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 돈미새-140화 (140/225)

50년도 더 된 폐 광산. 8

- 에이 설마···

- 레알··· 의사까지?

- 모든 직업이 다 있다는 게 말이 됨?

- 연우가 인복이 터졌네

- 이 정도면 인간 전화번호부 책인데

- 두근두근

- 있나? 있나?

채팅창은 조용했다.

“음··· 병원 하시는 분은 없나요?”

그래도 다행히 구독자가 많이 생긴 덕분에 금은방은 쉽게 해결했으니까···

그 많은 금을 생판 모르는 곳에 가져다 보여줬다면 난 지금쯤 경찰서에서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 아쉽네요. 이왕이면 아시는 분한테 믿고 치료를 맡기고 싶었는데···”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BGM이 후원창에 깔렸다.

곧이어 우렁찬 남자 목소리가 채팅창에 울려 퍼졌다.

[ [email protected]@#$ 납시오오오! ]

- BGM 무엇?

- 누구야?

모든 이목이 후원창에 집중되었다.

[ 혀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 내 도움이 필요한가?

잠시 동안 나는 벙찐 얼굴로 후원창을 바라봤다.

말을 잇지 못했다.

설마 동의보감···

근데 그 닉네임에는 작대기 하나가 미세하게 더 붙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닉네임.

“혀, 혀준 형님. 혹시 병원 하시나요?”

- 설마 동의보감 그 사람 보고 지은 거지?

- ㅅㅂ 혀로 치료하냐?

- 직업이 AV 배우여야 더 자연스러운데

- 레알 ㅋㅋㅋㅋㅋㅋㅋ

- 개 소름 돋네

- ㅇㅇ. 백내장 치료는 우리 병원이 전문이지.

“······아. 네.”

믿어도 되는 걸까?

잠시 동안 의심했지만, 결국 나는 혀준 형님의 도움을 받아 할머니를 안전하게 병원에 모시고 올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방송을 켜고 들어간 병원.

크지 않은 동네에 있는 병원이지만 시설이 정말 깔끔했다.

환자층도 대부분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이용하시는 병원이었다.

잘 됐다 싶은 나는 얼른 할머니를 모시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혀, 크흠. 혀준 형님, 아니 선생님.“

가죽 의자에 앉아계시던 혀준 형님이 나와 할머니를 보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의자까지 손수 마련해 주며, 편하게 앉게 도와주었다.

잘생겼다.

아니. 정말 훈훈하게 생겼다.

훤히 드러낸 이마와 쌍꺼풀이 없는 큰 눈.

잡티 하나 없는 말끔한 인상이 의사라는 직업을 더 신뢰감 있게 만들어준다.

근데 왜 닉네임이···

“오셨어요 할머니. 왔니. 연우야.”

채팅창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무게감 있고 젠틀한 혀준 선생님.

“선생님. 근데 이거 수술은 위험하지 않은 거죠?”

“간단해. 15분이면 끝나는 수술이야.”

“아··· 정말 감사합니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선생님.”

“세상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내가 구독한 유트버를 이렇게 병원에서 만나다니··· 걱정 마. 앉아서 잠깐 쉬고 있어. 원래 예약을 하고 와야 되는데 너를 위해 특별히 시간 내는 거니까.”

혀준 선생님이 할머니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할머니. 여기 조금만 앉아 계시면 간호사가 부를 거예요. 그럼 그때 와주시면 됩니다. 아셨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내 손을 잡으려는지 주위를 더듬더듬거렸다.

그 모습을 본 내가 먼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할머니가 울먹거리시며 얘기했다.

“고마우이. 학생··· 이제 얼마 안 남은 노인네한테 정말 큰 선물을 주는구려.”

“아니에요 할머니. 제가 감사하죠.”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

이 상황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나한테 몰래 윙크까지 날리고는 할머니 상태 체크를 위해 몸소 움직여주시는 혀준 선생님 덕분에 나는 편하게 자리에 앉아 기다리기만 했다.

- 연우 자냐

- 침 흘린다! 침 흘린다!

- ㅋㅋ 그럴만하지. 날을 꼬박 새웠는데

- 대단하다. 회사로 따지면 철야하는 중 아님? ㅋㅋ

- 그나저나 40만 구독자 클래스 제대로 보여주네

- 일사천리로 모든 게 해결이 되는 구만

- 내가 연우를 구독한 건 바로 이런 것 때문이지

- 돈만 밝히는 돈미새지만, 이런 구석이 있어서 좋아한다!

툭. 툭.

나는 화들짝 놀라 입가를 슥 닦고 혀준 선생님을 바라봤다.

“어. 선생님. 다 끝났나요?”

혀준 선생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많이 피곤하지? 이제 할머니 나오시면 모시고 가기만 하면 돼.”

나는 연신 고개를 푹 숙이며 내 일인 것처럼 감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혀준 형님. 아니. 선생님.”

그리고 문득 생각난 수술 가격을 물었다.

“맞다 선생님. 혹시 수술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 수술 비용이 되게 비싸다고 들었는데··· 지금 가진 돈으로 해결이 될까요?”

혀준 선생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가 노안도 있으셔서 함께 진행하느라 수술비가 꽤나 나오긴 했는데··· 음. 500만 원 정도? 보험도 든 게 없으시다네.”

그래도 500만 원 정도면 다행히 해결은 가능하다.

나머지 비용은 할머니가 생활비로 천천히 쓰실 수 있게 해드리면 될 듯싶었다.

혀준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근데 오늘 수술비는 안 내도 돼. 이미 내가 결제했어.”

“에에? 서, 선생님이 결제하셨다고요? 왜요?”

“내가 연우 팬이라고 했잖아. 팬으로서 좋아하는 유트버한테 선물해 주는 거랄까.”

내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시벌. 연우야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

- 헉?

- 레알 500만 원 수술비가 선물이라고?

- ㅅㅂ 연우 클래스 쌉 오진다

- 와. 복 터졌다 진짜. 이런 팬이 어딨냐

- 혹시 저도 무료로 가능한가요?

- 저도요 저도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카메라에 대고 중얼거렸다.

“형님들. 여기 진짜 병원 시설 깔끔하고 좋거든요. 근처에 계시는 분들은 꼭 와서 건강도 체크하시고 치료도 받으시기를 추천드리겠습니다요! 그리고···”

혀준 선생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혀준 선생님. 혹시 제 이름 대면 뭐 할인 같은 거 없나요?”

혀준 선생님이 잠시 멈칫거렸지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우 있지. 여러분들 저희 병원에 오셔서 정연우 이름 대시면 20% 할인해 드립니다. 많이 많이들 찾아주세요!”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두 어깨에 자신감이 절로 장착된다.

“형님들. 보셨죠? 이것이 바로 연우 클래스 아니겠습니까!”

- 낯짝이 두껍다야. 500만 원 수술비를 대신 내줬는데 거기에 할인 요구까지 ㅎㄷㄷ

- 그래도 대단하네. 귀신이 너한테 선물 준 거를 고대로 다 할머니한테 드리고··· 너 괜찮은 거지?

나는 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차피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형님들.”

- 근데 왜 우는 것 같지?

- 돈미새 울지 마 뚝!

- 솔직히 아쉽긴 하겠지. 1~2만 원도 아니고 700만 원인데.

- 그래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할머니 드리는 모습에 감동

- 찐 인성을 보았다

- 괜찮아. 어차피 넌 우리한테 후원을 또 뜯어낼 거잖아?

- 너는 방송만 해. 돈은 우리가 벌게 해줄게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형님들. 열심히 뜯어. 아니. 해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수술을 끝내고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한 달간 눈 비비지 마시고, 잘 때는 꼭 보호 안대를 껴주세요. 눈에 물이 안 들어가게 조심도 하셔야 하고요.”

혀준 선생님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더 듣고 나서야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새 몰라보게 달라진 할머니의 모습에 절로 웃음꽃이 피었다.

불편했던 눈이 보이기 시작한 할머니는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신 혀준 선생님에게 감사해했다.

“아이고 의사 선생님.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연우한테 하세요. 다 연우가 늦지 않게 병원에 모셔온 덕분이니까요.”

나는 옆에서 민망한 마음에 뒷머리만 계속 긁적였다.

이후, 할머니는 집에 가는 동안 고맙다며 내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주물러주셨다.

그러다 결국 헤어질 시간이 다가와 내가 먼저 인사드렸고.

“할머니. 그럼 저는 이만 늦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앞으로 만수무강하시고 꼭 행복하세요!”

“고마워이. 진짜 고마워이~”

남은 돈을 통장까지 만들어 챙겨드리고 나서야 집으로 출발했다.

오후 4시.

지금 내 상태는 좀비 그 자체.

눈을 억지로 뜨고 있지만, 정신은 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 야. 그만 방송 꺼라

- 곧 뒤질 것 같은 놈이 방송은 왜 안 끄고 있는 겨

- 레알 ㅋㅋ 편하게 방종이라도 하지

- 혹시 후원 들어올까 봐 그러는 거 아님?

- 헐··· 그 와중에도?

- 근데 쟤 지금 눈 뜨고 있는 거 맞지?

- ㅋㅋ진짜 고생하긴 했네. 얼른 쉬어라

장정 4시간이 더 지나고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는 걸 보고 나서야 난 집에 도착했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버텨가며 난 방종을 위해 시청자들에게 인사했다.

“형님들··· 연우 진짜 뒈질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만 방종하고 다음에 뵙겠습니다요. 형님들 안녀어어엉.”

엄마가 놀란 듯 내게 붙어 계속 질문을 했지만, 나는 그야말로 비몽사몽.

그대로 뻗어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여긴 어디지? 어두컴컴한 방 안?

아니야. 밟고 있는 땅이 울퉁불퉁하다.

몇 발자국 더 가고 나서 나는 그곳이 어딘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뭐야? 어제 다녀왔던 폐광산이잖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눈을 뜨고 있었던지라 기억에 많이 남았는지 꿈까지···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30대처럼 보였는데 어디서 많이 본듯한 낯익은 얼굴이었다.

남자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서 악수를 건넸다.

“······누구세요?”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대답했다.

“어제 봤는데 고새 까먹었어?”

순간, 내 몸이 멈칫거렸다.

나는 그 남자의 다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어째서?

“어? 귀신 형님. 아니. 해수 형님 아니세요?”

“이제야 알아보네.”

그 남자는 내가 바로 어제 폐 광산 깊숙한 곳에서 만났던 그 귀신이었다.

나랑 만난 이후로 스스로 성불한 거야?

남자가 내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더니 끌어당겨 나를 안았다.

“고마워. 네가 한 일들 다 지켜봤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아 올랐던 귀신이었을 때랑은 다르게 뭔가 포근한 기분이 든다.

햇살처럼 따뜻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

반가운 마음에 안은 채로 정해수 형님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남자가 나를 보고 웃으며 얘기했다.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어서 찾아왔어···”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고맙긴요.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남자가 줄 것이 있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린다.

그 물건을 찾았는지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그게 뭐예요···?”

선물에선 아주 강한 빛이 퍼졌다.

동시에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고.

잠시 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선물을 확인하며 나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1