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화. 2
아줌마가 잠시 멈칫거렸다.
하지만 애써 모은 곗돈이었다.
곧장 가게 안에 달려있는 큰 달력을 냉큼 찢어서는 내게 갖다주었다.
게다가 연필까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그 순간.
헛기침을 한번 하고 난 후, 나는 거침없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슥슥. 스스스슥. 스슥.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머리형부터, 눈썹, 눈, 코 입···
미세한 점까지도 아주 디테일하게 그려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마치 사람을 앞에 두고 그리는 것처럼 능숙하기까지.
이목이 집중된 걸 넘어서서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저기서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허허··· 나참.”
나는 사이코메트리로 보았던 그 남자의 특징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그렇게 단 5분 만에.
나는 한 사람의 극사실화를 완성했다.
경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 그림을 쳐다보며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줌마. 혹시 이 사람 맞아요?”
아줌마는 힘없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 뿐이었다.
범인은 검은 마스크까지 끼고 있는 데다, 두 명이었으니까.
나는 가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달력을 하나 더 찢었다.
같이 범죄를 계획한 남은 한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스스슥. 스슥. 스스스스슥.
찢은 달력을 가져온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한 명을 완성한 나는 그제야 경찰에게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아까 그 마스크 쓴 사람과 같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갑자기 아줌마가 입을 틀어막으며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가 아줌마를 쳐다보고 있자, 그림을 바라보던 아줌마가 입을 열었다.
“이, 이 사람··· 이 사람이 정말 같이 있었다고? 학생?”
“네. 맞아요. 차에 같이 타고 있던 사람이에요.”
경찰이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시는 분이세요?”
아줌마는 벙찐 표정으로 천천히 경찰의 얼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우리 계모임 하는 사람··· 나랑 엄청 친한 사람인데···”
바닥에 주저앉았다.
범인이 생각지도 못한 지인이었기에 더 충격이 큰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린 아줌마가 나에게 다가와 덥석 손을 잡았다.
“학생. 고마워.”
“아니에요. 그런 나쁜 놈은 무조건 잡아야지요! 사람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혼자만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잔뜩 감정이입이 되었는지 화난 얼굴로 열심히 중얼거리며 씩씩거렸다.
‘시벌. 내 오골계···’
화를 다 뱉어낸 후, 내가 조심스럽게 아줌마 옆에 다가가 중얼거렸다.
“근데 아주머니 죄송한데···”
“혹시 그··· 아까 주문한 삼계탕 재료 좀 주실 수 있나요?”
“아이고. 내 정신이야. 잠깐만 기다려.”
경찰은 나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을 봤느냐는 질문에는 이 시장을 오기 전.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가게를 지켜보는 범인을 봤다고 둘러댔다.
오골계는 할 수 없이 다시 내 돈으로 구입했고.
나는 아까 그렸던 그림 실력을 떠올리며 싱글벙글인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새 한 마리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내가 사실화를 그렸다.
그것도 아주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렇다면···”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엌에 나가 엄마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잽싸게 다시 방에 들어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스슥. 스슥. 스슥.
정말 5분도 채 되지 않아 만들어지는 사실화.
엄마가 내 앞에서 웃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
나 원래 천재였던 거 아니야?
잠시나마 착각하며, 순간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폐가와 흉가를 다니면서 귀신을 봐왔지만, 시청자들에게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증명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능력을 이용한다면···
“좋아. 유트브 컨텐츠로 딱인데.”
야생곰과 둘리가 사라졌지만, 아직도 흉가를 컨텐츠로 한 유트버는 계속 새롭게 생겨나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구독자들을 유지하고, 더 키워나가려면 남들에게는 없는 무기가 하나쯤 있어야겠지.
딱 알맞춤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가야 할 장소는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거야.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진지하게 장소 물색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곳이 좋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 선택한 곳은 다름 아닌 우리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섬마을.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딱 두 번만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 송해손잡고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
현재 시각 저녁 8시.
야간에는 운행이 안된다는 이유로 조금 일찍 섬에 도착했다.
“형님드으으으을! 연우 왔습니다요오오오오!”
- 여~ 왔는가?
- 잘 쉬었냐?
- 표정만 봐도 뭐 잘 먹고 잘 쉰 것 같네
- 물론 우리 후원금으로^^
- 근데 오늘은 또 어디냐?
- 바다 근처인가? 파도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냐?
- 바다 맞네. 갈매기 소리도 들리는 것 보니까
나는 씩 웃으며 주위를 비추었다.
저녁이 다가온 시간.
아직 다 물들지 않은 암흑 속에는 군데군데 노란 등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섬마을 주민들의 집.
가구가 얼마 되지도 않아 셀 수 있는 정도였다.
하나, 둘··· 음. 7세대?
나는 주민들이 만들어놓은 방파제 앞에 자리를 잡았는데.
주민들이 켜놓은 등이 바닷물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마치 빛을 흠뻑 받은 보석을 보는 것과 같았다.
“형님들. 정말 예쁘지 않나요? 이게 바닷가 근처에 살면 볼 수 있는 천연 보석들입니다.”
- 너 방송 대충 때우려고 동네 나온 거 아니지?
- 구독자 많이 늘었다고 쉽게 쉽게 갔다가는 큰코 다친다.
나는 검지를 치켜세워 이리저리 흔들었다.
“형님들. 제가 언제 방송을 건성으로 한 적 있습니까? 이 연우를 뭘로 보고··· 저 역시도 여기는 살면서 처음 오는 곳입니다.”
곧이어 내 손에 들고 있는 물건 하나를 비추었다.
“그리고 이게 뭔지 아십니까 형님들?”
- 헐?
- 뭐야? 혹시 텐트?
- 대바악~ 쬐깐한 놈이 이제 외박까지 하는 겨?
- 이야. 오늘 아주 날 잡았네
- 신나게 달리겠단 소리지?
- 근데 뭐야? 텐트 하나만 가져온 거냐?
- 다른 준비물이 아무것도 없네
“누울 곳만 있으면 되지요 형님들. 뭐 다른 게 필요하겠습니까? 그리고 이 텐트. 최신형 원터치 텐트입니다. 바람도 잘 막아주고 방수도 되는!”
박필준에게 급하게 빌려온 텐트였다.
혹시 텐트 같은 거 있냐고 물었더니 박필준 녀석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자랑하듯 내게 얘기했다.
[ 기가 막힌 거 있지. 최첨단 4인용 텐트. 사람 4명이서 자도 거뜬한 크기다! ]
나는 카메라에 대고 얘기했다.
“그럼 일단 텐트를 먼저 펼쳐보겠습니다 형님들.”
손에 들고 있던 텐트를 꺼냈다.
그리고 카메라에 대고 씩 웃으며 얘기했다.
“잘 보십쇼.”
말이 끝나자마자 텐트를 툭 하고 바닥에 던졌더니 순식간에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텐트가 완성됐다.
말 그대로 자동 완성형 텐트.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 보셨습니까 형님들! 기,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아아아아!”
- 원터치 텐트가 나온 지가 지금 몇 년째인데
- 이제야 저걸 구경 한 거야?
- 저거 빌려올 때 몇 번을 저렇게 펴봤을 거야
- 그리고 지금처럼 감탄했겠지?
- 귀엽다. 귀여워ㅋㅋ 우리 연우 순수한 모습에 내가 반했다
- 야. 근데 저거 너한테는 작을 걸?
채팅창을 바라보다 문득 다시 텐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이. 설마요. 박필준이 4명이 들어가도 거뜬한 크기라고 했는데···”
막상 쳐다보니 작은 것 같기도 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텐트 안에 조심스럽게 들어가 누워보았다.
머리 하나가 툭 하고 삐져나온다.
이런 시벌··· 뭐야 이게?
4명이 들어와도 거뜬하긴 했다.
물론 서있을 때 기준으로.
- 축하한다. 오늘 밤새 모기한테 헌혈해야겠네. 조심해라. 바다 모기 드릅게 쎄다.
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알지. 산 모기만큼이나 억세다는 바다 모기.
워낙에 더운 지방이라 가을이 지난 지금도 모기가 있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약 같은 건 하나도 하나도 안 챙겨 왔는데···
“괜찮습니다. 귀신 잡는 이 연우가 모기 따위에게 지겠습니까 형님들!”
- 응. 져.
- 얼굴이냐 발이냐
- 둘 중에 하나는 희생해야 한다.
- 골라 봐.
- 이쯤 되면 미션이 나올 만도 한데
[ 소잃고뇌약간고치기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잘 때 얼굴 내놓고 자면 10만 원.
나는 잠깐 벙찐 표정과 함께 멈칫 거렸지만, 이내 손가락을 들어 O 표시를 만들었다.
“그, 그 정도는 껌입니다 형님. 코오오올!”
그렇게 나는 텐트 안에 들어가 일단 앉았다.
정식으로 폐가 탐험을 할 시간은 11시.
그전까지는 시청자들에게 그림 실력이나 자랑하며 시간을 때울 생각이었다.
어느샌가 마을의 불도 하나둘씩 꺼져간다.
그리고 30분이 더 흐르자 모든 불이 꺼져버렸다.
섬마을의 암흑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보며 이 섬마을에 대한 스토리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 섬마을은 생긴 지가 100년도 더 됐대요. 원래는 100세대가 넘는 사람이 살았지만, 환경상 들어오는 사람 없이 줄어들기만 해서 지금은 10가구도 채 안 된다고 하네요.”
스토리의 공포를 더해주기 위해 나는 헤드랜턴을 아래에서 위를 비추게끔 놔두었다.
빛이 내 그림자와 함께 환하게 퍼진다.
내가 본격적으로 말을 이어붙였다.
“형님들. 그거 모르시죠? 여기서 예전에 살인사건이 난 적이 있었대요. 한 아주머니가 미쳐서 온 가족을 칼로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이···”
- 엥? 정말?
- 그 정도면 뉴스에도 나왔겠는데?
- 뭔데? 뭔데?
- 그 사람도 빙의 된 건가?
- 온 가족을 죽였으면 그럴 수도 있겠네
“아니에요. 도시에서 살던 여자가 이 섬마을에 살던 남자와 눈이 맞아서 결혼을 했는데, 그때부터 시댁살이를 하며 엄청 고생을 했나 봐요. 그것도 모자라 노예처럼 동네 사람들한테 부려먹히기까지···”
[ 차린건많지만조금만드세요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그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냐? 구라 아냐?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화 같아요. 저희 동네 나이 많은 어르신들한테 들은 얘기입니다. 부패한 경찰까지 엮여있어서 기사화도 되지 않았다네요.”
그렇게 시청자들에게 스토리를 풀어내며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쯤이었다.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히며 요란하게 소리가 일정하게 퍼진다.
차아아악!
여기저기서 벌레가 날아다니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가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아아악.
텐트 쪽으로 그림자가 살짝씩 지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내가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렸다.
“형님들. 잠시만요.”
그림자 하나가 내가 있는 텐트 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아주 작은 그림자.
나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해봐야 해가 다 져버린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뭐지? 동물인가?”
하지만 그 그림자가 점점 내게 다가올수록 내 인상은 점점 찌푸려졌다.
갓난아기 같았던 그림자가 커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를 넘어서서 학생···
결국, 내 앞에 멈춰 섰을 땐 나는 숨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내 텐트를 가득 채운 검은 그림자.
무엇보다 내가 놀란 건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 시벌 형님들 잠시만요. 누, 누구세요?”
조금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검은 정체.
아무런 대꾸도 들려오지 않는다.
홧김에 나는 텐트 지퍼를 확 열여 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