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화. 3
펄럭.
큰마음 먹고 나왔는데 아무도 없다.
사방이 뻥 뚫려있는 그곳에선 그저 갯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뭐, 뭐지? 분명히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다시 텐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송화면에 대고 중얼거렸다.
“형님들. 방금 텐트 앞에 그림자 있지 않았어요? 내가 잘못 봤나?”
- 갑자기 어두워지긴 한 거 같은데 모르겠네
- 네 얼굴 비추고 있어서 우린 제대로 안 보이지
- 아니. 아직 폐가 가려면 한참 멀었는데 벌써 시동 거냐?
- 후원 얼른 받고 싶어서 벌써 마음이 급함?
- 천천히 해. 어차피 받을 거
“아니에요 형님들. 진짜 사람 그림자였는데···”
[ 곤충박사로블로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네 뒤에 있네
나는 잽싸게 헤드랜턴을 들고 고개를 돌렸다.
헤드랜턴에 비친 그것은 몸 양쪽에 사람 손만한 큰 더듬이가 두 개씩.
얇은 다리 총 14개가 달린 큰 벌레가 사방에 붙어있었다.
난 기겁하듯 소리쳤다.
“와아아아아악! 뭐야 이거!”
그리고 금세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중얼거렸다.
“라고 할 줄 아셨나요 형님들? 바다 생활만 19년 째입니다. 이건 벌레잖아요. 제가 돈이 없어서 배는 못 탔어도 이 벌레는 수도 없이 봤다고요!”
- 지랄. 저 벌레 이름이 뭔데?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갯. 강. 구.”
바다 바퀴벌레라고 불리는 갯강구.
잡식성으로 바위 표면의 저서규조류나 죽은 동식물체를 먹는 벌레.
처음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쳤는데, 하도 보다보니 정겹다.
바다 근처에서 안 보이면 이상할 정도의 존재감.
- 개 속았네
-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바다 사는 놈 맞네
- 놀란 줄 알고 킥킥댔는데 연기였어 ㅅㅂ
- 저놈 저거 연말 대상 후보라니까
- 어느 누구랑 연기 대결 붙여놔도 연우가 이긴다.
- 레알 인정. 허공 보면서 대화하고 놀라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었다.
- ㅋㅋ 그 누구도 못 따라옴.
“형님들. 그거 정말이라니까요. 하···”
그래. 어차피 말해봤자 안 믿을 거.
아니지. 마침 내가 아주 기가 막힌 능력을 얻어왔잖아?
나는 카메라를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종이와 연필을 얼른 꺼냈다.
스스스슥. 스슥. 스스슥.
난 폐광산에서 보았던 아저씨의 얼굴을 거침없이 그리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나 혼자만 봤던 그 얼굴을.
그리고 순식간에 완성한 그 그림을 카메라에 자신 있게 들이밀었다.
“이 얼굴입니다. 제가 폐광산에서 봤던 그 형님.”
- 헉! ㅅㅂ 너 뭐야. 피카소냐? 완전 똑같은데?
나는 눈썹까지 실룩실룩 거리며 대답했다.
“내 말이 맞죠? 형님들 저는 거짓말 같은 거 안 한다니깐요.”
- 헐. 살아 움직이는 줄
- 얼굴을 알아야 맞장구를 쳐주지
- 맞는 것 같은데. 반응 보니까
- 그림 실력이 후덜덜이네
- 아니. 그림이 아니라 사진을 찍어냈는데?
- 워··· 너 원래 이렇게 그림 잘 그렸냐
- 피카소까지는 그렇고 피카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 이번엔 미술 꿈나무인가 ㅅㅂ 못하는 게 뭐야
- 시벌. 쟤는 진짜 흉가 탐험 빼고 다 잘한다니까.
- 여자 꼬시기도 못함
- ㅇㅈ
- 아주 작정하고 준비물까지 가져왔네. 너 이제 진짜 무당 하는 거냐?
나는 두 손을 내밀어 부정했다.
“어휴~ 형님. 무당은 아무나 하나요! 저처럼 겁 많은 사람은 절대 무당 같은 거 못 해요.”
물론, 하고 싶지도 않다.
아무리 지금 내 모든 행복기로가 흉가 컨텐츠로 이어졌다지만 무당이라니···
선녀보살님의 능력에는 발끝에도 못 미치는 데다, 매일 같이 그런 귀신들을 상대로 살아야 한다면···
하루하루가 끔찍하다.
아니지.
며칠 전처럼 이런 좋은 능력들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면 해볼 만도 하겠는데···
- 그래서 그 준비물을 가져온 이유도 있을 테고, 미션 좀 주랴?
그저 먼상을 보며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주, 주시면 감사하죠 형님!”
- 여기서 살인사건 났다고 했지? 그 사건의 범인 얼굴을 그려라. 그럼 50만 원.
나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음···
물론 오늘 이 방송을 위해 약간의 조사는 해봤지만.
역시나 기사화가 안 된 탓에 어디서도 이 살인사건의 범인 얼굴은 찾을 수 없었다.
좀 더 미션을 쉽게 성공할 수도 있었는데 스읍.
‘까비까비 아깝소···’
난 카메라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형님. 마침 오늘 그 사건이 일어났던 그 집을 탐험할 생각이었거든요. 지금은 폐가가 돼버린 그 집.”
- 헐 레알?
- 가기 전부터 살 떨리네
- 온 가족을 살인했던 그 집이 아직 폐가로 남아 있어?
- 그 정도면 폐가가 아니라 흉가 아님?
- 근데 범인 얼굴 아는 사람 있나?
- 여기 사는 마을 사람들은 알지 않을까?
- 그럼 마을 사람들한테 확인 받아야 됨?
- 그건 오바지
그건 그런 데로 문제지만,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 중요한 건.
그 폐가를 찾아가서 그 귀신이 있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
시벌. 저번과 같이 귀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생겼다.
잠깐 고민했지만, 난 결국 카메라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니까.
“알겠습니다 형님. 오늘 방송도 꿀 잼 기대하십쇼들!”
그렇게 시청자들과 한참을 떠들고 있을 때쯤.
내 휴대폰에서는 11시 정각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려댔다.
[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 ]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이제 슬슬 가볼까요 형님들?”
펼쳐놓은 원터치텐트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모서리 네 군데를 돌로 고정했고.
모기가 들어가지 않게 지퍼를 닫아두었다.
그리고 난 언제나 들고 다니던 가방을 메고서 천천히 섬마을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형님들. 여기가 섬마을 안쪽으로 갈 수 있게 편하게 만들어놓은 계단 같아요.”
사방에 큰 돌무더기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보는 것만 해도 웅장하다.
그 사이에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돌계단이 있다.
어떻게 계단처럼 일일이 다 깎아놨는지 보기만 해도 신기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의 편의를 위한 나무로 만든 손 받침대까지.
나는 천천히 그곳을 오르며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깔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말 잘 만들어놨는데요?”
- 헐? 일일이 다 깎아 만들었겠지?
- 시간 엄청 오래 걸렸겠는데
- 정성과 노력이 깃들었다
- 지옥으로 가는 계단인가
- 역시 우리나라엔 숨어있는 장인들이 많다
- 연우야 지옥 계단 밟는 느낌이 어떠냐
- 레알 기운이 활활 돋냐
“음. 생각보다 아주 상큼한데요?”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섬 마을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역시나 옛날부터 지켜왔던 집들이라 대체적으로 많이 낡아있다.
그나마 깔끔해 보이는 건 자연재해인 비를 막아줄 주황색 철판지붕이랄까.
다행히도 사람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은 그 지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 마을에 대한 정보가 없지만, 그 집에 대한 유일한 정보는 하나 알고 있었다.
“여기도 아닌 것 같고··· 저기도 아니고···”
그러다 문득 심하게 눈길이 가는 한 집을 발견했다.
다른 집과는 동떨어져 저 구석에 위치하고 있는 집.
기와로 만들어진 지붕을 보니 확신이 섰다.
“어? 형님들. 저 집인 것 같은데 저기 한 번 가볼게요.”
집과 집 사이의 거리는 대략 50m 정도.
하지만, 내가 가는 이 집은 200m는 훨씬 더 떨어져 있다.
고요한 이 정적이 흐르는 환경 속에서도 사방이 뻥 뚫린 탓에 소리를 질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바람도 분다.
나는 집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EMF 측정기를 꺼냈다.
그리고 확인을 하자마자 이를 꽉 깨물었다.
‘여기가 맞구나.’
EMF 측정기의 반응은 3단계와 3단계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확실한 건 안에 들어가서 헌팅을 해보면 될 테니까···
“형님들. 시작하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집 안으로 몸을 들이기 시작했다.
낡은 대문을 밀자, 집안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장 구석에 하나도 빠짐없이 자리 잡고 있는 낡은 거미줄.
찢어진 창호지가 달린 낡은 문은 혼자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흙인지 피인지 모를 것들을 잔뜩 뒤집어쓴 집 안의 물건들은 하나같이 다 널브러져 있다.
마치 태풍이라도 쓸고 지나간 것처럼.
“와··· 스읍. 이거 왠지 우리 동네 옆에 있던 그 의문의 폐가가 떠오르는데요 형님들?”
방송 초창기.
우리 집 갈림길 반대편으로 500m 정도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있는 낡은 폐가.
소리 하나 들리는 것만으로도 경기를 일으켰던 그곳.
물론, 살기는 이쪽이 더 심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 아. 오골계 거꾸로 매달아놨었던?
- 그거 진짜 식겁했었지
- 연우 19금 주작해놓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 지금 생각해 보니 갑자기 또 소름 끼치네
- 진짜 리얼이었던 거잖아?
- 으으··· ㅅㅂ
“네 형님들. 집에 돌아가기 전에 갈림길에서 마주쳤던 그 여자 생각하면 아직도 오금이 저려요.”
고개는 앞을 향하고 있었지만, 눈은 아주 매섭게 옆을 지나치는 나를 째려보고 있었었다.
쨍그랑!
“워어어어! 뭐야?”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집 안쪽에서 들려왔다.
괜한 오버랩 현상으로 공포가 두 배가 되었다.
발이 쉽게 떨어지질 않는다.
귀신은 이렇게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는 순간들을 즐긴다고 하던데.
혹시 내가 긴장한 걸 알고 경고하는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그곳을 향해 헤드랜턴을 비추며 천천히 들어갔다.
“누, 누구 있나요?”
- 당연히 없지. 한참 전에 폐가가 된 곳인데
와장창창!
이번에는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 소리에 놀란 건지 집 안에 숨어 들어있던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하아아악!
고양이였다.
“와아아아아악! 시벌!”
- 아유 깜짝이야! 시벌!
- 저놈의 고양이 새끼! 밤에 보면 진짜 넘 무섭다니까
- 눈도 레이저 쏘는 것 같어
- 근데 고양이가 왜 하악질 하면서 도망가지?
- 안에 사람 있는 거 아니냐
- ㅅㅂ 그런 말 하지 좀 마셈. 무서우니까.
안 그래도 긴장감이 두 배로 늘은 상황에 채팅창까지 요란하게 떠들어대니 손에 땀이 다 난다.
그래도 그동안의 짬밥이 있다.
나는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로 한 발, 한 발 그 방 안으로 몸을 들였다.
하지만 안 방으로 보이는 곳에 멈춰 서자마자 경악하듯 입을 떡하니 벌렸다.
무언가에 사정없이 찢겨 늘어진 벽지.
게다가 온 바닥에 묻어있는 원인 모를 검은 자국들.
무엇보다 내 시선을 사로잡는 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거리는 정체였다.
나는 낯설지 않은 그 동물을 보고 기겁하며 소리쳤다.
“시, 시발 뭐야 이거! 왜 오, 오골계가 여기에도 매달려 있어!?”
말로만 오버랩이 아니라, 실제 환경까지 아주 흡사하게 만들어져 있다.
매달려 있는 수만 해도 하나, 둘, 셋··· 여덟 마리.
나는 믿을 수 없는 그 상황에 몸이 잔뜩 굳어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 뭐야 시발?
- 그 사람 여기로 이사 왔냐?
- 귀신 아니었어?
- 이거 설마 의식 같은 거 아냐?
- 오골계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 분명 사람이 한 짓이다. 귀신 아냐!
뭐지? 도대체 뭐지?
[ 닭큐멘터리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야 설마 얘네들 이거 귀신 숭배하는 애들 아니냐?
문득 울리는 후원창에 고개를 돌렸다.
귀신을 숭배?
시벌. 하느님도 부처도 아니고 귀신을 숭배한다고?
“그, 그게 뭐예요 형님?”
울리는 후원창에 나는 두 눈이 부릅떠졌다.
- 악마 숭배는 악마의 모토에 따라서 악마가 기독교적 악마로도 나오고 다른 종교의 악마일 수도 있다. 주로 숭배하는 신은 바포멧, 루시퍼, 몰렉, 바알, 미네르바의 부엉이, 아바돈 등 다양하며 주요 상징은 오망성(펜타그램(Pentagram))이며 기독교를 모독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어리둥절한 나에게 하나의 후원창이 또 울렸다.
- 혹시 그 근처에 십자가 있나 봐봐. 십자가가 있다면 확실하게 악마 숭배를 위한 의식을 치른 거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십자가를 찾기 시작했다.
떨어져 있는 모든 물건을 일일이 다 비추며 확인했고, 옷장, 장롱 할 것 없이 모든 서랍을 다 뒤졌다.
하지만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흔들리는 오골계 뒤에 가려진 무언가가 눈에 번뜩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오골계를 치우고 그 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 몸이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헤드랜턴으로 비춘 그곳에는 사람 팔목만 한 큰 십자가가 거꾸로 매달린 채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