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반이다.
나는 그저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몸놀림을 가졌다.
사람보다 빠른 짐승의 속도로 날 덮칠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여자는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슥.
그리고 그 소리가 귀에서 완벽하게 사라지자 그제야 숨을 뱉어낼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 야. 너 괜찮냐?
난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 질주를 해도 땀 한 방울이 흐르지 않을 날씨지만.
이미 내 온몸은 식은땀으로 말 그대로 샤워를 하고 있었다.
나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지나친 건 행운이었다.
그나저나··· 입속에 물고 있던 그 하얀 머리카락은 대체 뭐였지?
설마···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은 아니겠지···?
상상에 상상을 더해 끔찍한 모습이 자꾸 연상된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타다다다닥.
마음이 급해지니 빠른 걸음이 전력 질주로 바뀌었다.
나는 여기저기 사람 사는 마을이 보이고 가로등이 밝게 비추는 정류장에 멈춰 서야 한숨을 돌렸다.
“시벌··· 도대체 저 여자는 뭐지?”
- 미친 여자
- 백발 할아버지 여자친구
- 뭔데? 아까 마주쳤던 사람 그 여자 맞지?
- 맞는 듯. 이 시간에 하얀 소복 입고 다니는 미친 여자가 그 사람 밖에 더 있겠어
- 와··· 그냥 미쳤다고 생각하고 넘기려 해도 소름이 끼치네
- 길거리에서 마주쳤으면 기겁했을 듯
- 기겁이 뭐야? 난 거품 물고 쓰러졌을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청자들에게 얘기했다.
“아니에요 형님들··· 우리가 아까 봤던 그건 사람이 아니라고요···”
곧이어 아까 바닥에서 주워왔던 무언가를 카메라로 비췄다.
그 여자가 입에 물고 지나갈 때 바닥에 뚝뚝 흘려댔던 머리카락이었다.
- 어? ㅅㅂ 그거 뭐냐···? 할아버지 머리카락 색깔이랑 비슷한데?
나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맞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 머리카락. 여자의 입에 물려 있던 머리카락이었어요···”
더 소름이 끼치는 건 여자가 지나가면서 내게 중얼거렸던 그 한마디였다.
“그 여자가 지나가면서 저한테 그랬어요··· 아깝다··· 너를 잡아먹었어야 했는데···라고요.”
순간, 너무 겁을 먹으니 비명을 지를 생각도 못 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 헐. 실화냐?
- 저 여자가 사람이 아니라고?
- 무슨 소리야. 분명 하얀 소복 입은 그냥 미친 여자였는데
- ㅅㅂ 연우 말이 신빙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 여자 지나갈 때 발 소리 들은 사람?
- 컥. 그러고 보니까 나 못 들음.
- 뭐지? 맨발이어도 땅 밟는 소리가 들렸어야 했는데 안 들렸어.
- 게다가 처음에는 그 여자 뛰어서 왔잖아!
- 무슨 계주 선수보다도 빠른데 옆에서 숨 헐떡이는 소리도 없었어
- 아 시벌. 구라 좀 치지 마 얘들아. 소름 돋잖아
- 난 이미 바지에 지림. ㅅㅂ
그런 마을에서 말도 안 되는 미션을 했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난다.
하마터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시벌. 돈도 돈이라지만, 다음부터는 정말 정신 차려야겠어.
내가 살아있어야 돈도 벌 수 있는 거지. 죽으면 개뿔 아무 소용 없는 거니까.
나는 다 죽어가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형님들··· 이런 곳은 다신 오고 싶지 않네요. 다음엔 난이도를 좀 낮춰서···”
- 아무리 겁먹었어도 안 가겠다는 소린 안 하네. 여윽시 우리 연우.
- 그럼그럼. 돈은 벌어야지. 이제 파란 지붕 단독주택 이사 갈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규!
그래.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데.
다 우리 사랑하는 엄마와 쥐포랑 같이 살 파란 지붕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기 위해서다.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시벌!
“왠지 오늘은 집에서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네요 형님들. 완전 땡큐합니다.”
그렇게 정류장에서 시청자들과 떠들다 보니 어느새 날은 밝았다.
나는 이 마을에 올 때처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서야 집에 도착했고.
버스에서 기절한 모습까지 방송에 내보내고 나서야 방송을 껐다.
“혀으니임들. 연우 좀비 갑니더어어어··· 빠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좀비처럼 이불 위로 직행했지만.
나는 사랑하는 아린이에게 폭풍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 오빠. 아무리 사람들이 후원을 해준다고 해도 뱀신의 제물로써 바쳐지는 그 항아리에 직접 들어갈 수가 있어요? 정말 무슨 일이라도 났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요! 정말 속상해! 내가 그 시청자들한테 따끔하게 한 소리 해야겠어요! 더는 못 참아! ]
엄마에게도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없던 잔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함에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이 방송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이 세상에는 나 혼자였는데···
정말 많이 달라졌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생겼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생겼고.
물론 사람마다 사랑하고 걱정해 주는 방식은 달랐지만, 그 모든 게 다 나에 대한 관심이라는 것에서 정말 뿌듯함을 느꼈다.
나는 그런 임아린에게 답장을 보내고 눈을 감았다.
아니. 피곤함에 그대로 뻗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답장을 안 했다고 삐친 임아린을 한참 달랬다.
소원을 들어줘야 된다는 아린이의 요구를 수락하고 곧장 여태 받았던 수익을 살폈다.
파란 지붕 단독주택, 파란 지붕 단독주택···
지카이 숲에서 마라탕 형님에게 받은 천만 원과 나머지 후원금들.
100,000원··· 100,000··· 1,000원···
1시간에 걸쳐 모든 후원 금액을 합쳐봤는데.
무려 총 4,400만 원가량.
“헐랭. 미쳤다 진짜···”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이던가.
나는 온몸에 돋아 오르는 소름을 느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입 볼륨을 최대로 줄이고 이를 꽉 깨물며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우어어어어어! 파란 지붕 집 얼마냐 시벌! 형이 사러 간다!’
게다가 요번 달 유트브 수익이 합쳐질 것을 생각하면··· 얼추 되려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매매 가격을 둘러보았는데···
“커헉!”
나는 순간, 좌절하고 말았다.
내 생각이 짧았다.
집을 산다는 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제아무리 시골 바닥 단독주택이라지만, 1억이 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러다가 집 사기전에 내가 귀신 되는 거 아닐까···
19살이라는 나이에 거진 5천만 원이라는 금액을 모은 것도 기적이지만.
이제야 꿈의 목표에 반을 달성했다는 걸 깨달은 내 얼굴엔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스며들었다.
그렇다고 엄마와 쥐포랑 같이 살 곳인데, 귀신 들린 집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혹시 대출은···?
그 생각 역시도 1초 만에 포기했다.
아, 나 아직 학생이지.
곰곰이 머리를 쥐어싸매던 나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시벌··· 또 방송하러 가야지 뭐···”
엄마가 집에 있는 관계로,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인사했다.
“형님들. 연이루! 연우 왔습니다아아!”
- 뭐야? 집이야?
- 집에서 왜 갑자기 방송을?
- 뭐 브이로그 이딴 거 한다고 하면 죽인다.
- 근데 왜 이렇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거야. 안 들리잖아
- 누구 있냐? 설마 여자?
- 그 예쁜 임아린을 두고 바람피는 건 아니겠지?
- ㅅㅂ 김태휘랑 사귀어도 귐수미랑 바람피는 게 남자라더니
- 미친놈들. 그냥 몰방 중인 거 같은데
“저희 집입니다 형님들. 다름이 아니라, 오늘도 형님들에게 꿀 잼을 드리려고 제가 저녁에 방송을 나갈 건데요···”
- 오늘도 우리의 후원금을 열심히 털어보겠다는 말로 들리는구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얘기했다.
“무슨 소리예요 형님. 그럼 그냥 방송하지 말고 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
- 야! 스탑! 스탑 이 색갸! 어디 가! 장난한 거야!
“저도 장난입니다 형님.”
- 이 새끼. 이제 우릴 아예 가지고 노네. 그래서 뭐? 어디 갈 건데 오늘?
나는 검지와 엄지를 턱에 가져다 대고 고민하는 척 말을 중얼거렸다.
“타 BJ나 유트버들이 다녀오지 않은 희귀한 곳을 찾으려니 쉽지 않네요. 하지만 이 연우가 누굽니까! 급하게 여러 군데를 찾아본 결과, 세 장소를 간추렸습니다yo.”
- 이집트 피라미드?
- 인도, 캠배이 만의 해저 유적?
- 그건 뭐임?
- 인도 9,500년 전 고대 도시의 유적임. 해수면 아래 40미터에 있음
- 미친. 거길 어케 감
- 왜? 연우 접영 하는 거 보니 잘 갈 것 같은데
- 미친놈들 무시하고 말해 봐!
나는 하얀 종이를 꺼내 미리 적어놓은 세 장소를 보여주었다.
1. 피비린내 진동하는 산속 폐 수영장.
2. 자살 원한귀의 저주받은 폐 학원.
3. 그냥 의문의 집.
종이에 이 세 군데를 쓰면서 난 옛날 폐 모텔을 가기 전 상황을 떠올렸다.
그때도 시청자들에게 선택지로써 말해주었던 2군데, 수영장과 폐 학원.
그리고 폐 학교.
폐 학교는 이미 한번 갔다 왔기에 선택지에서 제외.
나머지 두 군데와 나름 시청자들을 속이기 위한 한 장소.
본능적으로 당기는 그냥 의문의 집을 3순위에 끼워 넣었다.
귀신 마을에서 압도적으로 기에 밀렸던지라, 이번엔 좀 쉬운 곳을 택하고 싶었다.
저번에도 이렇게 해서 폐 모텔을 갔으니까 이번에도 이런 식으로 하면···?
나는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고 입을 열었다.
“형님들. 이 세 군데 중에 하나를 골라 가겠습니다.”
- 3번!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 이럴 줄 알았냐?
순간, 멈칫거렸다.
시벌. 뭔데?
- 이 새끼 이거 잔 머리 굴리네.
- 옛날과 똑같은 방법으로 투표를 진행하되, 네가 가고 싶은 곳을 일부러 3번에 넣었지?
- 우리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색갸
- 분명히 네놈은 우리가 3번을 선택하게끔 설명 없는 그냥 의문의 집을 끼워 넣었을 것이여
- 우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여
- 절대 같은 방법은 쓰질 않제~
- 닥치고 모든 건 큰 형님이 결정한다
- 큰 형님 얼른 나와주쇼!
내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게 아닌데···?
곧이어 악마와 같은 그 음성이 울려 퍼졌다.
- 이번엔 폐 고시원 어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