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57화 (157/225)

해외 첫 고스트헌팅. 9

임아린과 나는 그 자리에 굳어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건 무슨 상황인 거지?

나는 다급하게 선녀보살님에게 어제 녹화했던 풀 영상을 보냈다.

[ 연우 씨. 영상 잘 봤어요. 제 느낌에는 영가가 염세환씨 몸에 아직 붙은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오늘 하루 더 방문하신다고 했죠? 오늘은 어제보다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자칫하다간 정말 ‘빙의’가 될 수 있는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

어찌 보면 불행 중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 양반 그렇게 기 센척하더니만 뭐 별거 없었네···’

아니. 지카이 숲이 기운이 남달라서 그런가?

그 영가는 확실히 남달랐 건 맞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염세환은 이미 지카이 숲을 한 번 방문했던 이력이 있잖아.

해가 중천에 떠있는 낮이긴 했지만.

옆에 있던 임아린이 내게 물었다.

“오빠. 이거 어떻게 해요? 그대로 편집할까요?”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문제없어. 이 영상이 시청자들한테 노출이 된다면 영적인 존재가 있다는 내 입장에 확실한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증거가 될 거 같아.”

진지한 표정으로 날 빤히 바라보고 있던 임아린.

얼굴에 미소를 띠고 엄지까지 치켜세우며 말했다.

“올··· 오빠 스고이!”

순간, 흠칫하며 임아린을 쳐다봤다.

“뭐, 뭐야?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오빠가 어제 방송하면서 가르쳐준 거 배웠어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괜히 이상한 기분에 나는 말까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어, 어 그래··· 최고의 감탄사지 그거. 크흠.”

나는 영상을 다시 들여다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단순한 내 데이터에 의하면 기가 약하거나 맑은 사람들이 귀신에 빙의가 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녀보살님의 말은 달랐다.

[ 기가 세다고 해서 귀신을 보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귀문이 막혀있거나 막아뒀거나. 아니면··· 만약에 이야기지만, 영적인 존재를 보고도 못 본 척 연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존재에게 강하게 대항하는 최고의 방법은 ‘무관심’이거든요. 흔히 말하는 귀신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무슨 노력이든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있으니까요. 연우 씨에게 많은 귀신들이 달려드는 이유도 그 이유 중 하나지요. ]

스읍···

귀신이 사방팔방에서 달려들었던 이유가 그거였구나.

내 리액션이 기가 막혀서···

지카이 숲에서 내가 타깃이 되지 않았던 건 몸에 지니고 있는 액세서리와 부적들 때문이었다고 했다.

곧이어 내 앞으로 도착한 선녀보살님의 추가 문자.

[ 혹시나 염세환씨가 빙의가 될 것을 인지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꼭 명심하세요. 혹시나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땐 꼭 ‘이걸’ 물어보세요··· ]

그 질문으로 빙의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 수 있다는 거지?

나는 이를 꽉 깨물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첫날부터 쉬지 않고 방송을 했더니 피로가 쌓였던 걸까.

낯선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대로 뻗었다.

아쉽지만(?) 임아린과는 각자의 침대에서 잠을 청했는데.

아침 7시.

알림이 울리기도 전.

내 팔이 커다란 돌에 뭉개지는 괴상한 꿈에서 벗어나며 눈을 떴다.

시벌. 이게 뭐야?

나는 눈을 뜨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옆 침대에 있어야 할 아린이가 내 팔에 머리를 포개고 있다.

뭐야? 커다란 돌에 뭉개지는 괴상한 꿈이 이것 때문이었어?

그나저나 얘는 왜 내 침대에 와서 자고 있는 건데?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린다.

노 메이크업에 임아린은 자는 모습도 천사 같았다.

아기같이 하얀 피부에 붉은 입술.

거기에 시선을 뺏겨 나도 모르게 더 가까이 붙어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꺄아아악! 귀신!”

인기척에 잠에서 깨버린 임아린이 내 뺨을 본능적으로 후려쳤다.

“아아악! 볼에 감각이 없··· 아린아! 나야 나. 연우!”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아린이가 다급하게 내 얼굴을 붙잡고 미안해했다.

“어? 어! 오빠! 미안해요. 그렇게 눈앞에 얼굴을 대고 있으면 어떡해요. 깜짝 놀랐잖아요. 괜찮아요?”

“어. 어 괜찮아··· 죽진 않을 듯.”

지금 손바닥으로 때린 것 맞지?

마취총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다.

임아린이 옷매무새와 얼굴 상태를 다듬고 후다닥 자신의 침대로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죄지은 사람처럼 내게 중얼거렸다.

“오빠. 진짜 오해하지 마세요. 내가 사실 불면증도 있고 혼자 잠을 못 자서··· 잠깐 옆에 있는다는 게···”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미리 말을 하지. 나도 깜짝 놀랐어.”

미리 얘기해줬다면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결말이 뺨싸대기로 끝날 줄은 몰랐다.

얼얼한 볼을 만지며 임아린에게 얘기했다.

“아린아.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래?”

아린이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게 아린이와 이곳저곳을 누비며, 사진도 찍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 악마 연구가 염세환. ]

“어라? 이 사람 잘 잤나? 근데 왜 아침부터 전화를 했지?”

나는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아. 네 연우 씨. 낯선 환경이라 불편하셨을 텐데 잘 주무셨나요?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힘이 실려 있다.

처음 봤을 때의 염세환의 모습처럼.

선녀보살님의 말대로 빙의가 된 것 같지 않았다.

“네. 덕분에 너무 꿀잠 잤습니다.”

임아린한테 뺨싸대기 맞은 것 빼고는.

“염세환 님은 약 드시고 잘 주무셨어요? 목소리가 괜찮아 보이네요.”

-네. 약 하나 먹고 푹 자니까 아주 쌩쌩해졌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오늘은 좀 빡세게 가실까요? 어제 저 때문에 시청자들이 많이 화난 것 같더라고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어떻게 빡세게 가자는 건가요? 뭐 생각하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어제 제가 떨어질 뻔했던 그곳. 가서 확인하시죠. 도대체 뭐가 있는지,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낮춰 진지하게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거기 기운이 보통이 아니에요. 저희가 본 영가의 수치가 4단계 반. 잘못하다가 큰일 날 수 있어요 진짜.”

염세환의 대답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귀신같은 건 없으니까요. 제가 오늘 진짜 인증해 드릴게요.

할 말을 잃었다.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짧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옆에서 날 빤히 쳐다보던 임아린이 물었다.

“오빠 왜요?”

“아니. 염세환님이 오늘 방송 더 빡세게 하겠대. 어제 떨어질 뻔했던 그 구덩이로 내려가보자는데?”

임아린이 흠칫 놀라며 말을 이었다.

“헐! 그 사람 진짜 기가 센가 봐요! 빙의가 안 무서운가? 나는 폐 기도원 따라갔다가 머리에 혹 난거 생각하면 다신 갈 생각이 안 나던데···”

미안해.

그거 아린이 너 들고뛰다가 실수로 갖다 박은 거였어···

“크흠. 그치? 무서운 줄 모르고 이 사람이 정신을 못 차렸어 아주. 고집이 엄청 세다니까.”

아린이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까지 꽉 쥐고 내게 얘기했다.

“오빠! 그냥 시원하게 빙의 한 번 시켜줘버려요! 머리에 혹 두 개 생기게!”

도대체 그 빙의를 어떻게 시켜주는 건지 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아린이와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구경할 게 너무 많았다.

야외 조명을 정말 예쁘게 인테리어 해놓은 곳에서 손을 잡고 수없이 걸었고.

염세환이 싫어한다는 일본이 자랑하는 대표 음식 스시도 여러 종류로 한없이 맛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이렇게 맛있는 걸 안 먹는다니··· 이해가 안 되네.”

곧이어 까맣게 물 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휴대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연락을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 연우 씨. 신나게 달리셔야죠? 30분까지 앞에 나와 계세요. ]

역시 양반은 되지 못한다.

염세환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나는 안전하게 임아린을 숙소로 다시 데려다주고, 파이팅까지 외쳐가며 30분 약속 시간에 맞춰 로비로 내려왔다.

“연우 씨. 오셨어요.”

“네. 일찍 나오셨네요.”

미리 나와있는 염세환.

어제 마지막 헤어질 때와는 다르게 싱글벙글하고 있다.

저거 지금 억지웃음 짓고 있는 거지?

분명 몸은 떨고 있을 거다.

“자. 얼른 가시죠.”

곧 예약해놨던 택시를 타고 우린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지카이 숲.

[ 호이가계속되면둘리인줄안다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형님들. 잘들 쉬셨습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지카이 숲 탐험! 마지막 방송 꿀잼을 드리기 위해 이 연우가 방송을 켰습니다.”

옆에 있던 염세환이 고개를 들이밀며 시청자들에게 인사했다.

“연우 씨 시청자분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오늘 이 염세환이가 화끈하게 여러분들게 꿀잼 드려보겠습니다.”

- 확실함?

- 또 어제처럼 오줌 질질 싸는 거 아님?

- 오늘은 무슨 핑계를 대려나

- 무슨 핑계든 오늘은 절대 연우가 끝낼 때까지 집에 못 감

- 그래서 어디 갈 건데요?

- 우리가 정해도 됨?

만만치 않은 채팅창을 둘러보던 염세환이 입술을 깨물다 자신 있게 대답했다.

“어제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떨어질 뻔 했던 그곳을 확인하러 가겠습니다.거기에 뭐라도 있지 않겠어요?”

- 미션도 받나요? 우리 방송은 거절 같은 건 없음.

염세환은 자신 있다는 듯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OK를 만들어 화면에 비췄다.

“그럼요. 무슨 미션이든 보내주십쇼. 제가 오늘만큼은 확실하게 귀신이 없다는 걸 깔끔하게 인증하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짧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1시간 50분이 지나고.

우린 결국, 암흑이 찾아든 지카이 숲에 도착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 감사합니다. )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곧장 어제의 그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제야 막 밤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욱한 안개가 잔뜩 끼어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시야를 모두 가려버린다.

“어우··· 이거 큰일 났네. 이래서 제대로 방송할 수 있겠나?”

“에이. 연우 씨. 뭐가 걱정이에요. 오늘은 저만 따라오세요. 저는 이 안개를 수도 없이 본 사람이에요.”

그렇게 자신 있게 앞장까지 서서 염세환이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처벅. 처벅. 처벅.

안개가 껴서 그런지 더 습하고, 발도 푹푹 빠져버리는 땅.

게다가 마치 촉수처럼 깔린 나무뿌리들과 사방을 둘러봐도 빽빽한 나무밖에 없어서, 길을 찾기 어렵다.

그래도 다행히 어제 묶어둔 하얀 천이 한몫했다.

그 자리에 꿋꿋하게 매달려 그곳이 어딘지를 알게 해주었다.

- 야. 이거 앞에 사람 잘 따라가야겠다.

- 조금만 멀어져도 그냥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데?

- 와. 무슨 특수효과 같다

- 알바 쓴 거 아님?

- ㅅㅂ 숲 전체를?

- 대기업이랑 손 잡고 있는 연우는 가능

- 잘 붙어 다녀. 오늘은 어제보다 사고 날 확률이 더 높겠다

- 마치 전설의 고향 보는 것 같네

- 오. 진짜 그렇네.

곧이어 성큼성큼 걷던 염세환을 따라 어제의 그 장소에 도착했다.

컴컴하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채로 아가리만 벌리고 있는 구덩이.

나는 가방에서 고스트 박스와 번역기.

그리고 EMF 측정기까지 꺼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힐끗 쳐다보던 염세환이 내게 얘기했다.

“먼저 내려갈게요. 천천히 따라오세요.”

“기다렸다 같이 가요.”

나는 장비들을 다 꺼낸 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염세환이 없었다.

구덩이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벌써 혼자 내려간 것 같았다.

‘같이 좀 가자니까.’

나는 바로 울퉁불퉁한 지형을 밟고 염세환의 뒤를 쫓았다.

꽤 내려온 것 같은데 염세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소리쳤다.

“저기! 세환님 대답 좀! 어디까지 내려 간 거예요!?”

역시나 아무런 대답이 없는 염세환.

답답한 마음에 계속해서 소리치는데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염세환 씨! 대답 좀 하라고!”

하··· 아직 빙의 될 타이밍은 아니잖아!

그렇게 10분을 더 내려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바닥을 밟을 수 있었다.

처벅!

염세환은 멍청히 서 있는 채로 땅만 주시하고 있었다.

“사람이 말하면 대답을······.”

나는 말하며 무의적으로 염세환의 시선을 좇았다.

“시, 시발··· 이게 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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