자마자 잠시 멈춰 서서 2층 복도를 쭉 훑었다.
‘201, 202, 203··· 저 끝 방이 208호인가?’
다른 방과는 달리 건물 끝 벽에 붙어있는 208호는 내가 보는 정면에서 문이 보였다.
문 중간에는 투명 유리는 아니지만, 사람의 실루엣이 보일 정도의 희미한 투명도를 가지고 있는 창문도 있었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헤드랜턴으로 비춘 그 208호 문에 분명 사람 얼굴의 실루엣이 비쳤었다.
170 정도 됐을까.
짧은 스포츠형의 머리를 한 그것은 분명 남자의 실루엣이었다.
- 어디 갈 건데? 2층?
- 아까 208 거기 가려는 거 아님?
- 아닌 것 같은데? 3층 가려나?
- 뭐야 야 인마! 어디 갈 거냐고
나는 원래 가려던 208호를 뒤로하고 자연스럽게 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음. 여, 여기는 반응이 없네요. 더 올라가야 겠어요.”
처음 들어왔을 땐 아줌마의 목소리.
게다가 208 문에 비친 건 남자의 실루엣.
무언가 이상하다.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면 지금 벌써 두 명의 귀신을···
나는 자연스럽게 3층 계단으로 올라가며 말을 중얼거렸다.
“아··· 이번에는 색다르게 꼭대기 층부터 해서 살펴봐야겠다! 형님들. 괜찮죠?”
- 208호 거긴 안 가고? 아까 뭐 아줌마 목소리 들렸다더만.
“아 그, 그거는 제가 환청을 들은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뭐지 도대체?
아줌마가 말했던 208호 학생.
그 208호에 비쳤던 건 죽은 학생인가?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아니. 확인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이렇게 확신하면 안 되지.
내가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자 어느새 고시원의 끝 층.
4층에 도착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복도를 비추며 얘기했다.
“형님들. 여기가 고시원 끝 층이네요.”
그리고 곧장, 별 다를게 없는 4층에 있는 방들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4층이 햇볕을 더 많이 받는 위치인데, 여기 역시도 곰팡이가 장난이 아닌데요? 도대체 왜 이러지?”
일일이 붙어있는 창문 때문이라도 도저히 곰팡이가 생길 수 없는 환경인데.
굉장히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와 씨··· 냄새.”
그저 도심과 동떨어진 곳이라 망한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나 꿉꿉한 환경에서 지내는 게 여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붙여놓은 벽지는 붙여놔도 금방 축축 늘어졌을 것이고.
곳곳에 누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언제나 습한 환경을 달고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반대로 말하자면 귀신이 정말 좋아하는 환경이란 소리.
나는 이곳저곳을 계속 둘러보다 본능적으로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곧이어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쳐다봤고.
큰 손 형님. 마라탕 형님을 향해 중얼거렸다.
“형님.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기인데··· 여기 혹시 무덤 같은 걸 밀고 올린 건물은 아니죠?”
순간, 정적이 흘렀다.
- 정답.
순간, 백만 원이라는 후원에 눈이 번쩍 떠졌지만.
곧이어 내 얼굴은 급격하게 늙어갔다.
혹시나 해서 한 말인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왜 여기가 제2의 선지곤으로 불렸는지 알 것만 같다.
시벌··· 나 지금 잔뜩 화나 있는 귀신의 집을 찾아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