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70화 (170/225)

귀신 마을. 7

너무나도 뜬금없는 부탁에 눈을 껌뻑거렸다.

“네···? 하, 항아리 안으로 들어가라고요?”

할아버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도대체 뭘 하려고 날 저 안에 가두려는 거야?

“부탁만 들어준다면 신의 가호가 있을 것이여.”

나는 요리조리 머리를 써가며 빠져나갈 궁리를 해본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지, 날 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 걱정 말어.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끝나는 간단한 거니께.”

- 야. 할아버지가 부탁하시는데 걍 들어가라.

- 뭐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 근데 뭔 부탁이 그래?

- 항아리에 가둘 셈인가

- 그게 가능한가? 상대는 연우인데?

- 할아버지가 연우를 너무 쉽게 보는 듯

- ㅇㅇ 인정. 쟤는 그 정도로 가둘 수 없는 괴물인데

- 후원만 해준다면 항아리 가루로 만드는 거 가능할 듯

뭐라는 거야 이 형님들이···

근본적으로 저 항아리에 넣으려는 이유부터 의심해야 되는 거 아니냐.

크기부터가 딱 사람을 넣을만한 항아리다.

게다가 지금 저 항아리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인지는 몰라도 꾸릿꾸릿한 기분 나쁜 냄새가 콧속으로 자꾸 들어온다고···

내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혹시 이 항아리는 무슨 용도인가요?”

할아버지가 항아리를 만지작거리며 얘기했다.

“이거? 그분에게 공양을 올리는 용도지.”

“고, 공양이요?”

바친다는 의미잖아.

그 말은 즉, 나를 제물로써 그 뱀신에게 바친다는 얘기인 거야?

아니. 이 할아버지는 그런 섬찟한 말을 상냥하게 말하는 건데?

항아리에 들어간다고 해서 뭐 별일이야 생기겠냐마는.

그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것도 찝찝하다.

아까 내 몸을 잔뜩 굳게 만들었던 뱀 여자가 어디선가 툭 하고 또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내가 얘기했다.

“설마 제 몸을 바치라는 얘기이신 건가요 지금?”

“그분의 새끼에게 좋은 영양분이 됨으로써 극락의 세계로 가는 것이지.”

미쳐도 제대로 미쳤네 이 할아버지.

그런 의미가 담긴 항아리에 내가 내 발로 들어갈 리 없잖아.

나는 지금 분명히 사람과 대화를 주고 받고 있다.

하지만 마치 귀신과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온몸에 소름이 잔뜩 돋아 오른다.

게다가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할아버지 치아에 핏기들은 분위기를 더 섬찟하게 만들었다.

“하하··· 저는 아직 할 일이 많아서 제물이 되기에는 좀···”

최대한 기분이 나쁘지 않게 거절을 해보려했지만.

내 한 마디에 할아버지는 얼굴을 잔뜩 찌그러트리며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소원을 빌었으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인디. 시방 지금 그 부탁을 안 들어주겠다는 겨?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항아리에 굳이···”

- 연우야. 어르신을 공격. 아니 공경해야지. 부탁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들어드려라.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할아버지가 듣지 못하게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렸다.

“혀, 형님들. 저 할아버지가 지금 저를 제물로써 뱀신에게 바치려고 하는 거라고요. 그런데 제가 저길 왜 들어갑니까······”.

- 자. 우리 연우가 어르신을 공경할 수 있게 후원을 좀 해달랍니다.

- ㅇㅋ 3만 원 보태봅니다.

- 4만 원.

- 나는 포켓몬 빵 사 먹을 돈 만 원 보탬.

- 나도 담뱃값 2만 원 보탬

- 오빠 새끼 지갑에서 몰래 훔친 돈 5만 원 펀딩 합니다.

- 연우도 짬밥이 있는데 그거 가지고 들어가겠어? 술병 팔아 모은 10만 원 던진다.

- 술을 을마나 처먹은··· ㅎㄷㄷ

나도 모르게 채팅창을 보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

“3, 4, 1, 2, 5··· 10. 흠···”

하지만, 그것보다 저 항아리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꺼려지기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좀 그런데···”

- 들어가 인마.

나는 휴대폰을 챙겨 순간, 항아리 속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그나저나 항아리 속은 어찌나 넓은지 185센티가 넘는 내 몸이 한순간에 잠겨버렸다.

“할아버지. 혹시 이렇게 하면 되, 된 건가요?”

할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아니, 내 머리 위로 무언가를 덮어버리더니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조용히 있어.”

- 컥. 마지막에 할아버지 말투 개 살벌하네

- 뭔 일 나는 건 아니겠지?

- 할아버지임. 그리고 항아리 안에 가둬봤자 금방 나옴

- 그나저나 항아리 엄청 크다

- 이곳에 뭘 가뒀던 걸까? 아까 그 짐승들?

- 제물로 바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 여기에 짐승 잡아다 넣고 뱀 넣고?

- 으··· 상상되니까 끔찍하네 시벌.

나는 헤드랜턴을 켜고 주위를 둘러봤다.

팔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건 아니지만, 몸을 돌릴 수 있을 만큼 컸다.

도대체 뭘 집어넣었던 항아리일까.

바닥을 살펴보던 나는 무언가를 집어올리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오우 뭐야 이거? 뱀 새끼들?”

내 시야가 천천히 흐려지며, 흑백으로 물 들어갔다.

어?하필 이런 타이밍에···

내 귀에는 여럿 사람들이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이 뱀 동상으로 이루어진 사당.

여기저기 켜진 초가 사당 안을 훤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당 안 분위기가 엄숙하다.

마을 사람들은 뱀 동상을 보며 모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중간에 서있는 큰 뱀 동상 앞에는 하얀 천이 깔려있었는데.

하얀 천 위에는 초등학생도 안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온몸이 물 범벅이 된 채, 눈을 감고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그 앞에는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아이고 하늘이시여··· 도대체 무슨 죽을죄를 지었길래 제 어린 딸을 데려가십니까아아!”

“차라리 이 못난 저를 데려가십쇼. 저를!”

부모가 마을이 떠나가라 소리치며 울고 있지만, 정작 옆에 무릎 꿇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싸늘한 시신이 되어버린 여자아이 앞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 사람은 내 눈에도 낯익은 사람이었다.

바로 백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여자아이의 부모에게 싸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다 그분을 화나게 했기 때문이여. 감히 그분 새끼를 죽이다니···”

할아버지가 곧장 쳐다본 시선 아래에는 사람 키만 한 구렁이가 축 늘어져 죽어있었다.

“다들 똑바로 들어잉. 또다시 이런 짓 하면 내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께. 그런 줄 알고 있으라고.”

마을 사람들은 마치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곧이어 할아버지는 하얀 천위에 있는 여자아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여자아이를 손에 들어 어디론가 옮기기 시작했다.

“우리 애를 어디로 데려갈려 하시는 겁니까.”

“내가 좋은 곳으로 보내줄 테니께 잔말 말어.”

할아버지가 아이를 데려간 곳은 바로 항아리였다.

사람만 한 크기의 그 항아리.

지금 내가 몸을 욱여넣고 있는 항아리와 같았다.

할아버지는 축 늘어진 여자아이를 싸늘하게 바라보더니, 곧장 항아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열어젖힌 항아리 안에는 팔뚝만 한 구렁이들이 잔뜩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 구렁이들을 자신의 자식 보듯, 아빠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많이 기다리셨죠. 조금만 기다리십쇼. 제가 얼른···”

이건 도대체 뭔 상황이야?

설마 그 여자아이를 구렁이의 밥으로 갖다 바친 건 아니지?

왠지 모르게 이어지는 끔찍한 상황에서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끝나버렸다.

- 야. 거기 혹시 바닥에 뱀 있냐? 뭐가 이렇게 씩씩대는 소리가 들리냐

후원 소리가 항아리 안을 왕왕 울린다.

나는 궁금해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바닥에 있는 뱀을 비췄다.

- 워어어어! 미친! 항아리 안에 뱀이 있었어 시발!

- 저 많은 뱀들 사이에 껴있는데 연우 저넘은 왜캐 태평하냐고!

- ㅅㅂ 뱀이 공격 안 하고 얌전히 있는 게 더 이상해!

- 정상 아니라니까 저 놈! 뮈친놈이야!

- 내 몸에도 아주 큰 구렁이가 하나 있는데 말이야

- 이 와중에 갑자기 19금 드립을 친다고?

- 미친. 지랄. 갯지렁이겠지

- ㅅㅂ 너 방금 뭐라고 했냐. 항아리에 갇히고 싶냐

밖에서 무언가를 중얼대는 할아버지의 말이 들려온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제가 얼른 저 아이를···”

내가 뚜껑을 열었다.

아니. 사이코메트리 능력에 빠져 있던 그 사이에 무언가를 항아리 뚜껑에 올려놓은 걸까.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 할아버지. 할아버지! 뚜껑 열어주세요!”

그저 누군가와 대화하듯,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부디 이 아이를 좋은 영양분으로 삼으시고, 오랫동안 만수무강하시기를···”

밀폐된 공간이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산소도 부족해지는 느낌이 든다.

꾸릿꾸릿한 냄새를 맡으니 정신도 혼미해지는 것도 같았다.

- 뭐 하냐? 설마 너 갇힌 거냐?

점점 더 상황이 악화되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다급하게 항아리 뚜껑을 두드려댔다.

“할아버지! 이제 숨쉬기도 힘들어요! 이 뚜껑 좀 열어달라니깐요.”

- 이건 또 뭔 상황이야?

- 할아버지가 뚜껑 닫고 지금 안 열어주는 상황?

- 농담이 아니고 진짜 뱀 제물로 삼으려고 했던 거야?

- 아니. 뱀 신이고 뭐고 연우 뒤에는 더 큰 신령님이 지켜주고 계신데 감히···

- 야 인마. 이제 얼른 나와.

- 나올 때 거기 뱀 새끼 몇 마리 잡아서 나오고. 뱀 고기 먹게

- 너 지켜주는 신령님도 몇 마리 가져다드리고 인마.

하지만, 도대체 뭘로 뚜껑을 눌러놨는지 아무리 힘을 써도 미동도 않는다.

“형님들. 아무리 밀고 두드려도 뚜껑이 꼼짝도 안 해요.”

몇 대 치면 부서질 것 같았던 항아리.

들어와서 두드려보니 두께가 상당한 것 같았다.

이거 이러다 진짜 여기 갇혀 죽는 거 아니지?

꾸릿꾸릿한 냄새가 점점 더 심해지는 바람에 이제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할아버지! 저 장난 아니에요! 빨리 이거 여세요! 빨리요!”

“얌전히 기다리면 편할 것을···”

쿵! 쾅! 쿵!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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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알림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댔다.

사방에서 울리는 소리가 마치 돈쭐나는 느낌이랄까.

나는 발밑에서 새끼 뱀들이 기어 다니는 느낌을 받으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누가 나한테 돈을 벌기 쉽다고 했는가!

지금 항아리에 갇혀 있는 나에게 누가 돌을 던지리오!

- 야. 그냥 부셔

- 어쩔 수 없다.

- 어른을 공경해야 되는데 이번만은 공격을 허락한다

- 저 할아버지는 단단히 미쳤어!

- ㅅㅂ 사람 가두고 뭐 하는 거냐고!

- 미친놈들 이랬다가 저랬다가···

- 닥치고 연우 필살기 가랏!

온몸에 피가 순식간에 펌핑 된다.

팔에 잔뜩 힘을 주어 피가 쏠리게끔 집중시켰고.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후. 항아리의 옆 부분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엘보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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