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마을. 5
차갑고 단단한 그 무언가가 내 몸을 감싼다.
발부터 종아리, 허벅지, 배까지 천천히···
이 촉감 낯설지 않다.
어렸을 적부터 틈만 나면 만지고 놀았던 동물의 감촉과 똑같았으니까.
뱀···
- 가만히 문 보고 서서 뭐해?
- 왜 이래 이놈?
- 가위라도 눌렸나?
- 아냐. 아무래도 상태가 이상한데
- 야 인마! 정신 차려!
희한하게도 난 그 기운에 압도되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내 몸이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머리와 몸이 따로 놀고 있다.
다급한 내 마음이 머릿속에서 맴 돌기만 해댄다.
그냥 뱀일 뿐이잖아···
움직여! 움직이라고!
내가 바라보고 있던 정면에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익숙한 그 소리가 귓속에 맴돈다.
쉬익! 쉭! 쉬익!
에이. 장난하지 마. 시벌···
내 시야에 그것의 정체가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한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상태인 그것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있다.
세로로 찢긴 눈동자는 정확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아까 그 짐승을 뱃속에 넣었는지, 필요 이상으로 찢긴 입 주위에는 검붉은 피로 보이는 액체가 덕지덕지 붙어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입맛을 다시듯, 혓바닥을 날름 거리고 있었다.
사람? 아니야. 그 뱀 얼굴의 여자다.
나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시벌. 정연우. 정신 차려라!
이러다가 나도 잡아먹힐 것 같은 느낌이다.
귀신의 위협적인 순간은 많았으나, 이렇게 짐승 같은 살기를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연출이 현실 속에 나타났으니까.
심한 이질감을 느껴야 할 상황이지만, 이미 공포에 질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저 여자··· 감정이란 게 없다.
아니.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을 만큼 속이 까맣다.
- 잠깐만 얘 이거 상태 진짜 이상한데
- 우리가 오늘 너무 놀렸나?
- 삐져서 그런 거임?
- 아니. 앞에 뭐 보고 그러는 것 같지 않음?
- 까매서 하나도 안 보이는데
- 소리는 들린다. 뱀 소리 같은 거
- 그쵸? 쉬익! 쉭! 쉭! 하는 소리 들리죠?
- 나만 들린 게 아니었구나
내 얼굴 앞으로 순식간에 다가온 뱀 얼굴의 여자의 눈에서는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날 노려보는 그 눈은 기괴스러움 그 자체였다.
곧이어 날 뚫어지게 쳐다보던 뱀 얼굴의 여자의 입이 찢기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혀를 날름 거렸는데···
아니. 잠깐. 사람 말을 하고 있어?
혀를 날름 거리는 그 소리가 아니었다.
얼굴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온다.
[ 네가 내 새끼를 상처입혔어. 네가 내 새끼를 상처입혔어. 네가 내 새끼를 상처입혔어. ]
어찌나 빠른 속도로 중얼거리는지.
그 소리가 마치 뱀이 혀를 날름 거리는 특유의 소리처럼 들렸던 것이다.
온몸이 소름으로 무장되버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극도의 공포의 숨도 쉬어지지 않는 그때.
뱀 얼굴의 여자는 천천히 내 앞에서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시벌!
[ 하나도안무서워오늘은엄마랑자야지 님이 3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인마! 얼음 땡! 일어나 이제!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재빨리 헤드랜턴부터 켰다.
동시에 내 앞에 그 여자는 기괴한 소리를 뱉어내며.
[ 흐익! ]
공중에 증발하듯,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얼마나 숨을 못 쉬고 있었던 걸까.
마치 목이 졸린듯한 상태의 나는 그제야 급하게 숨을 뱉어냈다.
“켁! 케헥! 하아··· 하아아아··· 시버어어얼! 진짜 뒈질 뻔했네!”
- 어? 땅바닥 좀 비춰 봐! 앞에 뭐가 잔뜩 떨어져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까 그 뱀 얼굴을 한 여자가 먹다 남은 고라니의 사체.
극한의 공포를 겪었던 나는 손까지 벌벌 떨어가며 중얼거렸다.
“그 뱀 얼굴의 여자가 먹다 남은 고라니 사, 사체 일거예요.”
- 얘가 오늘 왜 이래? ㅋㅋ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개 소리 자제 좀
- ㅋㅋ 내 말이. 연우 네 말이 사실이면 내가 십만 원 준다.
나는 답답한 마음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현실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천지라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버젓이 앞 마당에 그 증거가 남아 있었으니까.
입을 닫은 채, 성큼성큼 앞 마당으로 옮긴 나는 랜턴으로 땅바닥을 비추었다.
“하··· 이것 좀 보세요 형님들! 맞잖아요!”
- 헉? 시발 뭐야 이거
- 갈색 털?
- 짐승 털 같은데? 진짜 고라니인가?
- 뭐야 이게? 소리 하나도 안 들렸었는데
- 들린 거라곤 뱀 소리밖에 없었는데 이거 레알이냐?
- ㅅㅂ 알바 누구냐? 헤드랜턴 끈 사이에 누가 갖다 놨지?
- 그게 가능?사람이라면 발 소리가 들렸겠지
- 미친. 그것보다 그 크기를 어떻게 사람이 들어 옮기냐고
- 그럼 너는 왜 꼼짝도 안 하고 서 있었던 건데?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찢어진 구멍 사이로 그 뱀 얼굴의 여자가 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굳어버려서···”
방금 전에 겪었던 그 공포에 나는 다시 한번 몸서리를 쳐댔다.
그리고 곧장 카메라를 다시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고칼로리 형님. 아직도 제 말을 안 믿으시나요? 아니···”
짧은 한숨을 쉰 나는 말을 이었다.
“형님들. 혹시 제가 연기를 한 것 같다든지, 쇼를 한 것 같다는 분들 계시면 연락 주십쇼. 제가 폐가든 흉가든 한 번 같이 모셔서 방송 진행하겠습니다.”
주작이라고 떠들어대던 옛날 그 흉가체험 그놈처럼 말이다.
[ 귀신이고칼로리 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내가 왜 거길 왜가··· 그냥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의심하는 건 자유 아니냐!?
나는 금세 확 달라진 표정으로 눈썹까지 치켜올리며 두 팔을 활짝 들고 소리쳤다.
“워어어어! 일단 고칼로리 형님께서 십만 원으으으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그러니까 형님들. 너무 의심만 하지 말아 주세요. 저 진짜 아까 그 여자랑 눈 마주쳤는데 숨 막혀서 죽을 뻔했다니깐요!”
- 일단. 미안하다···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여자가 나에게 중얼거렸던 그 말이 신경 쓰인다.
“형님들. 근데 아까 그 여자가 저한테 네가 내 새끼를 상처 입혔어라고 했거든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 LTE 급 빠른사과하는 고칼로리 개 귀엽네
- 내 새끼를 상처 입혔다고 했다고?
- 내 새끼··· 내 새끼··· 음?
- 설마 너 여기 오기 전에 그 숲으로 던졌던 살무사 말하는 거 아니냐?
- 아니. 그럼 그 여자가 그 뱀 엄마임? ㅋㅋ
- 뭔 동화 같은 얘기를 하고 앉았냐 지금
-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 그럼 그 할아버지는? 그 여자 아빠고?
- 남자친구 일 수도 있음
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 들어갔었던 집.
그 집 뒤편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 저기···”
그 사람을 보자마자 얼른 그 집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후다다다다닥.
- 야. 갑자기 왜 그래? 왜 빤스런 하는데!
사람이다.
귀신이 아닌 것 같아.
처음 봤을 때는 내가 공포 분위기에 너무 휩싸인 나머지 착각했을 수도 있어.
“할아버지. 그 백발 할아버지가 저 집 뒤에서 날 쳐다보고 있었어요.”
내 예상이 들어맞듯, 할아버지가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하지만, 젊은 나이의 나를 따돌릴 수 없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 나에게 붙잡힌 할아버지는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얘기했다.
“뭐여. 왜 따라오는 겨?”
“워어어어! 지, 진짜 사람이셨어!”
그때 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거지?
외부인이라 그랬던건가.
그래도 사람의 육성이 들리자마자 나는 안심했다.
역시 사람이었어.
근데 이 마을에 사시는 할아버진가?
- 뭐야? 진짜 사람인데?
- 귀신 아니지?
- 백발 할아버지. 우리가 첫 집에서 봤던 그 할아버지네!- 그 뱀 여자친구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
- 와. 나는 난생처음 방송으로 귀신본 줄 알고 개 깜놀했네
- 레알 나도. ㅅㅂ 귀신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 ㅋㅋ 너네 그냥 귀신이 무서워서 없다고 부정하는 거지?
- 그런 듯 ㅋㅋㅋㅋㅋ
“할아버지. 아까 봤는··· 아니. 실례지만, 혹시 이 마을에 사시는 분인가요?”
할아버지가 대답을 뜸 들인다.
얼굴에는 검버섯으로 보이는 검은 자국들이 더욱 할아버지의 인상을 험상궂게 만들었다.
“그런디?”
나는 외부 출입으로 인한 경계심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라는 걸 인지한 나는 한결 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단 저는 방송하는 사람입니다. 이곳이 귀신 마을로 유명하다고 해서 소문 듣고 찾아와봤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계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귀신 마을이란 소리에 할아버지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신다.
“뭣이··· 뭣이가 귀신 마을이여! 그분이 버젓이 살아 있는디!”
그분?
다른 사람이 있는 건가?
할아버지의 역정에 괜스레 머쓱해진 내가 말을 이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소문이 그렇게 나 있는데, 제가 봐도 아닌 것 같네요. 이 방송을 통해서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아니란 것이 증명될 겁니다.”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를 꺼내왔다.
“혹시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뭘 보지 않았는 가?”
“여기 들어오기 전이요?”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귀신을 봤다고 하면 미친놈 소리를 들을 것 같고···
아 맞다. 뱀.
정말 뜬금없는 얘기지만,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이것밖에 없었다.
“아··· 사실 이곳에 오면서 까치 살무사를 봤는데, 도로에서 위험하게 다니길래 제가 숲속으로 던져 주었습니다.”
“뱀을?”
그 말에 할아버지는 흠칫 놀라는 표정을 보였다.
아니. 금방 온화한 표정을 지으시며 얘기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올해 열아홉입니다.”
아까와는 다르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주신다.
“예쁘게 잘 컸네.”
“하하. 말씀 감사합니다.”
“아까 무슨 일 때문에 여기 왔다고 했지?”
“아, 이 마을에 대해서 혹시 아시는 게 있으신가 해서 좀 여쭤보려고요. 시청자분들도 굉장히 궁금해하시고.”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내 팔목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첫 집, 두 번째 집, 모든 집을 지나 제일 위에 위치한 집까지.
거침없이 나를 데려가시더니, 무언가를 보고 걸음을 멈춰 세웠다.
내 얼굴을 살짝 쳐다본 할아버지는 표정을 다시 지우고, 내게 얘기했다.
“그거, 그거 잠깐 치우고, 자네도 뒤돌아서 있어.”
카메라를 말하는 것이었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흔쾌히 뒤돌아섰다.
그리고 카메라도 바깥을 비추게끔 돌렸다.
무언가를 중얼거리시던 할아버지는 내게 얘기했다.
“됐네.”
나는 고개를 다시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집과 별다르게 보이진 않았다.
굳이 다른 걸 표현하자면 집의 크기?
여태 들렸던 두 집과는 다르게 할아버지의 집은 세 배, 아니, 네 배는 커 보였다.
“자. 들어와.”
먼저 걸음을 옮기신 할아버지가 문을 열어주며 내게 들어오라는 표시를 건넸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나는 조심스럽게 그 집으로 몸을 들였고.
이곳저곳을 살펴보자마자 입을 떡하니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