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56화 (156/225)

해외 첫 고스트헌팅. 8

어? 어!

염세환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던 내가 반사적으로 팔목을 잡았다.

“으아아아아! 사, 살려주세요!”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

무너져내린 땅 밑의 공포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쳐대는 염세환 때문에 무게가 가해져 더 버겁다.

그런 염세환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급하게 중얼거렸다.

“자, 잡았어요! 그러니까 몸부림 좀 치지 마요! 힘 빠져요 시벌!”

- 워어어어! 깜짝이야! 시발

- 뭐야? 어떻게 된 거야?

- 구덩이에 빠진 거야?

- 야 시발! 방송사고 아니냐?

- 앞이 하나도 안 보이니까 뭐 알 수가 있어야지.

- 그래도 연우가 가까스로 붙잡은 거 같은데?

- 하여튼 간 저럴 줄 알았다.

- 빙의가 아니라 귀신 만들 뻔했네. 옘병.

- 손 살짝 놓으면 맘이 편해질 수도

구덩이의 깊이가 보이지 않아 한시가 급했다.

곧이어 방울을 쥐고 있던 남은 한 팔도 가세해 염세환과 손을 맞잡았다.

순간,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걸 봐버렸다.

저, 저게 뭐야?

염세환이 발버둥 치는 다리 끝에 희미하게 무언가가 보인다.

내 몸이 잔뜩 굳어 그저 멍하니 다리 쪽을 쳐다보게 된다.

[ 離せ. 離せ. 離せ. ]

[ 놔. 놔. 놔. ]

나에게만 들리는 걸까.

충격적인 단어와 함께 염세환의 다리 밑에 감춰져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핏기 하나 없는 싸늘한 손.

새하얗게 질린 피부에 시퍼렇게 핏줄이 선 그 모습은···

분명 산 사람의 손이 아니었다.

그 옆으로 얼굴도 서서히 드러났다.

생기 없는 그 차가운 얼굴은.

마치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염세환의 다리를 잡아 흔들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 死んじゃう。. 死んじゃう。. 死んじゃう。. ]

[ 죽어! 죽어! 죽어! ]

“연우 씨. 연우 씨! 제발 살려줘요!”

순간 굳어버린 내 얼굴의 표정을 염세환이 읽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 본인 스스로도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자신의 다리 밑을 힐끗 쳐다봤다.

그곳을 쳐다본 염세환이 금방이라도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더 거세게 발악했다.

“이런 씨바아아아알! 연우 씨이이이!!!”

괴성에 벼락처럼 정신을 차린 나는 초인적인 힘으로 염세환을 끌어올렸다.

우리 둘은 무너진 자리에서 한참을 물러섰다.

그리고 한참을 말없이 호흡만 뱉어냈다.

“허억··· 헉. 헉.”

“커헉! 헉! 헉! 헉!”

호흡이 안정되어갈 때쯤.

우린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나는 조심스럽게 염세환에게 물었다.

“보, 보셨죠 방금···”

방금 전, 염세환을 잡아끌어올리려고 맞잡은 손에는 방울이 쥐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내 손을 맞잡으며 그 방울을 쥐게 된 셈이다.

봤을 것이다. 그 존재를.

하지만, 염세환은 말이 없었다.

방금 상황에 적잖이 놀랐던 걸까.

그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마른 침만 삼킬 뿐이었다.

- 와. 진짜 사고 날뻔했다

-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개 열받네

- ㅅㅂ 자객인가? 연우 나락 보낼 셈이냐?

- 근데 보셨죠는 뭘 말하는 거야?

- 땅 아래에서 뭘 봤던 건가?

- 염세환 표정이 넋이 나간 거 보니까 뭘 본거 같기도 한데?

- 시체라도 있었나?

- 에이 설마

정신을 차렸는지 염세환이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진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근데··· 연우 씨.”

갑자기 뜬금없이 여유 있는 표정을 지어가며.

“뭘 봤냐는 거예요? 난 아무것도 못 봤는데.”

염세환의 눈동자는 이미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카메라에는 비치지 않을지 몰라도 내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염세환님. 정말 못 봤다고요? 방송 때문에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염세환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부정했다.

“거짓말이라뇨. 정말 아무것도 못 봤다니까요. 혹시 연우 씨 헛것 본 거 아니에요? 지금 여기가 너무 어두운 데다 나무에 이끼들이 많이 끼고 그래서 잘못 보면 헛것처럼 보이긴 해요.”

이 시벌놈이.

분명 본인 다리를 붙잡고 죽어라 흔들어대는 거 봤잖아?

- 왜 그래? 뭐 시체라도 본 거야?

답답한 마음에 나는 방금 전, 염세환이 밟아 무너졌던 그 땅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염세환이 밟아 무너진 곳을 제외하면 땅이 바짝 말라 튼튼했다.

끝부분에 다가간 나는 천천히 아래를 비추며 얘기했다.

“저 밑에··· 분명 뭔가가 있었잖아요. 그게 방금 염세환씨 다리를 흔들며 잡아당긴 거고요.”

4미터는 훨씬 더 돼 보이는 높이.

염세환은 굳이 내 쪽으로 다가오지 않은 채 입만 뻥긋거렸다.

“아니요. 연우 씨가 나무줄기 같은 걸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이 시벌놈을 그냥 구덩이 귀신 친구를 만들어줄까?

- 누구 말이 맞는 거야?

- 연우야. 진짜 귀신이라도 본 거냐?

- 그 귀신이 염세환의 다리를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고?

- 시벌. 얘기만 들어도 소름이 쫙 끼치네

- 근데 귀신은 그냥 사라짐?

- 도망갔나? 연우한테 쫄은 거 아님? 부적도 많으니까

- 아니. 애매하니까 확인 좀 제대로 시켜줘

- 그 밑에는 못 내려가게 돼있냐?

나는 채팅창을 확인하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뇨. 내려갈 수 있습니다.”

이제 보니 발 디딜 틈도 보이고, 지형이 험해도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내려갈 이유는···

아니. 저기까지 내려가서 확인 시켜줘버려?

내 느낌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밑에 무언가가 있을 것 같긴 하다.

나는 염세환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들은 척 만 척하는 중이다.

“염세환님. 그럼 저기 한 번같이 내려가 보실래요?”

어때. 후달리지?

툭 치면 중간 다리 물 창고에 아주 홍수가 날 지경일 거다.

염세환이 몸에 먼지를 털어내며 헛기침을 했다.

툭. 툭. 툭.

그리고 갑자기 머리를 붙잡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아우··· 제가 지금 갑자기 두통이 올라오는데,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실까요?”

“엥? 갑자기요?”

- 뭐야 갑분싸

- 걍 오줌질질싸 아님?

- 방금 전에 상황 때문에 지린 것 같은데

- 시작한 지 얼마 됐다고 벌써 집에 가

- 적어도 한 시간은 더 해야지

- 당당하던 모습 다 어디 감?

- 근데 구덩이에 떨어질 뻔했는데 어지간히 겁먹긴 했을 듯

- 아 저 밑에 뭔가 있을 것 같은데···

- 인정. 개 궁금함

염세환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여기저기 서있는 나무를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여기 나무들은 광합성을 안 하나 봐요. 산소 부족 증상 같기도 하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까 자동차들이 하루 온종일 오다니는 그 거리보다 백배, 천배 공기가 더 상쾌하고 좋은데.

살기가 넘치는 것만 빼면···

돼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 보니 확실히 보고 쫄은 게 맞네.

“그럴 리가요. 여기 공기 너무 Fresh하고 좋은데···”

염세환이 표정을 더 찌그러트렸다.

이제는 배와 가슴을 문지르며 토하는 시늉을 해댄다.

“우웩! 아니에요. 이거 분명히 이산화탄소 중독 증상이에요. 이러지 말고 오늘은 이만 빨리 가서 쉬어요.”

깔끔하게 인정이라도 해주면 맘 편하게 갔지!

천만 원이 걸린 미션이라고 시벌···

결국, 끝까지 발뺌하며 몸이 아프다는 염세환을 억지로 잡아끌 순 없었다.

하는 수없이 염세환을 데리고 다시 지카이 숲을 빠져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내가 뿌려놓은 소금과 묶어놓은 하얀 천을 보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입구 쪽으로 등 돌려 한참 가고 있는 도중에.

제멋대로 고스트 박스가 켜졌다.

[ 치지지익- 치지지이익- 치지이이익- ]

“어우씨! 깜짝이야 뭐야 갑자기?”

그 때문에 뒤따라 오던 염세환의 몸도 흠칫거렸다.

“뭐예요?”

안 그래도 음슴한 숲이라 소리도 울려 퍼질뿐더러.

방금 전의 그 상황 때문에 우리 둘은 초 긴장 상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스트 박스를 살펴봤다.

그러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물건에 의해 실수로 눌렸다 판단했다.

“아··· 가방 안에 물건에 찍혀서 잘못 눌렸나 봐요. 신경 쓰지···”

[ 치지지익- もったいない。 치지지익- もったいない。 치지지익- もったいない。 ]

살벌한 남성의 음성이 반복되어 울렸다.

그 때문에 우리 둘은 동시에 화들짝 놀라 몸서리쳐댔다.

“시, 시바아아알! 뭐야!?”

“와아아아악! 연우 씨! 뭐예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에 소름이 차올랐다.

곧이어 잠시나마 꺼놨던 보조 폰까지 제멋대로 켜져 번역을 자동으로 했기 때문이다.

[ 아깝다. 아깝다. 아깝다. ]

- 와아악! 시발! 개 깜짝이야!

- 와.나 지금 핸드폰 집어던져서 액정 나감

- ㅅㅂ 뭐야 갑자기?

- 지금 아깝다고 한 것 맞지?

- 아까 상황이랑 너무 오버랩 되잖아 시발

- 아니. 그것보다 남자 목소리가 너무 살벌한데

- 톤이 진짜 무슨 살인자 목소리 같았다.

- 이거 아까 그 남자 목소리 맞아?

나는 잔뜩 움츠러 들은 채로 채팅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남자 목소리였다.

다시 한번 사고가 정지된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멍 때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고스트 박스는 금세 조용해졌다.

그 이후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음성만 반복되어 흘러나왔다.

[ 치지지익- $#@! 치지지지익- $!!#$!#! 치지지지익- !$%$!#& ]

우린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벗어나는 그 와중에도 모든 나무가 비슷하게 생겨 혼란스러웠지만, 다행스럽게도 하얀 천은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내가 만약을 위해 양기를 듬뿍 받은 다음, 소금에 절인 게 신의 한 수였다.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내일 꿀잼을 예고하며 방송을 종료했다.

염세환은 미리 친분이 있는 택시까지 다시 불러 숙소 앞에 도착했다.

방송을 끄고 나니 택시에 타있는 내내 한 마디도 없는 염세환.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염세환 님. 괜찮으신 거죠?”

“진짜 괜찮으신 거죠?”

“정말 괜찮다니까요.”

“알겠어요. 그럼 맛있는 스시 같은 것 좀 드시고 푹 쉬세요.”

“저 날것 안 좋아해요.”

“네. 그럼 오늘 푹 쉬시고 내일 다시 뵐게요.”

“약 먹고 푹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내일 봬요.”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나는 숙소로 올라와 싱글벙글하며 임아린에게 재빨리 달려갔다.

“아린아! 나야!”

반갑게 나를 맞아줄 줄 알았던 아린이가 표정이 좋지 않다.

뭐지. 내 걱정을 했던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내가 오늘 무리한 게 하나도 없는데···

“오빠. 잠깐만 이리 와 봐요.”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황급히 컴퓨터 앞으로 끌고 가는 임아린.

“왜? 무슨 일 있어?”

임아린은 아까 내가 했었던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본인이 멈춰놓은 방송을 다시 틀어주며 심각하게 입술을 물어뜯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방송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송화면에는 아까 염세환이 구덩이에 빠질 뻔했던 위험한 순간이 재생되고 있었다.

“여기 보여요? 여태까지 녹화방송 보면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어요.”

“뭐? 어디?”

임아린이 가리키는 방송 화면을 보았다.

나는 다시 한번 몸이 굳어버렸다.

내 온몸을 집어삼킬 듯 터져 오르는 소름을 참아가며 난 버럭 소리쳤다.

“뭐, 뭐야! 도, 도대체 이게 언제부터 이랬던 거야?”

영상 속.

숲을 빠져나오는 내내 염세환의 어깨엔 핏기 없는 싸늘한 손이 얹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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