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69화 (169/225)

귀신 마을. 6

이게 도대체 다 뭐야?

신당? 아니야. 그렇다고 하기엔 흔히 보이는 신령님의 조각상이 없잖아···

나는 빼곡하게 서있는 다른 조각상을 둘러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든 조각상이 다 뱀이다.

나무, 돌, 심지어 그림까지 모두.

한편에는 의식을 위한 양초와 제사를 위한 음식들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음식들이 가히 충격적이다.

고라니부터 시작해 쥐, 개, 고양이, 새···

눈에 보이는 야생동물은 죄다 생으로 가져다 놓았다.

처음 이곳을 도착했을 때.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다.

이 할아버지··· 도대체 뭐야?

- 헐. 이게 뭐야?

- 뭔 뱀 조각상이 이리 많아.

- 그림도 다 뱀인데?

- 시발··· 얘들아 그것보다 제사 음식이 다 야생동물 사체야···

- 저 할아버지가 다 잡아 놓은 건가? 왜?

- 미친 거 아냐? 뱀을 모시는 것 같은데

- 레전드네 ㅅㅂ

할아버지가 나보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에 아까와는 다르게 소름이 돋는다.

할아버지는 정면에 보이는 큰 뱀 조각상에 무릎을 꿇더니, 인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정성스럽게 두 손을 모아 큰 절을 두 번 올렸고.

앞에 보이는 술잔을 들었다.

“좀 도와줘.”

“······네?”

“좀 도와달라고.”

할아버지는 정색하듯, 옆에 보이는 술병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시벌··· 애초에 뱀 신은 사람에게 이로운 신이 아닌데···

그런 신을 모시는 일에 내가 가담을 해야 해?

이런 상황이 닥치니, 어렸을 적 동네 어르신들이 하는 얘기가 떠올랐다.

[ 한국 어느 마을에서는 뱀을 신처럼 숭배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선 뱀을 칠성(七星)이라고 하는데 '풍요의 신'으로 이 뱀 신을 잘 모시면 재물이 들어와 부자가 된다고 한다. ]

그 말을 들은 한 어르신은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

[ 절대 이롭지 못한 신이다. 가까이 해서도 안 되고 괜히 그곳이 황폐화된 게 아니야. 그 신을 모시던 놈들도 하나같이 미친놈들뿐이었다. ]

차마 이 얘기를 할 수 없는 나는 술병을 들기를 망설였다.

- 야 뭐해? 어르신이 좀 도와달라고 하시잖아!

마지못한 내가 할 수 없이 술병을 들었다.

아주 강력한 피비린내가 술병에서 진동해온다.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웁··· 시벌. 이거 도대체 뭔 술이야?

곧이어 할아버지가 들고 계시는 술잔에 술을 따르자, 그 내용물이 무엇인지 대번 알아챌 수 있었다.

동물의 피였다.

알코올 향이 나는 것으로 보아 술도 적정량 섞은 것 같았다.

“고마워이.”

술잔을 들고 시계방향으로 두 번 정도 빙빙 돌린 할아버지는 곧이어 그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으··· 그걸 드신다고?

동시에 내 몸을 움찔거렸다.

잠깐만, 이거 분위기가 이상한데···

설마 나한테도 권하는 거 아니겠지?

그 생각이 무섭게.

할아버지는 치아 사이에 핏물이 잔뜩 고인 그 입으로 씩 웃으며 내게 술잔을 건넸다.

“자네도 인사 좀 올려.”

- 미친. 줏댔다.

- 저거 동물 피 맞지?

- 새빨간 거 보니 그런 것 같은데

- 연우는 저걸 받아먹을까?

- 미션이나 줄까? 시원하게 원샷 때리고 머리에 잔 올리기

- ㅅㅂ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상황에 그런 미션을 생각하는 너는 최고?

- 후원해 주면 쟤가 더 좋아할 걸

몹시 당황한 얼굴로 나는 어설프게 대답했다.

“제, 제가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회생활을 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절대 당황하면 안 된다는 것.

나는 혹여나 할아버지가 기분 상하실까 상냥하게 웃으며 가볍게 거절했다.

“하하··· 저는 기독교라서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직 미성년자라 술을 못 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온화한 미소가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 기독교는 너희 어머님이 다니시는 거고, 너는 무교 아니었냐?

- 그리고 너 저번에 보니까 남들 몰래 병 나발 불고 그러는 것 같드만.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카메라를 잔뜩 째려봤다.

조용히 해 시벌. 도움 1도 안 되는 형님들아···

어찌나 당황했는지 선선한 그 날씨에도 내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할아버지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잔에 피를 따라주며 말했다.

“괜찮아. 아직 죽은 지 30분 도 안 된 거라 신선해.”

나에게 선뜻 신선함을 증명해 주려는 듯.

할아버지는 피를 다른 접시에 한껏 담아 두 손으로 잡아 들이켰다.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이 그릇에 가려지는 틈을 이용해 술병에 피를 다시 부었다.

혹시나 들킬 것을 생각하여 피를 입술에다 바르기까지 했다.

“으··· 좋네요.”

어찌나 긴장되는지 손이 다 벌벌 떨려온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 시발. 얘들아. 방금 봤냐?

- 손은 눈보다 빠르다.

- 와. 눈 한번 깜빡이는 사이에 그걸 거기다 넣었어?

- 저 새끼 보통 아니다. 도박을 했어도 대성을 할 놈이야

- 타··· 타짜?

- 연우야. 우리는 너의 약점을 쥐고 있다.

- 말 잘 들어라. 안 그럼 할아버지한테 이른다.- 그럼 너 피똥 쌀걸?

- 그나저나 저 할아버지 피 먹는 거 개 소름 끼치네

- 먹고 나서 저 만족스러운 표정까지 제대로 미친 사람 같아

나는 할아버지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혹시 뱀 신을 모시는 건가요?”

할아버지가 얘기했다.

“자네는 바라는 소원이 있나?”

나는 뜬금없는 대답에 어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요. 저희 엄마와 쥐포.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모두 행복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뱀 동상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저분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소원을 들어주지. 뱃속을 배불리 하는 일도, 걱정 없이 살게 하는 일도, 그리고 이곳의 안전을 지키는 일도.”

“난 그저 그분이 원하시는 걸 들어줄 뿐이야.”

“그분이라면 저기 저 뱀신 말하는 건가요?”

그나저나 그분이 원하는 게 뭐야?

문득 궁금증이 생긴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그분이 원하시는 게 뭔지 알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의 표정이 금세 달라졌다.

이번에는 나를 죽일 듯이 잔뜩 째려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게 왜 궁금해? 정말 알고 싶어?”

어휴. 두 번 알려달라고 했다가는 아주 살인이 날 것 같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솜털이 곤두서버렸으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아,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건데 말씀 안 해주셔도 됩니다.”

그 말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성큼성큼 옆에 있던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 분위기 쌉 오지네

- 이런 말 좀 그렇긴 한데, 할아버지 정상 아닌 것 같은데?

- 표정이나 말하는 거나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지

- ㅇㅇ인정. 약간 이중인격 같은···

- 싸이코패스 같기도 하고.

- 갑자기 막 돌발 행동하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 에헤이. 영화들을 너무 많이 봤네.

- 적당히들 하셈.

- 그나저나 할부지 어디 감?

“모, 모르겠어요. 갑자기 부엌으로 보이는 곳을···”

곧이어 할아버지는 무언가를 두 손으로 들고 오셨다.

나는 그 물건을 보자마자 뭔지 대번에 알아챘다.

항아리.

분명 그것은 첫 집과 두 번째 집에서 봤던 항아리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섬짓한 그 상황에 몸을 흠칫거렸다.

할아버지가 항아리를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이게 뭔지 알어?”

“네? 아니요···?”

괜히 말까지 더듬으며 나는 못 본 척했다.

시벌. 설마 저 안에도 사람 뼛가루가 들어있는 건 아니겠지?

할아버지가 항아리를 직접 열어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 안을 보기도 전에 손사래를 치며 기겁했다.

“워어어어어! 왜,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는 씩 웃으며 괜찮다는 시늉을 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안을 들여다봤다.

“어? 뱀? 뱀 새끼네요.”

할아버지는 그런 뱀 새끼들을 자신의 자식 들여다보듯.

정말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봤다.

“이게 그분이 낳으신 새끼여.”

흠··· 아무래도 상태가 심각한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살아있지도 않은 뱀 신을 여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항아리까지 들고 와서 뱀 신이 낳은 새끼라니까···

- 야. 할아버지 약주 많이 하셨나 보다야

- 술 한 잔에 훅 가신 건가?

- 저거 폭탄주냐

- 그냥 술이 약하신 듯

- 그만 들어가서 쉬시라고 해.

- 우리는 고스트 헌팅이나 좀 하자.

- 아까 그 고라니 사체 그거 누가 갖다 놨는지 정체를 밝혀야지

- 아무래도 저 할아버지 정신이 좀 나간 것 같다.

나는 혹여나 후원창이라도 울릴까.

카메라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형님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 자제 좀 부탁드립니다. 잘못된 신을 어기는 것뿐이지.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요.”

할아버지가 내가 속삭이는 모습을 보며,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다 뭐라고 지껄이는 겨?”

나는 애써 웃으며 핑계 댔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시청자들이 이 상황을 궁금해해서요.”

할아버지는 내 핑계에 다시금 항아리로 시선을 돌렸다.

항아리 안에서는 작은 뱀들이 내는 소리들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쉬익! 쉭! 쉬익!

나는 할아버지가 그 뱀들을 행복하게 쳐다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하는 모습에 흠칫거렸다.

“그려그려. 우리 새끼. 맨날 똑같은 것만 먹으니 지겨웠지. 오늘은 제대로 된 보양식을 해줄 테니께 조금만 기다리라구.”

이거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안 되겠는데.

뭔가 분위기가 심각하게 부담스럽다.

괜히 찝찝한 이 상황을 계속 이어갈 필요가 없었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넸다.

“할아버지.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늦어서요.”

그 말에 할아버지가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아니, 금방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에 들고 있던 항아리까지 옆에 내려놓고 나를 붙잡았다.

“가지 말어. 아까 뭐 소원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 빌고 가야지.”

“아뇨. 그 소원은 항상 마음속으로···”

할아버지가 강하게 내 손목을 붙잡으며, 못 가게 막았다.

“그런다고 소원이 이루어져? 여기 그분께 소원을 빌면 무조건 들어준다니께. 얼른 빌어 봐. 정말이여.”

완고하게 나를 막아서는 할아버지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무섭긴 해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눈 딱 감고 1분만 기도하고 있어 봐. 내가 옆에서 그분에게 닿을 수 있게 도와줄 테니께. 어여!”

그래. 뭐 어차피 기도만 하는 건데 별일이야 있겠나.

나는 흔쾌히 할아버지에게 대답을 건넸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기도만 얼른 드리고 갈게요.”

“그려.”

그렇게 자리에 꿇어앉아 나는 내가 항상 생각해왔던 그 소원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잠깐. 그거 내려놓고 혀.”

뭐가 신경 쓰였는지 아까부터 카메라를 의식하는 할아버지.

나는 어려운 부탁이 아니었기에 할아버지의 말대로 카메라까지 내려놓았다.

물론, 혹시 몰라 버튼 하나를 눌러 나를 찍게끔 바꿔두고 말이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엄마와 쥐포, 그리고 임아린··· 등등. 항상 안전하게 지켜주시고···”

그렇게 한참을 눈을 감고 중얼댔을까.

왠지 고요하게 정적이 흐르는 이 분위기가 느껴졌다.

뱀이 움직이는 소리도.

야생동물이 짖어대는 소리도 일제히 멈췄다.

그르륵. 그르륵.

- 저게 뭐지? 뭘 끌고 오시는 거야?

후원 소리와 함께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재빨리 등을 돌렸다.

내 앞엔 사람이 들어갈만한 큰 항아리가 있었다.

이건 대체 왜 가져오신 거지?

할아버지는 힘겹게 그 항아리를 세우고선 얘기했다.

“소원은 다 빌은 겨?”

나는 벙찐 얼굴로 항아리와 할아버지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대답했다.

“네. 그런데 이 항아리는 왜···”

할아버지는 이빨이 다 보일 만큼 입꼬리를 찢으며, 내게 중얼거렸다.

“그분한테 소원을 빌었으니 자네도 그분 소원을 들어줘야지.”

곧이어 표정을 싹 지우며 말을 이었다.

“잠깐만 이 항아리에 들어가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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