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첫 고스트헌팅. 6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입구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건 분명 사람이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 来るな. ]
확실한 건 우리나라 말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한 단어였는데···
옆에 있던 염세환이 코웃음을 치며 내게 얘기했다.
“하하. 벌써요? 이제야 입구 도착했는데.”
- 역시 한발 빠른 우리 연우
- 오자마자 바로 시동 거는 거 보소.
- 여윽시 선빵 필수!
- 무조건 연우가 이긴다!
-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다. 여유 있는 코웃음으로 반격!
- ㅅㅂ 막상막하다. 아니. 악마 연구가 쪽이 좀 더 우세한가?
- ㅋㅋ 뭐 하냐 너네들?
“잘못 들은 것 같지는 않은데···”
시벌. 일본어를 할 줄 알아야 뭐 해석이라도 하지.
이건 뭐 동물이 짖어도 사람 말처럼 들릴 판이다.
나는 일단 조심스럽게 EMF 측정기를 꺼냈다.
“웁스···”
놀랍게도 3단계 반을 가리키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이렇게 강한 수치를?
내가 놀란 모습을 쳐다보던 염세환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그게 EMF 측정기라는 거지요? 생각보다 그 수치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수치도 아니고요. 전자제품이 근처에 있으면 더욱더 심하게 요동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맞아요. 근데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더라고요. 실제로 EMF 측정기가 요동치는 곳에서 영적인 존재들을 많이 봤거든요.”
염세환이 짧게 웃었다.
“영적인 존재요? 하하하. 귀신을 말하는 건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염세환이 말을 이어붙였다.
“귀신같은 건 없어요. 그저 잠재의식이 공포감 따위의 외부 자극을 받아 표출되는 심리적 현상일 뿐입니다. 실제로 있다면 옆에 있는 사람도 봐야 하는데 그렇지 않잖아요?”
이제 시작인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염세환의 주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음··· 그것도 맞는 말 이긴 한데···”
- 뭔가 굉장히 전문적이다.
- 너무 여유가 있어서 이상하게 빠져든다.
- 조금 잘생긴 형. 우리도 귀신을 못 봤지만, 있다고 생각해.
- 왜냐하면 저수지 영상 때는 실제로 연우 몸 뒤에서 손이 튀어나온 걸 봤거든
- 헐 맞아 ㄷㄷㄷ. 그건 진짜 레전드였다.
- 유독 연우 영상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이 많았음
- 소리도 그렇고, 현상도 그렇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
실제로 이곳에 온 사람들도 희귀한 현상들을 많이 겪었다고 했다.
조사한 바로는 나침반이 작동하지 않아 길을 잃어 실종되었다는 소문.
정체불명의 손이 잡아당겼다는 소문.
의문의 존재를 따라갔다가 목숨이 위험했다는 소문 등등.
세계 7대의 소름 돋는 장소 다운 얘기들이었다.
“뭐 저도 귀신이 있다고 확실하게 증거를 댈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서, 그저 보이고 들리는 데로 표현하는 거예요.”
그런 염세환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제가 오늘 그런 현상에 대해서 확실하게 정리해 드릴게요. 연우 씨도 인정하실 겁니다.”
[ 入ってきたら殺す。]
“어! 또 목소리!”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아 퍼지며, 머리카락까지 쭈뼛 서버렸다.
시벌. 분명 아까 그 남자의 목소리다.
거봐! 사람의 목소리가 맞다니까!
“시작부터 너무 힘 빼지 마세요. 안에 들어가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멀쩡한 사람도 길을 헤매니까요.”
어우 진짜!
은근히 답답함이 몰려오지만, 이내 꾹 참고 염세환을 따라나섰다.
- 뭔데??
- 무슨 목소리가 들린다는 거야?
- 귀신 소리를 들은 거야?
- 새가 울어대는 소리밖에 안 들리네
- 근데 여기 왜 이렇게 으스스하냐
- 그냥 나무 하나하나가 다 험악하게 생겼어
- 인정. 귀신 튀어나올 것 같네 ㅅㅂ
- 정신 못 차리면 헛것으로도 보일 듯
나는 염세환에게 들리지 않게 채팅창에 중얼거렸다.
“나중에 말해드릴게요.”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
공기가 차가운 것도 모자라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빼곡하게 채워진 음침한 분위기의 나무 때문인지 마치 용암 협곡이나 동굴을 온 것 같은 분위기도 낸다.
염세환이 한눈에 보아도 엄청나게 오래된 나무 앞에 섰다.
성인 둘이서 팔을 벌려 감싸 안아도 모자랄 만큼 두꺼운 나무였다.
“여러분들, 이게 삼나무인데요. 이곳에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자살 시도자들을 인솔하거나 회유하는 나무로 유명합니다. 그 말은 즉, 이제부터 이 앞으로는···”
염세환이 숲 안쪽으로 깊숙이 시선을 돌렸다.
두 갈래가 있었는데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는 평범한 길과 전혀 포장되지 않은 낡은 길이 있었다.
염세환이 말을 이었다.
“본격적으로 긴장해야 하는 곳입니다.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니까요. 준비되셨나요 연우 씨.”
“잠시만요. 후웁···”
마른침이 꿀꺽 절로 넘어간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
잠시 후. 나는 멈춰 선 상태로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선녀보살님이 주신 부적을 첫째로 만졌고, 곧이어 방울 하나를 꺼내 손에 들었다.
- 어이 동작 그만.
- 뭐여 그건? 설마 새로운 필살기냐?
- 선녀보살한테 받은 무구지 그거?
- 오. ㅅㅂ 나까지 긴장된다. 스파르타 하게 가는구나
- 저게 지속시간이 2~3시간이라고 했지?
- ㅇㅇ. 자 이제 진짜 시작이다!
- 고고시잉!
염세환이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방울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게 뭐예요?”
나는 염세환에게로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아 이거는 제가 아는 무당 선녀님께서 주신 무구인데요. 영적인 기운을 증폭시켜주는 무구예요.”
염세환이 순간, 웃음을 참으려는 듯 손으로 입을 막으며 대답했다.
“하하. 크흠. 죄송합니다. 영적인 기운을 증폭시켜준다고요?”
“그게 가능한 건가요?”
“그렇겠죠? 저희 선녀보살님께서 해주신 말이니까요.”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혹시 살펴봐도 될까요?”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잠시 멈칫거렸다.
“이거 그냥 쉽게 생각하고 만지면 안 되는 물건인데···”
염세환은 여유 있게 짧게 한숨까지 쉬고는 내게 얘기했다.
“괜찮습니다. 그냥 살펴만 볼게요.”
나는 마지못해 그 방울을 염세환에게 잠시 넘겨주었다.
방울을 받자마자 이리저리 유심히 살펴보는 염세환.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굴려가며 방울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저건 주먹 쥐듯 손에 쥐어야 효과가 나타나는 건데···’
내가 말했다.
“그거 손에 쥐어야 능력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염세환은 내게 방울을 돌려주었다.
“아무 일이 없네요? 연우 씨. 혹시 그 무당이라는 분에게 세뇌 당하신 건 아니죠? 이 방울을 만지면 그렇게 착각하게 된다거나···”
나는 반사적으로 중간에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아무 이유 없이 저를 항상 도와주시는 선생님이십니다.”
“무속인이 되는 과정을 보면 고아나 계부, 계모 등 성장과정에서 애정이 부족했던 사람의 비율이 65%입니다. 정상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부모라는 생존의 방패막이가 있기 때문에 예지력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무녀가 된 사람들은 혼자 살아남기 위해 예지력이 발달하게 됩니다. 나머지 35%는 유전적 요인입니다. 대개 부모나 조상 가운데 종교적 심성이 강했던 사람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죠.”
유창하게 뽑아내는 말에 잠시 벙쪘다.
아니. 뭐 그렇게 까지 설명 해줄 필요는 없는데···
“뭐 어쨌거나 제 행방이나 앞으로 일어날 위험에 대해서 항상 미리 예지를 해주시는 좋은 분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염세환이 또 말을 이어붙였다.
“무속인은 상대방이 방출하는 기와 거기에 담긴 정보를 해독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제가 성과 이름까지 알아맞히는 족집게 무속인들을 만나면서 이런 실험을 해봤습니다.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동전을 꺼내 주먹안에 동전이 몇 개 있냐고 물어봤죠. 주먹안에 있는 동전 숫자를 제가 알고 있으면 무속인도 정확하게 맞힙니다. 하지만 저도 숫자를 모를 만큼 한 움큼을 쥐면 결코 알아맞히지 못합니다. 점치러 온 사람의 기를 통해 정보를 해독한다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귀신이 하는 일이라면 맞히지 못할 리가 없겠죠.”
“아··· 크흠. 네. 네.”
나는 맥을 끊기 위해 대답만 했다.
괜히 말을 더 붙였다간 저 소리를 아침까지 들어야 할 것같다.
- 악마 연구가 형 화난 거 아니지?
- 갑자기 말을 이빠이데스 늘어놓네
- 이렇게 모든 무당들을 괴롭혀 왔던 건가?
- 말이 너무 길어서 졸릴 뻔했어 형
- 담부터는 간단명료하게 좀 말해줄래?
- 얼굴은 괜찮은데, 여자한테 인기 없을 스타일이야
- 지루한 스타일이네.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에 나는 눈을 껌뻑거리다 얘기했다.
“이, 일단 가실까요?”
염세환이 표정을 풀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갈래 중.
포장이 되지 않은 길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푸슉. 푸슉.
안으로 첫발을 들이자마자 발이 쑥쑥 박혀버린다.
눈에는 같은 흙처럼 보이지만, 밟아보니 차원이 달랐다.
수해 그 자체.
말 그대로 숲의 바다를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우 시벌. 진짜 자칫하면 숲에서 빠져 죽겠네.
이런 환경이니까 영가들이 잔뜩 모여 있을 수밖에 없지.
영가들이 너무 좋아하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고···
- 야. 땅 잘 보면서 걸어라.
- 발이 슉슉 들어가나 본데? 카메라가 흔들리는 거 보니
- 낚시하다 저런 늪에 빠져봤는데 깊은 곳은 진짜 빠지면 못 나옴
- ㅇㅈ. 힘을 줄수록 더 몸이 빠져 들어서 위험해짐
- 빠져나오는 요령이 있긴 한데 연우는 알려나?
- 쟨 땅에 묻힌 무덤에서도 날듯이 나오는 놈인데 뭐.
- 걱정마셈. 후원 주면 무조건 겨 나옴.
거침없이 앞만 보고 직진하던 염세환이 발의 속도를 늦췄다.
어딘가를 계속 살펴보며 한 발짝 내딛는데도 시간이 점점 오래 걸렸다.
“혹시 염세환님 이 길은 초행길이신가요? 천천히 가셔도 되는데.”
염세환이 들은 척 만 척 계속해서 앞을 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여긴가··· 아니. 저기였던가···”
곧장 울퉁불퉁하고 험한 길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어어어!”
염세환이 구덩이 앞에서 발을 헛디뎌 휘청거렸다.
반사적으로 나는 염세환의 팔을 잡았다.
덕분에 넘어지지 않은 염세환은 이마를 한번 슥 닦고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아니지?
염세환이 무겁던 표정을 풀고 내게 활짝 웃어보이며 얘기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땅에 익숙지가 않아서··· 괜찮으시다면 먼저 앞에 서주시겠어요?”
“······네. 네.”
그나저나 나는 초행길인데, 앞장을 세우다니···
마지못한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시면서 계속 안내 좀 부탁드려요.”
대답이 없는 염세환.
혹시나해서 쳐다봤더니 그제야 염세환은 웃으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마치 지옥의 길을 걷는 것처럼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숲.
그 숲을 앞장서게 된 나는 주위를 경계하듯 꼼꼼하게 살펴보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특이한 점이 있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이 숲은 정말 소리 하나 없이 너무 조용하네요.”
그래서 은근히 더 공포스러웠다.
탁! 탁! 탁! 탁!
그 고요한 정적을 깨고 나무를 반복적으로 때려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시벌 뭐지? 이 야밤에 사람이 있나?
잠시 서서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자, 뒤에 있던 염세환이 나를 앞으로 살며시 떠밀며 얘기했다.
“걱정 말고 가세요. 저건 딱따구리라는 새가 먹이활동을 하는 소리입니다. 서있는 상태로 죽은 나무들이 많아 벌레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딱따구리들이 많아요.”
“아··· 새소리였구나.”
너무 음침하고 고요한 나머지, 새소리도 귀신 소리처럼 들린다.
“자, 이제 조금 옆으로 가시면 됩니다. 대각선 거기. 네. 맞아요.”
뒤에서 내가 가는 길을 짚어주는 염세환의 말을 들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내디디며 다시 걷고 있는데.
문득, 입구에서 들려왔던 일본 말이 떠올랐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청자들에게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형님들. 일본 말 좀 아시는 분 계시나요? 아까 들렸던 말 해석 좀 하고 싶은데.”
- 뭘 들었는데? 그냥 말해 봐. 누구든 해석해 줄 사람이 있겠지
나는 선명하게 귀에 꽂힌 그 말을 들리는 대로 중얼거려보았다.
“처음 말은 쿠루나? 코로나? 약간 이런 말이었는데···”
- 엥? 왠지 ‘오지 마’ 같은데?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내 몸이 멈칫거렸다.
오지 마? 진짜 일본 말 맞았던 거지?
마른침이 꿀꺽 삼켜진다.
“그, 그럼 두 번째는 고로스? 코로쓰? 이라고 한 것 같은데 이 뜻도 아시나요?”
- 헐··· 그건 왠지 ‘죽인다’ 같은데? 일본 애니에서 많이 나오는 대사 같아
시벌··· 뭔가 찜찜하다 이거.
왠지 여기 머물고 있는 영가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만 같잖아.
우리가 들어가려는 찰나에 들렸던 말이라 상황상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것도 같고···
내 눈을 번뜩이는 채팅창이 눈에 들어왔다.
- 야 스톱.
- 아무 티 내지 말고 카메라를 살짝 염세환 비춰 봐
- 야! 야!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 시발··· 뭐야 왜 저래?
나는 조심스럽게 카메라 각도를 비틀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확인하자마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카메라에 비친 염세환은 내 등을 보며 입이 찢어져라 소름 돋게 웃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내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섰다.
천천히 뒤돌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적까지 매만지며 염세환에게 물었다.
“염세환 님. 괘, 괜찮으세요? 뭔가 좀 기분이 좋으신 것 같은···”
심장이 크게 요동친다.
감정 없이 살벌하게 웃어대던 염세환이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서서히 들이밀었다.
아니. 박장대소를 하며 크게 웃어댔다.
“빙의된 줄 알고 놀랐죠? 하하하하. 장난이에요. 장난.”
“······¨
하아··· 순간, 안심이 되는 건 둘째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위험한 곳에서 장난질을 해?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넌 진짜 뒤졌다. 너한테 귀신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널 귀신이라도 만든다 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